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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받으시더라(II): 낮추심” 누가복음 4:1-8 (03/24/2019)

 

한 상담가가 시각 장애인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모임을 돕게 되었습니다. 상담가는 새로운 그룹을 책임 맡고서 자기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못 본다고 생각이 들어 농담 삼아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제 얼굴을 잘 못 보실텐데 저는 늘 이런 말을 들어 왔습니다. 제 모습은 Paul Newman과 Robert Redford를 합친 모습이라고….” 그랬더니 한 여인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우린 그렇게 눈이 나쁘지 않아요.”

 

어느 사순절 묵상집에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의 상담가는 웃으개 소리로 말은 하였습니다만, 어쩌면 우리들의 신앙 생활의 일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속이고, 이웃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멋진 신앙인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이웃에게 말하고 하나님께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런데 확실한 것은 자신은 깜빡 속일수 있고 이웃은 약간 속일수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은 속이지 못할줄 압니다. 이웃의 눈도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일 문제는 자신일줄 압니다. 우리는 자신을 속이면서 그동안 신앙 생활하지는 않았는지요? 사순절은 어떻게 보면 자신을 속여 왔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 자신을 속여 왔던 나의 모습을 찾아 낼수 있을까요? 지난 주에 이어서 주님의 시험 받으시는 장면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부터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살피면서 사순절의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주 말씀을 잠깐 다시 생각한다면 주님은 40일을 주리신 후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에 넘어가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해서는 돌을 떡으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사는 자들은 남을 위해서는 돌을 떡으로 만들지만 결코 자신을 위해서는 만드시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결국 주님께서는 이 시험을 통과하셨고 이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 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쩔수 없이 마귀는 꼬리는 내립니다.

 

한번 꼬리를 내렸다고 포기할 마귀가 아닙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5절 말씀입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마귀가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 어느 산을 올라갔는지는 알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눈 앞에 천하 만국이 보이는 곳에 올라갔습니다. 이 당시 천하만국이라면 당연히 ‘Pax Romana’, 로마의 영광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물론 요즘 같으면 미국의 영광이겠지요. 하여튼 마귀는 예수님에게 로마의 화려한 영광을 보여 주었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제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을 찾아 내자는 말씀을 먼저 드렸는데, 자신을 속이는 자의 대표는 바로 마귀입니다. 사실 마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주길 원해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지만 줄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최종 결재자는 하나님인 것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귀는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속이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는 30년동안 시골 나사렛에서 목수로 일했던 촌사람입니다. 그리고 40일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지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면 40일 금식하고 나면 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촌 사람에게 세상 영광을 보여 줍니다. 40일간 광야에서 지냈으니 세상 영광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릴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준 것 아닐까요? 아니 보여주기만 하면 다행이게요. 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마귀는 그럴싸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절만 하면 자기가 줄수 없는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과연 넘어 가셨을까요? 8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또 다시 꼬리를 내립니다. 왜 꼬리를 내렸을까요? 평범한 말씀으로 응답하신 것뿐인데…. 저 같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 것이야,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받을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 세상 것을 모두 주겠다고…? 너를 경배하면 주겠다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를 섬겨야해! 그러면 다 주실거야.”

저의 답변이 어떻습니까? 맞습니까, 틀립니까? 주님의 답변 보다 어떻습니까? 더 그럴싸 하고 구체적이지 않은가요…?

다시 주님의 답변을 들어 보실까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주님은 물질과 권세와 영광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없으십니다. 그저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말씀만 인용하십니다.

한편 왜 주님은 저처럼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면 훨씬 더 이해가 쉬었을텐데…. 마귀가 더 꼼짝 못했을텐데….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잿밥에 더 마음이 가 있는 표현입니다. 다시 저의 답변을 반복해 드리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 것이야,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받을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 세상 것을 모두 주겠다고…? 너를 경배하면 주겠다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를 섬겨야해! 그러면 다 주실거야.”

말은 맞는 말 같지만 하나님 경배는 단 한번 언급하고 수없이 물질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반복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 경배를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세상 것에 가 있는 실제로는 세상 것을 더 숭배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기가 막히게 속이고 있고 또 속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요즘 한류가 유행인데 저는 한국 드라마가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것은 자기를 속이며 살고 있는 우리들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래전 한국이 가난할 때는 물론 그 때도 드라마는 있었지만 그 때 내용을 보면, 제가 기억나는 드라마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재벌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 때는 재벌도 없었고 막 이병철 씨가 사람들 입에 회자할 정도였을 때입니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를 보면 재벌 가정이 빠지면 전혀 드라마가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사람이 아니라서 감히 판단할수는 없지만 제가 본 것들을 보면 거의 재벌 회장 가정이 등장합니다. 아마 그래야지만 사람들이 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우리는 재벌을 욕은 하지만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그들을 동경합니다. 그들 자리에 가 보고 싶습니다. 대신 드라마를 통해서 그들을 경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마귀가 두번째 또 꼬리를 내릴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확실해 졌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영광과 권세라는 단어도 입밖에 내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조건없이 경배하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신 것입니다.

