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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날짜 : 2014.02.23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성경본문 : 이사야 43:14-21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4023.wmv

헨리 포드가 열두 살 때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말을 타고 수십 리 길을 달려 천신만고 끝에 의사 선생님을 모셔왔습니다. 어머니는 의사가 도착하기 직전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빨리 의사 선생님을 모셔 왔어도 어머니가 사셨을텐데, 생각하며 어머니의 죽음을 자신 탓으로 돌렸습니다.
한편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그에게 작은 꿈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말보다 더 빠른 것을 타고 갔다면 어머니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말보다 더 빠른 탈 것을 만들고 싶은 꿈이 생겼습니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1908년, 헨리포드는 말보다 빠른 자동차를 탄생시켰습니다.
한편 자동차 못지 않게 중요한 문명의 이기가 있는데 전화입니다. 전화는 자동차보다 더 빠릅니다. 이제는 동영상으로 전화를 할수 있으니 우리는 순식간에 세계 어디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발명한 사람은 벨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헨리 포드와 벨의 수고의 열매를 누리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모두 자동차를 타고 교회에 오셨고 거의 모든 분이 전화를 소지하고 계십니다. 이 둘은 현대인의 삶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자동차를 타실 때 전화를 할 때 그들의 수고에 대해서 잠시 고마운 생각도 한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분에 대해 고마운 생각을 하노라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르게 될줄 압니다. 우리는 남들의 수고에 대한 수혜자일뿐인가…? 우리는 남들이 창조한 것을 누리는 삶만 살게 되어 있는가?
사실 우리 대부분은 이들처럼 과학적으로 세상에 공헌할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어떤 모양으로도 이 세상에서 큰 공헌을 하도록 만드시지 않으셨을까요? 특히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는 이 두 발명가들에 못지 않은 위대한 과제를 안겨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과제가 무엇인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이사야를 통해서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혹시 초신자분들을 위해서 잠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늘 배반하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습니다. 왕족을 비롯해서 전 국민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장장 70년간을 포로로 생활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14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나님은 스스로 구속자 곧 구원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듣고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인들은 가슴이 두근 두근 거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너희들의 거룩한 이’라고 말씀하시며 찾아 오시니 말입니다.
감옥에 갇힌 죄수에게 누구가 찾아 와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해 주면 얼마나 큰 기대가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인들도 큰 기대를 갖고 귀를 기울입니다. 14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갈대아 사람은 곧 바벨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곧 바벨론 사람들을 다 쫓아 내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16, 17절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먼저 옛날 일을 회상하게 하시고 계십니다. 바다, 큰 물, 병거, 말, 군대의 용사. 무엇이 생각이 납니까? 홍해를 건넜던 일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종살이 할 때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통하여 그들을 구한 일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들은 지금 바벨론에 머물러 있는데, 바벨론에서 가나안 땅 곧 조국으로 오는 사이에 홍해는 없습니다. 그들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길고 긴 사막길 곧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늘 홍해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살던 사람들입니다. 늘 자녀들에게 홍해의 기적을 자랑하던 민족입니다. 그들의 전공은 물을 가르는 일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넌 것뿐 아닙니다. 홍해는 모세와 함께 건넜지만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 물도 건넌 민족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뇌리에는 홍해와 같은 바다가 가로막고 있다면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 가려면 거쳐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광야길 사막길이었습니다. 해방이 되도 걱정입니다. 자기들의 하나님은 바다의 하나님 홍해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시 홍해의 기적을 기억하게 하는 것에는 별로 큰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를 하나님께서 모르실리가 없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홍해를 먼저 언급해 놓으시고는 이제는 갑자기 말을 바꾸십니다. 이전 일, 옛날 일이면 홍해의 사건 말고 무엇이 있겠습니까? 홍해의 사건을 프라이드로 삼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홍해의 사건을 언급하시더니 금방 홍해의 사건은 기억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좀 혼동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1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나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전에 알지 못했던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새로운 기대를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새 일이 무엇일까?’ 19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전공은 물만 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땅도 가를수가 있습니다. 아니 당신은 땅에 길을 내시기도 하고 사막에도 강을 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올림픽에 5종경기(Pentathlon)가 있습니다. 5개 종목을 한 선수가 하는 경기입니다.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펜싱, 수영, 승마, 사격, 장거리 달리기입니다. 다섯 가지가 전혀 성격상 비슷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를 다 잘하는 선수에게 금메달이 수여됩니다.
