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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말을 하라

날짜 : 2011.02.20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감사하는 말을 하라
성경본문 : 에베소서 5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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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세기에 활약했던 스웨덴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있습니다. 제니 린드입니다. 그 분은 아름다운 음성과 그 노래의 매력으로 대단한 찬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스웨덴뿐 아니라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독일의 베를린, 미국의 뉴욕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노래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분의 어린 시절은 아주 불행하였습니다. 어릴 때 늘 방 안에 갇혀 지냈고 돌보던 여자는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가곤 했습니다. 불쌍한 제니는 온종일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지으며 보냅니다. 그래도 즐겁게 노래 부르는 것을 유일한 소일거리고 삼았습니다.
하루는 한 권위 있는 음악가가 제니의 홀로 있던 옆집을 지나면서 어린 소녀의 노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린드는 몇 해 동안 창밖을 보면서 혼자 노래를 부르던 중 그의 다져진 훌륭한 음성을 알아본 음악가에게 발탁되어 그의 지도로 결국은 뜻하지 않게 세계적인 명가수가 되었습니다.

만일 제니 린드가 그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어떻게 마치었을까요? 세계적 음악가가 되긴 커녕 쓸쓸히 골방에서 사라져갔을 것입니다. 결국 어려움 가운데서 노래하는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는 노래 잘하는 사람들을 찾고 있는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찾고 계실까요? 지난번 안수 집사 교육 때 어느 분이 고백하시는데 네 식구 중, 자기만 음치라서 늘 왕따를 당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노래 잘 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구분하시지 않으실 줄 압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도 어떤 분들을 찾고 계신지 말씀을 상고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5: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성경해석에서 ‘그러므로’가 나타나면 항상 그 앞에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편지를 쓰면서 서두에 ‘그러므로’ 로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는 그 문단은 어떤 내용 후에 따라 오는 내용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럼 바로 앞 귀절을 살펴 볼까요. 4: 32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 말씀 후에 본문 말씀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조금 어색한 것 같지 않습니까? 이렇게만 보면 사도바울은 작문 실력 0점입니다. 사실 5:1절의 ‘그러므로’는 바로 전 귀절에서 연결 된다기 보다는 에베소서 전체 특히 1장에서부터 연결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3장과 4장을 보면 ‘이러므로’, ‘그런즉’,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문단이 무려 5개가 나옵니다. 이 문단들이 바로 앞 내용과 연결되는 것 보다는 많은 경우 1장과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1장의 내용이 에배소서의 가장 핵심입니다. 대표적인 구절을 소개해 드리면, 1장 4, 5절 말씀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은 창세 전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의 대전제입니다. 이 대전제 후에 사도바울은 계속 ‘그러므로’를 연이어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의 삶을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대전제와 연결해서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셔야 합니다. 다시 한번 1장 5절과 연결해서 읽어 드리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이러한 엄청난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요? 2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와, 하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 가운데 행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리스도처럼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계속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먼저 자신을 버리셨다고 말씀하죠. 정말 따르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분들이 저의 설교를 듣고는 이렇게 반응하신 분이 있었다곤 합니다.
