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안내
주보
주보 모음
설교 영상
설교 원고
찬양
실시간 예배
2015년 이전 설교

예비하신 모든 것

날짜 : 2009.11.15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예비하신 모든 것
성경본문 : 고린도전서 2장 6-9절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091115.wmv

낸시라는 분이 여동생을 만나러 가기 위해 덴버행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에 오르려 줄에 서 있었는데 앞에 젊은 흑인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버스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잠시 눈인사를 나눴습니다. 여자는 낸시가 차고 있던 은팔찌를 보고 칭찬을 건넸습니다.
“팔찌가 예쁘네요.”
“고마워요. 얼마 전에 멕시코에서 샀죠.”
그 여자는 비슷한 것을 사려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고 말을 합니다. 순간 낸시는 팔지를 풀어 그녀에게 건넸습니다.
“아, 안 돼요. 받을 수 없어요.”
“괜찮아요. 비싼 거 아니에요. 당신에게 주고 싶어요.”
그러자 그녀는 돈을 지불하고 팔찌를 사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낸시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느 쪽이 더 재밌을까요? 완전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팔찌를 사는 것과 완전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는 것 중에서 말이에요.”
낸시는 팔찌를 끌러 그녀의 팔목에 채워주었습니다.
긴 시간이 흘러 버스가 덴버에 도착했을 때, 젊은 여자는 낸시에게 네모반듯하게 접은 쪽지를 건네고 먼저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친절한 분에게, 오늘은 저에게 의미있는 날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처음 밖으로 나서고 있어요. 제가 세상에 나와 만난 첫 번째 사람이 되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A라는 낯선 이가”
낸시는 이 쪽지를 액자에 넣어 방안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 후 낸시는 낯선 이들을 만날 일이 있을 때마다 ‘옳다구나!’ 생각합니다. 모든 만남을 하나님이 보내신 축복의 메신저로 활용할 기회가 온 거라 여기며, 수많은 우연과 만남을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인생은 참으로 즐겁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자신 스스로 무척 멋진 사람이라는 확신에 차게 되었다고 합니다. “멋진 사람!”

