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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기다림

날짜 : 2013.12.08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안나의 기다림
성경본문 : 누가복음 2:36-38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31208.wmv

한 농부가 비를 간절히 기다리며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가물어서 대지가 말라 버렸고 그의 작물이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아내의 기도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내도 자기와 함께 기도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절로 났습니다.
“비가 오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농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자기의 귀를 의심하며 가까이 가서 들었습니다. 내용은 변함이 없습니다. 비가 오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기도를 하고 있는 아내를 꾸짖습니다.

“비가 오지 않게 해주신 걸 감사하다니, 미련퉁이 같으니라고!” 아내가 대답합니다.
“여보,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강가에다 이제 막 집을 지었잖아요.”
“그것하고 비가 오지 않게 해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만일 비가 왔다면 강이 곧 넘쳐서 그 사람들 집을 휩쓸어 버렸을 거예요. 그 때문에 하나님께 비가 오지 않게 해주신 걸 감사드린 거예요. 한 사람의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는 축복이지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올해도 저물어 가고 있는데 올해 우리들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게 합니다.
이 이야기는 도리어 받은 축복으로 인해서는 감사하지만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몹시 힘들어 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우리의 불행으로 인해서도 감사의 삶이 넓게 열려져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상고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36절 말씀입니다.

“또 아넬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오늘 본문 말씀이 ‘또’로 시작되는데, 지난주에 이어서 본문 말씀이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시므온의 이야기를 함께 상고했습니다. 시므온은 시간을 spend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wait의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사람인데 오랜 기다림 끝에 아기예수를 보는 영광을 누립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를 알아 본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인 안나입니다. 안나도 메시야를 몹시도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안나는 남편과 7년을 함께 살다가 사별합니다. 37절 말씀을 보면, 36절 마지막 부분과 연결시켜 봉독합니다.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결혼한 지 7년 만에 과부가 되고 이제 84세가 되었습니다. 결혼을 성인식을 마친 후 곧 했다고 가정하면, 유대인 소녀들은 성인식을 12세에 합니다. 그렇다면 약 20세에 과부가 된 것입니다. 20세에서부터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84세까지 하였습니다. 약 64년간을 성전에서 메시야를 기다린 것입니다. 못해도 60년간은 성전에서 기다림의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올해 60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만, 60년을 한결같이 기다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하여튼 이런 기다림의 삶을 살던 중…, 38절 말씀입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오랜 시간 성전에서 기다렸는데 어느 날 한 아기가 성전에 들어 왔습니다. 그는 아기 예수를 보고는 금방 알아 본 것입니다. 함께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아기 예수가 메시아임을 말한 것입니다.

안나의 모습을 알려면 시므온과 비교하면서 살펴보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살펴 본대로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여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소개되어집니다. 어떤 연고로 메시야를 기다리게 되었는지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의롭고 경건하기에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반면 안나는 결혼 생활을 잘 하던 중 7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이 안나의 삶을 180도 바꾸고 맙니다. 세상 삶과는 결별하고 성전에 들어와 금식과 기도의 삶을 삽니다.

독일의 케스텔레라는 작가가 ‘다시 혼자가 된 당신에게’라는 책을 지었습니다. 다시 혼자가 된 여인들을 위한 책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도움을 받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이기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그 중에 ‘상징물에서 위로받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황금색 리본이나 분홍색 리본으로 바닥에 하트 모양을 만드십시오. 그 안에 들어가 앉을 수 있는 크기여야 합니다. 지금 어떤 생각이 당신을 특히 슬프게 하는지 살펴보십시오. 둘이 함께 하면 좋았을 미래입니까? 아니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거듭거듭 마음을 억누르는 어떤 구체적인 상황입니까?
하트 안으로 들어가 앉으십시오. 이제 숨을 들이쉴 때마다 치유 에너지와 위로의 기운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숨을 내쉴 때마다 이 좋은 기가 복부로 흘러들어간다고 상상하십시오. 그렇게 숨결을 느끼면서 잠시 머물다가 예식을 끝내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납니다. 뭔가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케스텔레 저자는 하트를 그려 놓고 그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찾으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트 안에서 새로운 미래를 위한 힘을 맛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안나가 혼자가 된 사람들에게 책을 쓴다면 어떤 하트를 소개할까요? 안나의 하트는 성전이었습니다. 안나는 과부가 된 후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전이라는 하트에 들어 간 것입니다. 성전이라는 하트에서 안나는 과거를 둘러보지 않았습니다. 곧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미래를 생각하는 안나가 되었습니다. 아마 성경 안에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성경 말씀에 심취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말씀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서 11:1절 말씀입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인데 곧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태어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서 9:6절 말씀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서 5:2절 말씀입니다.

안나가 성전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런 말씀을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는 과부가 된 후 성전에 들어가서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심취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영원부터 계신이가 한 아기가 되어서 이스라엘 역사 안으로 찾아오시는 이 놀라운 사건을 묵상하며 기다리고 기다리게 됩니다.

곧 실제적으로 안나는 하나님의 인류를 사랑하시는 위대한 구원 역사 안에 들어 간 것입니다. 그 하트 안에 들어가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과거의 아픔은 다 사라졌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되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던지 금식하며 기다렸습니다. 수십 년간….

