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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데살로니가후서 2:15-3:5(2/14/2021)

“너희 마음을 위로 하시고…”

설교자: 윤경문 목사

오늘은 한국의 구정 설날 연휴인 날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발렌타인데이지요. 그래서 오늘을 이 설날과 발렌타인데이를 합쳐서, ‘설렌타인데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설날’과 발렌타인데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두 날은 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설날에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여서 즐거은 시간을 갖기에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발렌타인데이는 또 어떤가요? 남녀가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며 선물을 주고 받는 기쁨을 누리는 날이기에 많은 남녀에게 기다리는 날입니다.

즐거운 날을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설레임이 있는 좋은 것이긴 하지만, 반면에 그 기다리는 날이 좀처럼 쉽게 오지 않는다면, 사실, 엄청 괴로운 날이 됩니다. 요즘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이 기다림과 씨름하고 계실 줄 압니다. 그래서, 앞이 잘 안보이는, 막막함과 불안함이 마음을 꽉 채우고 사는 나날들이 길어질 때 사람들은 힘겹게 느낍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오래 기다려야하는 시기인데, 이 기다림은 사람들을 더 답답하게 만듭니다. 언제나 이 코로나가 끝나나…지친 일상과 염려, 무엇을 해야 할지 혼동스러운 시기에 우리의 기다림은 더 힘들어집니다. 그러면,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 기다림의 시간에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기다림을 요구하고 계실까요?

성서 안에서 우리는 이 오랜 ‘기다림’으로 인해 지쳐 혼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데살로니가후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으며, 그날이 언제인가, 오늘일까 내일일까 노심초사 기다리던 데살로니가의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에게 보내진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께서 세우신 교회로 많은 개종자가 나온 곳입니다. 데살로니가서에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바울은 당시 급박한 사정으로 그곳을 황급히 떠나야 했습니다. 로마제국의 권력아래 있던 마케도니아지역에서 황제가 아닌 다른 왕, 예수를 외치고 있던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소요를 일으키는 자들로 오해받고, 위협을 받게 되자, 부랴부랴, 원치 않게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랬으니 사도 바울은 새로 세운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얼마나 마음에 밟혔을까요? 새로 믿게 된 자들이 당하게 될 핍박도 눈에 선했는데, 그들이 그 핍박과 환란 가운데서도 굳게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충분한 가르침을 주지 못하고 떠난 것에 안타까우셨습니다.

그러나, 후에 디모데를 보내 그 교회의 관한 좋은 소식을 듣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얼마나 든든하게 서가고 있고, 주님의 선한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를…이 고무적인 소식을 듣고 기쁨에 넘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를 써서 보내는데, 처음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2, 3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실상은 데살로니가교회 신자들이 당시 로마제국의 영향권 하에서 새로운 신앙을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고난과 환란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선한 일을 하며, 주님의 말씀을 잘 실천하며 따르며 살고 있었다니…이 소식에 바울께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해 하셨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칭찬 받을만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모습에 대한 감격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디모데를 통해 듣게 된 다른 이야기가 그의 마음은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것은, 사도바울이 부활하신 그 주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라 가르쳤는데, 이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어떤 문제였을까요?

오늘 읽은 본문 전후를 보면, 당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주장했던 주님의 오심에 관해서 잘못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혼동시켰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제 곧 영광 중에 오실 주님이 나타나실텐데, 그래서 영광스러운 곳에 곧 들어 갈텐데 하고, 현재 자신들의 무슨 소용이 있나 여겼던 것 같습니다. 생계일도 그만두기까지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아울러, 이들의 영향을 받아 다른 믿던 사람들의 마음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혼동스러워졌습니다.. ‘곧 오신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안오시나’..…

데살로니가서들에서 사도바울께서는 여러 번, 희랍어 ‘파루시아’란 말이 쓰고 계신데, 이 말은 ‘the coming,” “오심”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원래 어원은 사실 “함께 있음”의 뜻이었습니다. ‘오셔서’ 함께 계신다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 파루시아를, 사도 바울은 믿는자들 모두가 함께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6,7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곧’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재림에 대해서 그들의 기다림은 지쳐갔습니다. 빨리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셔서 그들도 그 영광스러운 곳으로 들어가야 할텐데…결국, 현재의 삶을 저버리며, 비책임적인 문제를 야기시키는 자들까지도 나온 것이죠.

