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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낸 일에…” 이사야 55:6-13 (07/01/2018)

볼티모어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밤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시계와 지갑을 빼앗기고 온통 몸은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며칠 후 친구를 만나서 한 달 정도 와이오밍 주에 가서 쉬면서 범죄가 가득한 도시에서 좀 떨어져 지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6주후 다시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팔에 붕대를 매고 있었습니다. 친구에게 이유를 말하기를…, 휴양하면서 말을 타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범죄자들이 없고 나쁜 생각이나 행동을 하기란 불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을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이 그림자에 놀라 뒷다리로 섰고 말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는 것입니다. 친구에게 하는 말이,
“대낮에 와이오밍의 산을 다니느니 차라리 밤에 볼티모어 거리를 걷는 편이 낫더군….”

오늘 본문 말씀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사는 어느 곳이든 가시나무와 찔레가 있다는 이야기인줄 압니다.
왜 우리가 사는 곳은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을까요? 첫번째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하나님께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18절입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가시덤불과 엉겅퀴 아니면 찔레는 우리들의 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 같을 뿐이지…. 위에 말씀드린 목사님은 볼티모어의 가시덤불을 피해 와아오밍에 갔다가 찔레에 찔린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시나무와 찔레를 허락하신 진짜 이유가 있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마지막 절, 13절입니다.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물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것을 벌하시려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 계획이 없이 벌만 주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젠가 가시나무 대신에 잣나무가 나고 찔레 대신에 화석류가 나게 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올 해도 국내 해외 두 단기 선교단을 보내는데 이렇게 보내는 이유도 가시나무 대신에 잣나무가 나게 하시고 찔레 대신에 화석류를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이 놀라운 일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날까요? 가시나무와 찔레에 찢겨 있는 볼티모어 목사님이 어떻게 이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될까요? 6, 7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이 놀라운 일을 보게 됩니다. 아니 동참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찾는 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죄성을 깨닫는 자들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가시나무와 찔레를 잣나무와 화석류로 바꾸시려고 하는데 가시나무와 찔레는 죄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이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자신의 죄를 깊게 깨닫는 자들은 가시나무와 찔레가 잣나무와 화석류가 되는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영어로 상처가 trauma이지요. 그런데 마지막 a를 빼면 traum이 되는데, 독일어로 traum은 비전 내지 꿈이라고 합니다. Trauma의 a는 가시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가시는 죄로 인해 왔습니다. 죄로 인해 생긴 가시 a를 빼면 traum이 됩니다. 비전 내지 꿈이 생깁니다. 곧 죄를 회개하는 자들은 어느덧 비전과 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크게 쓰신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그 누구 보다도 자신의 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곧 자신의 가시 a로 인해 많은 고민을 했던 자들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디모데 전서 1:15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바울이 그토록 큰 일을 할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가시덤불과 찔레가 자기 때문에 가장 많이 생겼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뒤를 이은 대표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 프란시스가 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죠나단 에드워드도 그리고 한국의 손양원 목사님도 모두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통해서 아이러니칼하게 하나님은 가시나무와 찔레 대신에 잣나무와 화석류를 나게 하신 것입니다.

한편 이 모든 일은 바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 일들이었습니다. 8, 9절 말씀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가시나무가 잣나무가 되고 찔레 대신에 화석류가 난 다는 것은 정말로 우리의 생각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이런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먼저 회개함을 통해 자신을 괴롭게 했던 가시가 빠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trauma에서 a가 빠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들에게 먼저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잣나무가 나는 체험을 몸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한 자들에게 곧 자신의 가시가 빠진 것을 체험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또 다른 장면이 보여집니다. 이들의 눈에 처참한 예루살렘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가시나무와 찔레로 덮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포로 생활로 인해서 예루살렘은 비어 있었고 그래서 가시나무와 찔레로 뒤 덮혀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잠시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새로운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들의 상처에 꽃이 피어 나듯이 예루살렘도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것을 상상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이 그 동안 겪은 trauma에서 a가 빠지는 것을 상상하면서 예루살렘을 볼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장면을 상상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0, 11절 말씀입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올해도 많은 분들이 선교에 동참했습니다. 보내는 자로 보냄을 받는 자로….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위하여 우리를 보내시고 계시죠?
우리가 경험한 놀라운 일이 선교지에서 일어날 것을 위해 우리를 보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동안 경험한 것은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삶이 가시나무에서 잣나무가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이 뉴 멕시코에서 과테말라에서 일어날 것을 위해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뒤집고 전보다 더 큰 일들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체험한 잣나무보다 훨씬 크고 놀라운 잣나무를 하나님은 선교지에 예비해 두셨습니다.

한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결코 과테말라 주민보다 뉴 멕시코 원주민 보다 의로워서 선교단을 파송하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에 필 잣나무와 화석류가 더 아름다운 것을 알기에 보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귀한 일에 보냄을 받는 자들은 어떤 체험을 할까요? 12 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이것이 바로 멀리 떠나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일줄 압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평안히 인도함을 받는 체험을 할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산과 언덕들이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산과 언덕과 나무들도 알고 있습니다. 곧 가시나무 대신에 잣나무가 찔레 대신에 화석류가 나게 될 것을….
곧 단기 선교단원들은 모두 시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산과 언덕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나무가 손뼉 치는 것을 듣는 자들이 바로 시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뉴 멕시코와 과테말라에 잣나무와 화석류가 날 것을 꿈꾸며 선교를 떠나십시다. 같은 꿈을 꾸며 선교단을 보내십시다. 위해서 기도드리십시다.
어느덧 우리 선교단원들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시를 처음 지어가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새롭게 지어내는 시로 인해서 선교지의 가시나무와 찔레는 잣나무와 화석류로 변하지 않을까요?

말씀을 거둡니다.
쉼보르스카라는 시인이 ‘독자가 계속 이어서 써야 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수십 가지 나열합니다. 일견해 읽으면 “무슨 이런 시가 있어” 할 정도입니다.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리면,
“새를 그리기 전에 나무부터 그리는 사람을 좋아한다.
상처가 꽃이 된 사람을 좋아한다.
별을 보기 위해 불을 끄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압권은 제일 마지막 줄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시들보다 아직 써지지 않은 시를 좋아한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닐까요? 그래서 올해도 단기 선교단을 파송케 하심이 아닐까요? 하나님도 단기 선교단원들을 통해 쓰여질 아직 써지지 않은 시를 좋아하시지 않으실까요?

단기 선교단 여러분,
오고 가시는 길 산과 언덕들이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치는 것을 보면서 멋진 시를 지으시기 바랍니다. 아직 써지지 않은 시를, 언젠가 잣나무와 화석류가 가시나무와 찔레를 대신 하게 될 날을 기대하면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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