마귀는 은근히 바랬을 것입니다. ‘세상 것’이라는 말이 주님의 입에서 나올 것을…. 그것도 여러번…. 물론 세상 것을 부정적으로 뜻하는 말이 나올지라도….

그러나 자신을 철저히 낮춘 사람은 결코 세상 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직 경배할 자를 아무 조건 없이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좀 더 따졌다가는 본전도 못 차릴 것을 알았던지 지혜로운 마귀는 여기서 두번째 시험을 접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두 번으로 그칠 자가 아니죠. 이제는 어디로 이끄시나요? 오늘 본문 말씀 다음 귀절인 9절 말씀입니다.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첫번째 시험은 광야에서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두번째로는 높은 곳으로 갔습니다. 아마 광야는 더 이상 아닌 것 같습니다. 세번째로는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우리가 주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세 가지 시험 중에 광야 한 복판에서 받은 시험은 첫번째 시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마귀는 광야에서 예수를 빨리 멀리하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광야로 돌아 오지 못하도록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여 준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광야의 저력을 알기 때문에…. 광야에서 예배하는 자들을 통해 나타날 하나님의 역사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1:3절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셨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광야는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경배를 한다면 말입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있는데, 말씀과 광야는 어원이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이제 인간이 죄를 지은 다음에는 광야에서 말씀으로 새로운 창조를 하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사실 마귀는 이것을 잘 알기에 예수에게 유혹한 것입니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저주의 땅, 광야요. 나와 함께 높은 곳에 올라갑시다. 그리고 축복의 땅을 보세요. 나를 경배하면 저주의 땅을 피해 축복의 땅을 순식간에 차지할 겁니다.”

이에 주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더 깊은 뜻이 있을줄 압니다.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할 때 마귀가 보여 주었던 천하만국보다 더 놀라운 세계가 창조됨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광야에서 제일 많이 일어 났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가운데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마라의 쓴 물이 단물이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리뱀을 만들어 높이 올렸을 때 그것을 보는 자들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앰블란스에는 구리뱀 그림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광야에서 생긴 일들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는데 아니 반역을 밥먹듯이 하였지만 이런 놀라운 일들을 펼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만일 광야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경배한다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겠습니까?

마귀가 이를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 빨리 주님을 광야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첫번째 시험에 실패하고는….

 

  그렇다면 우리가 사순절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서 속히 우리가 처한 광야에서 떠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절기인가요? 우리 스스로를 속이며 살었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광야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광야에서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나머지는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몫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성 테레사와 여동생 셀린의 참으로 경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그런 것처럼 셀린도 자신의 약점들과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거룩함을 향해 가는 길이 너무나 멀고 이는 마치 구름을 뚫고 험한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에 테레사가 충고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높은 산을 오를 필요가 없다고 도리어 하나님은 셀린을 만나기 위해 내려오신다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는 산을 오르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네가 도리어 내려가길 원하시지…, 사실 하나님은 저 아래 골짜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계시거든….”

 

경배한다는 것은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것입니다. 낮은 곳에 이미 와 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은 온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오셨습니다. 광야로 오셨습니다. 광야에 주님은 먼저 와 계십니다. 광야에서 우리와 더불어 천하만국 보다 더 놀라운 세상을 만드시기 원합니다. 스스로 낮추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과 함께…. 곧 광야에서 제2의 창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곧 사순절은 광야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속였던 것을 발견하고 광야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를 보기 위함입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겸손한 경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지난 주일에는 가까운 성요한 교회에서 45주년 기념 예배와 함께 교회 헌당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미국 교회와 50대 50의 재산권을 나누고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교회를 떠맡게 된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렌트비를 몇 백불씩 내면서 지내다가 후에 50:50이 되었고 이제 100%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초대 목회자이신 권진태 목사님께서 렌트비를 내다가 50:50이 된 경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 세미나를 참여했는데, 강사가 ‘온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고 특히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는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비록 렌트비를 내는 처지이지만 교회 수리하는 일이나 올갠 고치는 일이 있으면 아무 조건 없이 반반씩 분담하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러다가 교회가 성장하면서 미국 교회에게 50:50으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는지 당분간 연락이 없었다고 합니다. 후에 연락이 오길…. 그동안 이사회에서 성요한 교회가 얼마나 공헌을 했는지 조사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늘 아무 조건없이 여러 차례 헌금한 내역을 알게 되었고 이사회에서는 50:50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 조건 없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배한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광야는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놀라운 땅입니다. 그러니 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배하십시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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