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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있어…” 요한복음 6:1-5 (09/02/2018)

작년 안식월을 마친 후 첫 설교를 ‘충분하다’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맷돌로 쓰러뜨리는 장면이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다윗은 돌 하나로 충분하였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설교에 크게 도움을 준 시집이 하나 있습니다. 작년에 안 계신 분도 계시니 다시 말씀드리면, 제가 한국 방문시 책방을 둘러 보다가 폴랜드 시인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쉼보르스카의 시집이 눈에 띄였는데 제목이 저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충분하다.’
책을 구입 후 한참 후에 시집을 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제목과 같은 시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30여편의 제목 중에 ‘충분하다’라는 제목을 가진 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시집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제가 기대했던 시는 없었습니다. 잠시 “속았구나” 생각도 들었지만 어떡합니까? 기왕 샀으니 시간이 날 때마다 천천히 읽어 갔습니다.
어느 날 ‘손’이라는 제목의 시를 읽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손가락 다섯개, 그 각각의 끝에 있는
스물일곱 개의 뼈,
서른다섯 개의 근육,
약 2천 개의 신경세포들
<나의 투쟁>이나
<곰돌이 푸우의 오두막집>을 집필하기엔
이것만으로 충분하고도 넘친다
ㅡ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충분하다’라는 시집 제목은 바로 그의 시 ‘손’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는 ‘손’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기가 막힌 시를 펴 냈던 것입니다.

이 설교를 마치고 친교실에 갔더니 어느 교우님이 저에게 문의하셨습니다.
“시에 두 책 이름이 나오는데 그 중 ‘나의 투쟁’은 힛틀러의 자서전이 아닙니까?” 저는 대답하길,
“맞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설명을 못해드렸지만 ‘나의 투쟁’은 힛틀러의 자서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동화입니다.”
사실 시인은 우리들의 손이 좋은 일을 하기에도 충분하고 나쁜 일을 하기에도 충분하다는 뜻으로 시를 펼쳐 나갔던 것입니다.
아니 시인은 세상 책들을 본 후 곧 ‘나의 투쟁’과 이와 비슷한 책들과 또한 ‘곰돌이 푸우의 오두막집’과 이와 비슷한 책들을 본 후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우리들의 손은 나쁜 책이나 좋은 책을 쓰기에 충분하다.”
만일 시인이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읽었더라면 좀 다르게 쓰게 되지 않았을까요? 아니 오늘 분문 말씀을 읽고 시를 썼다면 어떻게 쓰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를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로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고 계셨는데 이에 큰 무리가 따랐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요한복음서 기자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첫번째 이유는 주님께서 병자들을 많이 고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따르는 무리를 보시면서 산에 오르셨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그런데 이 때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무리가 모인 두 번째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유월절이 되었기에 사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 온 것입니다. 한편 예수라는 사람이 온갖 병을 고친다는 소문을 듣고는 예수가 있는 곳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참, 재미있는 사건이 전개됩니다. 많은 무리를 보면서 예수님은 빌립에게만 질문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빌립만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라갔었겠나요? 3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문맥상으로 보면 12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6절 말씀을 계속 보면,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사실 주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주님도 아시고 우리도 압니다. 제자들만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12제자 중에 빌립을 꼬집어서 질문하셨는지 좀 이상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일하게 4복음서에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아주 중요한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빌립에게 질문한 사실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12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요한복음에서는 빌립을 꼬집어서 질문하셨는지 살펴 볼까요? 7절 말씀입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한 데나리온은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니, 곧 200명의 사람들의 하루 품삯을 모아서 떡을 사도 부족할 것을 말합니다. 빌립이 머리가 잘 돌아 간 제자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빌립이 머리가 잘 돌아가니 빌립이 계산한 것을 미리 제자들이 듣게 한 후 기적을 베푸시려고 빌립에게 먼저 물으셨을까요? 8절 말씀입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갑자기 뜬금 없이 안드레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한 아이로부터 받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여 드립니다. 빌립에게 물으셨는데 왜 안드레가 나타났을까요?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빌립과 안드레는 아주 친한 친구였습니다. 아마 12제자 중 둘도 없는 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둘의 관계는 요한복음에 세 차례 나옵니다. 그렇다면 저자 요한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아주 특별히 보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44절을 보면,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세다 사람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요한복음 기자는 뜬금없이 요한복음을 기록하기 시작하자 마자 빌립과 안드레의 관계를 기록하였겠습니까? 이는 이 둘의 관계가 주님의 사역에 얼마나 소중했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위하여 먼저 암시적으로 던져 놓은 것입니다. 그 다음이 오늘 본문 말씀인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사건입니다. 이는 계속 살펴 보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2:20절 이하에도 이 둘의 관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를 요약하면,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할 때 직접 예수님을 만날수 없으니 헬라문화권에 가까운 빌립을 찾아 갑니다. 빌립은 헬라어 이름입니다. 그러니 헬라인들이 빌립을 찾아 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빌립은 가까운 친구 안드레에게 찾아 갑니다. 안드레와 빌립이 함께 예수님을 만나 헬라인의 이야기를 전하게 됩니다. 이 때 주님은 많은 신자들의 입에 회자하는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요12:24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멸매를 맺느니라.”
주님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온 인류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 앞에서…? 빌립과 안드레 앞에서….

