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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고 나오리라.” 창세기 15:12-21 (08/16/2020)

서울 녹번동 은평 평화공원에는 군복 차림의 동상이 서 있다고 합니다. 6/25 전쟁 때 서울 수복 작전 중 녹번리 전투에서 29세로 전사한 미국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를 기리는 조형물이라고 합니다.

해밀턴 대위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1년에 한국에 파송을 받았던 아버지 윌리엄 얼 쇼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평양 외국인 학교를 마친 후에 아버지의 모교인 오하이오의 웨슬리언대를 졸업하고 2차 세계대전에 해군 소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1947년 한국으로 돌아와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며 한국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합니다.

제대 후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6/25 전쟁이 터지자 젊은 부인과 두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재입대합니다. 이 때 그는 부모와 주변 친구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하고 있겠는가?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다”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맥아더 장군을 보좌하면서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한 뒤 해병대로 보직을 바꿔 서울 탈환에 나섰다가 인민군 매복조의 습격을 받아 녹번리에서 전사를 합니다.

그의 숭고한 삶에 감명받은 미국 고향 교회 교인들이 기증한 1만4,500달러로 대전 목산 언덕에 기념 예배당을 세웠는데 지금의 목원대학의 채플이라고 합니다.

한편 그의 아내는 남편을 잃었지만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마치고 이화여대 교수와 세브란스 병원의 사회사업실에서 봉사합니다. 그의 아들도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에서 훌브라이트 장학 사업을 펼치면서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해밀턴 대위의 손자는 연대 의대에서 편집자로 근무했고 손녀는 오산의 공군기지에서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해밀턴 대위의 아버지로부터 보면 4대가 되는 것입니다.

해밀턴 대위의 조국 사랑에 감격하여 1956년에 녹번리에 해밀턴 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얼마전 이글을 읽게 되었는데 저절로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고개가 숙여졌고 언젠가 한국에 다시 방문케 되면 녹번동에 찾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미국인 중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답은 아주 쉽게 찾을수 있었습니다. 해밀턴 대위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나오신 분입니다.

곧 해밀튼 대위와 같은 사람이 태어날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4대에 이르는 해밀튼 가정이 세워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해밀튼 대위가 받은 믿음의 유산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아브람이 깊은 잠이 들면서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마 일생 이런 경험은 처음 겪었을줄 압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는데 큰 흑암과 두려움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은 너무도 확실히 이루어질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나타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되어질 일은 아브람의 자손들이 사백 년 동안 종살이 할 것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두려움 가운데 있는데 정말로 심각한 내용의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더 두려워집니다.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한편으로는 후에는 해방이 되는데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좀 위로는 되지만 글쎄 사백년이라는 말로 인해 굳어진 몸은 녹아지진 않았을줄 압니다. 계속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글쎄 장수의 약속을 주시는데 오래 살면 살수록 사는 날 동안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언젠가 자손들이 사백년 종살이 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제대로 평안한 나날을 보날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잠깐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궂이 사백년간 종살이 하게 될 것을 말씀하실 필요가 있으셨나…? 그냥 살다가 조상에게로 돌아가면되지 왜 자손들이 사백년간 종살이 할 것을 알게 하셨을까요?

 

물론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유익하니 알려주셨을줄 압니다. 4백년을 말씀하시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면 실마리가 풀릴줄 압니다. 그냥 생뚱맞게 갑자기 4백년 종살이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재차 확인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밤하늘을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땅의 축복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는 오늘 본문 말씀으로 이어지는데, 4백년간 종살이 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것입니다.

한편 야속한 것 같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해가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만일 하나님께서 별의 숫자와 같은 자손과 넓은 땅에 대한 축복만 주셨다면 아브라함은 어떤 태도로 살았겠습니까?

 

18세기 청나라에 살았던 풍류객 심복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즐거움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위와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옛 사람 말을 생각하는 것이다.

배고파 우는 사람에 비교하면 배부른 것만으로도

추위에 떠는 사람에 비교하면 따뜻한 것만으로도

병에 걸린 사람에 비교하면 건강한 것만으로도

재난에 빠진 사람에 비교하면 평안한 것만으로도

죽은 사람에 비교하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즐겁다.”

 

아마 아브라함도 4백년에 대한 예언을 몰랐더라면 자자손손 이런 교육을 시키지 않았을까요? 별처럼 무수한 자녀들이 태어날 것이고 넓은 땅을 약속받았는데 자녀들이 마땅히 이런 풍류객이 되어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을까요?

 

곧 하나님께서는 4백년에 대한 말씀을 안 하실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4백년 종살이의 예언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어떡해든지 자기의 자손들이 거친 4백년의 종살이를 견디어 내고 도리어 강대한 민족이 되어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수 있도록 준비하지 않았을까요?

 

유진 피터슨이라는 얼마전 작고하신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미국의 C.S. Lewis라고 평가를 받고 계신 분입니다.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합니다.

며느리가 아기를 배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아주 흥분하면서 좋아하는데 자기는 부인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솔직히 부인에게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부인이 하는 말은 아기를 몸에서 오래 간직한 경험이 있는 사람과의 차이라고…. 그 말에 자극을 받고 자기는 어떻게 아기를 간직하는 경험을 할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부인의 충고를 받아드려 아기의 요람을 몸소 만들기로 합니다.

