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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받으시더라(III): 맡기심” 누가복음 4:9-13 (03/31/2019)

 

 

이어령 교수님이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다가 문득 다음과 같은 장면이 머리에 떠 올랐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기천사에게 지상으로 내려가라고 명하시니 아기천사는 겁에 질려 말합니다.

“하나님, 사람들이 사는 지상에는 도둑도 많고 위험한 차도 많이 다니고 전쟁도 있다는데 어떻게 인간이 사는 땅에 내려가 살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에게는 항상 너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벌써 아기천사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기천사는 다급해서 소리칩니다.

“하나님 하나님, 수호천사의 이름을 가르쳐 주셔야 만날 수 있지요.”

하나님은 크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수호천사의 이름은 ‘어머니’라고 부른단다.”

 

이어령 교수님이 이어령 교수님이 될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어머니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늘 교수님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수호천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마음 속으로 그려 보다가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게 된거겠죠.

 

그런데 이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물론 전혀 다른 상황에서 이루어진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만 겉으로는 비슷해 보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라고 유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 왜 마귀는 이런 유혹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마귀가 그냥 유혹한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이미 시편 91편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이 시편 말씀을 가지고 세번째로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순절 넷째 주일이자 여선교회 헌신 예배로 드리는데, 지난 두 주간 광야에서 시험 받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특히 여선교회 헌신 예배를 맞이하여 세번째 시험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주님께서 받으신 지난 두번에 걸친 시험을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첫번째 시험은 40일을 주리신 후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심히 주리셨지만 돌을 떡으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굶주린 이웃을 위해서는 능력을 사용하시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후에 굶주린 장정 5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게 되는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마귀는 시험을 걸었다가 도리어 남 좋은 일만 해 준 셈이 되었습니다.

이에 마귀는 두번째 시험을 시도합니다. 광야에서 벗어나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도리어 말씀으로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마귀의 손아귀에 있는 천하만국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살까 궁리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에 주님은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과 함께 천하만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새로운 천국을 만드시는 당신의 계획을 은연중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에 마귀는 더 놀라면서 두번째 시험에도 꼼짝 못하고 물러섰습니다.

 

투 스트라익이 되었습니다. 한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투 스트라익이 되었는지 마귀는 혼자서 연구를 했을 것입니다. 아하! 마귀는 예수님의 전략을 알아 차린 것 같습니다. 무엇을 알아차렸을까요? 이에 마귀는 자신 만만하게 세번째 찾아 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글쎄 감을 잡으셨습니까? 마귀의 새로운 전략을…? 10, 11절 말씀입니다.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자, 마귀의 전략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사실 두 번의 시험을 보면 두 번 다 주님은 말씀으로 답변하셨습니다. 이에 마귀가 꼼짝 못했습니다.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말씀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지혜로운 마귀가 이를 모를리가 없습니다. 세 번째는 마귀가 선수칩니다. 말씀으로 먼저 선수를 치면 주님은 꼼짝 못할줄 알았습니다. 시편 91편이 떠 오른 것입니다. 이에 지혜로운 마귀는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아마도 이 당시 제일 높은 건물은 성전이었을줄 압니다. 사실 헤롯은 유대인들이게 잘 보이려고 성전을 멋지게 지었다는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그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라고 합니다. 뛰어 내림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하시죠? 1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말씀으로 시험하는 마귀에게 예수님은 또 다시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희한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말씀 대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겼습니다. 말씀 대 말씀이면 비겨야 하는데 three strike이 된 것입니다. 마귀는 얼마 동안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면 왜 말씀 대 말씀에서 예수님이 사용하신 말씀이 이겼을까요? 예수님이 사용하셨기에…?

 

제가 영락교회 대학부 친구들과 나누는 카톡방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목회하는 친구가 늘 묵상한 글을 올리는데 하루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랐습니다.

“말씀을 이용하면

마음이 더러워지지만

말씀에 순종하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말씀은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임을 깨닫고 글을 올린 것입니다.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오늘 저의 설교를 돕게 하시려고 약 1주일 전에 친구 목사를 통해서 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진 이유를 알수 있겠습니다. 마귀는 말씀을 이용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이에 마귀는 꼬리를 내린 것입니다.

 

사실 마귀는 말씀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열심히 말씀을 연구했던 것입니다. 입에서 술술 나올 정도로…. 마귀는 사람들이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삶을 그려 봅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계획을 세웁니다. 사람들 손에서 곧 삶에서 말씀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계속 사람들이 말씀을 읽고 배운다면 숨겨 놓은 두 번째 계획이 있습니다. 배운 말씀을 이용하는 자가 되게 하는것…. 이에 자기가 먼저 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도 자기처럼 이용하는 자가 되게 하길 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일 예수가 마귀의 말을 듣고 뛰어 내렸다면 예수도 말씀을 이용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뛰어 내리셨더라면 천사가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뛰어 내린 것이니 말입니다. 곧 마귀는 말씀을 이용해서 청년 예수를 시험했고 예수도 같이 말씀을 이용한 자가 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계획이 발각되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이용하는 마귀에게 말씀을 순종함으로 마귀의 계획을 무산시키고만 것입니다.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사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셨기에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 말씀을 이용하는 자들은 절대로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이용해서 요리조리 피합니다. 에수는 끝내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실 것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에 어떻게 되었나요? 13절 말씀입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잠시 떠나서 재정비를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마귀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끝없이 재정비를 하지 않을까요?

