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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날짜 : 2013.05.05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성경본문 : 신명기 6:1-3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30505.wmv

어느 유대인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집에 큰 잔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셔먼이라는 손자가 할머니가 football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셔먼은 할머니가 왜 풋볼이 필요한지 의아했지만, 할머니에게 축구공을 구해드릴 생각으로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축구공을 가진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이 아이는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곤 하던 아이인데, 자기 축구공을 셔먼이 가장 아끼는 장난감들과 바꿔주었습니다. 물론 대가로 셔먼의 코까지 쥐어박았습니다.

축구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셔먼은 반짝거릴 때까지 그 축구공을 닦은 뒤 할머니가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셔먼의 어머니가 먼저 축구공을 보고는 셔먼을 불러 야단을 칩니다. 이 바쁜 날 자기 물건을 치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셔먼은 할머니 파티에 쓸 거라고 설명합니다. 셔먼의 어머니는 크게 웃습니다.

“할머니 파티에 쓸 풋볼이라고? 넌 할머니 말씀도 제대로 못 알아듣니? 할머니는 풋볼이 아니라 fruit bowl(과일 그릇)이라고 말씀하신거야. 파티에 쓰실 과일 그릇이 필요하셨던 거라고.”

당황한 셔먼은 곧바로 위충으로 뛰어 올라가 문을 꽝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선 파티가 열리는 아래층에는 내려오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결국 셔먼의 어머니가 셔먼을 아래층으로 데려왔는데, 할머니가 각종 과일 한가운데 반짝거리는 풋볼을 담은 큰 과일 그릇을 들고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다니고 계셨습니다. 한 손님이 할머니에게 과일 그릇 가운데 왜 축구공을 놨냐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자기 손자가 선물해 준 축구공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 후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아이가 주는 것이라면 모든 게 아름답죠.”

할머니는 셔먼에게 축구공을 선물로 받고, 셔먼은 할머니로부터 할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평생 선물로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후에 자라서 코믹송을 작사/작곡을 하는 유명한 음악인 Allen Sherman이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짝거리는 풋볼을 큰 과일 그릇을 담은 할머니의 모습이 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테니 그는 재미있는 노래를 만드는 음악인이 되고도 남지 않았을까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오늘 우리들의 자녀들은 어떤 선물을 받고 자라고 있는가 생각하게 합니다. 어떤 선물을 안고 성인이 되어 가고 있을까요?

오늘 어린이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어린이들에게 주어야 할 선물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이 말씀을 통해서 모세는 하나님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인간은 말씀을 받고 행하는 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요즘에도 하나님을 말씀을 주시는 분으로 매 해 기억을 합니다. 곧 이스라엘 민족은 Shavout이라는 절기를 지키고 있는데 바로 이 날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날을 기념해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날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사람은 말씀을 행하는 자임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사람들은 이를 행해야 하나요? 2절 말씀입니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아주 명쾌하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한 마디로 복위에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십계명과 그 이외의 계명을 주셨는가? 복 위에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민족은 이 날을 자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Shavout.’

그런데 2절 첫 구절이 주목을 끌게 합니다.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이 말씀은 삼대까지만 해당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증손부터는 해당이 안 됩니다.

이 말씀을 여호수아가 분명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어떻게 받아드렸을까요? 자기와 자기 아들과 자기 손자까지 이 말씀의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자기의 아들과 손자와 증손과 고증손과 6대 7대와 그 이하 후손들을 위하여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 같이 여호수아처럼 믿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표현하셨으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곧 너와 네 자손들이….”

훨씬 간편합니다. 오해의 소지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셨을까요?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저희 교회 비전선언문의 첫 번째가 ‘삼 세대가 함께 배우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성경을 보다가 삼 세대에 관한 말씀이 나오면 더 주위 깊게 살펴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도 그냥 넘어 갈수 있었는데 저의 레이더에 잡힌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어떤가? 동물의 세계는 3세대가 함께 살고 있는가? 물론 제가 동물의 세계를 잘 모르긴 하지만 3세대가 함께 사는 동물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2년간 저희 집에 oriole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곤 했습니다. 둥지를 만들 때부터 새끼가 둥지를 떠나 날아갈 때까지 약 한 달이 걸립니다. 지금까지 3차례 새끼들이 탄생되었는데, 한 번도 할머니 할아버지 새가 와서 새끼들을 돌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할아버지 할머니 새들이 와서 얼씬 거린다면 된통 싸움을 벌였을 것입니다.

