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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말을 듣는 자는…” 누가복음 10:1-5, 16-20 (09/27/20)

얼마전 미주크리스챤신문을 읽고 있는데 제 눈을 끄는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동네 의사 만드세요.’

무슨 이야기인가 하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글인데 오래 전 아주 똑똑한 자녀를 둔 권사님과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법대로 가서 변호사가 되느냐 아니면 의사가 되게 하느냐를 가지고 고민하는 권사님과의 대화였습니다. 내심 의사쪽으로 마음이 더 가 있었고, 의과대학 이름을 쭉 나열하는 것을 들으면서 유명한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의학계에 큰 빛을 남기고 싶은 권사님의 욕심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상담차 왔으니 목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권사님, 부모가 있는 이곳으로 오라해서 이곳에서 동네의사를 만드십시오.”

이 말에 겉으로는 말을 안 해도,

‘목사님, 의사가 되려면 좀 유명한 의사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좀 더 좋은 학교에 가야되지 않나요?’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제가 기독신문을 대충 제목만 보고 넘기곤 하는데 왜 이 글은 끝까지 읽었나 혼자 자문해 보았습니다. 제가 의사 출신이라서 눈에 들어 왔나? 딱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천천히 드는 생각은 요즘은 글로벌 시대입니다. 우리는 동네에 살면서 생각은 늘 글로벌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기회만 있으면 세계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안고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곧 좋은 의미로 글로벌이 아니라 ‘글로벌’이라는 말로 인해 우리들의 삶은 둥둥 떠다니는 구름잡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가장 중요한 동네 사람 얼굴도 모르고 동네 이야기도 놓치고 살고 있으면서, 마음은 ‘글로벌’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쫓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의사 만드세요’라는 말이 가슴에 확 들어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 주님은 어떠셨을까요? 1절 말씀입니다.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주님의 제자는 사실 12명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많은 자들 중에 12명은 제자를 넘어서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사도를 포함해서 70명의 제자들이 또 있었습니다. 이 70명을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이미 전도 훈련차 파송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70명의 제자들을 어디로 파송하시죠? 당신이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 씩 파송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가시려는 동네와 지역이 어디였겠습니까? 한 마디로 이스라엘 경계 안일까요, 밖일까요?

얼마전 설교시 말씀드렸습니다만 주님께서는 3년의 공생애 시간 동안 단 한번 이방 땅에 가셨습니다. 두로에 가셔서 수로보니게 여인 곧 헬라인을 만나셨습니다. 거기서 유명한 대화가 오고 갑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만남을 통해서 주님의 마음은 이방세계에도 열려져 있음을 살짝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단 한번만 보여주시고는 그 다음에는 다시 주님의 사역은 이스라엘 안으로만 이어져 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70명의 제자를 보내셨는데 두 명씩 보내셨으니 35곳으로 보내셨고 이 곳들은 모두 주님께서 몸소 가시길 원하신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경계 안…. 한편 이스라엘 땅은 한국의 강원도만 한 땅입니다. 그러니 강원도 전역에 두메산골까지 한 곳도 놓치지 않으시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지금 제자들을 세계 선교사를 만드시려는 것보다는 동네 전도자로 만드시려는 것 같습니다.

곧 주님도 앞에 말씀드린 권사님 같은 분이 와서 상담을 한다면 당연히 이처럼 말씀하셨을줄 압니다.

“동네 의사 만드세요.”

 

한편 2절 말씀을 보면 또 그런 것 같지만 않습니다.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조그만 이스라엘 땅에 70명을 보내면 될 것 같은데 더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보내도 보내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왜 이런 기도를 하라고 하셨을까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주님은 두로를 방문하심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은 전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곧 주님의 몸은 지금 동네 곧 이스라엘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주님의 마음은 이스라엘 경계 밖에도 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70명 가지고는 안 되니 더 많은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전 세계를 생각하며 보내고 또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이렇게 기도하라 하신 후 기도하는 것도 보시지 않으시고 막 바로 다른 것을 말씀하십니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아니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으면 응답받을 때까지 기다려야죠. 그리고 더 모인 것을 확인하셔야죠.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도 안 하셨는데 70명을 보내시고 계십니다. 어디로…? 당연히 동네로….

주님은 어린 양 같은 70명의 제자들을 이리 가운데로 내몰아치고 계신 것입니다. 비록 동네이긴 하지만….

왜 주님은 이렇게 성급하시나요?

 

희망의 사제 차동엽 신부님은 해군출신이라고 합니다. 해군 훈련 과정에 ‘퇴함 훈련’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배에서 물로 뛰어 내려야 할 유사시를 대비하여 실내 수영장 10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이라고 합니다. 적응을 위하여 먼저 5미터에서 시작해서 다음 7미터 그다음 10미터 순으로 진행합니다. 전원이 차례로 뛰어내려야 하기에 줄을 지어서 기다립니다. 자기 차례가 오면 다이빙대 끝에 서서 오른 손은 코를 쥐고 호흡을 가다듬고 “아무개 사후생 퇴함준비 끝!”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지휘관이 “퇴함” 하면 그 때 “퇴함!”이라고 복창하고 뛰어 내립니다.

