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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그림자

날짜 : 2009.02.01
예배명 : 제직 임직 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베드로의 그림자
성경본문 : 사도행전 5장 12-16절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090201.wmv

뉴욕의 한 거리에 풍선을 파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장사가 잘 알 될 때마다 하늘로 풍선 몇 개를 띄워 올렸습니다. 그러면 하늘을 나는 풍선을 보고 아이들이 풍선을 사러 오곤 하기 때문입니다. 여느 때처럼 뉴욕의 한 거리에서 아이들에게 풍선을 팔고 있는데, 백인 아이들 가운데 있던 한 흑인 아이만 유독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하늘에는 아이의 피부색과 똑같은 검은색 풍선이 떠있었습니다. 현명한 남자는 대번 아이의 마음을 눈치 채고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검은색, 그 흑인 아이에게 있어 검은색은 더러움과 나약함, 비천하고 무시 받는 존재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이 흑인 아이는 검정색 풍선은 날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날수 없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검정색 풍선이 날아가니까 하도 신기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아채고 남자는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합니다. “얘야, 검은색 풍선도 다른 풍선처럼 저렇게 하늘을 높이 날고 있지 않니? 왜 그럴까? 풍선의 마음속에는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공기가 들어있기 때문이야. 만일 그 공기가 부족하면 풍선은 절대로 하늘을 날수가 없단다.”
어느 심리학자가 한 이야기인데 얼마 전에 읽게 되었습니다. 요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검은 색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을 줄 압니다만,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 오래 전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저자는 자신의 한계에 매어서 날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누구도 하늘을 날수 있음을 알려주려고 이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흑인 어린이와 같이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자신을 대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날수 없는 자라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늘 제직임직예배로 드립니다. 오늘 임직을 받으시는 제직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며 임직을 받으시진 않으셨습니까? 오늘 제직 임직 예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함께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날아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12, 13절 말씀입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예수님의 제자들의 날아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습니다. 이에 많은 믿는 자들이 솔로몬 행각에 모였습니다. 반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기적과 표적을 행하는 이들을 보고 두려워했던 모양입니다. 감히 상종하질 못했습니다. 나쁜 의미로 상종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도저히 가까이 갈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주위에서 이들을 칭송하였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들은 검은색 풍선의 주인공과 같은 흑인 어린이의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그래도 용감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멀리서 칭송만 하고 있지 않고 그들에게 나와서 신앙을 고백하고 함께 사랑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이로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제자들을 보는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을 보면서 멀리서 칭송만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또 한 그룹은 믿고 나와서 제자들과 함께 주님을 높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감히 상종할 수 없다고 해서 멀리 머무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그룹은 자기들도 제자들과 같아 질수 있음을 믿고 제자들과 상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이 두 그룹 중 어느 그룹에 속하여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그룹은 멀리서 자신은 날수 없다고 생각하며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한 그룹은 자신도 날수 있다고 생각하며 능력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한편 15절에 보면 이들이 누리고 있는 능력의 삶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제자들이 지나갈 때 제자들의 그림자 특히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닿기를 바랬다는 것입니다. 이는 두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능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드로의 그림자만 닿아도 나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베드로의 그림자만 닿아도 낫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것을 열망했습니다. 이로서 알 수 있는 것은 곧 제자들에게는 능력이 있었고 사람들은 제자들을 존경하였습니다. 이럴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16절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제자들의 능력과 사람들의 존경이 만났을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도 옛 사도행전 시절처럼 우리들 안에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요즘은 왜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처음 말씀드린 흑인 어린이처럼 자신은 날수 없다고 생각하며 아예 제자들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자기도 놀라운 능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요즘 많은 신자들은 자신 안에 얼마나 큰 능력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믿고 있지 않습니다. 능력을 받으려면 40일 금식은 못해도 때때로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하여야 하는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머니 자신에겐 아무 능력이 주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남들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50점은 받을텐데 남들도 자신처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만 0점입니다. 어떤 기적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특히 오늘 제직임직을 받으시는 제직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예수를 믿는 모든 여러분의 이웃에게도 놀라운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를 믿을 때 사도행전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들 주변에서 매일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도 “과연 그럴까? 나에게도 그러한 능력이 주어질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임을 알리는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에 대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1909년 제프리 잉그램 테일러(Geoffrey Ingram Taylor)라는 영국의 물리학자가 실험을 하였는데 그가 내린 결론이 다음과 같습니다. 방 안에 사람이 있을 때 하고 없을 때하고 방 안에 있는 양자(quantum particle)‐양자는 모든 물질의 최고로 작은 단위입니다‐의 움직임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예배를 드릴 때와 안 드릴 때, 이 본당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양자들의 움직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니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있어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교회에 오면 먼저 본당에 들어 와서 기도합니다. 제가 본당에 들어오는 순간 본당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양자들의 행동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 후 약 90년이 지난 1998년에 이스라엘 학자들이 비슷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갔는데, 그냥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집중을 하느냐에 따라 더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기도를 하는데 집중을 덜하고 하면 그만큼 본당의 양자들이 움직이는 것이 덜하고 제가 집중을 세게 하면 본당의 양자들의 움직임이 더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두 실험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우주 안에서 인간의 존재와 삶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저는 전보다 더 건축현장을 자주 가봅니다. 요즘 눈도 많이 오고 강추위가 몰아쳐서 건축이 좀 천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잘 아시다시피 커뮤니티 센터(community center)쪽은 많이 진전이 되었습니다. 수고하시는 소장님께 물어 보았더니 커뮤니티 센터 쪽은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안에 마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예배실 쪽이 아직 많이 진행이 미비한 상태라서 서두르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두 주간 커뮤니티 센터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시간만 있으면 공사장 안에 들어가 봅니다. 왜냐하면 제가 들어가 있을 때하고 없을 때하고 그 안에 있는 양자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뿐 압니다. 저만이 아는 비밀 통로가 있는데 저녁 시간에 교인들을 교회에서 만나면 같이 들어 가보자고 합니다. 저 혼자 들어갔을 때와 같이 들어갔을 때와 양자들의 움직임이 또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물리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존재로 인해서 세상 물질 세계의 움직임이 달라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 사도행전은 이미 2000년 전부터 예수 믿는 자들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 삶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의 그림자조차도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갖고 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그림자만이라도 닿기를 바라고 사람들이 몰려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그림자만 능력이 있을까요?