이러한 구성 곧 plot을 가지고 요한은 요한복음을 적어 내려 갑니다. 요한은 주님의 계획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일이 다 끝난 후 뒤를 돌아 본 후에 알게 되었겠죠. 그리고 요한복음을 적어 내려 갔겠죠.
그렇다면 이런 결론을 내릴수 있습니다. 요한이 깨닫기 전 주님은 이 둘의 관계를 너무 잘 알았습니다. 한 사람을 찌르면 옆에 사람이 말을 안 해도 반응하게 되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곧 빌립을 찔렀는데 안드레가 한 아이로부터 받은 오병이어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 온 것입니다. 아마 12제자들을 향하여 막연하게 “너희가 주어라” 하셨더라면 모두 멈칫멈칫했을지 모릅니다. 아니 멈칫 멈칫 하고 있으니 빌립을 찌릅니다. 순간 안드레가 튀어 나갑니다. 튀어 나가서 군중에게 먹을 것을 구한다고 외쳤을 것입니다. 한편 안드레는 크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겨우 한 아이로부터 받은 오병이어를 가지고 주님께 옵니다.
안드레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오병이어로는 누구 코에 바를지 너무도 한심합니다. 그러나 그는 친구 빌립을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오병이어를 들고 주님 앞에 서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얼굴에 희색이 만연한채 오병이어를 축사하십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죠? 13절 말씀입니다.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2바구니에 찾다는 의미는 계속 무한대로 사람들을 먹일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장정 오천명이 아니라 만명 십만명 백만명일지라도 계속….

