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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나임

날짜 : 2014.01.19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마하나임
성경본문 : 창세기 31:5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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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조선일보 기사에 화제의 신간 곧 새로나온 책으로 재미있는 책이 소개되어졌습니다. ‘남자, 권력을 걸치고 갑옷을 입다’라는 책이 소개되어졌습니다. 다음과 같이 기자는 내용을 정리합니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는 살아생전 남자의 양복을 두고 “들어가 살기 위해 만든 갑옷”이라고 했다. 남자에게 옷은 구속이자 권력이었다. 남자는 때론 살기 위해, 세상에 닳고 깎이지 않기 위해 옷을 입었다.”
남자의 양복의 유래가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싸우고 견디며 끝내 승리하기 위해 입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자들의 양복이 갑옷처럼 생긴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들어가 살기 위해 만든 갑옷……남성의 굴레가……비장함이……느껴진다.”
갑옷을 입고 매일 전쟁터에 나가 싸워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비장함이 느껴진다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 교회 사업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데 사업하시는 분들은 양복은 입지 않고 출근하십니다. 그러나 각자 그나름대로 자신의 갑옷을 입고 나가고 계실줄 압니다.
이 기사를 읽고 나니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갑옷을 입고 새해를 맞이하였고 남은 한 해를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올 해 어떤 옷을 입고 한 해를 시작하신 것 같습니까? 그리고 그 옷을 입은 느낌은 어떠십니까?
오늘 새해 세번째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올 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옷이 무엇인지 함께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55절 말씀입니다.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오늘 본문 말씀을 잘 이해하려면 야곱의 이야기를 좀 알아야 합니다. 라반은 야곱의 외삼촌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쫓겨서 도망을 간 곳이 바로 외삼촌의 집이었습니다. 외삼촌의 집에서 야곱은 14년 살면서 라반의 두 딸을 곧 자기 사촌동생들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습니다. 14년이 지난 후 더 이상 외삼촌과 함께 지날수가 없게 되자 자기의 재산과 가족을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곧 본문의 장면은 라반과 야곱의 가족들이 헤어지는 장면입니다. 야곱의 가족은 바로 라반의 딸과 손자들이었습니다. 라반은 손자와 딸들에게 입맞추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 라반의 집으로 향할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가야 합니다.
야곱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자기를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는 형 에서가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러니 그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는 두 가지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하나는 강도의 위험입니다. 먼 길을 연약한 아내들과 자녀들을 데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가야합니다. 더 큰 위험은 형 에서입니다. 이 두 가지 위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32:1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을 만난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야곱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상상할수 없는 일이 이루어졌으니 말입니다.
사실 야곱은 더욱 깜짝 놀랄 이유가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깜짝 놀랄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별명은 소위 ‘얌체’ 아닙니까? ‘야곱’의 뜻은 ‘뒷 발꿈치를 잡음’이란 뜻인데, 다르게 표현하면 바로 ‘얌체’입니다. 야곱은 자기 스스로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한 모든 일은 바로 얌체질이었다는 것을…. 그러기에 감히 하나님께 자신의 행위를 근거로 해서 무엇을 달라고 할 형편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는 캄캄한 밤 길을 가족을 데리고 헤메이는 것이 당연한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사자의 모습으로 그것도 여러 명의 사자가 되셔서…. 이에 야곱이 어떻게 하나요. 2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군대가 되어서 이 곳에 나타나셨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에 야곱의 놀라운 매력이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도 야곱의 이 모습에 홀딱 반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가는 곳마다 이름을 짓기를 즐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얌체짓만을 골라하는 야곱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야곱이 당신의 사자들을 본 후 그냥 “감사합니다” 고백만 하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갔더라면…. 그런데 야곱은 그 지역을 ‘마하나임’이라고 부릅니다. 그곳을 마음 속 깊게 새겨 넣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요?
그런데 이번이 첫번째가 아닙니다. 사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도망 나올 때 이름을 지은적이 있습니다. 에서에게 쫓겨 도망 나오다가 밤에 돌베게 베고 잠이 들었을 때 꿈을 꾸죠.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을 꿉니다. 잠에서 깬 후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릅니다. 원래 그 지역 이름은 ‘루스’였습니다. 그 뜻은 ‘almond 나무.’ 그런데 야곱은 이 곳의 이름을 ‘하나님의 집’ (벧엘)로 부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는 그곳이 바로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선언합니다. 남들이 루스라고 그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는 벧엘이라고 선언합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결국 그곳 이름은 현재까지 벧엘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저도 대학생 시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영락 기도원에 기도하러 올라갔었습니다. 남들 흉내를 낸다하고 숲에 들어가 각자의 소나무를 정하고 소나무를 붙들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참 후 온 몸에 십자가의 고통을 느끼는 경험을 하였었습니다. 저는 종종 그 때 그 장면이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야곱보다 저는 훨씬 부족함을 느낍니다. 만일 제가 야곱과 같았더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곳 이름을 정했을 것입니다. 혹시 압니까? 지금 영락기도원 이름이 달라졌을지…. 이것이 저와 야곱의 차이입니다.
하여튼 이처럼 ‘루스’라는 땅을 ‘벧엘’이라고 명명했던 경험을 가진 야곱이 이제 또다시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마하나임’(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군대가 자기에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을 때 하나님은 어떠셨을까요?
“건방진 놈 내가 나타났다고 자기 마음대로 또 이름을 붙여서 불러?” 하시면서 화를 내셨을까요? 그리고는 야곱을 떠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후에도 계속 나타나신 것을 봐서 당신이 야곱에게 나타나신 곳을 ‘마하나임’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야곱이 가는 모든 곳을 바로 ‘마하나임’이 되게 하셨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올해 우리도 야곱의 축복을 함께 누리는 한 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가는 모든 곳이 마하나임이 되게 하는 축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축복을 받을수 있을까요?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기에 좀 자신이 없지는 않습니까? 그래도 뭔가 하나님께 보여드릴게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요. 얌체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나타나시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다른 것은 본받지 않아도 이것은 본받아야 합니다. ‘마하나임’이라고 이름 짓는 것은 본받아야 합니다.