새가 그렇다 치면 포유류는 어떤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니 진화론자들이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고 하는데 원숭이는 어떤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웬만한 것들은 다 인터넷에 나오니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Three generation’과 ‘monkey’를 넣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볼 만한 게 나오더라고요. 읽어 보았더니 삼세대 원숭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삼세대가 원숭이 구경을 간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한글로도 한번 넣어 보았습니다. 한글이건 영어건 제가 찾아본 것으로는 아직 원숭이 삼세대는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찾은 결과가 맞는 것이라면 또다시 진화론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새삼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신 것은 너무도 큰 의미가 내포해 있다고 봅니다. 삼 세대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삶의 현장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너와 네 자손’이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삼세대의 소중함을 깨우치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동물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지 않을까요? 어떤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그 때는 모세시대이고 이제는 다르죠? 이제는 디지털 시대인데…?”
과연 그럴까요? 다음 귀절을 보면 정말 모세 시대에만 국한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2절과 내용의 반복인 것 같습니다. 말씀을 행하면 복을 받고 크게 번성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 해석상 가장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모세는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표현 안에 모세는 자기의 놀라운 경험을 은연 중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모세가 2절에서 ‘너와 네 자손들이’ 하지 않고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라고 표현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쉐마의 밤이나 제직 교육 시간을 통해서 여러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로 도망 나와 있을 때 하나님께서 타지 않는 가시덤불에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에게 당신 스스로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요즘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명함을 주고받습니다. 미국 보다 한국에는 명함 문화가 더 발달된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명함을 주는데 자신의 명함을 드리지 않으면 좀 분위기가 어색해지곤 합니다. 모세도 하나님을 처음 만나서 명함을 받았습니다. 명함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모세는 이 명함을 받고 많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야곱에게 12 아들이 있는데 그 중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되었는데 왜 요셉은 빼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오랜 고심 끝에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삼 세대의 하나님이시구나. 삼 세대가 완전한 가족이구나.” 이러한 확신이 있기에 모세는 이런 표현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이 하나님의 명함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를 예수님이 증명하십니다. 모세 이후 1300년 후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해 사두개인들과 논쟁하시다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 26절 말씀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모세 이후 1300년 후에 예수님도 하나님의 명함을 모세가 받은 명함 그대로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삼세대의 하나님의 명함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이야 두 말할 것도 없고 모세가 그토록 위대한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저희 자녀들에게 줄 선물은 뚜렷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명함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명함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이 명함을 소유한 우리 자녀들은 모두 위대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삼세대의 삶을 누릴 때 최고의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세대의 교육을 통해서 한국 역사에 크게 공헌하신 분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 이준 열사입니다.

이준 열사는 젊어서부터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며 애국지사가 됩니다. 교회 밖에 활동으로는 서재필과 협성회를 조직하고, 후에 독립협회에 가담합니다. 민영환과 이상재와 개화당을 조직합니다. 적십자회 의장이 됩니다. 만국청년회 회장도 역임합니다. 1907년 고종황제의 특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 행위를 세계에 호소합니다. 이미 일본이 손을 써 놓아서 회의장에서 축출 당하자 이준 열사는 할복자살을 합니다.

그런데 이준 열사가 이렇게 큰 인물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큰 어려움을 당합니다. 세살 때 부모를 모두 여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삼촌의 손으로 교육을 받습니다. 부모님은 안 계셨지만 이미 아버지를 대신한 삼촌 그리고 할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웁니다. 그로 인해 그는 장원에 합격하고 검사도 됩니다. 결국은 나라를 위한 애국지사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역사관은 다음의 말에서 잘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고 하는 일은 하고 하고 또 하여야 한다. 하고 하고 또 하다가 후인이 다시 하고 하여야 한다.”

이준은 자기의 죽음이 그냥 없어지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죽은 후 후인이 다시 자기의 일을 또 하고 또 하다 보면 역사는 이루어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할아버지와 삼촌에게서 받은 산교육의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부모 없이 자랐지만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하였습니다.

“가정을 번영케 하는 것은 자손에게 있고 국가를 융성케 하는 것은 청년에게 있다.”

삼 세대의 소중함이 몸에 배어 있기에 이처럼 위대한 자취를 남기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준 열사가 남긴 말 중에서 가장 많은 분들의 가슴을 울린 말이 있습니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된다.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하여 조국의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

삼세대의 소중함을 아는 자는 크고 많은 것을 찾지 않습니다. 대신 위대한 인물들이 되어 갑니다. 이준 열사는 연동교회 교인이었으며 한 때 상동감리교회에서 청년회장직을 맡았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었으며 삼세대의 소중함을 철저히 실천한 위대한 한국의 인물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피를 나눈 삼세대 가족의 사랑을 받은 자들만이 위대한 길을 가게 될까요?

엊그제 저의 아들 대학 졸업식에 참석했었습니다. 한국인 김용 World Bank 총재가 오셔서 연설해 주신 것이 아주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아주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또 다른 잊지 못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각자들 사진을 찍고 졸업식장을 나가고 있는데 전혀 모르는 한 할머니가 옆에 서 계셨습니다. 아마도 손자 내지 손녀의 졸업식에 오신 분 같아 보였습니다. 저희 가족이 지나가는데 할머니가 “Congratulations”하면서 저희 가족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축하를 받으면서 저희는 “Thank you”하며 답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저 할머니처럼 아무에게나 축하한다고 말할수 있는가?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나이가 아직 젊어서 일까요?

이것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저력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든 인생을 다 겪은 후 젊은이들을 보면서 또 보지 못할 사람인줄 너무도 잘 알면서 축하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소중합니다. 특별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너무도 소중합니다.

교우 여러분, 지금도 전 세계의 역사는 삼세대의 소중함을 실천하는 자들을 통해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아이가 주는 것이라면 모든 게 아름답죠.” 듣는 아이들을 통하여 세상은 아름답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를 삼세대의 교회로 삼으셨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상록회까지 함께 배우는 교회로 삼으셨습니다. 남은 것은 우리가 이를 누리는 것입니다. 즐기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삼세대의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Joel Beeke라는 분이 영국의 어느 목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목자가 능숙한 목자라 되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합니까?” 시간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만 시간이면 될까요? 나이 든 목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About four generations.” 능숙한 목자가 되려면 4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4대까지를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3대까지 원하시고 계십니다. 자녀와 함께 신앙생활 할 것을 원하십니다. 손자들과 함께 아니면 손자들을 생각하면서 신앙생활 할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 자녀에게 줄 최고의 선물은 3세대가 함께 말씀을 배우고 행하는 모습이 아닐까요? 모세는 말씀합니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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