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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금송아지

날짜 : 2014.03.30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두 금송아지
성경본문 : 열왕기상 12: 25-33, 11:37, 38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40330.wmv

용돈이 $100 필요하다고 생각한 소년이 두주일 동안 하나님에게 기도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주소를 알 길이 없어 주소를 “God, USA”로 적어 보냈습니다. 이 아이는 모든 우편배달부는 하나님의 미국 주소를 틀림없이 알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우편국은 어떤 긴급한 사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편지를 받은 대통령은 아이의 편지에 감동이 되어 비서에게 $5을 보내도록 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5도 많은 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돈을 받은 아이는 너무나 기뻐서 즉시로 하나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존경하는 하나님, 나에게 돈을 보내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 돈을 워싱톤 D.C.를 통하여 보내셨네요. 이들이 언제나 하는 짓처럼 $95를 떼어 먹고 $5만 보내왔습니다.”
오해마십시요. 제가 현 D.C. 정부를 비판하려는 설교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과 너무도 비슷한 케이스 같아서 소개해드렸습니다.
자주 말씀드린대로 올해 사순절은 역대 이스라엘 왕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삶을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그동안의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다시 한번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스라엘은 원래 통일국가였습니다.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천번 제사를 올립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하니 솔로몬이 기특하게도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지혜를 달라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지혜 위에 부귀 영화까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보면 걸림돌이 됩니다. 나라가 부강해지면서 솔로몬은 이웃 나라 여인들을 궁전으로 불러 모으기 시작하고 우상을 섬깁니다. 끝내 하나님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라의 반을 부하 장군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십니다. 부하 장군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여로보암입니다.
한편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통일 왕국의 왕이 되는데, 솔로몬을 피해 애굽으로 도망 가 있던 여로보암이 귀국하여 르호보암 앞에 백성들과 함께 섭니다. 그리고 아버지 솔로몬처럼 백성을 부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르호보암은 3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한 후 노인들에게 먼저 묻습니다. 노인들은 백성을 섬기는 왕이 되라고 충고합니다. 그 충고가 싫어서인지 르호보암은 자기와 같이 자란 젊은이들에게 충고를 구합니다. 젊은이들은 이처럼 말하라고 충고합니다.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르호보암은 젊은이들의 충고를 따르기로 합니다.
이에 여로보암이 자기를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북왕국을 세웁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남왕국의 왕이 되고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은 북왕국의 왕이 됩니다. 이것이 뼈아픈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사입니다.
이제부터 오늘 본문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여로보암은 왕이 된 후 첫번째로 어떤 일을 할까요? 25절을 보면 세겜과 부느엘을 건축합니다. 성을 쌓은 것입니다. 항상 국가의 원수가 되면 자기의 정권을 상징하는 무엇을 하지 않습니까? 여로보암은 성을 쌓음을 통해서 북왕국의 건재를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26절 말씀입니다.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그는 백성들이 두 개 성으로 만족하지 않는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27절 말씀을 보면,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사실 백성들은 르호보암이 전갈 채찍으로 자기들을 다스리겠다고 하니 홧김에 르호보암을 거역하고 여로보암을 따랐는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전갈 채찍을 피한 것은 좋은데 제사를 드릴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슬슬 동요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사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1년에 세차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16:16절 말씀을 보면,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택하신 곳은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곧 예루살렘만이 온전한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여로보암도 이를 잘 알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책을 세웁니다. 28, 29절 말씀입니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두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러면 왜 금송아지를 두 개나 만들었을까요? 하나 만들어서 나라 한 가운데 두면 되는데…?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서 하나는 벧엘에 또 하나는 단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단과 벧엘이 어디 있는지 지도를 통해 살펴 볼까요?
(스크린)
스크린에 보시면 북왕국은 초록색으로 남왕국은 보라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얀 표지가 세 개가 나오는데 그 중 두 개는 여로보암이 단을 쌓은 두 곳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제일 북쪽에 단을 쌓은 곳이 단이고 제일 남단에 단을 쌓은 곳이 바로 벧엘입니다. 가운데 하얀 표지는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입니다.
자 그러면 왜 여로보암이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는 단에 또 하나는 벧엘에 두었는지 감이 잡히실줄 압니다.
북왕국 안에서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단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게 하고, 북왕국 안에서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벧엘로 가서 제사를 드리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드릴 것이 뻔한 사실이고, 그러다 보면 당연히 이들은 마음이 바뀌어져서 르호보암을 따르게 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30절 말씀을 보면,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그러면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율법을 몰라서 이렇게 했을까요? 절대로 그럴리가 없습니다. 오늘 두번째로 읽은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히야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11:37, 38절 다시 한번 봉독해 드립니다.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여로보암에게 다윗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조건은 명령을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온 백성이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그것을 허락했다간 백성들의 마음이 르호보암에게 다시 쏠리게 될 것을 계산한 것입니다. 결국 단을 두 개 만들게 됩니다.그런데 여로보암의 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일단 두 단을 만드니 그 다음으로는 제사장을 자기가 세우게 됩니다. 제사장은 레위인만 될수 있는데 레위인들이 금송아지를 섬길리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절기 날짜도 자기 마음대로 정합니다.
처음 시작은 자기의 정권만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은 욕심이 끝내 단을 세우게 되고 제사장을 자기가 세우고 절기 날짜도 자기가 정하고야 맙니다. 율법을 새로이 만든 것입니다.상상할수 없는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죄가 우리와 그렇게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ECC Chapel에서 M Concert가 열렸습니다. 초빙 강사로 MIT 명예 교수님이자 전 KAIST총장님이신 서남표 총장님이 오셨는데, 한국 대학의 개혁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중 하신 말씀 중 하나가 한국 대학의 개혁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교수들의 job security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학이 국가를 위하여 있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을 시켜야 함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가장 좋은 교육을 시키려면 21세기에 맞게 혁신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인터넷 강의가 더 편리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가장 큰 걸림돌은 교수님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한국의 교수님들은 지금 여로보암의 죄를 범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셈입니다.