고급 자료를 사와서 몇 달간에 걸쳐서 손수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아기가 태어났을 때 부인과 같은 흥분된 마음으로 맞이 할수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유진 피터슨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의 요람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사백년의 종살이를 견디고도 남을 자손들을 위한 요람 말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 요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눈에 보이는 요람은 아니었을줄 압니다. 17절 말씀이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사실 오늘 본문 말씀전에 보면 잠들기 전에 이미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고 하나님을 위하여 제물을 바쳤고 그 제물들의 중간을 쪼개어 놓았습니다.

그후 잠이 들었고 비몽사몽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눈을 뜨니 연기나는 화로가 보이고 자기가 쪼개어 놓은 고기 사이로 횃불이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하나님의 약속과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횃불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쪼개진 고기 사이로 횃불을 지나가게 하심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쪼개지면서까지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당신의 약속인 자손의 축복과 땅의 축복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곧 큰 민족을 이룰텐데 그 민족이 4백년 용광로를 거치지만 결국은 승리하고 나올 것이라는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증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몸소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신 것입니다.

물론 고기가 쪼개졌다는 것은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쪼개지실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앞으로 태어날 자손들을 위해 어떤 요람을 만들었을지 감이 잡힙니다. 자주 자주 제단을 쌓았을 것입니다. 고기를 쪼개어 놓고…. 의심이 들 때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오랫만에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는데 얼마 동안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태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라의 배는 불러 오지 않습니다.

사라의 배를 보면 의심이 듭니다. 바로 그 때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곤하였을 것입니다. 그 리고는 쪼개진 고기 사이를 지나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당신이 찢어지면서 당신의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께 경배드렸을 것입니다. 자주 자주.

 

후에 이삭은 이 아버지의 하신 일을 보았을뿐더러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자손이 어떻게 될 것임을…. 그도 아버지를 닮아가지 않았을까요? 야곱도 그 뒤를 이었을줄 압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환경에 좌절한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찢기심을 상상하며 약속을 거듭 거듭 확인했던 것입니다.

이 믿음의 삼세대는 약속을 믿으며 감사의 제단을 쌓아가지 않았을까요? 자손들을 위해서…. 그 결과 그의 자손들도 4백년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굳세게 승리합니다.

물론 자손들도 애굽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의심이 생길 때마다 몰래 제단을 쌓았을 것입니다. 더욱 강대해지는 애굽 나라를 생각할 때마다 의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제단 위에 찢겨진 하나님의 몸을 생각하면서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앙을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이 신앙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또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출애굽 역사의 주인공들이 된 것입니다. 위대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거쳤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어떤가요? 우리들의 자손들도 4백년의 종살이를 거쳐야 하나요?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들의 자녀들이 4백년 종살이를 할지라도 굳건히 승리하고 나오는 자녀들이 되도록 요람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 실천한 분이 바로 해밀튼 대위 가족이 아닐까요? 해밀튼 대위의 아버지 윌리엄 해밀튼 선교사님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4대가 한국을 위해 사는 자들이 되지 않았을까요?

 

물론 우리들의 자녀들이 4백년 종살이 하게 하도록 기도드리라는 말씀은 전혀 아닙니다. 우리의 자손들이 4백년 종살이를 해도 도리어 멋진 민족 공동체가 될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시키자는 것입니다. 해밀튼 가족처럼….

 

해밀튼 가족은 대대로 자녀들을 위하여 귀한 요람을 만들었기에 한민족의 영웅들이 되어 간 것입니다.

해밀튼 대위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당연히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을 쪼개시는 주님을 바라 보았을 것입니다.

결국 29살에 나이에 가족을 처가에 맡기고 제1의 조국인 한국을 향해 달려 갔던 것입니다. 그의 아내도 자녀들도 삶의 고비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해밀튼 가족은 세상을 바라 본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바라 보았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한국에 임할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온 가족이 한국의 광복을 이루는데 기여한 것입니다. 한국을 어두운 세력에서 이끌고 나온 것입니다. 그 가족에 대한 약속도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8/15 광복 기념 예배를 드립니다. 이미 75년전 일입니다. 그렇다면 광복에 대해 감사하는 것보다는 이제는 새롭게 광복절을 지켜야 할줄 압니다.

우리 자녀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굳건히 서서 도리어 위대한 민족이 되어 나올수 있게 되도록 기도드려야 하고 그들을 위한 요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들의 자녀들은 종살이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해밀튼 가정 처럼 종살이하는 민족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가지 않을까요?

우리를 향한 약속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이를 확증합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많은 죄수가 앉아 있을 때엔 마치 콩나물 대가리 모으듯 되었다가 잘 때는 한 사람은 머리를 동쪽 한 사람은 서쪽으로 해서 모로 눕니다. 그러고도 더 누울 자리가 없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일어서고 하는 통에 두 발로 먼저 누운 자의 가슴을 힘껏 민다. 그러면 누운 자들은 ‘아이구 가슴뼈 부러진다’ 하고 야단이다.

하지만 미는 쪽에서는 또 누울 자리가 생기니, 서 있던 자가 그 사이에 드러눕고 몇 명이든지 그 방에 있는 자가 다 누운 후에야 밀어주던 자까지 다 눕는다.”

 

저희들 자녀들 중에서 이런 위대한 인물들이 나오길 바랍니다. 한 민족이든 타민족이든 종살이하는 자들을 이끌고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을 기대합니다. 자녀들을 생각하며 제단을 쌓읍시다. 요람을 만드십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향한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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