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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가서…

날짜 : 2013.04.07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너희는 가서…
성경본문 : 마태복음 28:11-20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30407.wmv

몇 주 전 캄보디아 지역 뽀꼼 마을의 추장이 되셨던 UN 국제외교관 김병호 외교관의 이야기를 들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입니다. 중국은 큰 나라지만 사실 아주 단편적인 나라라고 합니다. 반면 인도는 중국처럼 크면서도 아주 다양한 나라라고 합니다. 인도는 아무리 오래 지내도 지겨워지지 않는 반면 중국은 며칠만 지나면 금방 재미를 잃게 된다고 합니다.

중국에 촬영을 하러 갔었는데 2, 3일 만에 갈 데가 없어서 밤에는 호텔에만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중국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한 처녀가 홀 주변을 오고 가고 있었습니다. 같이 간 촬영 팀 중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가씨는 중국사람?”
“회족 이예요.”
먼 중앙아시아에서 이사 와 이곳 중국 첩첩 산중에 살고 있는 아가씨였습니다.
“그러면 왜 아가씨는 그곳에서 살지 않지?”
“마을에서 쫓겨났어요.”
“쫓겨나?”
“아버지가 돼지를 먹었거든요.”

이슬람교에서는 돼지를 부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돼지를 먹은 아버지는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마침 한국인 목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묻습니다.
“아가씨는 지금도 이슬람교도요?”
아가씨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자신이 없는지 목사님의 눈치만 살핍니다.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겠소?”
아가씨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가지고 있던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상기된 얼굴로 함께 한 사람들을 돌아다봅니다.
“이슬람교도를 기독교도로 개종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요.”

며칠 후입니다. 회족 아가씨가 한 촬영팀 대원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 이것을 드려도 돼요?”
아가씨는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을 내밀었습니다. 무신론자인 김병호씨는 표현합니다.
‘기독교로 개종하겠느냐는 이쪽의 물음에 대한 그녀의 명쾌한 대답이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김병호 박사는 회족 아가씨가 코란을 내미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기독교인들을 향한 묘한 자신의 감정을 표출시키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녀의 명쾌한 대답이었다.”
오늘 부활절 후 첫 번째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지난 주일에 여느 때 보다도 뜨겁게 부활의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40일간의 사순절을 지내며 주님의 고난을 묵상한 후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니 더 없이 축복된 부활 후 한 주간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감격을 안고 오신 여러분들에게 저는 분위기에 안 맞는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 드렸습니다. 무신론자 김병호 박사의 시니컬한 표현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녀의 명쾌한 대답이었다.”

부활의 열기를 싹 가라앉히는 말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소개해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부활의 증인된 제자들을 제일 먼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바로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시니컬한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때 장면을 살펴볼까요? 11절 말씀입니다.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여기에서 여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고 경비병은 주님의 무덤을 지켰던 그래서 부활하신 확실한 증거들을 본 사람들입니다. 이 경비병들이 대제사장들에게 알립니다. 이에 대제사장들은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말합니다. 13절입니다.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5절 말씀을 보면,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이제 밖으로 나가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웬걸 자기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상한 말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죽은 예수의 시체를 훔쳐 갔다는 말들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다 믿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의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곧 주님의 부활 후 온 세상은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돈으로 매수하면서 거짓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돈과 권력을 가지고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돈과 권력이 합하여져서 주님의 부활을 못 믿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닙니까? 돈과 권력이 합하여 질 때 새로운 창의력이 생깁니다. 이들의 창의력은 기가 막히게 부활의 진리를 거부하게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진화론이죠. 아메바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진화론자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과학의 발전과 함께 처음 진화론의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도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진화론자들이 나와서 전에 진화론의 모순을 파헤칩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진화론을 또 만들어 냅니다. 이와 같은 패턴은 계속될 것입니다. 늘 새로운 진화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돈과 권력은 계속 부활의 주님을 거부하는 멋진 이론을 창조할 것입니다. 김병호 박사님도 이것의 한 희생자일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과학을 더 연구해서 과학의 한계를 밝혀야 하나요? 사실 그러한 목적으로 생겨난 기관이 창조과학회이겠죠. 창조과학회가 생긴 후 진화론은 죽어 버렸나요?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부활의 주님께서는 돈과 권력과 과학의 소용돌이 가운데 사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오늘 본문 두 번째 문단을 살펴볼까요? 주님께서 갈릴리 산에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18절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주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표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지상명령을 남기셨는데 바로 이 말씀이십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주님은 경비병들이 만들어 내는 유언비어는 아랑곳 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세상을 향하여 가라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Yes, Sir! 땅 끝까지 가겠나이다.” 이렇게 반응했을까요? 사도행전 8:1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주님은 세상으로 가라 명령하셨지만 제자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님은 큰 박해를 보내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이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회에서 말씀드린 유머를 한 번 더 소개해 드립니다.
의사와 엔지니어와 목사가 사슴 사냥을 나갔습니다. 사슴이 눈에 띄어서 세 사람 동시에 총을 쐈습니다. 총에 맞은 사슴에게 가보니 총은 딱 한 발만 적중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자기가 맞혔다고 주장합니다. 어쩔 수 없어서 그 숲의 관리인에게 갔습니다. 누가 쏜 총에 맞았는지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관리인은 쉽게 대답합니다.
“목사님이 쏜 총입니다.”
모두 의아해서 묻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총알이 왼쪽 귀로 들어 가서 정확히 오른쪽 귀로 나갔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에게도 그러했습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이 왼쪽 귀로 들어와서 오른쪽 귀로 나갔습니다. 그 이유는…?