교우 여러분, 제직 여러분, 예수를 믿으십니까? 예수께서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음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그림자에도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뿐이 아닙니다. 함께 예수를 믿는 모든 분들의 그림자에도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 안에 주어진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한편 이웃에게 주어진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때 새로운 사도행전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러한 확신을 자꾸 잃어갑니까? 예배시간에는 생기는 듯하다가 예배가 끝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왜 흐릿해집니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가 하나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의 저자가 의미하는 그림자와 제가 생각하는 그림자와는 다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 안에 있는 어두운 면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는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남들의 어두움을 너무나 잘 압니다. 아니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대개가 자신의 어두움이 남들에게 투사된 것인데 그 어두움으로 인해서 이웃에 대한 존경을 잃습니다. 이웃의 그림자로 인해서 이웃에게 존경과 확신을 주지 않습니다. 결과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교우님들도 가끔 모여서 다른 교우님 이야기를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목사들도 가끔 할 경우가 있습니다. 목사님들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어두운 면을 이야기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분의 어두운 면 때문에 그 분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때 시작됩니다. 그 때 서로 서로의 삶속에 기적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수 믿는 자들의 그림자에게까지 하나님의 능력은 임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때 기적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베드로도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어두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그림자에도 능력이 있음을 믿을 때 기적은 일어난 것입니다. 커뮤니티 센터(Community center)의 양자들이 우리의 그림자를 보아도 흥분하듯이 우리도 이웃의 그림자를 보아도 흥분과 기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때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 안에 있는 큰 그림자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큰 그림자를 채우시고 계신 주님의 보혈의 피를 느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기적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그림자뿐이 아닙니다. 이웃의 그림자가 크면 클수록 더 큰 확신과 기대를 가지십시다. 그 큰 그림자에 예수님의 보혈이 가득 차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적은 일어 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특히 오늘 임직하시는 제직분, 여러분의 그림자가 크면 클수록 예수님의 사랑은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더욱 큰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로 인하여 낙담하지 마십시다. 도리어 우리의 그림자 안에 능력이 거함을 믿으십시다. 주님의 보혈의 피가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그림자를 사랑하며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십시다.
교우 여러분, 오늘 임직받으시는 제직분들의 어두운 면을 아십니까? 그림자가 보입니까?
제직 여러분, 여러분 안의 그림자가 느껴지십니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요즘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한국의 유명한 커피샾인 민들레 영토를 잘 아실 줄 압니다. 미국의 스타박스와 유사한 것 같지만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스타박스처럼 널리 퍼져 있고 커피 등 음료수를 많이 다루는 것에는 유사한 것 같습니다. 민들레 영토를 민토라고 부른다는데 민토의 다섯 가지 운영방침이 있습니다. Mother Marketing이라고 부르는데 Mother의 여섯 알파벳 글자를 따서 만들었습니다. 처음M은 million 다양함을 뜻합니다. 단순이 차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라면 빵도 판매하고 영화도 볼 수 있고 세미나까지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O, O는 old를 상징하는데 늙을 때까지 고객들에게 서비스한다는 것입니다. T는 tear곧 눈물, H는 Heart 뜨거운 가슴, E는 eye 눈을 부릅뜨고 고객의 필요한 것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R은 right 고객은 항상 옳다는 정신으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시작한 민토는 현재 한국의 주요 도시에 크게 번창하고 있고 지난번 장로교 신학대학교를 방문하였는데 그 곳 까지 민토가 들어 와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민토가 어떻게 시작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창설자는 지승룡 소장인데 원래는 목사였습니다. 목회를 하는데 한 번은 결혼주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청년이 찾아오더니 목사님 주례를 안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목사님이 이혼 경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망한 나머지 목회를 그만 둡니다. 그리고는 아무 할일이 없어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약 3년간 동네 도서관에 가서 닥치는대로 책을 읽습니다. 어느덧 삶의 자신감과 함께 민들레 영토와 같은 커피샾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로 부터 얻은 많은 통찰력(insight)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Mother Marketing이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 연세대 앞 골목에 작은 가게를 얻어서 자판기를 사서 쇼윈도 앞에 두고 흔들의자 두 개를 사서 자신과 부인이 함께 앉아 자신은 큰 영어 성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첫날은 두 명 그 다음날은 4명 그 다음 날은 8명 손님이 왔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민토가 이제는 중국 북경 미국의 나성와 워싱톤 DC, 앞으로는 해외 30개 지사를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지 소장님은 자신의 그림자로 인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그림자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부요하게 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함께 우리 안에 있는 그림자로 인하여 절망하지 마십시다. 도리어 희망을 가지십시다. 주님은 당신의 보혈로 그 그림자들을 가득 채워주십니다. 우리는 능력의 사람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이웃의 그림자가 눈에 뜨일 때마다 그 그림자들은 바로 능력의 그림자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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