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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온 땅을…” 여호수아 2:15-24 (02/02/2020)

 

오늘은 한 가지 수수께끼로 시작하겠습니다. 다음 열거하는 회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아마존, 애플, 디즈니, 구글. 네 회사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모두 차고(garage)에서 시작했습니다.

Jeff Bezos는 1994년 amazon.com을 만들고 1년 후 첫 중고책을 판매합니다. 그리고 25년만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됩니다.

Steve Jobs는 그 보다 20년 일찍 1976년에 차고에서 콤퓨터를 조작해서 팔기 시작해 오늘의 애플을 만들어 갔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일찍 1923년 Walt Disney는 삼촌의 차고에서 첫 작품을 만들어서 오늘의 디즈니가 되었습니다.

이 세 회사보다 제일 늦게 곧 1998년 Larry Page 와 Sergey Brin이 어느 차고에서 Google을 시작합니다. 저도 자주 설교 준비를 하면서 구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차고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달라도 많이 다르겠죠.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다. 처음 Bezos가 차고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좀 한심하지 않았을까요?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사무실이나 창고도 없이 아침마다 차고로 들어가는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그러나 저는 한 가지는 확실히 말씀드릴수 있다고 봅니다. 만일 처음부터 사무실과 창고가 주어졌다면 오늘의 아마존이 될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러지 못했으리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증인들이 바로 애플과 디즈니와 구글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잘 아시는 Hewlett Packard도 차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어디로 인도하시길 원하실까요? 사무실…? 차고…? 오늘 제직임직예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어느 곳으로 인도하셨는지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간 상 15절부터 봉독해드렸지만 실은 2장 전체가 오늘 본문 말씀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1절말씀입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이스라엘민족은 모세의 영도하에 광야 40년을 마치고 이제 여호수아의 영도하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막 들어가려고 할 찰라입니다. 여호수아는 두 사람을 가나안 땅으로 정탐꾼으로 보냅니다.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기 전에 저는 가나안 땅은 이 당시로서는 전 세계의 차고였음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나안 땅 곧 현재의 이스라엘 땅은 세 개의 대륙이 만나는 곳입니다. 유롭,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가 만나는 곳입니다. 이 당시에는 이 세 개의 대륙밖에 없는 줄 알았던 때입니다. 이 세 대륙이 바로 오늘의 이스라엘 곧 가나안 땅을 통해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항상 모든 거래는 이 곳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어쩔수 없이 항상 불안한 곳 어떻게 보면 열려 있는 곳입니다. 바로 이곳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지형적으로 차고의 역할을 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차고로서 좋은 위치라는 것은 어떤 민족도 여기에 들어가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차고는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들이 자는 하찮은 곳입니다. 그러기에 쥐들도 들락거리고 고양이의 놀이터요. 때로는 쓰레게의 임시 저장소입니다. 밖으로 버려지기 전에 머무는 곳…. 곧 아무도 살기를 원하지 않는 곳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또한 예비해 두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판가름하는 첫번째 만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어느 지역에 가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 누군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여호수아가 보낸 두 사람은 첫 번째로 누구를 만납니까? 그들은 라합이라는 기생의 집에 들어갑니다.

아마 두 사람은 여리고로 가면 하나님께서 숨을 곳을 마련해 두셨겠지 믿고 떠났을줄 압니다. 그런데 웬걸 어떤 싸인도 느끼지 못합니다. 어디로 갈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급한대로 아무나 들어갈수 있는 기생집으로 몸을 피하다시피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을 만납니다. 사실 이미 라합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하신 일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때마침 정탐꾼 두 사람이 들어 오니 이들을 지붕 위에 숨겨줍니다. 여리고 군인들이 수색을 하니 이미 집에서 나갔다고 찾는 자들에게 거짓말합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쳐 들어 올 때에 자기와 가족들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에 두 사람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합니다. 그러면서 약속의 징표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결국 라합은 두 사람을 보내고 창문에 붉은 줄을 맵니다.

 

자,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을 거쳐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죽게 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놓으시고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갈 때는 기생 라합의 신세를 지게 하셨을까요?

사실 기생집은 어떻게 보면 가나안 땅 안에서도 차고와 같은 곳입니다. 차고 안에 차고인 셈입니다. 곧 사람들에게 늘 열려져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차고와 같은 속성이 이스라엘의 DNA가 되길 원하신 것 같습니다. 이를 예수님의 족보에서 우리는 더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5, 6절 말씀을 보면,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곧 라합은 다윗 왕의 고조할머니입니다. 다윗 왕의 피가 그리 깨끗하지 않습니다. 고조 할머니가 가나안 여인이자 기생인 라합입니다. 그뿐 아니죠 증조할머니는 룻입니다. 룻은 기생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회중에 들어 올수 없는 모압 여인입니다.

 

곧 라합의 DNA 곧 차고의 DNA는 다윗 왕조의 DNA가 되어 갑니다. 차고의 DNA가 이스라엘 민족의 DNA가 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족보는 모든 세상에 열린 차고와 같은 족보임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은 차고보다도 더 세상에 열려져 있는 마굿간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래도 아무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차고의 DNA를 갖고 계시니….