눈앞에 보이는 문제가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그들의 머리는 눈에 보이는 문제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왜 이들은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나요? 물론 제자들은 모두 믿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사실 제자들에게는 경비병들이 만드는 유언비어가 큰 문제였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이 문제가 더 커 보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잘 지키는 것이 큰일이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주님 지금 밖으로 나갈 때가 아닙니다. 안에 있는 수많은 적들은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주님 모르십니까? 군인들이 대제사장들에게 돈을 받고 주님의 시체를 우리가 훔쳐 갔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믿고 있습니다. 지금 밖으로 나갈 때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음성은 머릿속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곧 우리가 세상을 문제로 보고 있으면 더 큰 문제가 찾아옵니다. 박해가 찾아옵니다. 반면 주님의 음성에 순종할 때 인생은 선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선물을 누리시려면 더 이상 문제해결사의 삶을 버리셔야 합니다. 대신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큰 기대를 안고 가는 순례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생활은 바로 이것입니다. 문제에 빠지느냐 아니면 인생을 선물로 받느냐?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무조건 순종할 때 인생은 선물이 됩니다.

박해로 인해서 제자들은 세상을 향해 나가면서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말씀의 의미를 체험합니다. 인생은 총체적 선물이 됩니다.

한편 제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이슈를 발견합니다.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자기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다름이 없었던 자기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기들도 대제사장들처럼 자기들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이제야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나갈 때 세상의 중심은 바로 이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으로 향할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체험하니 말입니다. 곧 부활의 주님은 세상을 보는 눈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거꾸로 보는 자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자들은 이 세상 안에 담겨진 무한한 축복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자기네들이 세상을 바로 보고 있었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길만이 돈과 권력으로 팽배한 사회에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거꾸로 보는 자들이 되게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에게는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하등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심도 중심이 아닙니다. 거꾸로 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변두리의 사람들이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되고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변두리의 사람들이 됩니다. 선생이 학생이 되고 학생이 선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Abraham Heschel이라는 유명한 유대교 랍비가 있습니다. 이 분이 왜 그렇게 유명한 분이 될 수 있었는지 얼마 전 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딸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아버지의 유머와 평온하고 따뜻한 대화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게임을 하고 학교나 집 동물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루에서 인형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생일 파티 때 아버지는 나와 내 친구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진행하는 걸 좋아하셨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 우리 가족이 가장 즐겨하던 놀이는 그날 나의 학교생활을 재현하는 학교 놀이였다. 학교 놀이에선 내가 선생님 역할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장난꾸러기 학생 역할을 맡았다.”

헷셀이 헷셀이 된 이유를 이 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일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학교 놀이에선 내가 선생님 역할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장난꾸러기 학생 역할을 맡았다.”

그는 세상을 거꾸로 볼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처럼 훌륭한 랍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참 배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에게 한 가지 흠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을 향하여는 거꾸로 보지 못했습니다. 타민족을 향해서는 거꾸로 보지 못했습니다. 타민족에게 배운다는 것은 그의 사전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곧 부활의 사람만이 이웃을 제자 삼을 수 있습니다. 그들만이 이웃을 향하여 떠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주님은 또다시 지상명령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말씀을 거둡니다. Helen Roseveare라는 영국의 처녀 의사가 오래 전에 콩고로 의료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그 분은 겸손하게 콩고인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콩고인 스태프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이 스태프는 선교사님에게 가서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고 따졌습니다. 선교사님은 무릎을 꿇으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처럼 이 분은 세상을 거꾸로 보는 분이셨습니다. 그냥 잘못했다고만 해도 되는데 무릎을 꿇고 빌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콩고인들을 중심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사실 그 분에게는 더 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콩고 반란군들이 선교관에 와서 모두 납치해 갔습니다. 선교사님도 성폭행과 아울러 갖가지 어려움을 다 겪었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런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답변은 엉뚱합니다.
“그래도 감사하니?”
“아니 어떻게 제가 감사할 수 있습니까?”
“내가 너를 신뢰하기에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인데….”

콩고인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긴 선교사님을 주님은 크게 신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부활의 주님이 생각하시고 계신 곳이 바로 세상의 중심입니다. 우리들의 고집을 내려놓으십시다. 문제 해결사는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명령에 단순히 순종하십시다. 주님은 우리를 신뢰하십니다. 신뢰하시기에 마지막 명령을 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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