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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다니엘 11:40-45 (2025/4/27)

2015년 어느 대학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90명의 대학생들을 큰 숲속으로 데려갔습니다. 그중 절반의 학생들에게 고개를 들어 1분간 200피트에 이르는 나무를 올려다보게 하였습니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멀리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1분 후에 설문조사를 실시합니다. 그 과정에서 설문자가 실수로 펜을 떨어뜨립니다.

이 실험의 포인트는 설문의 내용이 아니라 펜을 떨어뜨린 사람을 얼마나 도와주는지 관찰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고개를 들어 높다란 나무를 바라보며 ‘와우’ 외친 학생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남을 잘 돕고 친절하다’였습니다.  

 

저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줄 압니다. 높으신 하나님을 바라 보며 ‘와우’하며 경외감을 갖고 경배드릴 때 일상생활에서도 남을 잘 돕고 친절한 삶을 살게 될줄 압니다.

 

요즘 다니엘서를 나누고 있는데 다니엘서는 어떤 책일까요? 높은 곳을 바라 보게 하는 책일까요? 아니면 건물들을 바라 보게 하는 책일까요?

 

이 시간 다니엘서를 정리를 하면 전체는 12장이지만 크게 둘로 나눌수 있습니다. 1-6장, 그리고 7-12장. 첫 6장까지는 역사적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줄 압니다. 주일학교 때 즐겨 듣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반면 7장 부터는 다니엘이 본 환상이 나옵니다. 7장에는 그리스도가 세상에 내려와 참패를 당함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8장에서는 무서운 왕이 나와서 성소를 더럽히지만 끝내 성소가 정결케 되는 이야기입니다. 9장에서는 바벨론 포로 현장에 이미 주의 영이 함께 와 계시기에 이 곳이 성소가 되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9장까지는 바벨론 포로 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환상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바벨론이란 땅에서도 하늘과 연결이 되어 있고 바로 바벨론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소가 되어 있음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주 나눈 10장에서부터 12장까지 곧 뒤의 세 장은 앞으로 될 일에 대한 환상이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지난주에 10장에서 11장 12장이 하나의 환상 곧 네번째 환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환상을 고레스 3년에 보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레스 3년을 강조한 이유는 바로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지 2년이 지났을 때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때 포로 해방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서운 환상을 접하게 됩니다. 이것이 11장 내용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을 horror movie 저리 가는 영화관으로 초대합니다.

 

먼저 2절 말씀에는 바사왕들의 모습이 짧게 소개되어집니다. 2절,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

 

다니엘은 지금 고레스왕 시절에 살면서 앞으로 올 세 명의 왕들에 대한 예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 번째 왕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넷째 왕이 언제가는 나타날 헬라왕과 전쟁을 치룰 것 보고 있는 것입니다. 실은 헬라 왕국을 칠 것이라고 기록했는데, 내용은 헬라 왕국을 친 후 나라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Fast forward해서 넷째 왕을 만나 볼까요? 헬라 왕국을 친 네번째 왕은 바로 잘 알려진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크세르크세스 I세로 알려졌고, 에스더의 부군입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이유는 실은 아하수에로 왕이 헬라를 친 후 참패를 당했을 때입니다. 결국 부부 사이가 안 좋아지고 왕후는 폐위되고 이어서 에스더가 왕후가 됩니다.

 

자 그런데 다니엘은 지금 크세르크세스왕을 알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네번째 왕으로만 환상 가운데 알게 된 것입니다. 그가 무모하게 헬라를 치고 패한 것입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사람이 헬라왕국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3절,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다니엘서에 이미 알렉산더 대왕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물론 다니엘은 그의 이름이 알렉산더가 될지는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절을 보면 더 소름이 끼칩니다. 4절 상반절,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헬라왕국은 처음에는 네 나라로 갈라집니다. 얼마후 두 나라로 좁혀집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11장에는 그 후 두 나라 이야기가 기록된 것입니다. 북왕국과 남왕국이 싸우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11절만 우선 봉독해 드립니다.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바 되리라.”

이렇게 11장에는 두 나라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이야기가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제가 자주 언급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북왕국에 속하고 있고 그의 이야기가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제가 8장에 나오는 두번째 환상에 대해서 나눌 때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안티오쿠스가 할례도 금지시키고 도리어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상을 놓았다고…. 그리고 자기의 상도 만들어 절하게 하였다고….  

이 두번째 환상은 벨사살 왕 3년 곧 바벨론 왕국 때 보았는데 이제 수년이 지났습니다. 메대왕국도 사라지고 바사왕국 고레스 3년에 더 확실한 예언을 받은 것입니다. 두번째 환상에서 받은 내용은 성소를 헐었다는 정도의 예언이었는데 더 소스라치게 만듭니다. 네번째 환상에서는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하고 심각하면 수년내에 두 번씩이나 환상에서 보여 주실까요? 두번째로 또 볼때 다니엘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한편으로는 놀라지만 환상 가운데 잠시 다니엘은 남방왕국을 응원하지 않았을까요?

“이겨라. 이겨라.”

그런데 40절,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 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침공하여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

북방왕국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절망할수 밖에…. 이처럼 절망 중에 있는데 45절,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

안티오쿠스와 더불어 헬라왕국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이 일이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다니엘은 큰 위로를 받았을줄 압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로 다니엘의 예언이 놀랍게도 300년후에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자, 우리 중 누가 앞으로 300년후를 예언하겠고, 누가 믿겠습니까? 그런데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두번째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게 되었을줄 압니다.

‘아무리 무서운 나라도 종말이 있구나. 반면 이들의 미래를 다니엘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분이시구나.’

