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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이 없는 믿음” 디모데후서 1:3-8 (07/12/2020)

한국인과 서양인들의 자녀 교육에 큰 차이가 벌을 어떻게 주느냐에서 잘 나타난다고 합니다. 한국 부모들은 화가 날 때 자녀들에게 소리칩니다.

“집에서 당장 나가.”

서양인들은 소리칩니다.

“네 방으로 어서 들어가.”

 

어느 것이 더 비교육적인 벌이고 어느 것이 더 교육적인 벌일까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줄 압니다.

가족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느냐, 사회성을 중요시 여기느냐에 따라 다를줄 압니다.

 

어느 분은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동양인들은 집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집에서 나가라는 것처럼 큰 벌이 없습니다. 서양인들은 바깥 세상을 소중히 여깁니다. 방구석에 틀어 박혀 있으라는 것처럼 큰 벌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1995년 워싱톤 포스트지는 지난 1천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징기즈칸의 출현’을 최고의 사건으로 꼽았습니다. 곧 서기 1천년에서 2천년 사이 동안에 가장 위대한 사건은 징기즈칸의 업적으로 꼽고 있는 것입니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징기즈칸과 그의 후손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광대한 자유 무역 지대를 만들어 냈고, 동서양 문명의 연결을 강화했다. 그들은 이미 인터넷이 발명되기 7세기 전에 전 세계적 커뮤니케이션을 개척해 놓았다. 그는 사람과 기술을 이동시켜 세계를 좁게 만든 인물이다.”

 

워싱톤 포스트지가 징기스칸의 업적을 치하하는 이유는 쉽게 알수 있습니다. 워싱톤 포스트지 기자는 당연히 서양문화권 사람입니다. 그들 보기에는 밖으로 나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은 징기스칸이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동양인이 지난 1천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다면 어떻게 쓸까요? 먼저 워싱톤 포스트지 기자들에게 반박할 것입니다.

‘그들이 유통을 시킨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징기스칸이 발전시킨 문화가 있는가? 있다면 성을 파괴하고 약탈하는 기술…?”

 

그렇다면 방에 틀어박혀서 문화를 발전시킨 자들이 있기에 징기스칸이 필요했던 것은 자명해집니다.

곧 “집에서 당장 나가”, “방에 틀어박혀 있어” 모두 인류 발전에 기여한 문화에서 나온 체벌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희는 한인 이민자로서 양쪽 문화를 모두 안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 발전에 기여한 두 문화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우리들이 코로나로 인해서 뜻하지 않게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로서 정확히 4개월이 지났습니다. 감사한 것은 저희가 늘 삼세대 교회를 지향해 오고 있었는데, 그동안은 쉐마의 밤 행사 및 단기선교단 구성 등 여러가지 모양으로 가급적 삼세대가 어우르는 교회가 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기회에 본격적으로 삼 세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다시 정상적인 예배로 돌아가게 될줄 압니다만 3 세대 예배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이번 기간 많이 맛볼수 있어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마 이 기간이 어떻게 보면 후에 뒤돌아 보며 저희 교회의 위대한 시간으로 인지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위대한 기간을 지나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도바울은 어떤 충고의 말씀을 주실까요?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사실 사도바울도 저희 처럼 양 문화를 접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디모데를 향한 사도바울의 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곧 오늘 본문 말씀이 담긴 디모데후서에는 바울이 곧 하나님 품으로 갈텐데 그 전에 디모데에게 당신이 하던 일의 바톤을 넘겨준다는 내용의 글이 담겨져 있습니다. 먼저 3절 말씀입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특히 눈에 띄는 구절은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입니다. 자기의 바톤을 이어받을 자이니 밤낮 위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기도드리면 드릴수록 감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오늘의 디모데가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섬긴 조상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선교의 사명의 바톤을 디모데에게 주고 있지만 이미 디모데의 조상들은 믿음의 씨앗을 디모데에게 뿌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2년전에 저희 집 뒷마당에 나팔꽃 씨앗을 조카와 함께 뿌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 꽃이 만발했었습니다.

작년에는 따로 심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나올줄 알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나가 보았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되니 조금씩 떡잎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한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물도 주었습니다. 역시 만발했습니다.

올해가 세번째 해가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나가 보았더니 작년보다 훨씬 많이 떡잎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들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역시 삼세대구나.”

작년만 해도 어디 나오나 살펴 보았었는데, 올해는 살펴볼새도 없습니다. 여기저기 아침마다 새롭게 떡잎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편 사도바울은 디모데가 소유한 삼세대 신앙의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디모데는 눈물이 있는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디모데를 볼 때마다 바울은 기쁨이 꽉찼습니다. 이런 멋진 청년이 될수 있었던 이유를 사도바울은 다시 삼세대 조상을 둔 것으로 표현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특히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어떤 믿음일까요? 주님을 잘 믿는다면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그런거 같지는 않습니다.