 

아니 마귀는 주님에게는 져서 물러 갔지만 자기의 나쁜 습성을 버릴 마귀가 아닙니다. 마귀는 주님께 공격을 못하겠으니 다음으로는 사람들을 공략하지 않을까요? 자기처럼 말씀을 이용하는 자가 되게 하도록…. 그래서 십자가를 안 지는 자들이 되도록…. 사실 말씀을 아예 모르는 자 보다 말씀을 알고 이용하는 자들을 당연히 마귀가 더 좋아합니다.

 

이것을 깨달은 킬케골이 다음과 같은 우화를 지었습니다. 오리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오리들은 뛰뚱 뛰뚱 걸으면서 일을 하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뛰뚱 거리며 귀가하곤 했습니다.

주일이면 뛰뚱 거리며 교회에 옵니다. 주일마다 목사 오리는 설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오리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셨는데 바로 날개라고 말합니다. 날개를 펴서 날으면 먼데도 볼수 있고 갈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리들은 모두 ‘아멘’ 합니다. 예배가 마치면 다시 뛰뚱거리며 귀가합니다.

 

말씀은 듣지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현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풍자한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은 날개를 펴고 나는 오리가 됩니다. 말씀을 이용하는 자들은 꽥꽥거리며 소리만 지르고 뛰뚱뛰뚱 걷는 오리가 됩니다.

 

사실 주님께서 함께 성전 꼭대기에 서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택한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멧세지를 주시기 위함이었을줄 압니다.

곧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예루살렘 성전 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멋지게 날수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을줄 압니다. 마귀가 어떤 높은 곳으로 이끌고 가도 상관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날수 있는 날개가 있으니…. 도리어 높이 올라 갈수록 더 높게 더 멀리 날아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먼저 십자가를 지신 것이기 때문에….

 

저는 우리들의 인생의 문제는 우리들의 날개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는 우리들의 문제는 짐입니다. 그것이 없어지면 더 빨리 걸을수가 있을텐데…. 그러나 붙어 있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반면 말씀에 순종할 때는 우리들의 문제는 날개가 됩니다. 문제가 크면 클수록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갈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힘으로는 문제를 떼 낼수 없지 않습니까? 문제를 날개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곧 문제를 날개로 만드는 삶입니다. 말씀을 믿고 맡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문제를 떠 맡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주님의 큰 문제는 우리들의 죄였습니다. 그러나 평생 말씀을 믿고 순종하셨습니다. 철저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결국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는 주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날개가 된 것입니다. 최고로 높은 곳에 오르셨습니다. 덕분에 우리도 최고로 높은 곳에 오르는 길이 열렸습니다.

 

저는 킬케골이 이런 우화를 만들어 낸 이유를 빅터 유고의 글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걸을수 있는 정원, 꿈꿀수 있는 놀라움으로 가득찬 세계-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킬케골과 빅터 유고가 이처럼 훌륭한 철학자요 문학가가 될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날수 있는 놀라운 세계가 열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놀라운 세계를 누가 누리게 되나요?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순종하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말씀을 듣고 믿고 맡기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듣고 맡기는 자들의 날개는 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언젠가는 나는 자가 됩니다. 천하만국 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자들이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자신을 말씀에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큰 문제를 떠 맡으신 분들이 누구일까요? 이어령 교수님의 지혜를 빌린다면 어머니들입니다. 여성들입니다.

아니 본문 말씀에 비쳐 본다면 말씀에 순종하는 어머니들입니다. 여성들입니다. 이들은 삶의 수 많은 문제 앞에서 말씀을 이용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순종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가정을 위한 이웃을 위한 수호천사가 되어 갑니다.

 

저희 교회가 오늘까지 든든히 서 갈수 있었던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여선교회원들로 인함이 아닐까요? 언제나 가장 어려운 곳에서 수호천사들로 변신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교회의 짐을 감당하는 여선교회원들로 인해서 교회의 짐은 언제나 멋진 날개로 변하곤 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교회에는 언제나 이런 저런 문제들이 함께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지 않다면 마귀가 주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다. 그 시험으로 인해서 도리어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은 각자의 문제가 날개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시험거리는 도리어 날개가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먼저 나셨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도 모두 날게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삶의 문제가 있지요. 그리고 말씀이 있지요. 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멀리 나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이번 남은 사순절 말씀을 순종하며 주신 날개에 감사하면서 멋지게 날아가 보십시다. 여러 교우님들 앞서 나시고 있는 여선교회원들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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