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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 달려가서…” 누가복음 24:1-12 (04/21/2019)

 

부활주일 설교시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루터교에서는 부활주일 설교를 joke로 시작한다고…. 오늘 저도 그렇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첫번째 것은 사실 Lent 곧 사순절 joke라고 할수 있습니다. Lent가 사순절이지만 라틴어로는 ‘길어진다’ 의미가 있습니다. 새벽기도회 오신 분들은 모두 느끼셨을줄 압니다. 매일 낮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Lent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lent는 영어로는 ‘빌려주다’인 lend의 과거형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시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Lent기간 많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I lent my neighbor my mower, I lent my son my tuxedo, and I lent my daughter my car.”

별로 웃기지 않나요? 한 가지 더 소개해 드립니다.

두 친구가 하이킹을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시꺼면 곰이 뒤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떨면서 말합니다.

“어떻게 하지?”

“뛰어야지.”

“우리가 곰보다 빨리 뛸수 있을까?”

“나는 곰보다 빨리 뛸 필요는 없어, 너보다 빨리 뛰면 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꼬집는 조크입니다. 우리는 늘 남 보다 빨리 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사건은 세상을 뒤집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도 뒤집으면 좋은 의미로도 사용될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좋은 의미로 친구들보다 더 빨리 뛴 장본인이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옵니다.

 

주님께서 금요일에 돌아 가시고 토요일은 안식일이기에 모두가 쉬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몇 명의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주님께서 묻히신 무덤에 갔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오늘 곧 주일 새벽에 찾아 간 것입니다. 그들은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려져 있는 것을 봅니다. 들어가 보니 예수의 몸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여자들은 근심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섭니다. 두려워 엎드리니 천사들이 말합니다. 5-7절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돌아가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립니다. 많은 사도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믿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른 사도들 보다 빨리 뛴 한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왜 빨리 뛰었을까요? 다른 제자들보다 빨리 뛰어서 혼자만 살려고…? 오늘 본문 말씀은 구체적으로 베드로가 왜 빨리 뛰었는지는 알려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많은 분들은 베드로의 성격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실줄 압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줄 압니다. 그런데 바로 성격 때문에 빨리 뛰었다면 그것을 성경에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요?

곧 오늘 본문 말씀이 10절로 마치고 그냥 13절로 넘어가도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베드로 이야기 11, 12절을 빼고 읽어 볼까요?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더 문맥이 부드럽게 흘러 갑니다. 그러면 왜 누가는 베드로의 이야기를 넣었을까요? 저는 베드로와 여인들의 공통점을 누가는 강조하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먼저 행한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겁을 먹고 숨어 있을 때 용감한 여인들이 먼저 안식후 첫 날에 무덤에 가 보았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첫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생전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만 수없이 들었던 두 천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곧 그들은 영어로 하면, They outran.

 

여인들이 모든 사람들 보다 앞서 뛰어 간 것을 보고 베드로가 또 뛰어 갑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 보다 빈 무덤을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이 됩니다. 이로 인해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사실 요한복음에 보면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형 베드로를 주님께 데리고 옵니다. 안드레가 먼저 만난 것입니다. 곧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만날 때는 안드레가 더 빨리 뛰었습니다. Andrew outran Peter! 그런데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Peter outran Andrew!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이런 결론을 내려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기 전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실 때는 주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만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는 주님은 도리어 쿨하게 기다리십니다. 당신에게 뛰어 오는 자들을….

 

그런데 한 가지 예외적 사건이 생각이 나네요. 사도바울은 사울이었을 때 주님을 박해하려고 뛰어 다녔습니다. 박해하려고 뛰어 다니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그러면 제가 생각하는 것이 틀린 것일까요? 사울은 주님을 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남보다 더 빨리 뛰어다니다가 주님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일까요? 그런 의미에서는 사도바울도 outrun한 것은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누구 보다도 빨리 달리신 분입니다. 고린도전서 9: 23-24절 말씀입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사도바울이 사도바울이 된 것은 단순히 다메섹 사건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이 주님을 더욱 확실히 만나기 위해서 outrun한 사람입니다. 다메섹을 향하여 기독교인들을 outrun하신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outrun하셨습니다. 곧 운동장에서 한 사람만 상을 받듯이 그 상을 받기 위하여 outrun하려고 애쓴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깊게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상을 한 사람밖에 받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이 이런 편지를 쓴 것을 보면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상은 세상 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 열려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한 사람만 받는다면 자기만 받으려고 하지 이런 편지를 썼겠습니까?

 

사실 보스톤에 드디어 봄이 왔는데 주위에는 온통 부활의 증인들이 가득참을 봅니다. 봄을 맞이하여 모든 꽃나무와 화초들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유가 있습니다. 잎파리 하나 하나 새싹 하나 하나를 보면 모두 outrun하는 모습입니다. 제일 빨리 달리려는 기운이 역력히 보입니다. 모든 꽃 나무들은 주위를 보지 않고 앞을 향하여 outrun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면류관을 받는 것이 아닙니까? 아름다운 꽃이 피고 끝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만일 사도바울이 보스톤에서 살았더라면 꽃나무로 부활의 삶을 증명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부활의 놀라운 세계가 열려져 있습니다. 누구에게? 부활의 주님을 향해 달리는 자들에게…. 부활의 세계는 머리로서 이해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찾아 오지 않습니다. 달리는 자들만 누릴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다음은 같이 말했습니다.

