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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팬데믹 IV: 개구리가 올라오다.” 출애굽기 8:1-15 (08/01/2021)

1527년 스페인 국왕인 카를 5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프랑스 연합군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로마를 약탈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 다른 군대는 모두 스페인군에 항복을 선언하였으나 최고의 용병으로 구성된 스위스 용병만큼은 달랐습니다.

187명 가운데 147명이 전사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교황을 보호하며 피신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스위스 용병의 용맹함과 충성심에 다시 한번 감동을 한 교황은 이때 부터 바티칸 교황청 근위대를 스위스 출신 청년들로 구성하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Vatican struggles to replenish Pope's Swiss guard - SWI swissinfo.ch

실은 스위스가 이 당시에는 유롭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고 합니다. 자연 자원도 넉넉치 못하고 지형도 높고 날씨도 추워서 경제가 발전이 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에 용병으로 나가서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내 왔다고 합니다.

한번은 프랑스 왕 루이 16세를 위해서 싸우러 갔는데 프랑스 수비대는 다 도망가고 스위스 용병 700여명만 남아서 끝까지 싸우다가 모두 장열하게 전사했다고 합니다. 이 때 전사한 한 용병이 가족에게 보내려했던 편지가 발견이 되었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뢰와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은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죽음으로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후에 스위스는 프랑스에서 온 위그노들에게 시계제작을 배워서 시계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방직산업 금융업으로 전세계 최고로 부유한 나라가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국제 적십자사, 국제 올림픽 위원회등 세계 주요 기구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오늘 출팬데믹 씨리즈 네번째 설교 말씀을 전합니다. 그동안 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어려운 이야기에 둘러싸여 살아온 것 같습니다. 실은 아직도 계속 어려운 이야기들이 끊임 없이 들려 옵니다.

그래도 미국은 백신으로 인해 많이 좋아진 것이고 백신이 공급이 되지 않는 나라들의 정황은 정말로 암담함을 느낍니다. 가까운 큐바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나라들이 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모든 나라들이 스위스처럼 가장 가난한 나라였지만 오늘의 스위스가 된 것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되길 기원합니다. 그 때 진정한 출팬데믹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런 축복의 세계는 어떻게 임하게 될까요?

오늘 본문 말씀 두번째 재앙 이야기를 통해 한 번 그 길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지난주에는 나일 강을 피로 물들게 한 재앙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나일 강을 치신 후 7일이 지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시 바로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아론으로 하여금 지팡이를 들고 손을 내밀어 개구리가 나일강에서 올라 와서 온 애굽땅을 덮게 합니다.

이번에는 곧바로 모세에게 개구리를 없애달라고 부탁합니다. 바로의 부탁대로 모든 것이 그 다음날 이루어집니다. 13,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모세가 말한대로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개구리가 썩어 악취가 온 나라에 진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장 내보내야 할텐데 바로가 어떻게 하죠? 15절 말씀,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바로는 다시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보내지 않습니다.

 

처음 스위스 용병들의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스위스 용병들의 지혜가 결국 스위스를 오늘의 스위스가 되게 했다고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 바로의 이 모습이 곧 애굽의 미래를 확정짓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로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까요? 자기의 요술사들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절대로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몇주전에 말씀드렸습니다. 애굽의 상징은 바로의 무덤인 피라미드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피라미드중 가장 큰 피라미드를 소개해드렸습니다.

Kheops-Pyramid.jpg

Great Pyramid of Giza인데 이는 모세 이전 1300년전에 이미 지어져 있었고 150미터나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을까요?

이것을 지은 바로의 이름은 쿠푸인데, 그는 자기의 피라미드를 높이 지어서 하늘에 가까이 닿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분이고 실제로는 자기 전 바로들 보다 더 높게 짓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바로도 전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큰 건물들을 만들고 무엇보다 어느 선왕보다도 높은 피라미드를 만들기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예가 필요합니다. 피라미드는 어리석음의 상징입니다. 곧 노예들은 바로의 어리석음의 희생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바로만의 어리석은 행적이 아닙니다. 중세시대에 건축에 몰두한 주교들 또한 이웃 교구보다 더 높은 첨탑이 있는 대성당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높은 첨탑은 인간의 세속적 욕망의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중북부 우아즈주 보베의 주교는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건축하기로 결심합니다.

“첨탑을 세울 겁니다. 첨탑이 서고 나면 그걸 본 사람들이 우리를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높은 첨탑을요.”

