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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날짜 : 2009.07.15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성경본문 : 마태복음 16:13-20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090712.wmv

세 친구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큰 암초에 배가 부닥쳤습니다. 배는 가라 앉고 세 친구는 어느 섬에 간신히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6개월을 보냅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바닷가에서 오래된 램프를 주었습니다. 램프를 열심히 닦았습니다. 갑자기 요정 지니(Genie)가 나타났습니다.
지니가 말합니다, “저를 풀어주어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세가지의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여러분이 세분이니 한 분에게 한 소원씩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첫 친구가 말합니다. “너무 잘 됬네요. 저를 집으로 보내주세요. 저는 저의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답니다.”
순간 친구는 사라졌습니다. 다음 친구가 말합니다. “나의 아내와 자녀들이 보고 싶습니다. 나를 그들에게 보내주세요.”
그 친구도 사라졌습니다. 세번 째 친구 혼자 남아 있습니다. “나는 혼자 있으니 너무 외롭군요.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두 친구를 불러 주세요.”
그 이후의 일은 여러분들 상상에 맡깁니다.

제가 어릴 때 재미있게 보았던 TV 프로그램중 하나가 요정 지니입니다. 물론 기억나는 이야기는 없지만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은 확실합니다. 매 회마다 어려운 일들을 지니가 극적으로 풀어 가곤 하던 생각이 납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한국에까지 들어 왔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내면에 자신이 할수 없는 일을 누군가가 신비스럽게 이루어 가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얼마 전에 이 지니 이야기를 읽었는데 요즘은 한국인들이 지니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나 궁금해서 ‘요정 지니’를 구글 검색해 보았습니다. 요정 지니의 이야기가 수없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 신발도 ‘요정 지니’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니와 같이 신비한 존재를 그리워 하는 것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보면서 ‘지니가 삶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구나’ 느껴 보았습니다. 최고로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살지만 그 안에서 어찌할 바 몰라 발버둥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어느 웹사이트에서는 지니에게 보내는 소원이 올라와 있습니다. “나는 수학은 잘합니다. 하지만 영어를 못합니다. 영어를 잘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우리 크리스챤도 매한 가지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지니에게 소원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뿐이지, 그 내면 세계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어느덧 스스로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의 운명도 좌우할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지니에게 말하는 소원 정도를 원하시고 계실까요?오늘 본문말씀을 상고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크리스챤의 삶의 자세는 무엇인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유명한 베드로의 고백이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갑자기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17, 18절 말씀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는 원래 이름이 시몬이었는데 이 고백으로 인해서 ‘베드로’ 곧 반석이 됩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고백 하나로 인해서 갑자기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정신 없이 듣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하였더니 천국 열쇠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는 이 천국 열쇠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베드로는 두번 째 놀랍니다. 처음 자신이 반석이 된 것에 대해서 놀랬습니다. 자신이 역사의 중심이 된 사실에 대해서 놀란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두 번째 놀라운 말씀을 듣습니다. 이제는 하늘 역사의 중심 인물이 된 것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하늘 역사의 중심 인물이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때로는 “영어를 잘 하고 싶습니다” 기도하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니에게 말하는 소원과 똑 같은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누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손에 천국 열쇠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천국 열쇠가 주어진 자들이 곧 세상 역사의 중심 인물들입니다. 하늘 역사의 중심 인물들입니다. 어떠한 내용의 기도를 드려도 이 사실을 잊으셔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동안 세상 역사는 인간을 세상 역사 가장자리로 늘 몰아내었습니다. 결국 세상 역사의 중심 인물로 지니를 세워가게 한 사건들이 여럿 있습니다. 잠시 역사 공부 좀 해 볼까요? 대표적인 사건들을 말씀드리면, 첫번째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을 밝힌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혁명이 있습니다. 1500년도에 와서 인간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니 점점 지구에 사는 인간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며들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을 세상 역사의 중심에서 몰아내는 첫번째 사건입니다. 물론 그것은 바른 과학적 발견이었긴 하지만….
두번째가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인간은 원숭이에서 왔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자부해 왔던 사람들은 원숭이의 사촌이 되어 버립니다. 우연 발생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도 나은 것이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려집니다. 그 후 창조론과 진화론은 늘 다투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론은 틀린다고 믿고 있지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번째가 프로이드의 학설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삶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사실 인간의 행동은 자신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것(무의식)의 자극에 지배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어떤 행동의 책임자가 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계 역사의 책임자가 되겠습니까?