낸시는 값싼 팔찌를 모르는 여인에게 줌을 통해서 평생 스스로 무척 멋진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낸시는 팔찌 하나로 삶의 액자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낸시는 팔찌 하나로 최고의 자화상을 갖고 살게 된 것 같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삶의 액자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자화상을 가지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는 믿는 자들에게 주신 액자가 소개되어 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믿는 자들이 꼭 가져야 할 자화상이 소개되어 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상고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저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최악의 자화상을 소유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사도바울의 편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끝없는 분열과 분쟁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도바울은 여러 차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현재는 고린도 전 후서만 성경에 남아 있지만 이 외에도 한 두 편지가 더 있는 것으로 신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열과 분쟁으로 찌들어진 이들에게, 최악의 자화상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사도바울은 멋진 쪽지를 보냅니다. 물론 액자는 아니지만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픈 글귀를 보냅니다. 9절 말씀입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먼저 말씀드릴 것은 이 말씀은 두 가지 면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 째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듣지도 보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구세주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두 번 째로는 그 예수를 믿는 자들의 삶이 듣지도 보지도 생각지도 못햇던 삶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 째에 더 촛점을 맞추겠습니다. 하여튼 사도바울의 편지를 제대로 읽은 사람은 아마 이 글을 액자에 담아 방에 걸어 놓았을 것입니다. 이 글을 액자에 담게 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을 줄 압니다. 하나는 이 말씀 자체가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제가 좋아하는 성경 귀절 중에 한 귀절입니다. 때로는 미래의 일들이 걱정과 두려움으로 몰려 올 때면 저는 저의 삶의 방에 걸린 이 액자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그랬을 줄 압니다.
두 번 째로 고린도 교인들이 이 말씀을 액자로 삼을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이 당시 고린도 지역은 지혜를 무척 소중히 여기던 때였습니다. 지혜하면 귀가 솔깃하던 때입니다. 지혜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많은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혜가 난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혜가 너무 난무하니 무엇이 참 지혜인지 혼동하던 때입니다. 이런 교우님들에게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사도바울은 지혜가 난무하는 시절 참 지혜를 소개해 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가 솔깃해 졌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더욱 귀가 솔깃해 집니다. 만세전에 예비된 지혜라고 하니 정신을 잃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영광을 위해서 만세전부터 마련한 지혜라는 것입니다. 만세전에 이미 우리의 삶을 위하여 놀라운 것을 예비하여 두셨는데 그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을 마련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 계획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만세전에 이미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만세전에 이미 예비된 계획이 누구에게 적용될까요? 8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간단히 표현하면, 예수 믿는 자들에게 이 놀라운 지혜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은 공부를 많이 한 자들만이 지혜자로 생각되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자에게 만세 전부터 예비된 지혜가 주어집니다. 분쟁 가운데 있던 고린도 교우들은 귀를 활짝 열고 기울입니다. 과연 만세전부터 예비된 지혜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니 고린도 교인들은 이 최고의 지혜의 말씀을 액자에 넣어 보관하였을 것입니다. 먼저 이것을 액자로 해서 넣은 사람들은 최고의 자화상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만세전 이미 예비된 지혜의 말씀을 잠깐 분석해 볼까요? 먼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이 자화상은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한 마디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바로 이 독생자를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곧 예수를 믿는 자들이 바로 최고의 지혜의 축복을 누리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말씀을 보면 “이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입니다. ‘모든 것’이라면 과거 현재 미래, 시간과 공간, 아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야말로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든 것이지만 편의상 우리들의 상상의 능력이 한계가 있으니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과거의 삶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일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현재의 삶도 그렇습니다. 미래의 삶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 곧 예수를 믿는 자들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언제부터 준비하셨다고요? 만세전부터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넘치는 축복을 못 누리며 살고 있나요? 삶의 액자를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액자를 만들어 놓고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님의 귀한 선물로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과거의 일을 생각해 볼까요? 과거를 아름다운 선물로 받아 드리기 시작할 때 멋진 자화상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처음 이야기의 주인공 낸시는 스스로 ‘무척 멋진 존재’라는 자화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좋은 과거의 경험 덕분이었습니다. 아니 과거의 좋은 경험을 액자에 넣고 자주 자주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거의 시간안에 듣도 보도 못한 축복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낸시의 이야기를 ‘지나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에게’라는 책에서 읽어 보았는데, 이 책은 과거의 한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입니다. 이 책을 엮은 분이 도나 마르코바라는 분인데, 이 분이 자기가 아는 수백명의 사람들에게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잠시 동안 가만히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세요. 살아오면서 당신이 특별한 존재이며 태어나면서부터 축복과 은총을 받았음을 깨우쳐준 사람이나 순간에 대해 떠올려보세요. 그 이야기를 써서 저에게 보내십시오. 글 솜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진심이 담긴 이야기면 충분합니다. 기억하세요. 당신은 삶이 당신에게 남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나눔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앞날에 따뜻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이 이메일을 보냈는데 처음에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함에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후엔 천통이 넘는 메일이 편지함에 쌓였습니다. 대개가 다음과 같은 감사의 글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나만의 특별함이라니….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상심한 마음뿐이었는데, 일단 펜을 들고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 쓰고나자 기운이 샘솟았습니다.”
그는 이 분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지나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에게’라는 책을 엮은 것입니다. 그가 발견한 사실은 많은 분들이 과거의 아름다운 일들을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일들을 깊게 생각했을 때 새로운 자화상이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운이 샘솟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도 곰곰히 생각하면 모두 아름다운 과거의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끄집어내서 액자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삽니다.