그런데 이 모든 기적의 시작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이야기에는 세 가지 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으로는 친구의 손입니다. 빌립이 주님으로부터 엉뚱한 질문을 받았을 때 안드레가 빌립에게 손을 내밉니다. 친구의 손입니다.
안드레의 외침을 듣고 한 아이가 손을 내밉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내밉니다.
아이의 손을 통해 바쳐진 오병이어를 주님은 손에 들고 축사하십니다. 장정 오천명이 먹고 남아 12바구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할 때 어린 아이의 손만을 강조하였는데 사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손은 바로 우정의 손입니다. 빌립과 안드레의 우정의 손과 아이의 손이 주님의 손을 만났을 때 놀라운 역사가 펼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과 안드레의 우정의 손은 평범한 우정의 손이 아닙니다. 헬라인이 찾아 가고 싶은 우정의 손입니다. 이들은 유대인이지만 헬라인들에게 마음이 환히 열려 있었던 자들이었고 아마 언제나 헬라인의 구원을 위해서도 함께 마음을 같이 하였을줄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자들이기에 주님은 이들을 통하여 오병이어의 사건을 일으키길 원하셨습니다. 오병이어는 온 인류를 위한 기적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에 임합니다. 어른들이 민족의 벽을 넘어 이웃을 사랑할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들의 우정을 본 어린 아이들을 통하여…. 이 때 어린 아이들은 자기들의 손에 무엇을 들었던 그들은 외치게 됩니다.
“충분하다.”
오병이어의 사건이 이어지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저희 자녀들이 오병이어의 주인공이 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빌립과 안드레의 우정을 소유한다면 이를 본 우리 자녀들은 “충분하다”를 외치면서 주님과 함께 기적을 매일 펼치게 되지 않을까요?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저희 교회는 다음 주일을 진급주일로 지킵니다. 한 학년씩 진급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저희 자녀들은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인 어린이와 같이 순수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빌립과 안드레의 우정입니다. 빌립과 안드레의 모습을 볼 때 우리 자녀들은 오병이어의 주인공이 될 줄 확신합니다.
사실 오병이어의 주인공인 아이의 이름은 무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아이는 오가가는 세대의 모든 아이들을 대표하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불란서의 유명한 사회운동가이자 저술가인 시몬 베이뉴(Simon Weil)가 있습니다. 열살이 되었을 때 이미 공산주의에 빠집니다. 베이뉴는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났지만 불란서의 일반인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철저한 공산주의를 몸으로 실천하면서 삽니다. 베이뉴는 일찍 세상을 떠나는데 그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제대로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한창 공산주의에 빠져 있을 때 유명한 공산주의 철학자 Leon Trostky가 파리를 방문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뜁니다. 평생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꿈꾸던 것이 바닷가의 모래성이 파도에 밀려 사라져 감을 느낍니다. Trostky는 그의 사상을 사랑하고 있지만 인간을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느낍니다. 결국 공산주의를 떠납니다.
대신 베이뉴는 하나님에게서 참 사랑을 발견합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사회운동을 하면서 평생 외치며 살게 됩니다.
“충분하다.”
그의 서적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가 만난 하나님은 바로 빌립과 안드레 그리고 오병이어를 바친 아이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온 인류를 마음에 두고 자기의 것을 헌신하는 자들을 통해서 오병이어의 역사를 펼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한편 온 인류를 마음에 두지 않고 오병이어의 기적만을 사모하는 자들에게서 주님은 떠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하죠? 14, 15절 말씀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합니다. 이유는 평생 병을 고쳐 주실 것이고 항상 먹을 것을 해결해 주실 분이니 이런 분을 임금 삼으면 더 이상 민생고로 인해 고생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픈 마음을 안고 주님은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십니다.
이들 가운데 힛틀러가 있지 않았을까요? ‘나의 투쟁’을 지은 이 말입니다.

반면 우리들 마음에 온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과 아울러 어린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 손은 온 인류를 위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요?

Leon Trostky의 모습이 아닌 진실로 온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우정의 삶을 자녀들에게 보이십시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우리 자녀들을 통하여 널리 펼쳐질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삼 세대가 함께 배우는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상상해 봅니다. 어른들은 빌립과 안드레의 우정을 나누며 자녀들은 어른들을 보고 주님 안에서 힘차게 외칩니다.
“충분하다.”

말씀을 거둡니다.
유대인들이 세상 곳곳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있는 것은 누구나 부정 못하실줄 압니다. 저는 다음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찾곤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묻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이지?”
자녀는 대답합니다.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학기는 이번 학기입니다. 이번 학기에 우리 자녀들에게 보여 주십시다. 빌립과 안드레의 우정을…,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십시다. 그들은 외치게 될 것입니다.
“충분하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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