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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데에 탄생하신 아기” , 디도서 2:15-3:7 (2023. 12. 24)

Sermon 122423

“그레데에 탄생하신 아기”

디도서 2:15-3:7

프랑스 작가들이 만든 아름다운 아기 예수 탄생 이야기입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 마굿간에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이 와서 경배를 드리고 떠난 후입니다. 한 나이 많은 여인이 남루한 옷을 입고 마굿간 문에 나타났습니다. 마리아는 초췌한 방문객을 보고 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여인은 무거운 짐을 메고 있는듯 구부정한 모습이었습니다. 여인은 말구유로 한 발자국씩 가까이 갑니다. 한 발 한 발 띄는 것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마굿간에 있는 동물들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습니다. 마치 동물들은 기대했던 사람이 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여인은 말구유에 오더니 아기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댑니다. 그러더니 옷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꺼냅니다. 마리아는 신비스러운 선물임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는 여인은 마리아에게 미소를 짓더니 마굿간을 나섭니다.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마리아는 아기예수에게 남기고 간 선물을 봅니다. 사과였습니다. 작은 사과, 그러나 전 세계의 죄를 다 담은….

그 여인은 하와였습니다. 자신이 시작한 죄의 사과를 아기예수에게 전해 주려고 찾아 온 것입니다. 자신이 따먹은 사과를 선물로 놓고 떠난 것입니다. 자신으로부터 시작한 온 인류의 죄가 담긴 사과였습니다.

오늘 성탄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서로에게 성탄카드나 선물을 나누며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이처럼 서로에게 카드와 선물을 나누는 축복을 누리는 이유는 바로 아기 예수께서 이 사과를 선물로 받으셨기 때문일줄 압니다. 아니 하와를 통해 드린 우리들의 선물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카드와 선물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주님께서 받으신 사과의 선물을 잊고 지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됩니다.

선물을 함께 나누지만 주님께서 받으신 선물도 늘 기억할 때 우리는 진정한 아기 예수를 기다리고 축하하는 성탄절을 맞이 하게 될줄 압니다. 아니 진정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최고의 축복을 누리게 될줄 압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바로 디도가 누렸을줄 압니다. 오늘도 디도서 강해설교를 이어갑니다. 사도바울은 디도를 그레데 섬에 보내고는 많은 기도를 드렸을줄 압니다. 두 가지를 위해 기도드렸을줄 압니다. 그 두 가지는 사실 서신 서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디도를 그레데 섬에 보내고는 말씀이 잘 전파되어서 교회가 든든히 서 가게 될 것을 늘 기도드렸을 것입니다. 곧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그리고는 디도를 위해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디도의 영성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다르게 말해서 주님을 더 깊게 만나는 축복을 누리게 함입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의 삶을 누리는 것은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디도를 응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3:2절까지 디도를 응원하는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15절만 봉독해 드리면,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사실 젊은 디도가 권면하고 권위로 책망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디도에게 사도바울은 힘든 과제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보다 나이도 많고 세상 경험도 많은 성도들을 권면하고 책망하는 것 누가 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복음사역을 위하여 이 일을 행할 때 디도는 아기 예수의 신비를 더욱 누리게 되었을줄 압니다.

실은 오늘은 성탄주일이라 디도서 강해를 한주 멈추고 주님 탄생 이야기를 본문으로 삼을까도 생각했지만 어찌 보면 오늘 본문 말씀의 흐름 속에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스며 있음을 보고는 디도서 강해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한 번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아기 예수의 오시는 모습을 만나 볼까요? 먼저 3:1절 말씀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준비하는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마리아가 만삭이 되었을 때 로마 황제가 칙령을 내려 고향으로 돌아가 신고를 하라고 합니다. 이 때 요셉이 순종해서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만일 로마 황제의 칙령에 순종치 않았으면 어떠했겠습니까?

물론 부조리한 것에는 반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권세 잡은 자들에게 순종할 때 선한 일의 길이 열림을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요셉이 순종하였기에 베들레헴에 구주가 태어나는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베들레헴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우리는 늘 성탄절에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너 잠들었느냐’등 아름다운 노래로 인해서 베들레헴은 아주 성스럽고 아름다운 곳으로 우리들 뇌리에 자리 잡고 있을줄 압니다. 저는 베들레헴을 3:3절 말씀이 잘 서술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요즘 수요여성성경공부시 창세기를 나누고 있는데 특히 야곱의 아내들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야곱의 정식 아내가 둘이고 첩이 둘입니다. 정식 아내의 언니는 레아이고 동생은 라헬인데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처음에 아이를 낳지 못해 평생 아픈 마음으로 지냅니다. 막판에 겨우 요셉을 낳습니다. 이제 요셉을 낳은 후 고향으로 돌아 오는데 라헬이 두번째 아들 베냐민을 낳으면서 죽습니다. 이곳이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에 라헬의 묘가 있습니다.

