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를 정원에 심었습니다. 열심히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가꾸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시들어가는 꽃과 나무에게 정원의 주인이 물었습니다.
“너희는 왜 이렇게 시들어가니?” 은행나무가 대답합니다.
“저는 소나무처럼 높은 기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나무가 힘없이 대답합니다.
“저도 자신이 없어요 사과나무처럼 맛있는 열매를 맺을수가 없잖아요.” 사과나무가 대답합니다.
“저도 매한 가지예요. 해바라기처럼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수가 없어서요.”
그런데 그 때 시들어가는 꽃과 나무 사이로 활짝 피인 들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만 아름다운 꽃을 피웠구나. 비결이 뭐니?” 들꽃이 살포시 웃으며 대답합니다.
“저에게는 작고 소박한 멋이 있답니다. 이런 멋이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죠. 이런 제 모습이 사랑스럽고 좋아요. 예쁜 꽃을 피울수 있어서 저는 너무 행복하답니다.”
들꽃은 자기 자신으로 사는 행복과 기쁨을 먼저 느꼈던 것입니다.
요즘 저희가 코로나 폭풍 가운데 있는데 얼마전 이럴 때일수록 저희 교회가 가는 방향을 잘 향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몇 주일 전부터 저희 교회 네 가지 비전선언을 하나씩 주일 설교에서 말씀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요즘 삼세대 예배를 보기 때문에 첫번째 비전 선언에 대해서는 이미 한두 차례 말씀을 드렸습니다. 두 주전에는 ‘세계를 향한 교회’에 관해 말씀드리면서 세계 선교는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씀드렸습니다. 코로나 동안 동네 전도자가 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주에는 정의 평화 환경 주일을 맞이하여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름 없는 자들에게 이름을 불러드리는 것이 정의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가지 비전 선언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세번째인 ‘한민족의 문화를 이어가는 교회’입니다. 오늘 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조금 전 소개해 드린 이야기에서 문화를 이어가는 자들의 모습을 느껴서 소개해 드렸습니다. 들꽃의 대화에서 찾아 볼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작고 소박한 멋이 있답니다. 이런 멋이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죠. 이런 제 모습이 사랑스럽고 좋아요. 예쁜 꽃을 피울수 있어서 저는 너무 행복하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이런 가정을 내려 보게 되었습니다. 문화는 약한 곳에서 싹터 오르는 것이 아닌가? 약하지만 들꽃과 같은 자신감이 있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들을 통해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편 민족과 문화는 함께 가게 되어 있는데 작년에 읽었던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고고학자인 이선복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한민족이라는 말은 명쾌하게 정의되고 있는 듯 하지만, 민족이란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사실 우리 한 민족은 한 반도라는 곳에 함께 모여 살았기 때문에 한민족의 개념이 남달리 쉽게 생겼지만 실제로 민족을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써내려 갑니다.
“민족이란 언어공동체라는 뜻으로 대체할 수도 없고,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유전적 공동체의 개념도 아니며, 그렇다고 문화적 공동체의 개념과 등가적인 용어도 아닌바, 이런 모든 개념을 포괄하는 동시에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며 스스로는 동질적인 집단의 성원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총합이라는 정도의 뜻을 지닌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곧 한민족은 5천년이나 그 이전부터 한반도에 살았던 주민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어느 때인가 한반도 밖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후손으로 함께 오늘까지 이른 역사적 경험을 나눈 공동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한 표현이 눈에 띄입니다. ‘역사적 경험,’ 곧 유전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어떤 역사에 동참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성경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말씀인 에스더서에는 비록 이방땅에 거하지만 이스라엘민족의 역사적 경험에 동참하며 또 이스라엘 문화를 이어 가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갔었는데 후에 바사 곧 페르샤 왕국이 바벨론을 멸망시킵니다. 이 때 유대 포로들은 고향으로 갈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귀환하지 않고 그냥 바사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꾀 있었습니다. 그 중 에스더 가족이 있었습니다.
