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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진 마음(누가복음 2:22-35) 02/14/2016

 

중고등부를 가르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클래스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자 인간임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할까 골돌히 생각하다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한 가지 아는바를 적으라고 했습니다. 여러가지 답변이 나왔습니다. 한 학생은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답변하였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좀 더 자세히 답을 썼는데,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했으며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만일 그가 진짜라면 그는 많은 사람을 도왔습니다.”

올해 천주교에서 발간한 사순절 묵상집에서 나온 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마지막 학생을 생각하면서 글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로 하여금 함께 구주를 믿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믿지 않는 학생의 말을 깊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아니 반추해 보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만일 그가 진짜라면 그는 많은 사람을 도왔습니다.”

이 학생의 말에서 큰 모순을 느껴 보았습니다. 사실 성경에 보면 주님이 많은 사람을 도운 기사가 많이 나옵니다. 이를 주일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을리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하면서 만일 진짜 그리스도라면 많은 사람을 도왔을 거라고 말하니 바로 모순이 아닙니까? 그동안 선생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기 때문일까요?

왜 이런 모순적 말을 하고 있을까요? 신앙은 단순히 선한 일을 행하신 주님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아기 예수가 태어난지 8일째 되었을 때인데,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서 예수님의 부모가 하나님께 아기 예수를 드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침 이 때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고 성령이 그 위에 계셨습니다. 26, 27절 말씀입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이에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29절 이하 말씀입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주님은 참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태어남과 더불어 한 알지 못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최고의 노래를 들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태어났는데 그래서 첫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한 할아버지가 와서 이런 노래를 불러 주었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라면 얼마나 놀랍고 흥분이 되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33절 말씀입니다.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사실 마리아와 요셉은 당신들의 자녀인 아기 예수가 메시야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들으니 또 놀랐다는 것입니다. 아마 놀랐다는 뜻은, 그동안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 노래를 들으니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감격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할아버지가 어떻게 알았을까? 하여튼 이제 놀라워 하고 있는 부모에게 시므온은 축복을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34절 말씀입니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아마 마리아는 두번째 놀라게 되었을줄 압니다. 처음에는 엄청난 축복의 말씀으로 인해 놀랐습니다. 이제는 엄청난 고난의 말씀으로 인해 놀랐을 것입니다. 특히 두 가지 표현이 눈에 띄입니다. 첫번째로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아기 예수가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할 것인데 이 과정 가운데 늘 비방의 표적이 될 것을 말씀합니다.

두 번째로는 마음을 칼로 찌르듯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문맥으로 보면 마리아에게 하는 말이니 ‘네 마음’ 하면 마리아의 마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곧 어머니인 마리아의 마음이 칼로 찌르듯 아픔을 느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문맥상으로는 당연히 어머니인 마리아의 마음이 찢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요. 어머니가 자녀로 인해 마음이 찢긴다면 그 자녀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사실 자녀의 마음도 당연히 찢깁니다.

이상으로 보면 오늘 본문 말씀에는 두 사람의 찢긴 마음의 소유자가 나옵니다. 마리아요 그 녀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사람의 추악한 마음과 죄성 때문에 예수님은 비방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마리아는 칼로 마음이 찢기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도 갈기 갈기 찢겨 졌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본문 말씀의 장면은 실은 찢겨진 마음의 축제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등장하는 시므온도 찢겨진 마음의 소유자였던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사실 놀라운 노래를 아기 예수에게 불러드린 시므온도 찢겨진 마음의 소유자였을 것입니다. 평생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위로를 기다립니까? 마음이 찢겨진 사람이 아닙니까? 그는 이스라엘이 찢겨진 나라임을 알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마음도 찢겨져 있었습니다.

찢겨진 마음의 소유자인 시므온은 어느 날 한 아기를 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아이를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찢겨진 마음의 소유자인 시므온만 성령을 통하여 알아 보았습니다. 찢겨진 마음의 소유자인 그의 눈에는 놀라운 광채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노래한 것입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사실 그는 언젠가 찢겨질 아기의 마음과 마리아의 마음을 본 것입니다. 찢겨진 마음의 소유자가 언젠가 찢겨질 아기의 모습을 바라 보았을 때 도리어 놀라운 노래가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온 것입니다. 곧 시므온의 노래는 마음의 상처난 자들 사이에 상처를 입으러 오신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상처받은 자의 노래입니다.

 

오늘 사순절 첫째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주님은 사순절 첫째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들에게 무엇을 원하실까요? 동네방네 다니면서 주님은 많은 병든 자들을 고치셨고 그것도 부족하여 주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개로 장정만 5천명 먹이시고 12광주리가 가득 남았다고 소리치고 다니길 원하실까요? 때로는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금주 만큼은 더 원하시는 것이 있지 않으실까요? 주님의 찢겨진 마음을 묵상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의 찢겨진 마음에 우리들의 마음을 드린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주님을 만날수 있는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찢겨진 주님의 마음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많이 찢겨져 봤으니 말입니다. 그 때 우리 주님도 큰 위로를 받지 않으실까요?