첨탑의 높이는 153미터에 달했다고 합니다. 쿠푸의 피라미드과 비슷한 높이네요. 그러니 첨탑이 얼마나 거하게 높았을까요? 그런데 불과 4년간 서 있었다고 합니다. 4년만에 어느날 미사가 끝난 후 우루루 쾅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단 몇 초 만에 첨탑과 종이 무너져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쿠푸의 피라미드는 지금까지 관광지라도 되어서 이집트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데 보베의 주교는 4년만에 무너져 버리는 그래서 요즘은 자취도 사라진 성당을 지은 것입니다. 바로보다 훨씬 어리석네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주교들도 이런 어리석은 짓들을 했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바로가 어리석은 짓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봅니다.

하여튼 보베의 주교 첨탑은 4년만에 무너졌지만 애굽의 Great Pyramid of Giza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바로는 피라미드를 높이 지어서 하늘에 가까이 닿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가까이 올라간 것은 다름 아닌 개구리들이었습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서 개골개골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개구리들은 바로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듯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도르티에라는 인문학자는 다음과 같이 어리석음에 대해서 결론을 내립니다.

“어리석음은 분명 역사를 추동하는 원동력 중 하나일 것이다. 어리석음이 역사의 유일한 원동력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원스턴 처칠도 자신의 방식대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사에서 어리석음의 지분은 늘 악의 지분보다 크다.’”

 

실은 종교인들 못지 않게 정치인들의 어리석음도 대단히 큰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2천만명의 군인과 시민이 희생당한 제 1차 세계대전입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가 암살당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게 최후 통첩을 내리면서 7월 위기가 시작되었고, 수주 이내에 강대국끼리 전쟁이 시작했고 이 분쟁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에 대해 어느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저 단순하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하루 전날,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이 이해하고 있는 세상에서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1차대전등 지나간 모든 것을 보고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처칠이 말한 것이 아닐까요?

‘인간사에서 어리석음의 지분은 늘 악의 지분보다 크다.’

맞습니다. 세상 역사는 이런 어리석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인간사를 잘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개구리를 동원해서 애굽의 어리석음을 온 세계에 조롱거리가 되게 하신 것이 아닐까요?

 

사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개구리가 피라미드에 올라갔다는 표현은 안 나옵니다. 6절 말씀에 보면 애굽 땅을 덮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피라미드 꼭대기도 올라 갔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개구리가 들어 간 곳 중 대표적으로 왕궁을 꼽고 있는데 세번씩이나 강조해서 나옵니다. 피라미드 꼭대기나 왕궁이나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왕궁에 있는 자나 피라미드에 있는 자는 모두 어리석음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음을 은연 중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왕궁과 피라미드를 점령했던 모든 개구리들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는 바로와 그의 신하들의 어리석은 말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의 왕궁과 피라미드를 정복한 개구리는 오늘까지도 어리석은 권력자들의 왕궁과 피라미드를 정복하며 오고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어리석은 자들이 이끄는 인간사는 희망이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여기서 벗어날까요? 곧 우리에게 필요한 출팬데믹은 어리석음에서의 출팬데믹이 아닐까요?

 

저는 개구리의 죽음을 두 가지로 보고 싶습니다. 하나는 말씀드린대로 바로와 신하들의 죽음입니다. 요즘식으로 말한다면 어리석은 부와 권세를 잡은 자들의 죽음이라고 할까요?

또 하나는 피라미드와 궁전을 짓다가 죽은 이스라엘인들의 죽음입니다. 이 두 가지 죽음이 엮여져서 인류 역사는 진행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둘 다 어리석어 보입니다. 바로는 과거의 바로들 곧 선왕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힘을 키워나갑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현재를 포기한채 미래를 내다 보며 희생양으로 살아갑니다. 바로는 어리석은 어리석음의 소유자이고, 이스라엘인들은 지혜로운 어리석음의 소유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두 어리석음 중 하나를 택하여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은 어느 길을 가시고 계십니까? 가장 좋은 길을 가신 분을 소개해 드립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결과를 가져 온 백신이 아마 천연두 백신일줄 압니다. 그 백신으로 인해서 전세계가 천연두의 공포에서 해방되었으니 말입니다.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개발했는데, 루코 스털리라는 의사이자 문학가는 제너를 찬양하는 책을 펴냅니다.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아! 오래된 기념물을 기억하고 땅속에 묻혀있는 것만 기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길 바란다. 인류를 돕고 행복을 되찾는 것은 마음을 다해 원하고 존경하는 바……”

한편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에서 불을 가져와 인간들에게 준 신입니다. 곧 스털리는 제너를 하늘에서 불을 가져 온 프로메테우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에서 이 새로운 도둑질을 감행했다. 그러나 불타는 생명의 횃불을 훔치지 않았고, 두꺼운 진흙으로 몸을 만들지 않았다. 아프고 일그러진 몸을 치료하고, 임박한 죽음에서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하늘 궁정에서 약을 가져왔다.”