오늘 읽은 데살로니가 후서는 사도바울께서 이런 혼동과 시련가운데 씨름하는 자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2장 2절 말씀입니다.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사도바울께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데로, “주님이 다시 오실 그때는 언제인지 알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는 갑자가 올 것이므로, 알 수 없기에 데살로니가전서 5:1절에서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는 너희에게 쓸것이 없음은..”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대신 사도 바울께서는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가 오기까지 ‘이미’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되지 않는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쓰고 계십니다.

그 기다림 가운데,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가 완성되는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데살로니가전서3:13 말씀입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도바울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영광의 그리스도가 오셔을 때, 하나님 앞에서 모두 흠없는 자들로 칭찬받는 자들의 모습이 되길 바라신다는 말씀합니다. 주님을 믿는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 들이고, 구원의 선물을 받을 자들로서, 후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될 자들 말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4절 말씀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이들이 영광에 들어가기까지 이들이 행하고 지켜야 할 것이 있음을 또한 말씀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여기 사도들에게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신 전통은 무엇일까요?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믿으며, 주님이 주신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 때로, 환난도 겪고 고난도 당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끝까지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일해나간 자들입니다. 바로, 그들처럼, 굳건히 서서 너희도 계속 주어진 사명들을 감당해가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시작하신,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던 이 사도들의 전통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영광의 그날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셨고, 또, 하나님이 하시는 새 창조의 일-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케 하시는 일에 뛰어들게 하셨는데, 바로, 너희도 그런 전통을 지켜가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영광의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계속 역사하시고, 또, 함께 일할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고 확신하고 계셨기에 말입니다.

보스톤에서 태어난, 마코토 후미자라(Makoto Fumijara) 란 아티스트가 계십니다. 크리스챤 아티스트로, 복음서의 내용의 이미지를 추상화로 그려내시곤 합니다. 이분이 신학공부를 하신 후에, ‘Theology of Making’(만듬의 신학)을 주장하십니다. 이분의 눈에 하나님은 ‘artist’ 같은 분이라고 마치 아티스트처럼 지금도, 무언가 계속 만들어가고 계심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시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가시며, 상처난 곳을 치유하시고, 부서진 곳을 보수하시고, 망가지 곳을 회복시키시 분이시기에,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의 구원을 이루시며, 오늘도 성령을 통해 계속 일하시며 이 세상을 만들어가고 계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한가지 더 강조하는 것은 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어진 믿는 자들-그들을 통해서, 계속, 이 땅에 무언가를 만들어 가시고 계시다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만들어 가는 자로 인간들을 쓰고 계시다라는 주장입니다. 하나님이 미래에 완성하실 그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들로 인간들을 부르셨고, 아직도 그들을 통해 일하고 계시다고.. 마치,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같이 되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처럼, 작은 것들, 연약한 자들을 통해서도 멋진, 위대한 일들을 펼쳐가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말입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께서도 주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찢어진 곳, 상처난 곳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만들어갈 사람들을 부르고 계시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데살로니가 후서 3:4절에서 다시 한번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 주님께서 행하라고 명하신 것, 사도들이 그 말씀을 붙들고, 고난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행했던 일들-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펼치었던 일들을 그들도 함께 계속 행할 것을 사도바울은 소망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영광 중에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일이라고, 사도 바울께서는 기다림 가운데 혼란스러워하고 있던 자들에게 권면하고 계십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이미] 와 [아직] 오지 않는 파루시아 중간에 살고 있는 자들로서, 주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을 위해, 하나님의 새 창조의 일에 뛰어 들어가서 함께 일하자는 권면을 주시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부활의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이미 믿는 자들에 삶에 함께 하심으로 만들어가는 새 창조의 일에 함께 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믿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의 행함에는 환란도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위로 가운데,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견디어 내길 바리시며, 사도 바울은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기를 이렇게 기도합니다.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2:17절)

사도바울은 주님의 영광 중에 오실 그날까지 흠없는 자들로 살아내려면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아시며,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위로를 빌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그 하나님의 위로는 어떤 것일까요? 그들에게서 어려움을 제거하고, 어떤 물질적 보상이나, 안락한 삶의 보장일까요? 사도 바울이 말하는 참 하나님의 위로는, 그들이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확신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런 ‘위로’란 뜻을 아주 잘 설명합니다.