네번째가 DNA 곧 유전자입니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유전자 안에 인간의 운명이 다 담겨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유전자 안에 기록된대로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의 최고봉이라고 할수 있는 DNA발견은 인간을 또 다시 역사의 중심 밖으로 몰아낸 것입니다.
이처럼 과학이 발달됨과 아울러 인간은 세상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 나갔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칼합니다.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켰지만 과학은 인간들을 역사의 주변으로 몰아 갔습니다.
교우 여러분,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입니다.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켰고 또 계속 시키고 있지만,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도리어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 나갈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밀려 나갈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이죠. Terrence Sejnowski 라는 하원드 휴즈 의학연구소 신경 콤퓨터 신경과학자는 “인터넷은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에서 2015년이 되면 인터넷이 인간의 뇌의 기능을 능가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마지막 여섯번째는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파생된 ‘부’ 곧 ‘돈의 힘’이 인간을 마지막으로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렸습니다. 돈이 사람보다 위에 있습니다. 더 큰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의 중심 역사의 중심은 ‘돈’이라는 것입니다.
이 여섯번의 과정을 거쳐서 인간은 세상 역사에서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세상 역사의 주역이 아니라 희생자가 되어 갔습니다. 이처럼 세상 역사에서 인간이 밀린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지니를 찾게 된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에서 밀린 인간들은 역사의 새로운 중심을 만들은 것입니다. 지니입니다. 그리고 꿈에서 지니와 대화를 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지니와 대화를 나누며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이 여섯 가지 사건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역사의 주변으로 몰아 간 것일까요? 그렇다면 역사를 거꾸로 돌려서 이 여섯 가지를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지워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인터넷 사용부터 중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역사의 중심인 것을 인지하고 그처럼 사신 분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만델라입니다.
2003년도말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인 만델라는 에이즈 치료와 예방을 위한 자선 콘서트인 ‘46664콘서트’를 앞두고 요하네스버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에이즈는 아프리카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례 없는 규모의 비극입니다. 에이즈는 더 이상 질병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입니다. 세상을 위해 우리는 지금 행동을 해야 합니다. 자금을 모아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들을 돕고 경각심을 일깨워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의 확산을 예방해야 합니다. ‘46664’는 제가 모번 섬의 감옥에서 18년을 보내는 동안에 사용했던 수감번호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숫자로만 인식됐습니다. 오늘날 에이즈에 감염된 수백만 명의 사람들도 숫자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평생 동안 수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제 수감번호였던 ‘46664’를 이 캠페인에 붙인 이유입니다.”
이 고백을 통해 만델라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게 됩니다. 만델라는 세상 문화는 번호문화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은 모든 것이 번호 곧 숫자를 붙이고 숫자가 큰 사람들이 작은 사람의 인권을 유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6664콘서트’를 연 것입니다. 그런데 ‘46664’는 자신이 감옥살이 할 때의 번호였다는 것입니다. 에이즈 치료와 예방을 위한 콘서트 이름에 자신의 죄수 번호를 붙인 것은 놀라운 통찰력이 있는 것입니다. 번호를 메기기에 바쁜 세상 문화는 에이즈 환자들을 번호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델라는 죄수 생활할 때는 18년간 이름없이 번호로 살았지만 그는 자신이 역사의 중심에 있는 자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숫자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역사의 중심 인물이라는 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숫자와 싸웠고 이겼습니다. 드디어 그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명실공히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숫자화시키고 있는 세상문화와 새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델라의 관점에서 조금 전에 열거해 드린 여섯 가지 사건을 생각해 보면, 인간을 역사의 중심에서 몰아낸 사건들은 모두 인간을 번호화했던 사건들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우주의 항성들에게 번호를 매기기 시작합니다. 지구는 가면 갈수록 작은 번호를 받게 됩니다. 진화론도 어떻게 보면 번호매김입니다. 모든 동물이 아메바로부터 왔습니다. 아메바가 1번입니다. 한참 뒤에 원숭이가 있고 그 다음이 인간입니다. 특히 DNA는 우리 인간을 숫자로 풀이하기 시작한 구체적인 사건입니다. 인간의 모든 것이 유전자라는 번호 안에 다 입력이 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은 인간을 도메인(domain) 번호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돈은 정말로 숫자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는 것은 단지 숫자입니다.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숫자로 시작했다가 숫자로 마칩니다. 특히 보스톤에 살게 되면 더 그렇습니다.
