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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하시리니…” 데살로니가전서 4:13-18 (12/03/2017)

 

Monet - Impression, Sunrise.jpg

먼저 스크린을 보시면 대표적인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인 Claude Monet의 ‘Impression Sunrise’라는 작품을 볼수 있습니다. 제가 올 봄 안식월때 프랑스 파리를 다녀 왔는데 박물관에 제일 많이 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보여 드리는 저 그림은 보지 못하고 왔습니다. 다녀 와서 저 그림을 알게 되었고 저 그림은 Marmottan Monet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곳은 제가 가 보지 못했습니다. 저 그림이 어떻게 보면 인상주의 미술의 시작을 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그림에 대해서 조예가 깊다고 생각하실까봐 먼저 솔직히 고백하면 한 두번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가장 좋아하지 않은 과목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미술이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제가 그린 그림이 초등학교 3학년 땐가 한번 뒤에 붙여지곤 그 후 한번도 선생님께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미술 다음으로 제가 별로 반기지 않았던 과목이 역사였습니다. 저는 미술과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인데 이번에 파리를 다녀 오면서 미술과 역사에 처음으로 눈이 조금 띄어진 기분입니다. 물론 저희 교회 미술을 전공하신 분들도 꽤 계신데 그 분들 앞에서 눈이 조금 띄어졌다는 표현도 걸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이정도로 양해를 구하고 이제는 눈이 조금 뜨였다는 자신감 내지 착각을 안고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파리 방문 마지막 날은 오랑주리 박물관을 다녀 왔는데 거기에는 모네의 연꽃 작품이 전시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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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말고도 인상주의 화가들 중 잘 아시는 분들이 모네 보다 선배인 마네를 비롯  세잔르누아르, 그리고 후기 인상파로 고갱과 고흐로 이어집니다. 이들을 인상파라고 불리우게된 계기는 바로 보여 드린 첫번째 그림의 제목에서 나옵니다. ‘Impression, Sunrise.’

처음에 이 인상파들의 전시회를 보고 어느 비평가가 조롱하는 쪼로 ‘인상파’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지만 차츰 호응을 받게 되었고 후에는 인상파 미술로 인해서 인상주의 문학과 음악이 파생되어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곧 현대 미술뿐 아니라 문학과 음악까지 이들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서론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인상주의를 시작한 사람들에 대해서 입니다. 모네의 그림의 제목만을 생각하면 모네가 시작하였다고 생각할수가 있는데 사실은 모네의 선배들이 시작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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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도부터 파리에서 가까운 Barbizon이라는 곳에 학교라기 보다는 여관이라고 할까요. 물론 요즘은 학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젊은 화가들이 밤에는 잠을 자고 낮에는 바깥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스튜디오 밖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역사적인 일과 아니면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인상주의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젊은 화가들이 자연 속에 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자연의 색채에 매료 되면서 그리다가 보니 사물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가지고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친구들은 저녁에 들어와서는 식사와 함께 relax를 하고는 아침이 되면 캔버스를 들고 자연으로 향합니다. 함께 생활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교제하고 배우다 보니 드디어 인상주의 미술의 기초를 닦게 된 것입니다.

이들의 뒤를 이어서 마네 모네 세잔느 고갱 고흐등 기라성 같은 인상주의 미술가들이 탄생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은 Barbizon이라는 여관 내지 학교였습니다.

 

Barbizon이라는 여관 내지 학교에서 어울리다 보니 이런 위대한 자취를 역사 속에 남기게 되었는데 ‘우리 교회’라는 공동체는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도 매일은 아니지만 삶의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어울려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실까요?