다니엘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와우’하며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있는 곳을 바로 성소로 바꾸는 삶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환상을 직접 보았던 다니엘은 어떠했겠습니까? 우선 큰 나라들의 위엄에 짓눌려 있었을 것입니다. 바사 제국도 보통이 아닌데 이를 헬라왕국이 이기다니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무서운 나라라고 생각하며 두려움에 사로 잡혔을줄 압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지막을 알게 됩니다. “세상 나라들에게는 모두 종말이 있구나….”

 

반면 세상 권세의 종말을 잊고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이 처음에 헬라왕국을 쳤다가 참패를 당해서 결국 바사왕국의 몰락을 자초했던 아하수에로왕입니다.

헬라왕국에 참패를 당하기 전에는 백전백승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전쟁에 이기고 성공의 최고 정점에서 도리어 왕은 눈물을 흘립니다.

이것을 눈치챈 숙부가 왕에게 묻습니다.

“전하, 조금 전의 행동과 지금의 행동이 어찌 그렇게 다르십니까? 방금 전에는 자신의 행운을 스스로 축복하시는 듯하더니 지금은 눈물을 흘리시다니요.”

아하수에로는 답합니다.

“저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누구 한 사람 백 살까지 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절로 슬퍼지는구려. 사람의 목숨이란 얼마나 덧없이 짧은 것이오!”

 

아하수에로 왕은 하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비롯해 신하들은 죽어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나라는 영원하리라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위대한 나라를 누구 하나 제대로 만끽할수 없음을 생각하고 울었던 것입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라면 어떨까요? 이들은 다니엘과 함께 아하수에로 왕이 헬라왕을 치고 멸망할 것을 예언케 하신 하나님께 눈을 돌립니다.

곧 다니엘은 후손들에게 잠시 있다 종말을 고하는 세상 나라를 바라보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 보라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삶의 주인공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를 높이 들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한편 실제로 머리를 높이 들고 영원히 살 사람들이 나타날 것임을 보여줍니다. 32절,

“그가(안티오쿠스)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안티오쿠스와 싸워 이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안티오쿠스의 핍박을 견디어 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안티오쿠스가 한 일이 무엇이라구요?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성소에 세웠습니다. 이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은 마카비 형제들이 일어나서 안티우쿠스를 무찌르고 성전을 정결케 합니다. 이를 기념하는 날이 수전절이고 요즘도 12월에 유대교에서는 이날을 기념합니다. 곧 다니엘의 예언은 이처럼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300년 후에….

 

한편 다니엘이 이 예언을 한지 500년후 주님께서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15-16,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말씀입니다. 확실한 것은 500년전의 다니엘의 예언이 200년전 안티오쿠스의 등장으로 인해 이루어졌지만 한편으로 계속 이루어진다는 깊은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곧 계속해서 성전 모독 사건은 전개될 것이고 이로 인해 충성되이 성전을 지키는 자들도 덩달아 생길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늘 바라 보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이들에게 산으로 도망치라고 하십니다. 저는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오셨기에 더 이상 보이는 성소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단 어디론가 피할수 있으면 피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디로 가던 거기가 바로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

이제는 예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노래하는 곳이 바로 주의 성소가 된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의 성소가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시대 처럼 성소를 목숨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은 분명합니다. 한편 이를 잘 아는 사탄은 새로운 안티오쿠스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요?

 

제가 콤퓨터를 열면 꼭 들어가 보는 싸이트가 몇 개 있다고 말씀드린적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goodnewsnetwork site입니다. 세상 신문에는 거의 매일 나쁜 소식으로 가득차서 도리어 반대로 좋은 소식만을 모아서 소개해 주는 싸이트입니다.

지난주에 어느 날은 운영자는 좋은 소식이라고 해서 기사를 올렸는데 저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네델란드에 100년전에 지어진 교회인데 이젠 교인들이 안 모이니 수영장으로 바꿨다는 것입니다. 두 설계회사가 합작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수영장의 물을 빼면 거기는 연회장이 되고 또 물을 조금만 넣으면 물에 반사되는 효과로 인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약오르는 것은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는 기사였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예언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성전 모독 사건은 생기고 있습니다. 새로운 안티오쿠스는 우리 주위에 늘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의 종말도 눈 앞에 다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게 성소를 지킬 것을…, 아니 우리가 있는 곳에 세울 것을….

 

안티오쿠스는 세상 모든 곳을 인간의 욕심의 축제 현장으로 바꾸지만, 우리는 도리어 우리가 있는 곳을 주의 성소로 바꿀 것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안티오쿠스의 종말은 가까왔지만 주님의 나라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눈앞에 펼쳐지는 것들은 마지막 발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함께 머리를 드십시다. 높은 곳을 바라 보십시다. 함께 “와우”하십시다.

그런데 누가 우렁차게 “와우”할까요?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로 서는 자들입니다. 다니엘은 소년 시절에 포로가 되었는데 아마 그는 평생 어린 아이의 심령의 소유자로 살았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낭비할줄 압니다.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주님을 위하여 낭비한 만큼 우리는 더욱 어린아이가 됩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됩니다. ‘와우’의 주인공이 되어 이웃을 섬기는 자가 됩니다. 무서운 왕들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주안에서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어느 교회에서 이렇게 안내를 한다고 합니다.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에 핸드폰을 끄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모든 염려도 끄십시오.”

 

안티오쿠스에 대한 염려를 끄십시다. 그의 종말이 가까웠습니다. 영원한 나라가 도래했습니다. 영원한 나라를 바라 보십시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와우.”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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