수십 년간 기다리다 보니 스스로 새로운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다림은 어느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안나 선지자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이 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하트 안에서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38절 말씀 다시 봉독해 드립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아기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안나는 알아보았습니다. 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 한 복판에 거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남편의 사랑의 하트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트 안에 거하면서 간절히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안에 거하였던 것입니다. 어느덧 그의 관점은 많은 사람들 보다 훨씬 차원이 높아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에서 온 아기를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느냐에 따라 삶이 바뀝니다. 보는 눈이 바뀝니다. 세계관이 바뀝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저희 아들 준석이가 초등학교 2, 3학년쯤 되었을 때입니다. 산타클로스를 더 이상 안 믿는 나이가 되었을 때입니다. 말로는 안 믿는다고 말은 하는데 내심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듯 보일 때입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는데 하루는 두툼한 것을 들고 오더라고요. 보니 장난감 돈이었습니다. 말없이 저에게 주고 자기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숨은 메시지는 이 돈을 산타클로스에게 주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 오게 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아직도 저는 크리스마스가 오면 준석이의 그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어린 준석이 뿐인가요? 우리도 모두 같은 심정이 아닙니까?

교우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인생의 밭에 풍년을 사모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웃이 홍수가 들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요. 이런 심정으로 이번 성탄절을 곧 아기 예수의 오심을 맞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정으로 아기 예수를 맞이하는 삶은 영원의 세계에서 이 땅을 찾아오시는 그 분을 사모함으로 시작됩니다. 곧 우리의 삶의 차원을 영원의 높은 세계로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높은 세계에서 온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인생의 가뭄 가운데서도 놀라운 기도를 합니다.
“가뭄이 온 것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 속에는 이웃이 들어 와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구역모임에서 교우님들과 재미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화초를 기르는 것이 취미인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화초를 죽이는 법은 간단합니다. 물을 많이 주면 됩니다. 화초는 가뭄에 잘 견딥니다. 그러나 홍수에는 견디지 못합니다.”

이를 듣고 있다가 한 교우님이 한번은 열대어를 키웠는데 온 가족이 여행을 하게 되서 어쩔 수 없이 어항에다가 먹이를 많이 주고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집에 와 보니 열대어가 죽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또 화초가 취미이신 분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차라리 굶겨야 합니다. 굶기면 살아 있습니다. 먹이를 많이 주면 먹이가 썩어서 썩은 물로 인해 열대어는 죽습니다.”
가뭄이 홍수보다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대화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대강절은 가뭄의 소중함을 새롭게 하는 계절입니다. 세상은 풍요가 좋은 것이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풍요 속에서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가뭄의 아픔 속에서도 새로이 촛불을 켜는 것입니다. 더 높은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높은 세계에서 나의 작은 세계만 보고 있었던 자신을 새로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의 아픔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가뭄을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웃을 부요하게 하려고 이웃을 위하여 선물을 준비하게 됩니다. 자신은 가난해지더라도….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은 밝아지는 것이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이번 대강절 기간을 spend의 도구로 삼지 마십시다. Wait의 도구로 삼으십시다. 아기 예수를 아니 다시 오실 주님을 마음껏 기다리십시다.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가뭄을 인해서도 감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Lee Strobel이라는 시카고 tribune 신문 기자가 시카고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쓰던 중 Delgados 가정을 만나게 됩니다.
할머니와 두 손녀 세 명이 two bedroom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파트에 들어가 보니 가구도 전혀 없고 양탄자도 없고 벽에는 아무 것도 걸려 있지 않았습니다. 작은 부엌탁자와 쌀 한 움큼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11살 난 리디아와 13살 난 제니는 짧은 소매의 옷 하나에다가 얇은 회색 스웨터 하나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혹심한 추위에 학교를 반 마일 걸어 갈 때면 먼저 리디아가 입고 갑니다. 반쯤 와서는 언니에게 건네줍니다. 언니가 학교까지 입고 갑니다.
그런데 이런 가난뿐 아니라 할머니는 심한 관절염으로 일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확신 있게 주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자기를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 가운데 삽니다. 스트로벨 기자는 한 번도 그 가정에서 절망과 자기 동정을 느껴 보지 못합니다. 도리어 소망과 평화의 분위기를 느끼곤 합니다.

사실 이 가정에 대한 기사를 이미 쓴 후였습니다. 마침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습니다. 그 가정이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집을 방문했습니다. 방문을 여니 깜짝 놀랍니다. 신문 기사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하였습니다. 가구가 생겼고 카펫이 깔렸습니다. 수많은 canned food를 비롯해서 선물보따리가 방 안에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스트로벨 기자는 또 다시 놀랩니다. 할머니와 두 딸은 받은 선물을 이웃에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말합니다.
“우리 이웃들은 아직도 가난합니다. 우리만 이처럼 풍성하게 받을 수 없어요.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거예요.”
기자가 정신없이 서 있는데 할머니는 계속 말합니다.
“이는 너무 놀라운 일이예요.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했는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어요. 그러나 이것이 최고의 선물은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에요. 우리는 내일 축하하죠. 바로 아기예수예요.”

교우 여러분, 이들이 왜 이러한 엄청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최고의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그들은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최고의 높은 차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야말로 가뭄으로 인해서도 감사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 큰 촛불이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도 높은 차원의 삶을 사십시다. 나는 가난해져도 이웃이 부요해짐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니다. 아기 예수가 우리들 품에 안겨 환히 웃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구간이 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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