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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장사와 부활” 마태복음 13: 45, 46; 고린도전서 15: 42-44 (04/09/2023)

이근화 시인의 ‘목요일마다 신선한 달걀이 배달되고’라는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첫 연만 소개해드립니다.

 

“나는 먼지 쌓인 황금보다

황금빛 나는 먼지를 사랑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가장 지혜로우신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시겠죠. “나는 둘다 사랑해….”

 

루터란 교회에서는 부활절 설교를 조크로 시작한다고 하는데 조크 같지만 또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부활하심을 축하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요? 둘 다 사랑하는 삶일까요? 아니면….

 

오늘은 두 본문 말씀을 나눕니다. 하나는 주님의 비유의 말씀이고 하나는 사도바울의 서신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먼저 비유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천국은 좋은 진주와 같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진주에 포커스를 두시지 않습니다. 대신 장사와 같다고 하십니다. 곧 진주를 사고 팔고하는 사업가에 포커스를 두고 계십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46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사업가는 귀한 진주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사기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진주를 샀습니다. 곧 이 비유는 사업가의 담대한 행위가 바로 천국의 모습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주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아주 비슷한 비유의 말씀을 이미 하셨습니다.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로 시작합니다. 결국 이 보화를 얻기 위해 농부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비유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보화에 포커스를 두십니다. 두 비유는 어떻게 보면 본질적으로 같아 보입니다. 하나는 보화를 소재로 하고 있고 하나는 진주를 소재로 합니다.

그러나 내용은 다릅니다. 하나는 보화를 천국으로 보고 있고 또 하나는 진주 장사를 천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로 비슷하지만 상반된 내용의 비유를 주님은 연이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비슷한 그러나 상반된 이야기를 연속해서 말씀하실까요?

 

이 둘을 연거푸 말씀하신 이유는 쉽게 알수 있습니다. 보화도 천국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울러 사람 곧 사람의 행위도 천국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사실 천국은 이보다 훨씬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간단히 표현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비유로 천국을 표현하시곤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파커 파머라는 영성가는 이런 딜레마를 어느 분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해결을 하고 있습니다.

“수도사 머튼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논리의 렌즈만이 아니라 ‘둘 다’라는 역설의 렌즈로 삶을 바라보는 것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올바른 진술의 반대는 거짓 진술이다. 그러나 심오한 진리의 반대는 또 다른 심오한 진리다.””

파머는 진리의 세계는 서로 모순적인 것을 둘 다 받아 드리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이를 주님께서 모르실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천국을 보화로 비유하십니다. 그리고는 진주 장사로 비유하십니다. 오늘 두 비유를 모두 살필수는 없습니다. 둘 다 심오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은 두번째 비유인 진주 장사의 비유안에 담겨진 심오한 진리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은 오늘의 비유를 통해 진주 장사의 행함이 보화와 비길수 있는 곧 버금가는 소중함을 강조하시고 계십니다. 보화가 신비한 것처럼 진주 장사의 행함도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천국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죤 스타인벡의 소설 ‘진주’의 줄거리입니다. 가난한 어부 가족이 있었는데 아들이 전갈에 물려 급히 병원에 갔지만 돈이 없어 의사로부터 거절을 당합니다. 주인공은 돈을 구하기 위해 진주 잡이를 나가고 최고의 진주를 손쉽게 찾았습니다.

갑자기 부자가 되자 마을 사람들은 태도가 돌변합니다, 진료를 거부했던 의사까지…. 그런데 부자가 되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게을러지고 가정에 불화가 찾아 옵니다. 진주 때문에 도둑이 침입하고 아들도 죽습니다. 어쩔수 없이 바닷가에 나가서 진주를 던져 버립니다. 비로서 잃었던 미소를 되찾았습니다.

 

스타인벡의 이 소설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도리어 진주가 불행을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소설과 오늘 주님의 비유를 연결시켜서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부로서 진주를 잠깐의 노력으로 아니면 행운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 행운은 도리어 큰 불행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반면 오늘의 비유는 손쉽게 진주를 찾은 어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주 장사의 이야기입니다. 진주 장사는 진주를 발견하고는 전 재산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천국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주를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팔지 않았더라면 진주를 소유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행위도 바로 진주처럼 소중합니다. 진주와 같은 보화인 것입니다.

