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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 같이 되어” 욥기 23:10-17 (03/29/2020)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지하 묘지에 있는 한 성공회 주교의 묘비명에 기록된 글입니다.

“젊은 시절 나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꿈꿨습니다.
나이가 들자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시야를 좁혀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황혼이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나는 가장 가까운 가족을 변화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나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마침내 세상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을.”

 

젊은 시절부터 세상을 바꾸겠다고 노력하다가 실패하고는 결국 자신을 바꾸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죽음을 맞이한 한 성공회 주교의 고백입니다.

이 묘비명 앞에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서서 이 글을 읽었을줄 압니다. 여러분들도 최소한 이 시간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그 앞에 선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동안 이 글을 읽은 모든 사람들만이라도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다면 지금 세상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아니 이 글을 접한 사람들은 최소한 얼마 동안이라도 자신의 변화를 위해 애썼을줄 압니다. 얼마나 오래 갔을지는 몰라도…. 그러나 많은 경우 실패했을줄 압니다.

두 가지가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은 변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는 우리는 사람이라서 어디서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알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만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는 자기를 늘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나옵니다. 욥입니다. 욥의 모습이 욥기 1:8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그는 늘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애를 쓴 사람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욥을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손에 잠시 맡겨서 시험을 들게 하십니다.

간추려 말씀드리면, 욥은 순식간에 재산과 함께 자녀들을 모두 잃습니다. 그래도 그는 고백합니다. 1:21절 말씀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은 자녀들과 재산들을 빼앗겨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쩔수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욥의 몸에 욕창이 나게 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도 참을만 합니다.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내의 조롱입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친구 네 명이 욥의 소식을 듣고 찾아 옵니다. 스스로 늘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서 의롭다고 소문난 친구인 욥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말이 결코 욥을 위로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말은 어떻게 보면 논리적으로는 맞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목 조목 논리의 칼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곧 욥은 자녀와 재산을 잃고 욕창으로 인해 고생을 하고 아내로부터 조롱을 당하며 친구들의 논리의 칼에 난도질을 당하는 고통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고통 가운데서 욥은 유명한 말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알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한 가지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을 잘 알고 계시고 이 과정을 통해서 순금 같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용광로 속에 갇혀 있는 자신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순금 같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아는바가 없습니다. 이 용광로가 얼마나 더 달아 오를 것이고 얼마나 더 오래 갈 것인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은, 자기가 겪고 있는 모든 고난은 자신의 변화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손 길 안에서 욥은 자신 스스로는 결코 도달할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갈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순금 같이 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금 같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야말로 세상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일까요?

 

올해 사순절은 첫째주는 시간의 위대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이를 지난주에 다시 반복한 셈입니다. 현재라는 시간 안에서 과거를 높이고 미래를 즐기는 삶을 살 때 진정 시간의 위대함을 회복하는 것이고 이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편 사순절 둘째주에는 공간의 위대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고라의 자손의 삶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고라는 비록 모세와 아론에 대항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했지만 고라의 자손을 도리어 성전 지키는 자들로 세우심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사랑 곧 상처 받지 않은 자처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보이셨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찬 곳이 바로 성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하는 모든 공간을 위대하게 곧 성소로 만드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공간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이 무한한 사랑을 보이시기 원하십니다. 오늘은 둘째주에 이어 공간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 나누고자 합니다.

 

그러면 욥이 사는 공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그 공간에서는 어떻게 상처받지 않은 자처럼 사랑하는 역사가 벌어지고 있을까요? 11, 12절 말씀입니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욥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자녀도 잃고 재산도 잃고 아내의 조롱과 친구들의 멸시 가운데 살았으며 아울러 욕창으로 고생했습니다. 수많은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욥의 반응은…? 스스로 언제나 말씀대로 살았고 말씀을 늘 귀히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처받지 않은 자처럼 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 욥의 모습입니다.

 

한편 욥은 위대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13, 14절 말씀입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욥은 하나님의 사랑 곧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자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고난의 시간에도 함께 하는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곧 욥은 고난의 공간이 바로 성소임을 믿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소는 곧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한번도 상처받지 않고 사랑하는 공간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순금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하나님께서 작정하셨고 이런 일이 많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공간 안에서 매일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직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순금’이라고 표현하셨을까? 순금하니 이스라엘 민족과 관계되어서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광야 40년이 막 시작한 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는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순금으로 우상 곧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광야에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도리어 순금으로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반면 욥은 고난 가운데서 말씀대로 살아서 자신이 순금으로 되어 간다는 확신 가운데 고난을 이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욥은 위대한 삶의 공간을 성전으로 삼고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스스로 순금이 되어 간 것입니다.