“부활의 삶을 사는 것은 적극적으로 부활을 믿고 의도적으로 죽음에서 벗어나는 생명을 선택하는 곧 생명이신 예수의 삶을 독차지하려는 것이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모두 부활을 맛 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주님께서 예비해 두신 부활의 놀라운 세계를 독차지하는 것입니다.

 

시카고 교외에 사는 Steven과 Jimmy라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두 친구는 가정 환경도 불우해서 정말로 서로를 의지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한편 둘 다 높은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스티브는 하늘을 나는 세계 최고의 비행기 pilot이 되는 꿈을 갖습니다. 한편 지미는 올림픽 선수가 되어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 되는게 꿈이었습니다.

반면 어머니들은 둘의 꿈을 접게 합니다. 스티브 엄마는 “어떻게 비행사가 되..? 할아버지처럼 공장에서 일해야지.” 지미 엄마도 매한 가지입니다. 둘 다 엄마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더욱 자신의 꿈을 펼쳐가려고 합니다. 둘이서는 서로 외칩니다.

“I want to fly!”

“I want to run!”

그런데 어느 날 지미가 호수에서 아빠와 수영하다가 호수 바닥에 머리를 부닥칩니다. 허리가 상하면서 다리를 못 쓰게 됩니다. 지미는 wheelchair신세가 되 버렸습니다. 며칠 후 스티브를 만나 말합니다.

“I still want to run.”

스티브는 답합니다.

“I still want to fly.”

스티브는 운동장에서 지미의 wheelchair를 밀어 주며 서로 외칩니다.

“I want to run.”

“I want to fly.”

몇 년이 흘렀습니다. 친구들은 서로를 위해 계속 기도합니다. 지미는 스티브가 비행사가 될 것을…, 스티브는 지미가 올림픽 선수가 될 것을…. 그런데 지미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편지 왕래가 있었지만, 얼마후 끊겼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위해서는 계속 기도해 주었습니다.

17년이 흘렀습니다. 스티브는 공군사관학교를 마치고 비행사가 되었습니다. 한편 스티브는 지미 생각을 종종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겨울날 아침 스티브는 비행준비를 마치고 객석에 들렸습니다. 스티브는 자기가 태우고 가는 승객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서 입에서 소리가 나왔습니다.

“Jimmy Rowden?”

“Steven?”

지미가 pilot인 스티브를 보며 말합니다.

“너는 꿈이 이루어졌네!”

지미가 계속 말합니다.

“너 나를 위해 기도했니?”

“그럼 지금도…”

“나도…”

스티브는 아직 뛰지 못하는 지미에게 속으로 미안한 생각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지미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어.”

스티브는 의아해 합니다. 그 때 지미는 자신은 윌체어를 타고 경기를 하는 스페셜 올림픽에 출전하러 가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함께 소리를 높입니다.

“I want to run.”

“I want to fly”

 

그들은 사실 그들 어머니의 생각을 outrun한 것입니다. 어머니들은 그들의 꿈을 접으라고 늘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삶을 사는 자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부활의 주님은 부활을 믿는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outrun하길 원하십니다. 주위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을 outrun하길 원하십니다. 그 때 진정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부활의 사건은 주님께서 outrun한 사건입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주님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outrun하셨습니다. outsmart하셨습니다.

아울러 주님은 죽음을 outrun하셨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합니다. 인간의 죄를 outpower하셨습니다. 인간의 악한 죄성이 주님의 능력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사탄이 보여주는 떡을, 천하 만국을, 높은 곳을 out fly하셨습니다.

그래서 넓고 넓은 부활의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넓고 넓은 부활의 세계를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의 세계를 향하여 outrun하는 자들을 기다리십니다. 함께 outrun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올해도 보스톤에서 마라톤이 열렸는데 올해 마라톤의 진짜 우승자는 기어서 골라인까지 들어온 해병전사 헌든씨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해병대로 4년간 복무하던 중 지난 2010년 1월 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는 다행히 목숨을 구했지만 동행했던 동료 세 명은 이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헌든씨는 자신만 살아남은 데 대해 큰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숨진 동료의 명예를 기리기 위해 보스턴 마라톤 참가를 결심했습니다. 자신의 운동화에 동료의 이름을 새긴 작은 명판을 붙이고 달렸습니다.
그는 이번이 생애 3번째 마라톤 풀코스 도전이었고 3시간 이내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32km 지점에서 그만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36km 지점에 이르렀을 때는 달리기는 커녕 서 있는 것 조차 불가능했습니다.

대회 관계자들이 기권을 권유했지만 헌든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동료를 위해 결승선까지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6km가 넘는 거리를 기어갔습니다. 동료 선수의 부축도 거부하고 혼자 힘으로 천천히 전진했습니다. 관중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도록 경기 진행요원이 옆에서 지켜준 것이 그가 받은 유일한 도움이었습니다.

끝까지 기어서 레이스를 펼친 헌든씨는 3시간38분의 기록으로 끝내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앰블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그가 어떤 면에서는 우승한 것이 아닐까요? 그는 모든 선수들을 기어서 outrun한 것입니다. 아니, 자신의 한계를 outrun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부활의 증인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한  한계를 outrun합니다. 이웃이 생각한 한계를 outrun합니다. 부활의 증인이 모인 교회들은 스스로 생각한 한계를 outrun합니다. 이웃이 생각하는 교회의 한계를 outrun합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헌든씨와 같이 이웃을 생각하며 달린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러한 교회들 때문입니다. 20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달렸습니다. 이웃을 생각하면서 부활의 주님의 세계를 향해…. 이제는 우리가 달릴 차례입니다.

우리도 멋진 부활의 증인이 되십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응원하시고 계십니다.

“Outrun!”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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