 

오늘 부활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부활한 후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을 믿고 이를 감사하기 위하여 오늘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들의 예배로 인해 아직도 부활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심령들도 천국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부활의 축복은 우리들의 전 재산을 팔 때 온전히 누리게 되지 않을까요? 아니 조금 표현을 달리하면 우리가 우리들의 삶을 드린만큼 부활의 축복을 누리지 않을까요? 우리들의 삶을 드리지 않고 부활의 축복 천국의 축복을 소유하려고 할 때 죤 스타인벡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처럼 되지 않을까요?

 

이를 삶에서 실천한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그의 고백에서 전 재산을 팔아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 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저는 이렇게 바꿔 보았습니다. 썩을 것과 욕된 것과 약한 것 곧 육신에 속한 것을 부활의 주님께 드릴 때 어느덧 우리들의 이 땅 위의 삶은 황금 먼지가 되어서 빛나게 되지 않을까요? 이것이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조금 전 언급해 드린 파커 파머는 당신의 책에서 모린이라는 여인을 자신의 둘도 없는 영성 멘토로 소개합니다.

모린은 싱글맘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심한 발달장애가 있어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린은 두 가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딸을 남겨두고 피정에 가거나 형식화된 영적 수행을 할 시간과 에너지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모린은 딸의 삶이 심오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그 아이도 지구의 귀한 존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소중한 딸이라는 실재에 닿아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저나름대로 어떻게 모린은 딸의 삶이 심오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깨달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모린은 딸과 함께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더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시고 계심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모린은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 딸이 발달 장애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부활의 주님의 임재를 더 깊게 느낄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덧 그의 매일 매일의 삶은 황금 먼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딸을 위해 사용하는 모든 힘든 일들은 빛나는 황금 먼지로 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모린의 황금 먼지의 삶을 옆에서 보았던 분이 바로 파커 파머씨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린과 함께 있으면 은총의 명상이라는 원 안에 있는 듯했다고 고백합니다. 모린으로 인해 파머씨는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파머씨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 보는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모린이 이런 진주와 같은 삶을 살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모린은 썩어질 것 안에 보화를 발견한 것입니다. 욕된 것 안에 진주를 찾아 낸 것입니다. 약한 것 안에 새롭게 세상을 창조하는 강함을 보곤 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발달장애가 있는 딸과 함께 체험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 때문에…. 그의 모든 삶은 황금 먼지가 되어 간 것입니다. 그의 삶 자체가 천국이었습니다. 진주 장사가 되어 간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저는 모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성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파머씨가 누린 축복을 누릴까?’

 

사도바울도 진주 장사가 되었습니다. 진주를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역설적으로 사도바울은 썩을 것 욕된 것 약한 것 안에 있는 놀라운 진주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썩음에 몸을 던졌습니다. 욕된 것에 몸을 던졌습니다. 약한 것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의 몸이 진주가 되어 간 것입니다. 아니 진주 먼지로 감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의 삶 자체도 진주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사도바울의 서신들이 아니었더면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지금처럼 가까이 만날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의 삶도 우리들에게는 진주가루입니다. 진주가루도 진주인 것입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을 때 미국 노회원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분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으로 목사가 되신 분이라서 더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자기 친구도 유대인인데 지금 신경쇠약으로 병상에 누워있다고 말하면서 이유가 친구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안 먹혀서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가끔 그 분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온 몸을 다해 바치는 그 분이야말로 황금먼지로 가득차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 황금과 황금 먼지 중 어느 것을 갖고 싶냐고 하면 많은 분들이 “둘 다”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실은 주님이 그러신 것 같습니다. 주님에게는 황금도 소중합니다. 아울러 황금 먼지 같은 사람의 행함도 소중합니다.

사람의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진주가 진주가 될수 없듯이 우리들의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주님의 부활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이 진주라면 우리들의 삶은 진주 가루입니다.

 

올해도 사순절 묵상집을 통해서 많은 진주 가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순절 기간 매일 매일 교우님들의 삶을 감싸고 있는 진주 가루가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올해도 매일 매일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십시다.

우리들의 재산은 욕됨과 약함입니다. 그런데 이 재산으로 우리는 진주를 살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값없이 진주를 사지 마십시다. 전 재산을 팔아서 진주를 사십시다. 전재산을 파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생각하며 욕된 것과 약한 것으로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의 몸으로부터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주님께서는 진주 가루로 감싸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부활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오늘 부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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