“위로란 말은 “외로운 사람”과 “함께 함”을 의미합니다.…위로하는 것은 고통을 가져 가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함께 있으면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고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위로입니다. 우리는 모두 위로를 주고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고난에 처해 있을 때, 무엇보다도 이런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이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서야, 그들이 주어진 행해야 할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위로를 빌며,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염려와 집착을 버리고, 기다림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하심 안에서,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향해 계속 발을 내딛고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아울러,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따라 행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다른 곳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신실하신 인내로 향하기를 간구하여 주십니다.

5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기까지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는 그 시각으로, 그들의 기다림을 새롭게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기다림에 가장 필요한 것임을 아시며….

교우 여러분, 우리도 여러가지 각자의 기다림을 겪고 계실줄 압니다.

그런데, 이 긴긴 기다림을 갖고 있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그분의 펼쳐가실 미래의 일을 향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인내하신 그리스도, 영광중에 다시 오실 그분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주님이 다시오실 영광의 그날까지 우리들이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요?

유진 피터슨 목사님 집에서는 천둥번개나 눈보라가 치는 날씨에 꼼짝없이 집에 틀어 박혀 있어야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존 뮈어(John Muir)란 분의 이야기입니다. 존 뮈어는 19세기 말, 미국의 북서부대륙 요세미티 지역의 광대한 자연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임을 느끼며, 하나님이 만드시고, 만들어가고 계신 자연세계를 지키려고 힘쓴 자연보호자셨습니다.

이분은 산 중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 들어가 피할 캐빈을 지어 놓아, 이런 폭풍 후를 피해야할 사람들이 들어와 쉼을 얻게 하고, 필요한 음식을 제공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혹독한 날씨에, 캐빈 안에서 장작불 앞에 앉아 있지만 않고, 자주 스톰이 몰아치는 밖으로 나가보곤 했습니다. 비바람과 눈의 색깔들과 향기를 누리며,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분은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풍경들이 결코 추하지 않음을 믿었고, 비록 거칠어 보일지라도, 햇빛이 이를 비취면 다 아름답게 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 분의 이야기가 자신 가족의 영성의 삶을 키워주었다고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르면 사는 크리스챤들에게, 이렇게 통제할 수 없는 날씨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펼쳐질 때,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를 알려 주었던 이야기라고 소개합니다.

교우여러분, 어쩜 굿은 날씨 가운데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으며, 위대하신 하나님의 위로 안에서, 그분을 바라보며,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것, 그것이 바로 크리스챤의 영적인 삶이 아닐까요?

우리는, 주님이 오실 날이 언제일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광대하신 하나님과 함께 그분을 향하며, 오늘 우리들의 기다림의 시간을 채워 가야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회복시키시려 일하실 때, 함께 그 하나님의 일에 참여해 가면서요… 하나님은 오늘도 이 땅의 회복과 보수를 하시며, 새롭게 만들어 가시려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만들어 가시기 원하실테니까요.

교우 여러분, 우리를 꼼작 못하게 몰아치는 눈보라처럼,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막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는 창조적인 새로운 생명력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그 위로를 구하고,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를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에 함께 하신다면요.

그때,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인내를 통해 완성되었듯이, 우리들의 삶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에게 참된 회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 ‘설’이란 또 다른 새해를 맞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며, 이 땅을 고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 만들어가시는 일들에 함께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본회퍼는 새해를 맞으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 선한 능력에 언제나 고요히 둘러 싸여서, 보호받고 위로 받는 이 놀라움 속에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옛것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어두운 날들의 무거운 짐은 여전히 우리를 누르지만

아 주님! 내몰려 버린 우리의 영혼에게, 당신께서 준비해 놓으신 구원을 주십시오.

선한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안에서, 함께 기다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선한 일들을 계속 해나가며, 더 굳건하게 서서, 주님의 영광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다. 이 땅에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며…하나님이 이 땅에 재창조하시며 만들어 가시는 일에 는 일들에 함께 참여하시면서요…. 그런 자들은 매일의 삶이 능력의 삶이 될 것입니다.

올해 저희 교회의 표어가 “이 모든 것을 보라!”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안에서, 이런 삶을 살아간다면, 연말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신 일들을 보며, ‘이 모든 것을 보라!”라고 조용히 고백하게 될것입니다.

그런 삶이 가능케 하시려고, 사도바울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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