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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어머니

날짜 : 2012.05.13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모세의 어머니
성경본문 : 출애굽기 2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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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조나주 피닉스에 사는 한 아버지가 추수감사절 전날 밤 뉴욕에 사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너의 귀중한 시간을 뺏기는 싫지만 너에게 꼭 할말이 있어. 네 어머니와 이혼을 하고 있는 중이야. 45년이란 지겹고 힘든 세월, 이것으로 족해.”
“아빠,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잔말 말고 시카고에 있는 네 누이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 하면서 전화를 딱 끊어버렸습니다. 미친 듯이 흥분한 아들이 그의 누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폭발한 누이는 “미쳤네 미쳤어, 이혼을 한다고! 이문제는 내가 해결할게요” 하고 전화를 끊고 즉시 피닉스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버지, 이혼 절대로 못합니다. 내가 집에 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오빠랑 함께 내일 도착합니다. 그 때까지 무엇도 해서 안 됩니다. 알았어요?” 하고 전화를 뚝 끊었습니다. 노인은 전화를 끊고 그의 부인을 보면서 말합니다.
“잘 됐어요, 여보, 애들이 내일 추수감사절을 위해 집으로 온데요. 그런데 우리 주님이 오신 크리스마스가 곧 닥쳐 오는데 크리스마스 때는 뭐라고 해야지요?”
자녀를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유머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글을 소개해 드릴까요? 감옥에서19년째 새해를 맞이하며 부모님께 쓴 편지입니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애태우시던 병인년 한 해도 이제 며칠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지막 보내는 세모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흡족함보다는 부족함을 더 많이 느끼리라 생각됩니다. 하물며 가까이서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기는 커녕 20여년 동안 부모님의 애물이 되어 또 한 해를 보내는 심정이 흡족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병석에 계시긴 하지만 어머님의 환후가 그만하신 것이 다행스럽고 또 아버님께서는 저술과 집필 등으로 변함없이 정진하고 계심을 생각하면, 이는 아버님 연배의 노인들에게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일로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됩니다. 세모의 갖가지 아쉬움 속에서도 이에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새해에는 어머님, 아버님의 염려에 어긋나지 않도록 건강하고 올바르게 생활하겠습니다.
부디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더욱 강건하시고 넉넉하신 마음으로 새해를 맞아주시길 빌며 세배에 대신합니다. 1986년 세모에.”

얼마 전에 소개해 드린 신영복 교수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글입니다. 두 이야기가 무척 대조적이죠. 첫 이야기는 물론 픽션이긴 하지만 부모님을 찾아가 뵐 수 있지만 늘 멀리 하는 자녀들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찾아갈 수가 없어 아픈 마음을 안고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들리지만, 사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의 아픔이 두 이야기에 모두 서려져 있으니 말입니다. 어머니는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퍼하십니다. 왜 어머니란 존재는 이렇게 아퍼야만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면서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모세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 이미 애굽왕 바로는 히브리인들이 아들을 낳으면 모두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의 가족은 모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웁니다. 석달이 지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모세를 담아 나일 강 가에 띄웁니다.
모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고 멀리 서서 보는데, 바로의 공주가 갈대상자를 열어 보고 히브리인의 아기이지만 자기가 키우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모세의 누이가 공주에게 가서 유모를 소개시켜 준다고 합니다. 자기 어머니 모세의 어머니를 불러 옵니다. 공주가 아기를 모세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품삯까지 준다고 약속합니다. 모세는 어머니 품속에서 계속 자라납니다. 꽤 성장했을 때 모세의 어머니는 약속대로 모세를 공주에게 데려 갑니다. 공주는 아기의 이름을 ‘모세’ ‘건져내었다’라는 뜻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모세의 어머니의 아픔을 쉽게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아픔은 모세가 자람에 따라 계속 변천되어 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본문에는 모세의 어머니의 아픔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아픔 가운데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먼저 모세의 어머니는 아픔을 안고 모세를 키웁니다. 언젠가 공주에게 보내야 하니 말입니다. 언제까지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키웠는지 확실치는 않습니다. 10절에 보니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에게 데려 가니” 기록된 것으로 몇 살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요즘 유대인들이 자녀들의 성인식 곧 바미츠바를 남자아이는 13살 여자 아이는 12살에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마 모세도 13세쯤에 어머니 품을 떠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편의상 13살에 떠났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어머니는 자기 품 안에서 자기 아들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것을 아주 잘 알았을 것입니다. 13년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요즘 자녀들인 17, 8세에 집을 나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세월이 얼마나 빨리 옵니까? 모세는 13세에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니 13년간 모세의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 아들을 키웠을 것입니다. 한편 분명한 것은 모세에게 히브리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교육시켰습니다.
사실 13살에 공주에게 보낼 생각을 하면서 키웠으니 얼마나 큰 아픔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아픔은 또한 놀라운 소망으로 변하곤 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내 아이들은 다 나일강에서 악어의 밥이 되었는데 이렇게 뻐젓이 살아 있으니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다는 확신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13살이 되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궁전에 데리고 갑니다. 공주에게 넘기고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대학교에 자녀들을 놓고 올 때 많은 부모님들이 우는데 모세의 어머니는 어떠했겠습니까? 그 후 모세를 거의 보지 못한채 살아갔을 것입니다. 보고 싶을 때마다 궁전 주변을 혼자서 오갔을 것입니다. 한편 그래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죽지 않고 이처럼 살아서 애굽의 왕자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소식이 들려옵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광야로 도망갔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입니다. 모세에게 히브리 교육을 너무 잘 시킨 것이 도리어 화를 가져 왔습니다. 모세가 동족을 구하기 위하여 애굽사람을 죽였는데 바로가 이를 알게 되자 모세는 광야로 도망간 것입니다. 그 후 40년간 곧 80세까지 광야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모세의 어머니가 이때까지 살아계셨는지 우리는 알 수는 없습니다. 단지 살아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세의 어머니는 몇 살까지 살았는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신 아버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6:20에 보면 아버지는 137세를 향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도 아마 비슷하게 사셨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어머니가 아들 모세가 바로에게 쫓겨 광야로 도망 간 사실을 알고 아주 힘든 나날을 보내셨으리라 추측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닙니다. 아마도 신영복 교수님의 어머니와 같은 힘든 시절을 보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아들을 위한 깊은 고통 가운데 지내게 되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공주에게 부탁 받아 키울 때도 아파했을 것이고, 궁전에서 살 때도 보고픔 가운데서 아파했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광야로 쫓겨 나갔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아픔 가운데 지냈을 것입니다. 모세는 평생 어머니의 걱정거리였습니다. 많은 아픔을 어머니에게 겪게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모세가 모세가 된 것은 결국 어머니의 아픔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크신 일을 감당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깊어가는 어머니의 아픔이 필요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뿐일까요? 어머니들은 아플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아픔을 통해 자녀들이 귀한 존재가 되어 가니 말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사는 동안 늘 자녀들을 위한 아픔을 가슴에 안고 지내는 줄 압니다. 소식이 없으면 소식이 없어서 아프고 소식이 있으면 소식이 있어서 아픈 존재가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가 아닐까요?
그런데 그 아픔은 어느새 기도로 변하곤 합니다. 새로운 희망으로 변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 아픔 가운데서도 늘 승리하시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와 희망이 품을 떠난 자녀들을 계속 자라게 합니다. 어머니의 아픔이 자녀들의 성장을 위한 귀한 거름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거름 위에 씨가 떨어지면 무섭게 자라나듯이 모세는 그 거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구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름은 아픔과 희망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섞여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자녀가 남들 보기에는 하찮아 보여도 자녀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지 않은 어머니가 있습니까? 모든 어머니는 자녀들을 향한 아픔과 희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결국 모세가 모세가 된 것은 어머니의 아픔으로 시작된 모세를 위한 기도와 희망이 아니겠습니까?