사실 라헬이 막내를 낳을 때 스스로 아들의 이름을 짓습니다. ‘벤노니’ 뜻은 ‘슬픔의 아들.’ 이를 야곱이 듣고 있다가 다른 이름을 붙여 줍니다. ‘베냐민.’ 뜻은 ‘오른손의 아들.’

라헬은 평생 언니 레아를 시기했고 늘 불평과 불만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해서…. 결국 막내를 낳으면서 평생 자신의 삶을 묘사하는 이름을 지어 준 것입니다. ‘벤노니.’ ‘슬픔의 아들.’

사실 성경에서 ‘베들레헴’이 처음 언급되는 곳이 바로 라헬의 죽음의 이야기가 나오는 창세기입니다. 곧 슬픔의 아들을 낳은 곳…. 그런데 이 곳이 다윗의 고향이 되고 후에 아기 예수가 탄생합니다.

얼마전 테네시 주에 토네이도가 들이 닥쳤습니다. 모빌홈에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아기가 토네이도로 인해서 엄마 품에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토네이도가 멈춘 후 절망 가운데서 엄마는 아기를 찾아 나섰는데 다행히도 뿌러진 나무 밑에 상처 하나 나지 않고 잠 자고 있는 아기를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것을 온 세계에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아기 예수가 이 슬픔과 절망의 마을에 찾아 오셨을까요? 4절,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이 말씀은 성탄 이야기를 빼놓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곧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말씀 귀절 귀절에는 아기 예수의 향취가 스며져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슬픔과 파괴가 있는 곳마다 실은 아기 예수는 태어나곤 하신 것입니다. 이를 오래전 설파한 분이 바로 죤 밀톤 입니다. 그는 대서사시 실락원을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인간 최초의 불순종, 저 금단 나무의

열매, 그 치명적 맛

세상에 죽음과 고통을 몰고 온,

에덴을 잃고서야 비로서 위대한 이가

우리를 회복시켜, 행복의 자리를 되찾게 하시니

 밀톤은 노래합니다. 하와의 죄와 함께 이미 아기 예수는 태어나기 시작했음을…. 우리를 회복시켜 행복의 자리를 되찾게 하기 위함이라고 노래합니다.

 곧 아기 예수는 온 인류를 위하여 하와의 사과를 선물로 받기 위해서 슬픔의 마을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이 아기 예수는 슬픔의 아들이 태어나는 곳에 태어나십니다. 벤노니를 벤냐민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행복의 자리를 되찾게 하시려고…. 이를 6, 7절 말씀이 확증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하려 하심이라.”

베들레헴에서 벤노니를 베냐민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슬픔의 아들을 오른편의 아들이 되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디도가 사역하는 그레데 섬이 바로 베들레헴임을 은연 중 말씀하는 것입니다. 온갓 죄와 모순과 불행이 가득차 있는 곳에 아기 예수는 다시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이곳이 우리 가정일수가 있고 직장일수가 있고 아니 교회일수도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디도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사도바울은 디도를 그레데 섬에 보낸 것입니다. 그 결과 그레데 주민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어 갔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도 그레데와 같은 곳에 아기 예수는 태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기를 원하지 않는 곳에 아기 예수는 태어납니다. 한편 이를 깨닫고 감사하며 아울러 이 놀라운 복음 사역에 참여하는 분들은 아기 예수의 신비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어 갑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보스톤은 토네이도는 거의 찾아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영적 토네이도는 그 어느 곳 보다 살벌한 곳이 아닐까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곳에 아기예수가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이곳도 베들레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스톤에 보내신 것이 아닐까요?

말씀을 거둡니다.

베들레헴에The Evangelical Lutheran Christmas Church Bethlehem이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요즘 전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입니다. 올해에는 색다르게 Nativity scene을 장식을 했습니다.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고 돌더미 잔해 사이에 태어난 모습으로 장식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장식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가장 위험한 곳에 태어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 인류의 소망이 되십니다. 이 주님의 탄생을 기쁨으로 맞이하십시다.

아기 예수가 돌무더기 틈새에 탄생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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