“목사님, 말씀은 너무도 좋습니다. 그러나 따르기에는 너무 힘듭니다.” 아마 에베소 교우들은 이런 심정으로 말씀을 듣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숨 돌리게 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자신을 버리되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제물’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희생 제물’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읽은 주석책에는 이면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지 않지만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희생제물’을 먼저 썼다면 아마 에베소 교인은 더 이상 귀를 막았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표현을 먼저 씁니다. 사도바울의 지혜인것 같습니다. 사실 향기로운 제물이 되려해도 먼저 희생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도 같은 값이면 ‘향기로운 제물’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다음 귀절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 4절 말씀입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말’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과 ‘향기’는 좀 관계가 되지 않겠습니까? 향기로운 제물이 먼저 되어야 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의 향기’가 아니겠습니까? 다시한번 3, 4절 봉독해 드립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교우 여러분, 우리는 창세전부터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첫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향기로운 제물이 되신 것처럼 우리가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향기로운 제물이 될까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응답은 단순합니다. 감사하는 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큰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감사를 원하십니다. 반면 감사하는 말로 우리들의 입이 채워지지 않을 때 어떤 말들로 채워질까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 그리고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로 채워집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A.J.제이콥(Jacobs)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있습니다. 이분은 여러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해서 책을 펴내곤 하는 분입니다. 최근에는 열 가지의 실험을 해서 책을 펴냈습니다. 이 분이 하는 실험은 자기가 직접 살아 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실험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예쁜 여자도 되 보고, 죠지 워싱톤이 되 보고, 모델도 되보고 등등입니다. 그 중 하나가 머리에서 생각나는 것은 숨기지 않고 말하는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이 분이 이 실험을 하게 된 경위는, 브레드 블란튼(Brad Blanton)이라는 심리학자가 있는데 이 분이 레디컬 아니스트(Radical honesty)라는 운동을 전개하는 분입니다. 이 분의 주장은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더 행복해 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분이 말하는 거짓말은 머릿 속에 든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나쁜 생각이 들면 그냥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잘 아는 부부를 만났는데 체면치례로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든 모든 생각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전보다 많이 늙었네.’ ‘전보다 더 살쪘네.’ ‘더 예뻐졌네.’
별 생각이 다 들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들을 다 말할 때 자유로운 삶 행복한 삶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그대로 살아 보고 결과를 말합니다. 한 달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열 가지 실험 중에 제일, 아니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The worst month of my life.’
사실 이 분은 한달 동안 머리 속에서 생각나는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곧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과 희롱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the worst month of my life.’
어느 TV탤런트가 재미있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탤런트를 하다 보면 이런 역 저런 역 다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한번은 악역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기를 하면서 온갖 나쁜 말들을 당당하게 하니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이 집안에서 생겼습니다. 부부싸움이 그 어느 때 보다 많아졌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드라마 대사라고 할지라도 고귀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그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드라마 대사로 외워도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데 임의로 나오는 말들은 얼마나 큰 영향을 우리들의 삶에 미치겠습니까?
그러면 어떤 분들은 질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그 때도 감사의 말을 해야하나요?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한국 프로그램 ‘놀러와’를 보았습니다. 어느 젊은 목사님이 자기는 ‘세시봉’시대는 아닌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설교도 저런 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로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면서 저에게 소개해 주어서 한번 들어가 보았습니다. 1960년도말에서 70년도 초까지 있었던 ‘세시봉’이라는 음악 감상실 출신의 연애인들이 나와서 과거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였습니다. 잘 아시는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가수가 등장하였습니다.
그 중 송창식 씨의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가수로 올라서기 전, 어느 건축회사가 건축하는 건물의 경비를 맡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물건이 없어졌습니다. 누군가가 훔친 것입니다. 그런데 송창식씨가 의심을 받게 되었고 급기야 해고를 당했습니다. 송창식씨가 고백하기를 자신이 훔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가만히 해고를 당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고…. 송창식씨가 하는 말씀이 자신은 전에 많이 훔쳐 봤었기 때문에 억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감사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송창식씨처럼 다른 면으로는 들키지 않은 것뿐이지 많은 죄를 범한 자들입니다. 그러다가 가끔 우리가 진 죄와 상관없는 것으로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보면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송창식씨는 이것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후에 가수로 대성하지 않았겠나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진정 억울한 일을 당하신 분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도 억울해 하지시 않으셨습니다.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주님께서 자신을 버려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는데 우리도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방법길이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전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제가 그 A.J. 제이콥의 책을 읽은 후 이분에게 이멜을 보냈습니다. 한 가지를 suggest 하고 싶다는 이멜을 보냈습니다. 무엇이었겠습니까? 무조건 감사하는 삶을 한번 시험해 보라는 이멜을 보냈습니다. 참고로 에베소서 5:3, 4절을 주었습니다. 언젠가 실험을 한 후 또 다른 책이 나오게 되길 바랍니다. 그 때 저에게 감사를 하겠죠?