목사가 되서 교수님들만 몰아 세울수는 없죠. 저희 교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습니다. 저희 교단은 노회가 있고 노회 위에 대회가 있고 대회 위에 총회가 있습니다. 교세가 줄면서 어떻게 정치 구조를 바꾸면 재정에 도움이 될까 연구한 끝에 나온 결론이 노회와 총회는 꼭 있어야 하지만 그 가운데 있는 대회는 없어도 된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대회에서 일하는 분들이 결사 반대를 해서 아직도 없애지 못하고 그냥 굴러 가고 있습니다. 왜 결사반대를 하나요? Job Security.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자세히 살피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오싹합니다. 다시 한번 봉독해 드립니다.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제2의 다윗을 찾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실망을 하고 여로보암을 통하여 다윗의 영광을 주시기를 원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여로보암은 거기에 실패를 합니다. 그의 왕조는 2대로 마칩니다. 아들은 암살을 당하고 그의 왕조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북왕국의 미래도 풍전등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당대에 금방 임하지 않는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2대 3대로 내려가면서 꼭 임하고야 맙니다.
여로보암은 일생일대의 최대의 실수를 한 것입니다. 제2의 다윗이 될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것입니다. 만일 그가 왕이 된 후 말씀을 지켰더라면 제2의 다윗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북왕국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드리도록 명령을 했었더라면 그의 집은 견고히 섰을 것입니다. 아울러 북왕국 이스라엘도 건재했을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가운데 거했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살다 보면 job security와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바로 제2의 다윗이 되게 하기 위한 기회가 아닐까요?
저와 가깝게 지내는 저희 교단 목사님이 있습니다. 한 때 시카고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교회에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두 그룹이 생겼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그룹과 함께 교회를 새로이 시작할수 있는 여건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용단을 내립니다. 당신으로 인해서 교회가 갈라지게 할수 없다고 생각하고 사임합니다.
사임하실 때 마음은 곧 하나님께서 어디론가 부르시겠지 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임한지 6개월이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붙잡고 또 기다립니다. 1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이제 저금해 놓은 돈도 고갈되어 가고 은행 융자 갚을 돈도 거의 없어지고 있을 때입니다.
텍사스 오스틴 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번 인터뷰를 마치자 당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목회자라는 연락을 받습니다.
저와 함께 말씀과 함께를 집필하시는 분이신데 지난번 모임에서 간증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지막 한 달 Mortgage 낼 돈이 남아 있었는데 바로 그 때 오스틴으로 가게 되었다고 간증하셨습니다. 아울러 새 집을 짓고 잇는데 기초가 놓인 집 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에서 제일 발전하는 도시 중 하나가 오스틴입니다. 특히 한인 사회도 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공장을 두 개나 세워 놓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job security와 말씀 사이에서 말씀을 택하신 것입니다. 제2의 다윗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는 두 금송아지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죄는 우리로 하여금 제2의 다윗이 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줍니다.
반면 말씀에 순종할 때는 놀라운 축복을 본인이 받을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함께 큰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우리는 왕이 아닌데요. 우리는 교수도 아니고 목사도 아닌데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나라의 원수는 아니라도 우리 각자에게 자기 나름대로의 왕국이 주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속한 왕국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제2의 다윗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 뉴헤이븐 교회에 제직임직예배시 설교차 방문한적이 있습니다. 그 지역 백인 목사님이 오셔서 권면을 하셨습니다. 일찍 가서 사무실에 앉아서 그 백인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귀 교회에 최근에 장로 임직을 받으신 분이 있는데, 스코틀랜드에서 오신 분이라고 합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장로 임직을 받기 위해서는 보통 다른 장로교회에서 하는 것 이외 한 가지가 더 있다고 합니다. 교회내 공천이 다 마치면, 후보 장로님이 사는 마을을 찾아 간다고 합니다. grocery도 가 보고 우체국도 가보고 이웃들을 만나서 후보 장로님의 평판을 듣는다고 합니다. 만일 마을 사람들이 장로자격이 없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공천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아주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왕입니다. 왕이기에 어디서나 왕처럼 살아야 합니다.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이 복을 받았듯이 우리로 인하여 우리가 사는 마을이 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도 작은 왕국입니다. 우리의 직장도 학교도 작은 왕국입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도 작은 왕국입니다. 교회의 각 부서도 작은 왕국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여러가지 모양의 왕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우리가 속한 작은 왕국에서 말씀대로 살 때 우리는 제2의 다윗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여로보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멀어질 때마다 우리는 여로보암에 가까워집니다. 반면 다윗도 우리에게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우리가 말씀에 가까워질 때마다 우리는 다윗에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찾고 계시지 않습니다. 다윗을 찾고 계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쉐익스피어의 작품 ‘리어 왕’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리어 왕이 딸들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입니다. Regan이라는 딸에 대해 절규합니다.
“Regan의 마음을 해부해 보라. 그의 심장은 어떤 종자인가? 무엇이 그의 심장을 단단하게 만들었는가?”
저는 리어 왕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말씀에서 하나 씩 멀어져 간 것이 그의 심장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말씀에서 하나씩 멀어져 간 것을 회개 하십시다. 그리고 새롭게 말씀으로 하나씩 가까이 가십시다. 제2의 다윗이 되십시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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