바사왕 아하수에로 왕 때 일입니다. 왕후를 폐위시키게 되는데 이 때 사촌오빠인 모르드개의 도움으로 에스더가 왕후가 됩니다. 한편 모르드개는 궁궐 앞에 있다가 왕에 대한 음모를 듣고 이를 에스더에게 알려서 왕이 암살 당할 것을 모면케합니다.
그런데 하만이라는 제2인자가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을 보고 화가나서 모르드개의 민족 곧 유대민족을 다 멸하게 하는 음모를 꾸밉니다. 하만와 무리들이 제비를 뽑아 유다인을 멸할 날짜를 잡습니다. 이를 알고 오늘 본문 말씀은 아니지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4:14절,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한 마디로 네가 유다인의 역사적 경험에 동참하지 아니 하면 다른 길로 유다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반협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에스더가 답합니다. 4: 16절,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곧 에스더는 유다인들의 역사 공동체에 참여할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fastforward해서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매어 답니다. 그뿐 아니라 유다인들을 멸하려고 제비 뽑아 받은 그 날짜에 도리어 유다인들이 자기들을 죽이려 했던 모든 사람들을 죽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9:20, 21절 말씀입니다.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원근을 막론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이 두 날을 부림절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부림은 ‘제비’라는 뜻인데 원래 하만이 제비 뽑아서 두 날을 정했던 것입니다. 곧 이 날들은 유다인들이 멸종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 하만과 유다인들의 대적이 도리어 멸종이 되는 날이 된 것입니다. 28절 말씀입니다.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유대인들은 지금도 부림절을 지킵니다. 내년도에는 2월 25, 26일 양일간 지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 절기를 지킨다고 정말로 유다인의 문화를 이어가는 자들일까요? 진정 유다인의 문화를 이어가는 자들은 오늘도 삶 속에서 부림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들일줄 압니다. 무슨 뜻이냐구요?
에스더서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는 책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경화 작업 곧 성경으로 선택받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성경이 된 것입니다.
사실 에스더서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으시지만 부림의 사건을 펼치시는 분이심을 알리는 책인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죽게 된 날이 도리어 자기들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을 죽이는 곧 세상 역사를 뒤집은 날이 되었는데 이 모든 역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한편 에스더서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부림절을 지킴으로 기억하는 것만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이 놀라운 역사적 경험에 동참함을 통해서 유다문화를 이어가는 삶을 살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이 역사적 경험에 동참할수 있을까요? 에스더처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존재의 귀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처음 말씀드린 들꽃의 고백을 하는 자들이 아닐까요?
“저에게는 작고 소박한 멋이 있답니다. 이런 멋이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죠. 이런 제 모습이 사랑스럽고 좋아요. 예쁜 꽃을 피울수 있어서 저는 너무 행복하답니다.”
곧 문화를 이어가는 삶은 이룩해 놓은 성공사례를 누리며 기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움에 대한 확신을 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 인류를 위하여 새롭게 역사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들꽃이 되어….
그렇다면 한민족의 문화를 이어가는 삶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 볼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주어진 한민족의 역경 속에서 모든 것을 뒤바꾸시는 하나님을 믿고 역사적 경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한민족의 문화를 이어가는 교회라는 비전선언을 생각하며 말씀을 드리고 있는데 한민족의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뭐니뭐니해도 ‘한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주 인도자 교육에서 어느 분이 나눠 주셨는데 교우님은 세종대왕에게 큰 감사의 마음을 갖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분들 중에 아랍분들이 있는데 아랍 글짜는 너무 어려워 거의 문맹들이고 고등 학교에 다녀야 겨우 배운다고 합니다. 그러나 물론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그래서 쉬운 한글을 창시한 세종대왕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시하는 일도 쉽지 않았던 것은 잘 아실줄 압니다. 중국과 관계 때문에 신하들의 거센 반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꿋꿋이 만들어 갈수 있었던 것은 아마 세종대왕은 한민족의 들꽃과 같은 아름다움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일제 강점기에 와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전에 주시경 선생님이 독립협회 활동을 하던 도중 한글 표기법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한국어 문법을 정리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말을 한글이라고 정하고 현대 한글 체계를 정립하고 보급하였으며, 한국어 연구에 공헌하였습니다. 국어 연구학회를 조직합니다.