교우 여러분, AJ Jacobs씨가 실험을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하지 않을까요? 아니 이것은 실험이 아닙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언제나 감사의 말을 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를 버리신 주님을 향한 향기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이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으로 인해 감사를 해야 할까요? 어떤 감사를 드릴 때 항상 감사하는 자가 되어질까요?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 째로는 평범한 것으로 인하여 늘 감사하여야 합니다. 올 겨울은 어느 해 보다 눈이 많이 왔습니다. 교통사고 안 나신 분들 감사하여야 합니다. 마음으로가 아니라 말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하루는 어느 수요일 저녁 뉴톤 장로교회에서 노회 회의가 있었습니다. 제가 노회의 Immigration task force의 멤버인데 요즘 이민자의 잇슈가 아주 큰 잇슈가 되어 있습니다. 7시까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6:30에 집을 나왔습니다. 6:30이면 아직도 하이웨이의 shoulder lane에 차가 다닐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날따라 하이웨이에 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순간 착각하고 shoulder lane에 차가 올수 있다는 생각을 잊은채 일차선에 차가 없기에 들어섰습니다. 순간 shoulder lane에 달려 오던 차가 재빨리 일차선으로 옮겼습니다. 일차선에는 큰 트럭이 달려 오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분은 운전을 잘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제 차를 피하면서 트럭 앞으로 빠져 유유히 일차선을 타고 질주하였습니다. 저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7시에 회의장에 도착해서 8:30분 회의가 마칠 때까지 종종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사고가 났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 못했을텐데….
이것보다 좀더 긍정적인 감사의 제목이 있을줄 압니다. 한번은 가까운 글루세스터(Gloucester) 바닷가에 가 본적이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캐나다에서 오신 가족을 만났습니다. 저는 보스톤에서 왔다고 하면서 처음 이곳에 왔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네는 매해 캐나다에서 Gloucester에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네 family tradition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마 그 날 월요일에 잠시 집 사람과 갔었을 것입니다. 일주일 휴가를 낸다면 멀리 가고 그것도 매해 여기저기 다닐 것입니다.
이 분들은 똑 같은 휴가지에서 매년 새로운 축복을 만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것 안에서 반복되는 것 안에서 축복을 찾고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최고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평범한 것 안에서 감사의 제목을 발견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항상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나신 분들은 이처럼 평범한 것을 통해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결국 우리는 가족으로 인해 감사 드려야 합니다. 매일 만나는 직장 사람들로 인해 감사드려야 합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교우님들로 인해 감사드리십시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들 모두의 삶에는 삶의 가시가 있습니다. 가시로 인해 감사할 때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향기가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가시로 인해 감사드리는 우리들의 말을 놓치지 않으시고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향기로 천국은 가득 차 있지 않을까요?
아니 천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빌게이츠가 그토록 성공한 큰 이유 중 하나는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할 때 오늘 닥치는 어려운 일들을 감사히 받아드리는 마음으로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멋지게 해결되는 기대를 갖고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하물며 창세전부터 예정된 사랑을 소유한 우리들은 어떠하겠습니까?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할 때 우리들의 감사의 삶을 얼마나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의 향기로운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들의 향기로운 제사를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감사의 말을 기뻐받으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전광 목사님이 ‘평생감사’라는 훌륭한 책을 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평생 best 10 감사제목을 소개합니다. 몇개만 소개해 드리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은 일,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평생을 함께 하는 일, 사랑스런 딸과 아들을 얻은 일, 미국에서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일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도 한번 평생 best 10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일, 귀한 아내를 만나 살게된 일, 멋진 아들을 선물로 받게 된 일, 감사한 목회 생활을 하게하신 일, 여러 친구들을 통해 삶이 부여하게 된 일, 이민신학을 깨우치게 된 일, 때때로 주어지는 삶의 가시들.
7개로 멈쳤습니다. 나머지3개는 앞으로 더 소중한 일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놓아두었습니다. 여러분도 Best 10 감사제목을 작성해보기시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평범한 삶으로 인하여 감사드리십시다. 늘 감사의 말을 하십시다. 삶의 가시로 인해서도 감사드리십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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