사람은 10미터에서 가장 큰 고소공포를 느낀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뛰어내리는 곳에 구대장 몇 명이 지휘봉을 휘두르며 포진하고 있어서 그 지휘봉이 무서워 뛰어내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느껴 보았습니다. 전도에 있어서 10미터는 바로 가까운 자기 동네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주님은 이스라엘만 생각하시면서 동네를 전도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가장 어려운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동네를 전도하는 것이 바로 10미터 다이빙과 같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나중에 기도 응답으로 더 많이 오면 그 때 그들을 또 동네로 보내실 것입니다. 지금은 눈 앞에 있는 70명을 동네로 보내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훈련을 더욱 어렵게 만드십니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고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평안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아니 학벌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이 다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을 빌라고 하십니다.

과연 거지처럼 돌아 다니는 사람들을 누가 받을 것이며 누가 평안의 복을 바라겠습니까?

 

이 때 제자들이 할수 있는 방법이 뭐겠습니까?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으니 바로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짜피 너희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니 주님의 말씀만 믿고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10미터 다이빙대에서 눈 딱 감고 뛰어내리듯이 주님만을 의지하고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를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자기들의 말을 듣는 것이 곧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요.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임을 주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큰 모험을 감행합니다. 이에 제자들은 주님의 이 말씀 하나만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흩어집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들은 동네에 가서 놀라운 체험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답변하십니다. 18, 19절 말씀입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제자들은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이제 이들은 동네 안팎 어디를 가서도 주님의 말씀을 전할수 있는 진정한 제자들이 되어 간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좌석버스를 타고 직장에 출퇴근을 하였는데 좌석버스가 거의 꽉차곤 했습니다. 거의 매일 아침 옆좌석에 앉으신 분을 전도했습니다.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들을 하니 어떤 분들은 저를 알아 보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사실 전도하기 싫습니다. 남들 눈에 띄기가 싫습니다. 그래도 매번 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너무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주님의 능력이 저를 감싸고 있었음을 회고해 봅니다. 그렇지 않고는 제가 전도를 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매일 아침 좌석버스는 저에게는 다이빙대였습니다.

 

모두 잘 아실줄 압니다. 지난주에도 교인위원회 새교우를 위한 동영상에서도 소개되어졌는데 저희 교회 비전 선언이 있습니다.

  1. 삼 세대가 함께 배우는 교회
  2. 세계를 향한 교회
  3. 한민족의 문화를 이어가는 교회
  4. 사랑으로 정의를 세워가는 교회

 

요즘 삼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어서 몇 차례 첫번째 비젼에 대해서 말씀을 이미 드렸습니다. 오늘부터 삼주간은 남은 세 가지 비젼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 두번째 비젼인 ‘세계를 향한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교회는 2000년부터 해외 단기선교단을 파송해 오고 있습니다. Zicka virus로 인해 한 번 취소하였고 오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두 번째로 취소되었습니다. 아울러 2017년도부터 파송한 뉴멕시코 원주민 단기 선교도 올해 취소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세계를 향한 교회로서의 비젼도 취소된 것은 아닙니다. 이 때 우리는 재정비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은 동네보다도 먼 곳에 가 있었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줄 압니다. 동네 안 동네 밖 모두 중요합니다. 주님은 코로나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동네 안을 살펴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동네 안에서 이 고백을 먼저 하길 원하시지 않을까요?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이 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줄 압니다. 2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곧 하늘에 우리들의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더욱 힘을 얻어 세계를 향한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실까요?

 

동네 의사는 쉬워도 동네 전도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는 세계로 향하는 훈련장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기간 우리의 훈련장에서 거친 훈련을 받으십시다. 우리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음을 체험하십시다.

우리 동네에서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하며 주님의 인도를 구하십시다.

 

모든 길이 막혀 있는 것 같지만 바로 이미 새로운 길이 나 있습니다. 10미터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려는 자들에게는….

 

말씀을 거둡니다.

축구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은 박항서 감독의 이야기를 잘 아실줄 압니다. 한국 대표단 감독도 역임했지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여기 저기를 옮겨 다니십니다. 결국 3부 리그 감독으로 밀려도 납니다.

우여곡절 끝에 27번째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습니다. 결국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박항서 매직’이라는 말도 생겨 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항서 감독이 이렇게 세계적인 인물이 될수 있었던 것은 동네에서부터 감사의 삶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박항서 매직의 시작은 그의 감사의 삶이었다고 합니다. 3부 리그로 물러나도 감사했습니다.

베트남에서 박항서 매직의 성공을 이룬 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나에게 기회를 준 베트남에 감사하다.”

아울러 스즈키 컵 우승포상금 10만달러 전액을 베트남 축구발전을 위해 기부합니다

그에게 유명한 말이 있는데,

‘한 손에는 축구공 다른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한국이라는 동네에서 성실히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산 것입니다. 결과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하지 못해도 동네에서 열심히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면 우리는 세계를 향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코로나 기간 주님께서 우리 동네라는 다이빙대로 이끄실 것입니다. 10미터 높이인 다이빙대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뛰어 내리십시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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