이에 두 정탐꾼을 라합에게 보내신 이유가 확실해 졌습니다.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에서 사는 이스라엘 민족은 privacy가 없는 만국을 위한 민족이어야 함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기왕 privacy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니 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드리면…, 사실 현대인들은 privacy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유진 피터슨 목사님에 의하면 Privacy어원의 의미는 놀랍게도 ‘도둑질’이라고 합니다. 나의 것을 가리면 가릴수록 그것은 도둑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고 안에 넣은 정도의 privacy는 소중하지만 집안에 가두어 놓는 곧 이중 열쇠로 잠가 놓는 privacy는 도둑질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privacy가 안 좋다는 것을 우리 몸이 증명을 합니다. 우리 몸이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세포는 membrane이라는 막과 같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membrane에는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늘 여러가지 물질들이 들락날락 거립니다. 구멍이 막히는 순간 세포는 죽는 것입니다. 곧 privacy라는 미명 아래 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스스로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인류는 privacy라는 미명하에 도둑질할 것을 너무도 잘 아셨던지 아예 숔를 주시기 위해서 기생 라합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너희도 이중 열쇠로 잠가두지 말고 차고 안에서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을 밝히시고 계신 것입니다.

 

아마 라합의 집 지붕에 숨어서 두 정탐꾼은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요? 열린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런 확신을 안고 다시 자기 민족이 있는 요단 건너 편으로 갔을 것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고하고.”

그들은 라합의 집에 들어 간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담대하게 여호수아에게 보고 했을줄 압니다. 그리고 라합과 약속한 것을 꼭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약속한 것이 무엇이죠? 빨간 줄을 내려 놓을텐데 그 집에 모인 사람은 구원해야 한다는 약속을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빨간 줄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언젠가 골고다라는 차고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흘리실 것을 빨간 줄이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차고와 같은 민족으로서 환히 뚫려서 이웃에게 자기들의 것을 늘 내 보여야 함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이웃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바로 빨간줄이었습니다. 자기들을 살린 빨간 줄, 이는 곧 주님의 보혈인 것입니다.

 

이제 두 사람은 이러한 확신을 갖고 여호수아에게 보고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두 사람은 확신 가운데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이라는 아름다운 차고에 두번 세번 열쇠로 잠고 사는 가나안 사람들이 이제는 새로운 민족, 곧 가나안이라는 차고에 열려진 삶을 살려고 들어오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간담이 녹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라합과 같은 기생도 룻과 같은 이방인에게도 활짝 열려 있는 온 인류의 하나님임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열려 있는 민족 앞에 갇혀 있는 민족은 간담이 녹을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빨간 줄을 이웃에게 보여주는 민족 앞에 어떤 민족도 감당할수 없음을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25년째 본 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만, 25년 동안 아주 감격적인 순간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중 제가 온지 2년 만에 본 교회당을 저희 교회가 미국 교회에서 인수를 받았습니다. 저희 교회가 미국 교회에 빌려 쓰고 있을 때는 본당문을 열쇠로 잠가 두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본당문을 잠가둔 열쇠를 풀고야 들어와 기도를 드릴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갈 때는 또 잠그고 나갔습니다.

교회를 인수한 후 처음으로 한 것이 열쇠 체인을 없앤 것입니다. 누구나 아무 때나 기도할수 있도록 본당문을 열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열쇠로 잠가두려고 하는 민족은 열어 놓으려고 하는 민족 앞에 간담이 녹을수 밖에 없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열쇠로 잠가 둔 가나안의 열쇠를 풀어 차고로 만들게 하라고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에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를 확증하기 위하여 라합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를 부르크라인 한 복판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신 이유는 이곳에서 열쇠로 잠근채 한국인의 privacy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차고가 되어서 세상과 소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소통을 하되 우리를 구원한 빨간 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 제직 임직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새로이 임직 받는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두 사람입니다. 두 사람의 역할은 모든 교인들을 차고의 삶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를 사랑하셔야 합니다. 하나는 빨간 줄이 되신 Jesus, 또 하나는 빨간 줄이 매여 있는 차고(garage).

 

 

말씀을 거둡니다.

오래 전 학생 시절에 내과 병실을 돌고 있을 때입니다. 제가 맡은 환자 중 한 사람이 간경화증을 앓고 있는 젊은이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간경화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아주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어느날 병실에 들어갔는데 이 젊은이가 성경을 펴고 간호사를 붙들고 성경 말씀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그의 질병은 하나의 차고에 불과했습니다. 그 분 안에 있는 붉은 줄 주님의 보혈의 피가 차고를 통해 온 이웃에게 보여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분을 생각하며 이런 결론을 내릴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자랑하는 순간 우리들의 모든 어려움도 하나의 차고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가둘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차고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는 보화인 주님의 보혈을 온 세상에 환히 내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곧 Jesus와 Garage를 사랑하는 삶은 우리를 묶어 두는 그 무엇이 있을지라도 주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 때 보혈의 능력은 온 세상에 가득차게 되지 않을까요? 두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좋은 집을 팔고 차고와 같은 집으로 이사가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가 보혈의 주님을 자랑하는 순간 우리가 있는 곳은 차고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직 여러분,

Jesus와 Garage를 사랑하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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