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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배자

날짜 : 2010.12.19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첫 경배자
성경본문 : 누가복음 2장 1-7절

나사렛에 가난한 목수 가정이 있었습니다. 평화가 가득 넘치는 가정이었습니다. 결혼한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벌써 아내는 만삭이 되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아이의 출생을 기다리며 한편으로는 초조하게 한편으로는 큰 기대를 안고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편지가 날라왔습니다. 열어보니 로마의 황제의 도장이 찍혀 있는 편지였습니다. 내용인즉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고향에 가서 호적을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출생을 앞둔 가정도 다 가야하는 명령이었습니다. 남편은 눈앞이 깜깜해집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산모를 데리고 먼 고향 베들레헴까지 가야 합니다. 아마 동사무소에 가서 하소연도 해 보았을지 모릅니다. 물론 동사무소 직원은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령입니다. 출산휴가(Maternity leave) 같은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짐을 싸고 두 부부는 먼 길을 나섭니다. 아내의 배는 자꾸 불러 옵니다. 모험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때 남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원망의 마음이 자꾸 솟아 오르지 않았을까요? 첫 번째로는 로마의 황제인 아구스도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아이 밴 가정도 다 호적을 하라는 거야.”
이 원망은 다음의 원망으로 이어졌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거야.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사랑하지 않으시나봐.”
아무리 원망을 해도 로마 황제의 명령은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투덜거리며 베들레헴으로 조심스럽게 떠납니다. 아이를 안 배었으면 좀 더 늦게 떠나도 되는데 아이를 배었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더 일찍 떠납니다. 마음의 바램은 가서 호적을 마친 후 집에 돌아 와서 아기를 낳는 것입니다. 초산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드디어 목적지인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낌새는 도저히 집에까지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묵을 여관을 찾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마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어려운 여행을 마쳤으니 하나님께서 좋은 여관을 마련해 주셨겠지.”
그러나 모든 여관은 만원사례였습니다. 어떤 여관 주인은 자리는 있는데 아내의 배부른 모습을 보고 거절하는듯 보였습니다. 또 다시 로마 황제에 대한 원망이 솟아오릅니다. 아울러 로마 황제의 편지 한장에 베들레헴까지 와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원망스럽습니다. 하찮은 목수의 신세가 더 스스로를 비참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때면 다시한번 꿈에 나타난 주의 사자의 음성을 생각합니다.
“네 아내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이런 생각으로 잠시 위로를 받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가 태어나는데 좀 좋은 여관에서 태어나게 하시지 않고 하나님은 무얼하시나?”
아무리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협박해도 하나님은 감감 무소식입니다. 여관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아내는 어느덧 오랜 여행 때문인지 진통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남편은 여관 주인에게 사정 사정합니다. 여관 주인은 고통 가운데 있는 아내를 보고 안스러운지 마굿간에 묵는 것을 권합니다.
첫 아들을 나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누입니다. 아기를 구유에 누이면서 기쁨 보다는 질문이 앞섭니다.
“왜 하나님은 이 귀한 아들을 베들레헴의 가장 누추한 곳에서 태어나게 하셨나?”
하나님은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안고 있던 요셉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든지 동방박사를 통해서든지 아니면 목자를 통해서든지 미가서에 기록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셨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에 다음과 같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미가는 약 주전 700년에 활동하던 예언자입니다. 700년 전에 미가는 베들레헴에서 구주가 탄생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 예언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로마의 황제를 사용합니다. 온 천하에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아구스도 황제가 이런 명령을 내린 이유는 미가서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아구스도 황제는 자신의 권력 내지 국토 확장을 위해서 이 명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아구스도 황제는 하나님께 사용 받은 자가 된 것뿐입니다.
이에 요셉은 태어난 아이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합니다. 그 당시 최고의 권세자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아들을 이땅에 보내시기 위하여…. 곧 목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하여 로마의 황제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품에 안긴 아이가 로마의 황제보다 더 위대함을 새삼 느낍니다. 아기 예수 안에 로마제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대한 나라가 있음을 느낍니다. 그 누구도 그의 탄생이 700년 전에 예언된 자가 없습니다. 700년 전에 예언된 자의 탄생을 로마의 황제가 환영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굿간에 찾아 와 경배한 사람들은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보다도 제일 먼저 경배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 아구스도입니다. 아구스도는 700년 전에 예언된 사건을 이룸을 통해서 실제로 예수님께 찾아와 첫 번째로 경배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요셉은 이제 모든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만삭이 되었을 때 아구스도가 호적을 하라고 명령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아구스도가 이 명령을 안 내렸다면 아기는 나사렛에서 태어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700년 전의 예언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아구스도는 하나님의 인류를 위한 이 위대한 계획에 사용된 것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성탄 예배로 드립니다. 온 우주 만물이 아니 땅에 있는 자나 하늘에 있는 자나 모두 함께 아기예수에게 나아와 무릎을 꿇는 날입니다.
아기 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줄 압니다. 하나는 아기예수가 구주임을 믿고 무릎을 꿇는 자들입니다. 바로 우리처럼 성탄 예배를 진정으로 드리는 자들입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아기예수가 구주임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구스도 황제처럼 하나님께 사용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 두 부류중 하나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무릎을 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기 예수가 메시야임을 고백하며 무릎을 꿇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고백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사용당함을 통해 무릎을 꿇습니다.
아기 예수 안에 위대한 나라가 있음을 사도바울은 빌립보서2:9,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후에 아기 예수는 땅에 있는 존재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존재들까지도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무릎을 꿇은 자가 누구였다구요? 아구스도 황제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사용당하는 자로서 무릎을 꿇은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사도바울은 이 두 부류를 다음과 같이 나눕니다. 종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로 나눕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여자가 있었는데 하나는 사라이고 하나는 여종인 하갈입니다. 사라를 통해 이삭이 태어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태어납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로 태어나고 이스마엘은 종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아구스도는 첫 경배자였지만 종의 자녀였습니다. 사용만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약속의 자녀였습니다. 참으로 아기 예수께 찾아와 경배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약속의 자녀가 되어서 아기예수를 경배하고 있습니다.

