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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지혜자

날짜 : 2009.09.06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가난한 지혜자
성경본문 : 전도서 9장 13-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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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풍선(에드벌룬)을 타고 어디를 가고 있었는데 길을 잃었습니다. 풍선의 고도를 낮추어 아래 있는 한 남자에게 가까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소리칩니다. “여보세요. 저를 도와 주실수 있으세요? 저는지금 제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한 시간 전에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남자는 GPS를 두드려 보더니 말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에드벌룬에 있는데요. 그 에드벌룬의 위치는 위도상으로는(latitude) 31도, 경도상(longitude)으로는 100도지점, 그리고 해발 2,346피트가 되는 곳에 30feet 상공에 있어요.”
여인이 답변합니다.
“당신은 엔지니어시군요.”
“어떻게 알았죠?”
“당신이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정확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이 준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히네요. 저는 아직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저에게 전혀 도움이 안되네요.”
질세라 남자가 답변합니다.
“당신은 경영전문인이시군요.”
“어떻게 알았죠?”
“첫째로는 당신은 자기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고요. 두번째로는 당신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은 뜨거운 공기 때문이죠. (아마 경영전문인들은 생각만 부풀어져서 늘 공중에 떠 다니는 것을 비꼬는 것 같습니다.) 세째는요 당신은 자신이 지킬수 없는 것을 약속하였구요. 당신은 남에게 지금은 저에게 당신의 문제를 풀어달라고 하고 있죠. 그러나 실상 저도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군요.”

무척 윗트가 넘치는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읽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엔지니어들은 구름 을 잡으려고 떠다니는 경영인들의 약점을 비꼬고 있고 경영인들은 숫자에만 매여있는 엔지니어들의 약점을 비꼬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우리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다른 직업내지 다른 전공을 하는 사람들의 약점을 꼬집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요즘 엔지니어와 경영이 상아탑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그런 의미로 이 이야기는 학원도시에서 살고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아주 적절한 이야기인줄 압니다. 벌써 9월 첫주가 되었습니다. 새롭게 보스톤을 찾아 오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편 방학을 마치고 많은 분들이 시작한 학업과 연구를 마치기 위하여 돌아 오고 계십니다. 우리는 새학기 어떤 자세로 공부를 해야할지 어떤 자세로 이웃을 대하여야 할지 지혜가 필요함을 느낍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 보며 우리들에게 필요한 지혜가 무엇인지 함께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저 합니다.

전도서는 솔로문의 지혜서중에 하나입니다. 특히 12장1절에 보면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훈의 책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내가 또 해 아래서 지혜를 보고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솔로몬은 참 지혜가 무엇인지 본 것 같습니다. 아니 지혜의 위대함을 느낀 것 같습니다. 다음과 같이 그 지혜를 소개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곧 어떤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성읍에 큰 임금이 와서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작은 성읍에 큰 위기가 생겼습니다. 큰 나라 임금이 와서 큰 흉벽을 쌓고 공격을 할 참이 되었습니다. 흉벽이라는 것은 작은 성 옆에 큰 산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거기서 작은 성을 공격하려고 쌓은 것을 말합니다. 점점 그 흉벽이 높아만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 성읍의 왕과 주민들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왕은 온갖 궁리를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나쁜 왕 같으면, “빨리 항복을 할까? 나의 목숨만 살려달라 그럴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좋은 왕 같으면 “내가 대신 죽을테니 주민들은 해치지 말아 달라 할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그 성읍 가운데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것이라 그러나 이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그런데 한 가난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무엇인가 왕께 말을 건네 주었습니다. 가난한 자의 지혜대로 따랐더니 큰 왕을 이기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왕도 왕의 신하들도 그 가난한 자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되겠습니까? 하여튼 솔로몬은 자기가 느낀 지혜를 다음과 정리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낫다마는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 말이 신청되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이 말의 뜻은 지혜는 많은 힘을 갖고 있지만 지혜를 말한 사람은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혜의 아픔을 아는 솔로몬은 다음의 말을 잊지 않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종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지혜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말합니다. 18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솔로몬은 지금 지혜가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낫고 병기보다 낫지마는 언제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통탄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아니 한 수수께끼를 내 드리겠습니다. ‘가난한 지혜자가 어떤 지혜로운 말을 하였을까?’ 어떤 말을 했기에 후에 도리어 인정을 못 받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것을 알게 되면 ‘지혜’의 특성도 알게 될줄로 압니다. 과연 가난한 지혜자가 말해준 지혜는 어떤 지혜였을까요? 수수께끼입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이거다’ 말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전체의 흐름을 통해 이 수수께끼를 풀어갈수 있다고 봅니다. 한번 함께 풀어가 볼까요? 성경 이야기로 가기전,저는 일반 서적에서 한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영국의 한 재벌의 자서전적 책을 읽어 보았는데 그 분의 삶을 보면서 솔로몬이 말하는 참 지혜의 모습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 보았습니다.