 

오늘 대강절 첫째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대강절 wreath촛대에 첫번째 촛불이 켜졌습니다. 대강절은 주님의 오심을 축하하며 아울러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촛불이 하나씩 켜져 가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커갑니다. 아울러 우리의 기다림이 커가면 커 갈수록 빛은 세상 가운데 더 밝게 비추게 되지 않을까요? 이것이 대강절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일줄 압니다. 올해도 아름다운 빛을 대강절에 발하는 저희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3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지금 사도바울은 자는 자 곧 이미 죽은 자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이 곧 오시리라 믿었습니다. 신앙 생활한지 1년 남짓한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당연히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고민 거리가 생겼습니다. 주님께서 곧 오실텐데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먼저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자기들도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죽으면 어떻게 되나 한쪽으로는 염려도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곧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미 죽은 성도들에 대한 질문과 자신들의 죽음 후의 삶에 대해 질문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이 죽은 자들의 미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묵은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줍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주님 안에서 자고 있는 것이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주님과 함께 모든 죽은 성도들을 데리고 오신다고 말씀합니다. 곧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알려 주어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과 더불어 사랑하는 성도들이 함께 올 것을 상상하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던지 사도바울은 계속 말씀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살아 있다고 우리 눈으로 주님을 먼저 보기에 죽은 자들보다 주님을 먼저 맞이할 것이라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 소리로 강림하실텐데 이 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 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죽은 자들에 대한 염려는 접어 두라는 것입니다. 이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먼저 죽은 자들에 대한 염려는 다 놓게 되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두 가지 장면이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먼저 주님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하늘로 들려 올라갑니다. 구름 속으로…. 주님 안에서 죽은 자들이 다 구름 속으로 들어간 다음에 이어서 지금 산 사람들이 들려 올려집니다. 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주님을 구름 속에서 만난다고 생각할수도 있고 구름 위로 빠져 나간 후 주님을 만난다고도 생각할수 있습니다. 생각하기 쉽게, 구름 위로 빠져 나가서 주님을 만난다고 생각하겠습니다.

하여튼 먼저 죽은 자들이 들려 올려지고 이어서 산 자들이 들려 올려집니다. 그런데 사실 죽은 자들의 미래에 대해서 깨닫게 된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로부터 이 편지를 받기 전까지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땅으로 내려 오셔서 자기들을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읽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땅에까지 다시 내려 오시는게 아니고 공중에 임하시고 이어서 죽은 자가 먼저 그리고 산 자들이 뒤따라 하늘로 들려 올려진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교인들은 전율을 느꼈을줄 압니다. 왜 이들은 전율을 느꼈을까요? 물론 주님을 만나는 자체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공중으로 올라가는 자신들의 모습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항상 자기들의 삶은 땅에서 시작해서 땅에서 끝날 것으로 알고 살았던 자들입니다. 하늘을 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자들입니다. 자기들의 삶의 반경은 땅, 땅이었습니다. 자기들의 발은 항상 땅에 닿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날을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도 자기들의 생활 터전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늘은 독수리와 같은 새들의 전유물인줄 알았습니다. 이제 새롭게 눈을 뜹니다. 하늘을 날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라면….

 

 

이것은 그들에게는 대박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를 갖 믿게 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는 땅은 많은 환난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예수쟁이들을 못 살게 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급히 데살로니가를 떠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환난이 와도 전보다 환난을 대하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환난 중에 주님께서 오시면 어느새 환난을 주는 악한 자들을 땅에 두고 하늘로 올라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 통쾌합니다. 그러니 전율을 느낄수 밖에….

 

처음에 Barbizon School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젊은 화가들이 모여서 기성 화가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갔습니다. 밖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연 세계 안에 있는 무진장한 예술의 세계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들은 신나서 매일 매일 들로 산으로 나갑니다. 드디어 인상주의 미술을 만들어 갔습니다.

이들은 자연 세계 안에서 곧 땅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굴해 나가면서 놀라운 예술 세계를 펼쳐갈수 있었는데 하물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은 땅의 삶만 생각하다가 공중으로 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아니 데살로니가 교인들까지 가기 전 사도바울의 일행의 모습부터 생각하면 큰 힘이 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를 쓸 때 사도바울의 일행은 디모데와 실라를 포함해서 3명이었습니다. 이 세명이 험한 선교여행을 할 때 늘 어떤 상상을 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자기의 일행인 디모데와 실라와 함께 종종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통쾌해 하기도 하고 때로는 깔깔 웃으면서 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세 명의 일행이 전도하다가 로마 군병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공중에 나타나셨습니다. 세 명의 일행은 하늘로 들려 올려 갑니다. 로마 군병의 모습은 점점 작아집니다. 그토록 무서워 보였던 로마 군병은 개미 새끼 보다더 작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상들을 종종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면서 때로는 피식 웃기도 하고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사도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서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받았기에 그 험한 선교를 잘 마칠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는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기독교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기게 된 것입니다.