 

믿음은 있어 보이지만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을 거짓 믿음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마가복음 11:23절 말씀을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처럼 바울은 디모데 안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 곧 능력을 발휘하는 믿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누구에게서 배웠다구요?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것입니다.

 

능력있는 믿음을 생각하니 윤동주 시인의 ‘나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지난번 동영상 르호봇 이야기 요셉 편에서 소개해 드렸던 시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모습에서 바로 나무를 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우리는 바람으로 인해 나무가 춤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믿는 자들이 춤을 추니 바람이 불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믿는 자들의 믿음으로 산이 바다에 빠지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거짓 없는 믿음입니다. 디모데는 이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고 사도바울은 이 거짓 없는 믿음은 삼세대를 흘러 내려온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삼세대로 인해서 생긴 거짓 없는 믿음만으로 자기의 뒤를 잇는 사역자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을까요? 6절 말씀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디모데가 디모데가 될수 있었던 것은 우선 삼세대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안수가 필요했습니다. 사도바울의 희생적 돌봄과 가르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곧 교회 공동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디모데는 삼세대 가정 안에서 아름답게 자랐지만 아울러 믿음의 아버지 바울의 가르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어머니 교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요즘 삼세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희 자녀들이 세상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두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가정이라는 어머니, 그리고 교회라는 어머니….

 

이 두 어머니를 모신 자녀들에게는 어떤 축복이 임하나요? 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소유한 자들이 있는 곳에는 늘 성령의 바람이 불게 되어 있습니다.

 

디모데에 대한 이런 확신을 가진 바울은 디모데에게 계속 말씀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은 자기의 바톤을 지금 디모데에게 넘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넘겨주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라는 어머니, 교회라는 어머니를 소유하였기에 넘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습니다. 가정이라는 믿음의 공동체를 늘 잘 가꾸어 나아가야 합니다. 자녀들을 잘 믿음으로 양육을 해야 합니다. 아울러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믿음의 자녀들을 또한 잘 양육을 해야 합니다. 둘 중에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 중요합니다. 이럴 때 우리 자녀들은 세상에 바람을 일으키는 자녀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처음 말씀드린대로 동양인들은 가정을 더 중요시 여긴 것 같고 서양인들은 바깥을 더 중요시 여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안과 밖이 모두 중요합니다.

우리는 가정과 교회 안에서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 합니다. 이유는 바깥 세상에서 성령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시간을 빌어서 그동안 삼세대 예배를 잘 드릴수 있도록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삼세대 교회가 되도록 보이게 보이지 않게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특히 팬데믹 가운데도 3세대 예배에 충실히 참석하시고 참 예배를 하나님께 올리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자녀들을 통해서 새로운 바람이 세상에 불어 오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2년전 일입니다. 오클라호마 시에 Jody Thompson경찰관이 근무 시간이 다 끝났지만 child abuse건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원해서 현장에 가 봅니다.

본인도 깜짝 놀랍니다. 아주 삐쩍 마른 소년이 손목은 벨트로 묶여 있고 등에는 많은 상처가 나 있고 머리에도 뭔가 덩어리가 만져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8살 난 소년은 찬 물에 잠겨져 있었습니다.

John이라는 소년이었는데 몸무게는 61파운드였습니다. 몸에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속히 기관에 데려가서 보고를 하고는 곧 병원으로 달려 갔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한 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밤을 새웠습니다. John을 본 순간 그를 평생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날 오클라호마 Dept. of Human Services에 연락을 하여 양부모(foster parent)가 됩니다. 사실 그 때 이미 톰슨 경찰관은 15살과 8살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John을 데리고 온 이틀 후 자기 아내가 세번째 아들을 임신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아들이 졸지에 네 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뿐이 아닙니다. 약 7개월 후 기관(DHS)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John의 엄마 곧 John을 abuse했던 엄마가 감옥에서 여자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Thompson경찰관은 그 딸도 데려와 키우게 되고 양녀로 삼습니다. 졸지에 다섯 자녀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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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John은 행복한 가정을 만나서 straight A 학생이 되고 연극 팀에도 합류해서 멋지게 사는 소년이 되었습니다. 물론 Thompson경찰관은 표창을 받게 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결코 큰 가족을 이루게 될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고…, 나는 지금 너무 좋습니다.”

 

이 고백을 통해서 알수 있는 것은 이분은 아마 좋은 신앙 공동체에 속하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울러 다섯 자녀들은 최고의 가정 최고의 신앙 공동체에서 자라게 된 것이 아닐까요?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는 자녀들이 되어 갈줄 압니다.

저희 교회 자녀들도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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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Title Writer Date
215 “주여 옳소이다마는…” 마가복음 7:24-30 (08/09/2020) webmaster 2020.08.10
214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1 (08/02/2020) webmaster 2020.08.03
213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1-12 (07/19/2020) webmaster 2020.07.20
212 “거짓이 없는 믿음” 디모데후서 1:3-8 (07/12/2020) webmaster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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