영국의 최고의 재벌 리챠드 브랜슨(Richard Branson)씨가 있습니다. 영국의버진( Virgin)그룹의 회장인데 그는 미국의 애플계열 회장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비길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물론 콤퓨터 계통의 사업은 아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회사들은 콜라에서 와인, 웨딩드레스, 모바일, 책, 만화, 애니메이션, 신용카드, 비행기, 기차 심지어 우주여행까지 엄청난 영역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환경운동을 비롯한 많은 사회운동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분이 어떻게 이런 큰 재벌이 되었는지알면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분은 스스로 난독증 증세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다음과 같이 자서전에서 고백합니다.
“난독증 증세가 있던 나는 학교 공부가 무척 힘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읽기와 쓰기가 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내가 가진 약점을 무력하게 인정하기보다는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고 싶었던 것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읽기와 쓰기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갔고, 덕분에 학교에서 개최한 에세이 쓰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처럼 포기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와 Virgin그룹을 이끌어온 힘이다.”
이분에게는 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약점이 강점이다.’ 이 지혜로 인해서 그는 놀라운 성공적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지혜를 어디서 얻었을까요? 사실 그는 그의 책에서 자기의 어머니와 고모가 자기로 하여금 끝없는 도전의 사람이 되게 한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인정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약점이 강점이다’의 지혜를 어디서 얻었는지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자신 안에 깊이 담겨 있는 ‘약점은 강점이다’라는 정신조차 자기가 갖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단지 자기를 도전의 삶을 살게 하신 어머니와 고모의 이름만 언급합니다.
그에게는 자기도 모르는 가난한 지혜자가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 가난한 지혜자가 와서 알려주었습니다. “당신의 약점이 당신의 강점입니다.” 그런데 브랜슨씨는 자기에게 누가 말해 주었는지는 물론이거니와 이런 지혜가 자신에게 있는지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럴수 밖에 가난한 지혜자가 와서 슬며시 던지고 간 지혜니 어찌 알겠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오늘 본문 말씀의 이야기도 쉽게 이해가 갑니다. 그 이야기를 이렇게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작은 성읍의 왕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습니다. 장군들을 불렀습니다. 장군들은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의 강한 점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왕의 마음은 쪼그라들어 갑니다. 왕을 섬기는 시녀가 어릴 때 배웠던 노래가 생각이 났습니다. 콧노래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런 작자 미상의 동요가 있다고 가정하십시다. 가사는 “나의 약점이 강점이고요. 저 사람의 강점이 약점이예요.” 시녀는 콧노래로 부릅니다. 왕과 장군들은 어느덧 속으로 그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속에서는 가사가 따라 옵니다. “나의 약점이 강점이고요. 저 사람의 강점이 약점이예요.”
순간 왕과 장군들은 무릅을 칩니다. 묘안이 동시에 떠오른 것입니다. 자신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강점을 유인하고 그 강점으로 인해 자멸케 하는 전략이 떠 오른 것입니다. 그 전략대로 싸워서 승리하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불행히도 왕과 장군들은 서로 자신의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왕의 것도 아니요 장군의 것도 아니요 물론 시녀의 것이었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시녀도 아니요 작자미상의 동요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시녀가 늘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이 시녀를 기억하겠습니까?