두 주전 신년예배시 저희 교회 올해 표어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것은 바로 신약의 ‘마하나임’이 아닐까요? 올해 한 해를 야곱을 본받아 이름을 지으십시다. ‘마하나임.’
신년예배에 참석을 못하신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열등감에 가득찬 제자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요 14:12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주님께서는 자신감이 없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그 놀라운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바로 신약의 ‘마하나임’이라고 생각할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주님은 ‘마하나임’의 갑옷을 입혀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얼마 전 여왕벌에 대한 글을 접해 보았습니다. 수만 마리의 꿀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벌집은 여왕벌 하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갑자기 여왕벌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더 이상 알도 못 낳고 그러면 그 꿀벌 집단은 사라지게 될까요?
만일 여왕벌이 사라지게 되면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잠시 후 벌들은 정신을 차리고 유충 한 마리를 여왕벌로 키운다고 합니다. 곧 여왕벌은 처음부터 여왕벌의 유전인자를 안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일벌들이 분비하는 로열젤리를 받아 먹고 자란 유충이 여왕벌이 되어 간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로열젤리를 받아 먹는 것입니다. 유충시절 누구나 다 여왕벌이 될수 있습니다. 누가 로열젤리를 받아 먹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누구에게 ‘마하나임’의 갑옷을 입혀주실까요? 스스로 ‘마하나임’이라는 이름을 짓는 자들입니다. 곧 스스로 로열젤리를 먹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 로열젤리는 바로, ‘그보다 큰 일을 하리니…’ 주님의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십시요. 작년에 60주년 행사를 잘 치렀는데 그 보다 더 큰 일을 하자고 말씀드리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올해는 음악회도 안 하고 한국 문화축제도 안 합니다. 결코 외형적인 행사를 더 크게 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야곱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야곱은 마하나임의 갑옷을 입고 자기의 길을 갑니다. 그 앞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지 못한채 그 길을 갑니다. 그 길을 가면서 그는 외치고 또 외쳤을 것입니다.
‘마하나임.’
‘마하나임’이 야곱의 로얄젤리였습니다. 이 로얄젤리를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또 먹으면서 그는 최고의 신앙인이 되어 간 것입니다.
‘마하나임’ ‘마하나임’ ‘마하나임’ ‘마하나임’….
그런데 이 마하나임이 새해에 우리에게 주시는 로얄젤리이며 갑옷이 아닐까요?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 갑옷을 입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혼자서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외치는 것입니다.
‘마하나임,’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외치는 것입니다.
‘그보다 큰 일을 하리니….’
그 때 정말로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어떤 분들은 좀 의아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구체적으로 ‘그 보다 큰 일’이 어떤 일들인가? 그것을 알아야 계속 외치지….
교우 여러분,
우리가 자신을 위해 이웃을 위해 계속 외칠 때 아니 우리들의 외침의 분량이 찼을 때 그 놀라운 일들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연초부터 너무 우리가 할 ‘그보다 큰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큰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큰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된 자들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준비시키십시다. 서로를 준비시키십시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나올 때마다 주님은 야곱보다 더 못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귀담아 들으십시다.
“그보다 큰 일을 하리니….”
말씀을 거둡니다.
램 바르마의 ‘새해 생각’이라는 시입니다.
New Year Thoughts
Ram P Varma
(…) This is the beginning of a great New Year.
This is the beginning of a new learning to blossom and grow.
This is the beginning of a whole new secret to bliss.
You are self-expanding to respond;
that’s the sheer magnificence within you.
Are you ready to receive these splendors of the heaven?
Are you ready to receive in awareness; the wisdom of ALL?

새해 생각
램 P 바르마
(…) 이제 위대한 새해의 시작이다.
새로운 지혜가 꽃피고 자라기 시작한다.
천상지복의 새로운 비밀이 열리기 시작한다.
이를 맞기 위해 그대는 스스로를 크게 키운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그대가 숭고한 이유이다.
이 찬란한 천상의 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누가 이 놀라운 복을 받을수 있을까요?
마하나임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입니다. ‘그보다 큰 일을 하리니’외치는 자들입니다. 우리들의 외침이 하늘에 상달되었을 때 놀라운 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마하나임의 옷을 입으십시다. 마하나임의 양복을 서로 입히십시다. 올 해는 마하나임의 해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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