펜싱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수영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 하나에 특출하게 잘 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종목이 바뀔 때마다 지난 종목은 잊어 버리고 그 종목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5종경기에 초대하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물에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장거리 달리기 종목 차례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물에만 강합니다” 말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하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너는 장거리에도 1등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즘 심해진 것뿐이지 전에도 전문성에 대해서는 늘 많이 강조가 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한 우물을 파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직업에는 전문성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생 여정은 5종경기와 같습니다. 직업의 차원으로만 인생을 본다면 전문성이 중요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직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인생은 여러번 바뀝니다. 5종경기의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사실 이민자들은 일단 5종경기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조국에서의 삶을 뒤로 하고 새로운 삶의 환경에서 살아가니 말입니다.
그러면 누가5종 경기의 지혜를 소유하게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은 자들이 아닐까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삶의 경기가 바뀔 때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믿고 상상하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담대히 광야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 때 광야에는 길이 생기고 강이 생긴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바벨론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길도 강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올해 초에 어느 교우님으로부터 작은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책의 저자는 마지막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당신의 생각을 적어 놓으셨습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저의 뇌리에 깊이 들어와 박혔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5종경기입니다. 어떤 새로운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 알수 없습니다. 알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처럼 미련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늘 미래를 예측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서 거기에 대처하려고 합니다. 미래를 알면 험한 세상에서 survive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알고 survive하려고 하는 순간 인생의 최고의 축복은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최고의 축복은 survive가 아니라 창조적 삶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창조적 삶을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은 자들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왜 하나님께서 승냥이 곧 이리와 타조를 언급하실까요? 이 두 동물은 땅의 동물입니다. 광야의 동물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민족을 놀리는 민족으로 생각해도 좋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또 강을 내어서 강의 물을 마시며 광야를 잘 지나가게 하실 것을 보면서 놀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만 새 일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했던 모든 이웃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 자기들이 해방될 뿐 아니라 이웃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 민족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5종 경기에 참여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인생 5종 경기에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자는 바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빛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크신 영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한 사람 소개해 드릴까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이야기를 잘 아실줄 압니다. 그의 첫 직업은 보잘 것 없는 방적회사 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12살 소년 사원은 ‘공장에서 제일 가는 사원이 되겠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일합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에 의해 우편배달부로 추천을 받습니다.
그는 계속 ‘미국에서 제일가는 우편 배달부가 되겠는 각오로 일합니다. 그는 동네 사람들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며 배달한 덕분에 그 일대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좀 더 창의성과 기술을 요하는 전신 기사로 채용됩니다. 같은 마음으로 일한 결과 철강왕의 자리에까지 오릅니다.
앤드류 카네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크게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가슴에 놀라운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걸어 갈 때마다 새로운 일들이 펼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들은 바로 그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존경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빛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통하여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5종 경기의 대가이십니다. 우리들의 삶의 경기가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새 일을 창조하십니다. 한편 5종 경기 가운데서 찬송 부르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웃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우리의 찬송이 바로 자동차나 전화기 발명과 버금가는 최고의 공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발명품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뿐더러 함께 5종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가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들이 5종 경기 가운데서 불러야 하는 찬송가 가사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이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십시다. 예수님도 이 찬송을 부르며 십자가를 지셨을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 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 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누가 봄길과 같은 사람일까요? 누가 인생 광야에서 빛을 발하게 될까요?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며 미래를 예측하려는 자가 아니라 창조하려는 자들이 아닐까요? 그들을 보면서 이웃들이 힘을 얻고 서로 창조자들이 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민족이 온 인류의 봄길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새 봄에 봄길이 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인생 5종경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창조적으로 살려는 사람들이 바로 봄길입니다. 그들과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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