한편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어떻게 그 수많은 세월을 아픔으로 보낼 수 있었을까? 모세의 어머니뿐이겠습니까? 모든 어머니들은 어떻게 수많은 세월을 아픔 가운데서도 굳건히 사실 수 있으실까요?
한자 공부로 어머니 주일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바다를 한자로 海(해)라고 합니다. 삼수변에 어머니 모, 곧 물 水와 어머니 母가 합해서 바다 海(해)를 이룹니다. 어머니를 물로 표현한 것이 바다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바로 바다 안에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어머니는 바다와 같아서 어떤 아픔도 다 삼켜 버리십니다. 어머니는 바다와 같아서 언제나 살아 있으십니다. 어머니 안에는 항상 희망과 기대가 넘쳐 있으십니다. 누구를 향해서? 자녀들을 향해서.
모세의 어머니도 그렇고 세상 모든 어머니는 바다와 같으신 분들이십니다. 그래서 어떤 아픔도 다 삼켜 버리시며, 도리어 그 바다는 언제나 희망의 춤을 추고 계신 것입니다. 그 희망의 파도를 타고 모세는 모세가 되어간 것입니다. 우리 각자도 최고의 우리 자신이 되어 갈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유명한 만화가 윤태호 씨가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만화가가 되려고 만화 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 어머니가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셨다고 합니다. 광주에서 4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올라오셔서 30분 남짓 이야기하고는 다시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돌아가는 길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몸을 돌리며 이리 오라 하셨다. 그리고 작은 동전 지갑을 꺼내셨다. 닳고 낡은 동전 지갑에는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들, 그리고 내려가는 고속버스 티켓이 들어 있었다. 서울에 있는 막내를 만나러 오는 어머니의 지갑치곤 단출하고 황량한 풍경이었다. 집안 사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학원 원장님과 식사라도 하고 싶지 않으셨을까, 꾀죄죄한 나를 보고 옷이라도 한 벌 사 주고 싶지 않으셨을까, 피부가 나빠 공중목욕탕에 못 가는 나를 위해 여관이라도 잡아 목욕을 시켜 주고 싶지 않으셨을까. 지갑에는 삼백 원 내외의 돈만 남고, 모두 내 손에 건네졌다. 그러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누가 지나가다 툭 건들기라도 하면 통곡을 해도 부족한 서러움이 몰려왔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지금은 번듯한 만화가가 되어 어머니의 자부심이 되었지만 당시 어머니는 막내아들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으로 가득하셨으리라. 어머니가 바라보는 곳은 내가 도달하는 곳이 된다. 어머니가 인내하며 바라본 그곳이 오늘의 내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윤태호 씨가 만화가로 성공한 이유를 저는 그의 글에서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한번 읽어 드릴까요?
“어머니가 바라보는 곳은 내가 도달하는 곳이 된다. 어머니가 인내하며 바라본 그곳이 오늘의 내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교우 여러분, 어머니들이 인내하며 바라 본 그 곳에 우리는 언젠가 도달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인내를 본받아 최선의 삶을 사십시다. 그리고 늘 고백하십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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