 

저는 얼마전 읽은 헨리 나우웬의 글에서 바로 순금은 이런 것이 아니겠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공은 힘과 통제력과 존경할만한 태도에서 나온다. 성공한 사람은 창조적 에너지를 지니고 있고, 그 에너지를 발휘하고 통제할 능력을 갖고 극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보상과 명성이 크게 뒤따른다. 그러나 열매는 연약함에서 나오고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는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 속에서 잉태된 열매이며, 공동체는 서로 상처를 보듬는 가운데 생겨난 열매이고, 친밀함은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자라난 열매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열매 맺는 삶이라는 것을 서로 서로 일깨워준다.”

 

이스라엘 민족이 위대한 광야라는 성전에서 성공을 구했을 때는 순금으로 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위대한 삶의 성전에서 고난을 말씀으로 순종하며 상처받지 않은 자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였을 때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욥이 얻은 순금이 아닐까요?

 

곧 성공과 열매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공은 자신을 위한 순금입니다. 곧 우상입니다. 열매는 남을 위한 순금입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지키는 이유는 자신을 위한 순금을 향하여 달려 가던 삶에서 다시금 남을 위한 순금 남을 위한 열매를 맺는 삶으로 변화되기 위함이 아닐까요?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소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그 성소 안에서 필요한 단련도 받고 또한 상처받지 않은 자처럼 말씀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위대한 성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 안에는 서로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가득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받고, 하나님은 사람으로부터 기쁨을 얻습니다. 서로 보듬는 곳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축복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 중에 베토벤을 들수가 있습니다. 베토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말년에는 귀가 안 들려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음악가가 소리를 못 듣는 것과 미술가가 색깔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고통일줄 압니다. 그러나 끝내 역경 가운데서 유명한 합창 교향곡을 작곡하게 됩니다. 베토벤은 그의 위대한 성소 안에서의 삶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신이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나의 예술에 더 가까이 있음을 안다.

나는 두려움 없이 내 안의 신과 의논한다.

나는 내 음악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내 음악을 듣는 사람은 누구든

다른 인간들을 짓누르는

모든 불행에서 벗어날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은 스스로 성공한 작곡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열매를 맺은 작곡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음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행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베토벤이 베토벤이 될수 있었던 것은 성공을 향한 삶이 아니라 열매를 향한 삶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케 되었습니다.

 

남은 사순절 주어진 삶의 공간에서 말씀을 사모하며 아울러 순금 같이 되어지는 축복을 누리십시다. 우리의 처소는 바로 하나님의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요즘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세계 보건 기구(WHO) 사무총장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많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인으로 WHO 총장을 지녔던 이종욱 박사님이 계십니다. 2003년도에 총장이 되어서 수많은 업적을 세웁니다. Time지는 세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중에 그를 포함시켰습니다.

사실 그는 그냥 총장이 된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의과대학을 남보다 6년이나 늦게 입학을 합니다. 그러나 학생시절부터 한국에서부터 나병 환자들을 치료했던 그는 후에 의사가 되어서 WHO를 위해 일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남태평양 지역 섬들을 다니면서 나병 환자들을 치료합니다. 후에는 백신 개발에 앞장을 서서 소아마비 환자를 격감시킵니다.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까지 받습니다. 아울러 말라리아나 HIV/AIDS 해결을 위해 앞장 섭니다.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총장에 이릅니다.

그런데 신종flu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다가 임기도 마치지 못하고 하나님 품으로 갑니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사실 그는 반기문 총장 이전에 이미 UN사무총장 후보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는 WHO총장 취임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는 자기가 있던 곳을 바로 위대한 공간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은 사람입니다. 순금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따뜻함을 남겼던 분입니다. 어디를 거하던 위대한 공간으로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짧게 소개해 드렸지만, 그의 일생은 가는 곳마다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순금이 될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욥처럼 어디를 가던 위대한 공간임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길은 우리들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는 길도 아십니다.

 

함께 순금이 되어 가십시다. 베토벤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이종욱 총장은 원하는 학교를 6년이나 늦게 입학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과 같이 멋진 사랑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위대한 성전에서….

아울러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도 놀라운 길이 열려 있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자녀들도 베토벤과 같은 이종욱 총장과 같은 순금이 될 것을 축원합니다.

 

욥은 고백합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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