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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참여하고자 (고린도전서 9:19-27) 02/07/2016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입니다.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저희 보스톤에는 방문객들이 많이 오고 갑니다. 제가 이 시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새롭게 방문하시거나 출석하시는 교우분들을 훨씬 전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지난주에 처음 이 시를 접하게 되었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곧 시인은 모든 인간 안에는 부서진 마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부서진 마음을 존중하는 것이 바로 참 인간 관계의 시작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환대 곧 hospitality라고 고백합니다.

한편 이를 부드러운 바람으로 은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바람처럼 이웃의 부서진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부서진 마음을 어루 만질 때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을 정현종 시인이 시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한 마디로 부드럽게 이웃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때 구원에까지 이르게 될 것을 사도바울은 내다 보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이웃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종의 자세를 가지지 않고서 어떻게 환대할수 있겠습니까? 바람의 흉내를 낼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종으로서 바람의 흉내를 내고 있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엿볼수 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사도바울은 상대방에 따라 자신의 모습 곧 바람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편 이런 선한 뜻을 주위 사람들은 잘 이해를 해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고백합니다. 22절 말씀입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아마 바울은 여러개의 얼굴을 가진 줏대가 없는 아니면 상황에 따라 늘 얼굴을 바꾸는 칠면조와 같은 변덕쟁이 아니면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 왔던 것 같습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도 상관 없다는듯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는 확신 가운데서 말씀합니다. 23절 말씀입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사람들에게 변덕쟁이요 기회주의자로 보일지라도 사도바울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살고 있고 자기의 변덕쟁이의 모습은 바로 복음에 참여하는 축복의 삶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갑자기 변덕쟁이였다가 운동선수로 돌변합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변덕쟁이지만 자기 스스로는 상을 향하여 달리는 운동선수라는 것입니다. 변덕쟁이와 운동선수.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변덕쟁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운동선수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처럼 남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라도 중심은 운동선수의 삶을 갈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에 참여한 자들의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한 분을 소개합니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라서 어떤 분들은 이미 책을 통해 접해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Tony Campolo라는 유명한 목사님이자 저술가가 있습니다. 하와이에 집회차 방문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본토에서 방문했기 때문에 시차 관계로 밤 세시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가까운 좌석에서 두 여인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밤 세시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두 여인이면 누구겠습니까? 거리의 여인 곧 홍등가에서 일하는 여인들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말합니다.

“내일은 내 생일이야.” 친구가 농담섞인 말투로 말합니다.

“아무도 네 생일인지 신경 안 쓸걸.”

“상관없어. 내 생일이야. 나는 혼자서 자축할 것야 내 자신에게 “happy birthday” 말해줄거야.” 그리고는 두 여인은 또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Campolo목사님은 식당 주인에게 묻습니다.

“저 두 분은 항상 여기 옵니까? 제가 뭔가 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Campolo목사입니다. 저는 저 여인을 위해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싶습니다.” 주인은 대답합니다.

“창녀를 위해 생일 파티를 요?”

“네.”

“당신은 하나님을 섬기시는 목사님이신데 창녀를 위해 생일 파티를 요?”

“네, 제가 케이크도 사오고 모든 값을 지불하겠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삶의 고통을 감해드려야 하고 축하도 해 드려야 합니다.”

다음날 밤 세시가 되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그 녀의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도 초청하였습니다. 그 녀가 들어 오자 함께 소리칩니다.

“Happy Birthday” 그 녀는 케이크를 껴 안으면서 울면서 말합니다.

“아무도 생일 파티를 열어준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생일 축하한다고 해준적이 없습니다.”

주인이 제안을 합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파티장은 졸지에 기도집회 장소가 되었습니다. 돌아가면서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창녀를 위해 생일 파티를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복음을 위해서 달리는 자들에게는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이 땅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는 변덕쟁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운동선수인 것입니다. 그는 훈련 받은 운동선수이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했습니다.

그런데 캄폴로라는 운동선수를 정작 기다리고 있는 상은 무엇일까요? 25절 말씀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썩지 않을 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상이 주어집니다.

곧 복음에 참여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도 여러가지 기상천외한 재미를 봅니다. 아울러 썩지 않는 상을 차지합니다. 사실 복음을 위한 삶은 이웃을 구원하는 삶인 동시에 자신을 위한 삶인 것입니다. 이 모든 축복은 방문객을 환대하는데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변덕쟁이로 보이지만 실은 운동선수가 되는 삶은 누구에게나 주어질까요? 26, 2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한 마디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방문객을 환대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이웃을 위한 바람이 되어 이웃의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져 줄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방문객으로 하여금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

오늘 제직임직식 예배로 드립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자로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때로는 변덕쟁이로 보이지만 실은 운동선수로 부르셨습니다. 방문객들을 위한…. 방문객을 섬기실 때마다 상상할수 없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언젠가 하늘 나라에서 하늘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새 교우님들은 당연히 방문객들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우리 모두 서로 서로 방문객이 아닐까요? 서로서로의 아픈 마음을 바람처럼 부드럽게 감싸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칠면조란 소릴 들을지라도…. 그 때 우리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지경을 넓히실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변덕쟁이처럼, 이사람 저사람을…. 이제는 우리를 통하여 잃은 영혼들을 이 사람 저 사람 방문하시길 원하십니다. 이 귀한 사역에 쓰임을 받으시는 한 해가 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어느 사람이 자기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너무나 무겁고, 다른 사람들이 지고 가는 십자가보다 더 큰 것 같아서 하나님께 투덜거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에게만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까?”

그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는, “그래? 그러면 네 십자가를 바꾸어 주마”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그에게 맘에 드는 다른 십자가를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크고 작은 십자가가 쌓여 있는 창고에서 가장 가볍고 편해 보이는 십자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좀 가벼워 보여 들어보면 그것도 무겁고 작다 싶어 들어봐도 그것 역시 불편하고 무겁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들어보고 내려놓고 들어보고 내려 놓고 하며 하루 종일 걸려 이거다 싶은 십자가 하나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들고 갔습니다.

“하나님, 드디어 골랐습니다. 가벼운 십자가로 바꿀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세히 보아라. 그 십자가는 본시 네가 졌던 십자가란다.”

 

교우 여러분, 제직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십자가 아니 그동안 지고 다녔던 십자가가 가장 쉬운 십자가입니다. 그 보다 더 쉬운 십자가는 없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을 때 방문객을 환대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재밌는 기적이 넘칠 것입니다. 하늘의 상이 쌓여 갈 것입니다. 우리들의 지경이 넓혀질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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