 

제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이만갑(이제 만나러 갑니다)입니다. 탈북녀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북의 이야기들을 엮어가는 프로그램입니다. 한 번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탈북을 하다가 어머니와 함께 붙잡혔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데 그 감옥에서는 하루 종일 무릎꿇고 머리 숙이고 앉아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게는 쉽지 않아서 제대로 무릎을 꿇지 않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교도관에게 걸렸습니다. 체벌을 받아야 하는데 체벌은 손바닥을 쇠막대기로 내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어찌 딸이 매 맞는 것을 보고 가만 있겠습니까? 그래서 애걸복걸하면서 어머니가 대신 맞겠다고 해서 어머니가 대신 체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하면서 탈북녀가 한없이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딸 때문에 어머니가 아픔을 당했지만 그로 인해서 평생 딸은 또 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만갑 출연자들이 모두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마음의 찢김을 다 경험한 것입니다. 엄마의 찢겨진 마음 딸의 찢겨진 마음에 함께 할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모두가 마음의 찢김의 경험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실은 찢겨진 마음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편 저는 생각해 봅니다. 출연자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을 때 당사자에게도 큰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요?

 

교우 여러분,

찢겨진 마음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아주 소중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이웃에게 드릴 때 이웃은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우리들의 찢겨진 마음을 주님께 드리십시다. 주님께서 제일 갖기 원하시는 선물입니다. 그 마음으로 인해 주님은 위로를 받으실 것입니다. 아울러 주님은 찢겨진 마음의 소유자에게 놀라운 노래를 허락하실줄 압니다.

그런데 바로 이 찢겨진 마음의 소유자들의 노래만이 우리들의 사랑하는 이웃으로 하여금 예수를 만나게 할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어떤 분들은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나는 죄를 안 져서 마음이 찢겨져 있지 않은데 어떻게 하죠?” 정말 마음이 찢겨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올해도 묵상집을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어느 권사님의 글을 읽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권사님은 당신의 찢겨진 마음을 함께 나눠주셨습니다. 이웃의 욕심으로 인해서 찢겨진 마음을 함께 나눠주셨습니다. 저도 권사님 가게에 갈 때마다 늘 바로 앞에 같은 업종의 가게로 인해서 마음 아파하는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사순절 벽두에 찢겨진 마음을 나누는 아름다움을 주님께서는 놀랍게 갚으시리라 믿습니다.

이웃의 죄는 우리의 마음을 찢어 놓습니다. 그러나 그 찢어짐으로 인해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의 위로가 되어집니다.

 

반면 우리 자신의 죄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죄는 이웃의 마음을 찢어 놓지만 본인의 마음은 도리어 굳어집니다. 그러나 본인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사실 사순절을 지키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일줄 압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서 굳어진 마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로 인해서 마음을 찢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순절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웃의 죄로 인하여 우리들의 마음이 찢겨진 것도 축복입니다. 주님을 만날수 있으니…. 그러나 더 큰 축복은 우리 자신의 죄로 인해서 마음을 찢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찢겨진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었던 죄들은 참 귀합니다. 물론 이웃을 괴롭게 했고 주님을 괴롭게 한 것은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상처를 드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죄를 쓸모 있게 사용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가 그 죄를 깨닫는다면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찢어진다면 놀라운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죄를 지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지은 죄를 깨닫는 축복을 누리십시다. 놀라운 축복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미 온 세상은 홍수가 나 있습니다. 상처로 인하여 흘려진 아픔이 물이 되어 홍수가 나 있습니다. 이웃이 주는 상처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 내가 이웃에게 준 상처…. 이 홍수를 이기는 방법은 아니 승화시키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상처입니다. 주님의 보이는 상처 보이지 않는 상처를 묵상할 때 신비스럽게도 상처의 홍수는 축복의 홍수로 바뀝니다.

 

교우 여러분,

이번 사순절 기간 굳어져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느끼십시다. 그리고 눈물과 아픔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찢으십니다. 주님의 찢겨진 마음을 묵상하십시다. 찢겨진 마음의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어제 곧 토요일 묵상집 내용은 마음의 찢김이 주제인 글이었습니다. 중고등부 여학생이 자신의 마음의 찢김을 주제로 아주 은혜로운 글을 썼습니다. 마지막 문장입니다.

“Praise the Lord. Even when it hurts.” “마음이 상했을지라도 주님을 찬양합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상처로 인해 상처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영화롭게 한 분이 바로 늑대와 새들과 대화를 나눈 아시스의 성 프란시스입니다. Smithsonian 도서관에 의하면 성 프란시스에 대한 책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일 많이 쓰여졌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는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그는 평범한 그리고 상처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란시스는 젊었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급기야 모든 것을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성자가 된 후 먼 훗날 거리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프란시스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서 거리의 거지를 한 사람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거지에게 부탁합니다.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지독한 저주를 퍼 부을 때, 당신은 나의 다른 귀에 대고 계속 이렇게 말해 주세요. “프란시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야. 하늘나라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지.””

거지의 말을 들으면서 그는 아버지로부터의 상처를 이겨 낸 것입니다. 그의 상처는 거룩한 상처가 된 것입니다. 그의 상처가 주님의 상처를 만났기에 기적처럼 거룩한 상처로 변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순절의 축복입니다. 이런 자들은 시므온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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