한편 오늘은 우리는 또 다른 의미에서 기쁜 날입니다. 두 분이 성인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4명의 아이들이 유아세례를 받습니다. 성인세례를 받으시는 분들은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께 사용당함으로 무릎을 꿇는 자가 아닙니다. 아기예수가 메시야임을 고백하며 무릎을 꿇는 자가 되었습니다. 약속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는 아이들은 부모님의 신앙 고백과 더불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되어서 부모님과 더불어 무릎을 꿇는 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나 아기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되지 못합니다. 약속의 자녀들만이 무릎을 꿇습니다.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들이 바로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실까요? 먼저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700년 전 약속한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아구스도 황제를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 그 무엇도 사용하실 줄 압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 앞에 그냥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닙니다. 이 믿음과 함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세상 그 무엇도 사용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과 함께 무릎 꿇는 것이 진정 아기예수를 환영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500여년 전에 이것을 확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잘 아실줄 압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70년 포로 생활을 예고하셨습니다. 곧 70년 후 해방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누구를 사용하시죠? 바벨론 왕국을 멸망시키면서 바사왕국 곧 페르시아를 세우십니다. 곧 바사왕국의 첫 번째 왕 고레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해방을 이루십니다. 주전 538년 이스라엘의 해방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고레스 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곧 아주 재미있는 사건들이 역사적으로 두 번 전개된 것입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왕인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을 해방시킵니다. 그리고 그 후 약 500년 후에 로마 황제 아구스도를 통해서 아기예수가 베들레헴에 탄생할 것을 이루십니다. 두 세기적 왕들이 모두 하나님께 사용당한 셈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왕들을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같은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으실까요? 오늘은 절을 하단만 세상의 왕들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지 않으실까요?
교우 여러분, 이 믿음과 고백을 안고 아기예수께 무릎을 꿇으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세상 그 무엇도 사용하십니다. 때로는 세상 권세자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도구일뿐입니다.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하여 이곳에 오신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고야 마십니다. 때로는 최고의 권력자를 사용하시기 까지 합니다. 이 약속을 안고 아기 예수를 환영하십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두에게 다른 약속들을 하셨습니다. 이 땅 위에서 각자 다른 축복을 누릴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을 사용하십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약속입니다.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닮아 가는 모습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께 무릎을 꿇을 때마다 우리는 아기예수를 닮아갑니다. 이 닮아 가는 과정을 돕기 위해서도 하나님은 세상 그 무엇도 사용하십니다. 아기 예수를 닮아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이 두 가지 축복을 마음껏 누리십시다. 그러므로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의 겸손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사모하면서 주님의 탄생을 축하드리십시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아침엔 호텔에서 식사나 차도 주지 않는다. 빵 한 조각 못 먹고 물만 먹고 3일을 견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빵을 주지 않는 것 보다 저녁에 촛불을 주지 않는 것이 불쾌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장 배고픈 상황 속에서도 촛불을 찾았고 촛불을 찾은 그의 마음도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밝혀 주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촛불을 찾고 계십니까? 여기 앞에 아기 예수의 촛불이 켜져 있습니다. 촛불 앞에 서십시다. 이 촛불은 우리를 밝혀 줄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힘을 합하여 우리로 하여금 최고의 빛이 되게 하십니다. 아기 예수의 빛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의 촛불은 오늘도 마굿간에 밝히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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