지난번 한국과 호주를 다녀 온 후 교회에 왔더니 어느 레드삭스 팬(Red Sox fan)이 저에게 하는 말이, “목사님이 보스톤에 안 계시니 레드삭스가 계속 이겼습니다.” 늘 숫자 속에 살아 갑니다. 사실 저도 요즘 밤10시 넘어 집에 들어 오면 레드삭스가 어떻게 됬나 TV를 켜 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숫자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고민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이미 숫자 없이는 살수가 없는 삶을 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숫자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숫자입니다. 숫자가 늘 우리에게 잠시 동안 기쁨을 주지만 많은 시간 고통과 눈물을 안겨다 줍니다. 이처럼 숫자 안에 살면서 어떻게 숫자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를 역사의 주변으로 밀어 낸 이 여섯 가지 사건을 뒤엎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순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섯불리 덤볏다가는 너 죽고 나 죽는 격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은 늘 이러한 가운데서 우리에게 시원한 해답을 주곤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말씀을 좀 더 잘 풀이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러면 과연 땅에서 맨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또 푼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땅에서 요술방망이를 두드리면 하늘에서 무언가 뚝 떨어지는 것인냥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군인시절 군인 교회를 다녔는데 설날인가 윷놀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윷을 던지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이름으로.” 얼마나 윷놀이에서 이기길 원했으면 그렇게 합니까? 예수 이름을 요술 방망이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래도 윷이나 모가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천국 열쇠는 요술 방망이가 아닙니다. 이럴 때 주석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딱딱한 말씀은 생략합니다. 신학적으로 ‘매고 푼다’는 것은 율법을 해석하는 권위를 말한다고 합니다. 곧 사람의 죄를 매고 푸는 권위가 있다고 신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죄를 매고 푸는 권위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매고 푸는 권위는 예수님의 권위인데 이 권위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보면 하늘 역사의 주인공들은 천국 열쇠를 소유한 자들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 열쇠는 무엇이죠 아니 누구를 위한 열쇠이죠? 이웃을 위한 열쇠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웃의 영혼을 위한 열쇠입니다.
곧 이웃의 영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숫자의 노예된 삶에서 해방됩니다. 이 때 하늘문을 여는 자가 되어 갑니다. 하늘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갑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의 고민 거리는 풀렸습니다. 말씀 드렸던 6가지 역사적 사건이 우리를 역사의 주변으로 몰아 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천국 열쇠를 포기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6가지 역사적 사건은 하등 천국 열쇠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보는 눈을 잃은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역사의 주변으로 떨어뜨린 것입니다. 지니에게 소원을 말하는 삶을 살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섯가지 말씀드린 문화의 발전 단계가 필요합니다. 물론 진화론은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문화의 발전이 또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발전이 생겨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의 삶을 늘 살수 있습니다.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는 삶을 산다면 말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천국 열쇠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늘 역사의 주인공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역사의 주인공은 거창한 삶의 주인공들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권위자가 아닙니다. 큰 숫자의 사람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천국 열쇠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숫자의 개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함을 늘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부르클라인의 38%가 유대인입니다. 물론 유대인들 거의 예수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숫자에 얼마나 밝은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이들이 마치 세상역사의 중심된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들을 위한 천국열쇠를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 그 천국 열쇠는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전할 때 이들은 언젠가 예수를 믿고야 말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바로 천국 열쇠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교우 여러분,
역사의 주변에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영혼을 사랑하십시요. 역사의 중심부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온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들의 한 영혼을 사랑하십시요. 함께 하늘 역사의 주인공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작은 시골 소녀이지만 자신이 역사의 중심임을 알고 있었던 프랑스의 잔 다르크가 있습니다. 잔 다르크가 프랑스군을 이끌며 영국군에 맞서 싸울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17세였습니다. 어느 날, 도시를 향해 진군하던 프랑스 군대는 저 멀리 수만명의 영국 병사가 언덕마다 장벽을 이루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잔 다르크는 “지금 바로 저들을 무찔러야 합니다” 라고 지휘관에게 말했습니다. 잔 다르크는 숙련된 전사와 맞서 이번 전투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이런 열정과 대담함 앞에서 지휘관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어찌됐든 잔 다르크는 프랑스의 오합지졸 군대를 이끄는 시골 소녀일뿐이었습니다. 잔 다르크가 말했습니다.
“나는 저 장벽의 중심부를 칠 겁니다.”
“네가 저들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누구 하나 네 뒤를 따르지 않을 거다.”
“난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을 겁니다.”
잔 다르크가 단호하게 대답했고, 이 어린 소녀의 확신이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잔 다르크는 자신이 역사의 중심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의 쟌다르크는 누구일까요? 한 영혼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천국열쇠를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브루클라인은 잔다르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보스톤은 잔다르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웃은 잔다르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고백하십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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