한편 사도바울은 환난 가운데서 공중으로 날아가는 자기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았기 때문에 지금 환난 중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놀라운 장면을 소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권면으로 Barbizon school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사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하늘을 나는 자기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전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사도바울은 계속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언젠가 땅에 발이 닿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나누면서 기뻐하자는 것입니다. 아니 함께 이 놀라운 장면을 그려가자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주님의 다시 오시는 장면을 그리는 Barbizon 의 화가들이 되자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 경치를 그리는 젊은 화가들이 인상주의 미술로 세계를 위해 공헌했다면, 주님의 다시 오시는 장면을 상상 속에 늘 그리는 자들을 통해서는 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이번 대강절 기간 그림에 소질이 있으신 분들은 손수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저처럼 소질이 없으신 분들은 최소한 상상 속에서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과 더불어 하늘로 올라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다시 오시는 주님에 대한 그림은 많이 보았는데 하늘로 올라가는 성도들을 그린 그림은 잘 접해보지 못하셨을줄 압니다.

저는 최근 북한에서 풀려 나오신 임현수 목사님의 간증 설교를 듣고 하늘로 올라가는 성도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그 분의 설교 동영상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2년 6개월 동안 구류되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에게 힘이 되는 환상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어느날 꿈을 꾸는데 호랑이 처럼 생긴 괴물이 마구 닥치는대로 먹어 삼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다행이 당신은 거기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척 무서웠을줄 압니다. 잠시 후 굴속으로 자신이 빠져 나가는데 마지막에 굴에서 나오면서 큰 손이 자기를 안아 주는데 자신은 금 두꺼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금 두꺼비가 되어 있었겠습니까? 금 두꺼비는 좋은 소식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자신의 젊었을 때 별명이 두꺼비였다고 합니다. 곧 정금 같이 되어서 자신이 빠져 나올 것을 보여주는 환상이었다고 합니다. 이 환상을 의지해서 2년 6개월을 버틴 것입니다. 혼자서 피식 웃으며….

앞으로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펼쳐 가실줄 압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 모두는 금독수리가 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모두 하늘로 날라 올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 독수리가 되어서….

그런데 금에도 종류가 있지요. 모두 정금 독수리가 되길 원하실줄 압니다. 임현수 목사님이 2년 반을 억류될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정금이 되셨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2년반 동안 당한 여러 환난이 도리어 그를 정금 같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놀라운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만큼 우리는 금 독수리가 되어 갑니다. 정금 독수리가 되어 갑니다.

우리는 언젠가 우리를 핍박하고 조롱했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날라 올라갈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깔깔 웃으면서 올라갈 것입니다. 우리를 묶어 두었던 죽음까지 우리가 조롱하게 될 것입니다. 통쾌한 승리자 곧 금독수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강절은 우리가 받은 모든 환난이 우리로 하여금 정금 독수리가 되게 하고 있는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혼자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매주 모이는 소그룹 모임도 금독수리들의 모임입니다. 구역모임도 상록회 모임도 청년들의 모임도, 중고등부, 주일학교 모두 금독수리들의 모임입니다. 찬양대는 독수리 찬양대 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멋지게 날아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곧 오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찬송가의 작가 Fanny Crosby가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의료 사고로 눈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후에 9000개의 찬송을 작사하게 됩니다. 그가 9000갸의 찬송가를 지을수 있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 다시 태어난다면 태어나자마자 어떤 기도를 드릴까요? 저는 다시 앞 못 보는 자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에 갔을 때 처음으로 제 눈으로 보는 분이 주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했기에 그는 놀라운 세계를 체험한 것입니다. 아무나 찬송가를 9000개 작사할수 있을까요? Fanny Crosby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보다 먼저 금독수리가 되어서 주님을 맞이 할 것입니다.

 

대강절은 함께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림을 그리는 절기입니다. 함께 독수리가 된 우리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절기입니다. 함께 멋진 화가가 되는 절기입니다.

Barbizon의 화가들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듯이 우리도 함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며 서로를 금독수리라고 위로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면…. 기대하십시다. 주님께서도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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