저에게도 아름다운 그림이 하나있습니다. 마음속에 담겨진 그림입니다. 제가 군대 시절입니다. 군의관으로 복무를 하였는데 그 당시 지휘관은 기독교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군의관으로서 교회일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제가 교회 일하는 것을 막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느날입니다. 교회 일을 꼭해야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휘관이 알게 되면 별로 안 좋은 결과를 가져 올 것이 뻔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제가 교회 일을 하도록 부르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의무실에서 교회로 가는 도중입니다. 구름이 낀 날이었는데 제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는 햇빛이 보이지는 않는데 한쪽으로 저의 그림자가 살며시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시편121:6절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이 짙게 덥혀 있었습니다. 잠시 후 그림자가 사라짐을 느꼈습니다. 저는 종종 이 생각을 합니다. 아마 제가 이 책의 편집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면 저는 이 이야기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늘 본문 말씀 9절을 함께 적어 보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사도바울은 과거 일만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게 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믿는 자들은 현재의 삶 안에서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는 이 순간에도 이러한 일들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과거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체험하면 할수록 현재의 삶에 매료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 이종선씨가 지은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책에서 최고의 삶을 사시는 분들에 대해서 소개하는 글들을 읽었습니다. 그 중 현재의 소중함에 매료되어 있는 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제목은 “몰입하는 습관으로 날마다 성장한다”입니다. 예순을 넘기고도 호텔의 로비가 아닌, 던킨도너츠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홈플러스의 회장님을 소개하였습니다. 이분은 몰입하는 습관으로 날마다 성장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곧 현재라는 시간에 너무도 멋진 일들이 일어나기에 현재에 몰입하시는 분이십니다. 몰입하여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다가 폐점 시간인 11시에 쫓겨난 것만도 여러 번이라고 합니다. 또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날마다 젊어지는 비결은 바로 ‘몰입하는 습관’ 덕분이다. 일에 몰입하면 비서들이 다음 약속을 위해 출발해야 한다고 몇 번씩 재촉해야만 일어선다. 점포 도면 한 장을 다섯 시간씩 봐도 지루하지 않다는 그의 몰입은 매번 새로운 결과물을 낳는다. 남들은 15분도 지나지 않아 ‘다 봤다’ 고 내려놓을 익숙한 도면에서 무한한 상상을 즐기며 놀랄만한 아이디어를 탄생시킨다. 그 한 장을 들여다보는 것을 숙제가 아닌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임으로 즐기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에 몰입하는 그는 창립3년 만에 할인점 업계 선두주자로 성장하고 5년간 연평균 67%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합니다. 한편 자신의 회사만이 아니라 유통 산업 전체의 수준 향상과 물류 발전을 위하고 결국은 소비자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회사들은 극비사항으로 취급하는 물류센터도 경쟁사에 다 개방하며 다 같이 발전하기를 꿈꾼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재에 매료되어 살아가는 분들은 매사에 큰 기대와 상상력을 갖고 임합니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던 일들은 바로 이 순간에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분은 사회적인 공익활동에도 적극적입니다. 90여개 이상의 세계 최대 규모의 문화센터를 운영하여 연 100만 명에게 평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몇 년 전에는 금란새 음악가를 후원하여 보스톤에도 오셨었습니다. 이 분은 그야말로 현재라는 시간 안에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일들을 누리시는 분이십니다.
과거와 현재의 삶 속에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축복들을 누리는 분들은 미래를 향해서는 어떠한 삶을 살까요?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미래를 향해 놀라운 기대를 안고 살아가신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를 위한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어릴 때 주일학교 시절에 자기 삶에 필요한 중요한 것을 다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주일학교 놀이터 모래사장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정말 모래사장에 쓰여 있었던 것은 아니고 모래사장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지내면서 배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누자.
정정당당하게 게임을 하자.
사람을 해하지 말자.
남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자.
균형(balance)있는 삶을 살자.
거리에 나갈 때 차 조심하고, 손을 꼭 붙잡자, 그리고 꼭 붙어 있자.
신비함을 찾아 나서자. 스티로폼 컵 (Styrofoam cup)에 심긴 작은 씨를 기억하자: 뿌리가 내려질 것이고 싹이 나고 자라지만 아무도 어떻게 왜 자라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도 그와 같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주일학교 때 배웠고 또 이것만으로 세상에서 사는데 충분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일 마지막이 인상 깊게 들려옵니다.
“신비함을 찾아 나서자. 스티로폼 컵에 심긴 작은 씨를 기억하자: 뿌리가 내려질 것이고 싹이 나고 자라지만 아무도 어떻게 왜 자라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도 그와 같다.”
그는 주일학교 때 이미 자신의 삶은 신비가 가득 찬 삶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모래사장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자신의 미래의 삶은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확신을 안고 그는 평생 멋지게 살아갑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미래도 이와 같은 신비한 축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만세전에 이미 계획되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만세전에 이미 약속되어졌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삶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삶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던 삶입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라는 시간에, 미래를 바라보며 이 삶을 누리십시다. 우리로 말미암아 이 삶을 누리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누구나 이 삶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누릴 것입니다. 함께 누려 보십시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다. 뭐니 뭐니해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를 닮은 자가 되는 것일 줄 압니다. 예수님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위한 최고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는 평생 4-50개의 자화상을 그린 화가입니다. 그가 약 50년간 화가 생활을 하였는데 그렇다면 매해 한번 씩 자화상을 그린 셈입니다. 왜 그는 그토록 매해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화가의 특징은 상상력입니다. 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놀라운 상상력으로 만나곤 한 분입니다. 최고의 상상력을 갖고 과거를 기억하고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맞이했던 림브란트는 일 년이 다르게 자신의 모습이 변할 수 밖에 없덧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의 자화상은 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외모가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월이 지날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축복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축복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매 년 새로운 자화상을 그릴 수 밖에 없게 될 줄 압니다. 그는 매 해 더욱 멋있어진 자신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화상을 그렸을 줄 압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만세전부터 예비된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무척 멋진 사람으로 변하는 삶을 사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한 삶을 살면 우리의 모습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자화상은 매해 더욱 멋지게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예수를 닮은 자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닮은 멋쟁이이신 교우 여러분, 과거를 새롭게 만나십시다. 현재라는 시간에 몰입하십시다. 신비스러운 미래를 꿈꾸십시다. 우리는 무척 멋진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말씀이 이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This entry was posted in 2015년 이전 설교. Bookmark the permalink.
No. Title Writer Date
91 예비하신 모든 것 admin 2009.11.15
90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admin 2009.11.08
89 첫 종교개혁자 admin 2009.10.25
88 너희를 안으사 admin 2009.10.18
87 그리스도의 마음 admin 2009.10.04
86 주 안에서 빛이라 admin 2009.09.27
85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admin 2009.09.20
84 가난한 지혜자 admin 2009.09.06
83 호흡의 신비 admin 2009.08.30
82 네 친구 admin 2009.08.23
< Prev ... 1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30 ... Next > 


The Korean Church of Boston (PCUSA) 32 Harvard St. Brookline, MA 02445
교회 : (617) 739 - 2663, (617) 277 - 8097 / Fax : (617) 739 - 1366 / 담임 목사 : 이영길 목사 (781) 467 - 0002
  Powered by The Korean Church of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