그러나 곧 일제 강점기가 되어서 일본어가 국어가 되기 때문에 국어연구학회의 이름을 조선언문회로 바꿉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자세한 사인은 알수 없지만 아마 한글을 사랑한 댓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는 배제학당을 졸업한 감리교인이었습니다. 무엇 보다도 한글 안에 있는 들꽃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겼던 분입니다.
한편 주시경 선생님의 제자들로 인해 일제 강점기 때도 한글은 계속 살아 남게 됩니다. 그런데 1942년 발생된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생합니다. 일본 제국이 1942년에 한글을 연구하는 학회인 조선어학회의 회원 및 관련인물들을 강제 연행, 재판에 회부한 사건입니다.
1941년 12월 하와이의 진주만을 습격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일제는 내부의 반항을 염려하여, 1942년 10월에 조선어학회에도 총검거의 손을 대었습니다. 조선어학회는 1942년 4월부터 한국어 사전을 편찬 중이었습니다.
이 때 33명이 재판을 받습니다. 감옥사 하신 분들도 있고 많은 분들이 고문을 당했고 형집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사람도 변절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도 일본 이름으로 바꾼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강제로 일본 이름이 지어진 것뿐입니다.
이 사건으로 어학회가 해산되고, 사전 원고는 증거물로 홍원과 함흥으로 옮겨다니다가 여러 부분의 원고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고는 광복후 1945년 9월 서울역 창고에서 일제가 잃어버린 원고가 발견되어 추후 한글 대사전이 출판되었습니다.
왜 이들은 변절하지 않았을까요? 들꽃의 아름다움을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편 이들이 일제강점기 때 한글 사전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한국이 있었을까요? 있다 해도 아마 100년은 뒤져 있을줄 압니다. 전 세계를 휩쓰는 한류가 생겨날수 있었을까요?
한민족의 문화는 이렇게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해외동포가 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계속 한민족의 문화 공동체에 참여할수가 있습니다. 에스더서에 비친 유대인처럼….
우리의 좁은 삶의 현장에서 역경을 뒤바꾸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 안에는 한민족의 역사 공동체에 심으신 아름다운 꽃이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당당히 한민족의 문화를 이어가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유대문화를 지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듯이 우리도 한민족의 문화를 이어감으로 세계 선교에 기여하십시다.
이 문화의 꽃을 피우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한민족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모든 문화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최인호 작가를 잘 아실줄 압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십니다. 그는 심청전이야말로 한민족이 소유한 최고의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잘 아시는대로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져 죽고 아버지 심봉사는 삼백 석을 부처님께 바쳤으나 눈을 뜨지 못합니다.
이제 알거지가 된 심봉사는 부활하여 황후가 된 심청이가 벌인 맹인잔치에 참석합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잔치를 벌인 심청이는 아직도 눈을 못 뜬 아버지를 보자 기가 막혀 울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인당수 풍랑 중에 빠져 죽었던 심청이 살아서 여기 왔소.”
이 때 꿈이냐 생시냐 하면서 감은 눈을 휘번쩍 뜨게 됩니다.
최인호 작가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지만 우리 주님은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주님도 십자가를 통해서 가난과 약함의 삶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뒤바꾸셨습니다. 지금도 뒤바꾸십니다. 들꽃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밝게 하십니다.
한편 최인호 작가는 오늘 한인들은 삶으로 새로운 심청전을 쓰는 특권을 받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이것이 한민족의 문화를 이어가는 삶이 아닐까요?
심청전은 한민족의 역사 공동체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들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