지혜의 특징은 여기에 있습니다. 지혜는 어디에나 널려져 있습니다. 언제나 값싸게 얻을수 있습니다. 사용한 후 언제 사용했었냐는 식으로 내버립니다. ‘약점이 강점’이라는 지혜는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도 잘 알려진 값싼 사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이를 못 낳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약점이 강점이 되었습니다. 100살에 아이를 낳아 만국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른 것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약점이 강점이다’가 아니겠습니까? 다윗의 약점이 강점이 되었고 골리앗의 강점이 약점이 되었습니다. 이를 이어 받아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대단한 고백 같지만 옛날부터 있었던 고백입니다. 고린도후서 12:10절에 보면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사도바울이 온갖 크레딧을 다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가난한 지혜자들로 인해 소리 없이 전해져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지혜는 어려울 때는 언제나 보물처럼 간직합니다. 어려움이 지나면 “언제 내가…” 하면서 버립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 가난한 자의 지혜가 세상을 이깁니다. 늘 쉽게 버려지기도 하지만…. 이것이 제가 풀어본 수수께끼입니다. ‘약점이 강점이다’라는 지혜가 그 작은 성읍을 구하지 않았을까요? 이 지혜가 지혜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혜가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 곧 큰 왕의 호령을 이겼고 병기를 이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솔로몬은 말하고 있는것이 아닐까요? “지혜자의 말이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면 오늘날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과 병기가 무엇일까요? 이들의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요?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저는 지식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요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어서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을 소유하게 합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이미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고전8: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이 병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미국이 전세계를 무기로 주무르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지식 때문입니다. MIT를 비롯해서 많은 이공계 대학의 지식이 무기로 전환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공계 지식뿐 아니라 어떤 지식도 요즘은 병기로 사용되어 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병기’를 ‘지식’으로 바꾸어도 무난합니다.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솔로몬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가 지식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결코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혜를 가질수 없다”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혜가 지식보다 병기보다 낫다는 것은 말하고 있지만 지식을 가지면 지혜를 가질수 없다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도 가지고 지식도 가질수가 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잠시 지혜와 지식의 차이점을 구분해 볼까요? 지식은 늘 새롭습니다. 새로와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와진다는 것은 늘 변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면 언제나 돈이 필요합니다. 요즘 대학 학자금이 갈수록 오르는데 이유는 새로운 지식은 돈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식은 언제나 노래합니다. “강함이 강함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지혜는 어떤가요? 지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낡아 보입니다. 가난해 보입니다. 한편 이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가만히 묵상만해도 이미 우리가 들었던 지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혜의 노래는 “약함이 강함이다.”
이렇게 살펴 보면 지혜와 지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는 지혜와 지식이 만났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짐을 알수 있습니다. 이 두 노래가 합쳐졌을 때 놀라운 화음이 창조되는 것 같습니다. 곧 지혜의 바탕 위에 지식을 쌓았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리챠드 브랜슨씨는 ‘약점이 강점이다’라는 삶의 지혜 위에 ‘아는 것이 힘이다’의 지식을 쌓았을 때 놀라운 일을 펼쳐 가는 사업가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사회정의를 위하여 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는 열심히 하십시다. 지식을 늘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변하는 이 세상에 늘 적응해야 합니다. 한편 변하지 않는 지혜에 늘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아니 가난한 지혜자가 되어서 콧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약점이 강점입니다. 나의 약점은 나의 강점이고요. 상대방의 약점은 그의 강점입니다.”
이러한 노래를 부른다면 엔지니어는 경영인들을 놀리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경영인들은 엔지니어를 놀리지 않게 될것입니다. 그 동안은 서로의 약점을 놀렸지만 이제는 서로의 약점 안에 강점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서로가 가난한 지혜자가 되어 갈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특별히 올 해 처음으로 유학오신 교우 여러분, 새로운 지식을 많이 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오래된 지혜에 늘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지혜자의 노래를 늘 부르시기 바랍니다.
“약점이 강점입니다.”