 

출팬데믹은 제너와 같이 미래를 향하여 모험을 하는 사람들의 몫임을 스털리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오래된 기념물에 갇혀 있는 바로와 같은 자들에게는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제너와 스위스 용병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미래를 내다 본 자들입니다. 차이가 하나 있다면 제너는 뛰어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스위스 용병들은 재능은 있지 않았습니다. 공통점은 그들은 모두 자신을 희생하는 놀라운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을 내릴수 있습니다. 팬데믹은 새로운 프로메테우스가 나타나는 역사적인 시간입니다. 특히 온 세계 사람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미국산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온 세계의 출팬데믹을 위하여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불리움을 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나는 제너처럼 인류에 큰 혜택을 줄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데요?”

 

이병철 삼성 회장의 회사 운영 철학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신 주위에는 당신보다 뛰어난 인재를 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삼성이 오늘의 삼성이 된줄 압니다. 그렇게 보면 아무나 삼성에 들어갈수는 없었겠죠.

 

반면 주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주님께서 이병철 회장과 같은 철학으로 구원 사역을 펼치시려 하셨다면 과연 12제자을 뽑을수가 있었겠습니까? 도리어 주님은 정반대였습니다. 세상적으로 소외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뽑으셨습니다.

뽑은 제자들로 하여금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될 때 이들이 세계를 위한 새로운 프로메테우스가 될 것을 보신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져도 실은 출팬데믹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더욱 오래된 기념물에 갇힐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출팬데믹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프로메테우스들이 나타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이루시려고 주님께서는 12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제너처럼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어리석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 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에는 미국에 살면서 먼저 백신의 혜택을 본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오늘도 세상적으로는 어리석은 자들 그러나 미래를 내다 보는 지혜로운 어리석은 자들을 통해 진정한 출팬데믹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코로나 백신이 없어 고생하는 전세계인들이 희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제너처럼 칭송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보스톤 한인 교회를 꿈꾸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구한말 국가의 장래가 암담할 때 서구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는 미션 학교 교육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합법적인 선교 활동을 할 수 없을 때는 물론이고 허용된 이후에도 미션 스쿨은 교회가 가장 역점을 둔 선교 현장이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1교회 1학교 설립’운동이 전개되었다고 합니다.

 

한 교회가 한 초등학교를 설립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1905년에 139개교이었던 것이 불과 3년후 542개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한 교회가 한 초등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요? 아니 쉬운 일이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어리석은 일…. 이러한 기초 위에 한국 기독교가 뿌리 내린 것이 아닐까요?

 

출팬데믹은 지혜롭게 어리석은 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모세처럼…. 이들은 과거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미래를 향합니다. 미래 인류의 역사를 위해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어리석은 모험을 감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기도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올해 저희 교회 표어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보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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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Title Writer Date
255 “출팬데믹 VI: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출애굽기 8: 20-32 (08/22/2021) webmaster 2021.08.23
254 “출팬데믹 V: 땅의 티끌을 치라.” 출애굽기 8: 16-19 (08/15/2021) webmaster 2021.08.19
253 “출팬데믹 IV: 개구리가 올라오다.” 출애굽기 8:1-15 (08/01/2021) webmaster 2021.08.02
252 “출팬데믹 III: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출애굽기 7: 14-25 (07/25/2021) webmaster 2021.07.26
251 “출팬데믹 II: 바로 앞에 던지라.” 출애굽기 7: 8-13 (07/18/2021) webmaster 2021.07.19
250 “내 백성을 보내라.” 출애굽기 5:1-9, 5:22-6:1(07/04/2021) webmaster 2021.07.04
249 “주기도문 VIII: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webmaster 2021.06.28
248 “주기도문 VII: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마태복음 6:5-13 webmaster 2021.06.21
247 “너는 내 사랑하는 자라.” 마가복음 1:9-11(06/06/2021) webmaster 2021.06.08
246 “주기도문 VI: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마태복음 6: 5-13a (05/30/21) webmaster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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