자신을 향해 부르시기 바랍니다. 공부가 어려워질 때면 부르시기 바랍니다. 여건이 어려워질 때면 부르시기 바랍니다. 한편 이웃을 위해서도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공부하기 힘들어 하거나 여건이 어려워진 친구를 위하여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약점이 강점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얼마전 조이장애선교회지에 나온 기사입니다. 자폐증 환자인 강준구군이 해발 5530미터 안데스 이신카산 정상에 우뚝 선 기사가 실렸습니다. 다음과 기록되었습니다.
“자폐의 특성이 준구로 하여금 안데스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한번 무엇을 하기로 마음에 결정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만 하는 친구. 계획된 일을 한번 거르기라도 하면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친구. 일단 일을 성취하면 두 번 다시 거론하지 않는 친구. 바로 자폐장애인인 준구입니다. 단장으로 대원들을 인솔한 김진희 전도사님이 준구에게 계속 당부를 했습니다. “강준구! 산꼭대기에 올라가 깃발을 꽂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치는 거야!” 반복해서 그렇게 주문을 했습니다. 준구는 그 말을 따라서 복창을 했습니다. 이제 준구의 머리에 입력이 된 것입니다. ‘반드시 산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아야 한다.’
(중략)
“조이등반대는 8명이 팀이 되어 떠났습니다. 3명의 자폐삼총사의 안데스 도전이었습니다. 등반을 시작하자마자 한 명의 자폐친구는 베이스캠프까지도 올라가지 못하고 하산해야 했습니다. 다른 친구 한 명은 당나귀의 도움을 받아 베이스캠프까지 가까스로 올랐지만 거기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등반대장과 다른 교사 한명도 건강과 베이스캠프 관리상 남고 이제 준구와 교사2명 그리고 현지 등반가이드4명과 함께 정상정복에 나섰습니다. 한 명의 교사는 구토와 두통과 불면으로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들어 하이캠프(High Camp)에 남아 있기로 했습니다. 준구와 담당 가이드 외에 한 명의 교사, 새벽 두시에 길을 나선 이들은 눈밭을 걸으며 한걸음 한걸음 앞을 향해 걸었습니다. 그러나 고산증과 체력저하로 인해 마지막 남은 한 명의 교사마저 더 이상 갈 수 없어 포기하고 이제 준구 밖에 남지 앟았습니다. 준구는 말없이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준구만 떼어 보내야만 했던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준구의 머리에 입력된 “산 꼭대기에 올라 깃발을 꽂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외쳐야 되는 것이 준구로 하여금 정상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드디어 준구는 두명의 현지 가이드와 함께 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하여 건장한 교사대원도 모두 포기한 정상을 장애인이라 불리는 준구는 해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툴툴 털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더이상 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승자의 모습입니다. 자신만 올랐다고 거만을 떨지도 않습니다. 장애인 안데스 최초등반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으시대지도 않습니다.
이번 산행이 어렵긴 어려웠나 봅니다. 준구에게 농담으로 “준구! 내년에도 산에 가요” 했더니 그는 특유의 모노톤으로 “준구 산에 안 가요” 하며 홱 돌아 섭니다. 몇 번이고 되물었더니 같은 대답입니다. 하긴 마지막 정상정복 길에 준구도 힘이 겨워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걸었다고 합니다. 그 길을 함께 가던 기록사진대원이 그 모습을 보고 함께 울었답니다.
준구는 이번 등반을 통해서 우리에게 성공이 아닌 승리하는 삶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의 좋은 친구 준구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선생님들은 왜 준구에게 안데스산을 정복하자고 하였을까요? 그들은 가난한 지혜자였습니다. 준구의 약함이 바로 그의 강함인줄 알았습니다. 준구는 몸소 자신이 가난한 지혜자가 된 것입니다. 그의 삶으로 온 세계에 변하지 않는 지혜의 삶을 보여준 것입니다. 안데스 산 위에서 그는 지혜의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약함이 강함입니다.”

교우 여러분, 준구에게 배운 변하지 않는 지혜와 함께 변하는 지식을 쌓아 가십시다. 여러분이 거하고 있는 성읍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전도자는 말씀합니다.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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