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률 시인의 ‘불편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첫 세 행만 소개해 드립니다.
“구름이
금방이라도 눈을 뿌릴 것 같이
나는 불편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
——”
겨울에 내리는 눈을 보면서 불편에서부터 탈출하려는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실은 모든 현대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니 현대인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 살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편에서 탈출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시인은 과연 탈출에 성공했을까요? 성공했으면 이런 시를 지을리가 없겠죠. 늘 실패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시인답게 아주 고상한 표현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인식의 맹목으로 물들고 있다.”
불편에서 탈출을 성공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기 위해 결국 인식의 맹목 가운데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불편으로부터의 탈출을 실패했는데 정말 불편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어떻게 우리가 탈출할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출팬데믹 씨리즈 다섯번째 말씀을 나눕니다. 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세번째 재앙을 애굽에게 허락하십니다. 세번째 재앙으로 인해 온 땅이 이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에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바로는 자기의 요술사들에게 모세처럼 똑같이 해 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18절,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사실 지난 두 재앙에서는 모세가 행한 기적을 요술사들도 해냈습니다. 모세를 따라 물이 피가 되게 하였고, 나일 강에서 개구리가 땅 위로 올라 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티끌을 이로 만드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19절,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결국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왜 요술사는 첫 두 기적은 행할수 있었지만 이는 만들수 없었을까요? 물을 피로 만드는 것이나 개구리를 만드는 것이나 티끌을 이로 만드는 것이나 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유독 이를 만드는 것은 요술사들이 행하지 못했을까요?
사실 이만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되는 재앙들을 더 이상 하나도 흉내를 내지 못합니다. 파리를 만들지 못했고, 가축의 죽음, 그리고 악성종기, 우박, 메뚜기 재앙, 흑암 등 계속되는 재앙은 하나도 따라 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요술사들은 물을 피로 만들었고 나일 강에서 개구리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요술사들이 그 이후로는 흉내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잠시 후 다시 나누기로 하고 먼저 4천년을 fast forwarding해서 요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요즘 세계 최고 부자가 아마존 회사를 만든 Jeff Bezos라는 사실은 많은 분들이 아실줄 압니다. 이혼해서 전부인에게 반을 나눠 줬는데도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종종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받습니다.
“제프, 다음 10년 동안에 어떤 것이 변할까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 질문은 거의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다음 10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것들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제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는 지금부터 10년 후에도 변함없이
아마존 고객들은 낮은 가격을 원하리라는 점입니다.
빠른 배송,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을 원할 것이란 점도 마찬가지지요.
따라서 우리가 그런 부분에 쏟아온 에너지는 계속해서 보상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차고에서 시작한 아마존이 세계 최고의 부자 회사가 된 이유는 앞으로의 10년을 잘 내다 봐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변화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를 잘 파악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10년이 지나도 싼 것을 사람들은 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혁신의 목격자들’이라는 책을 어느 카이스트 교수가 편집을 하였습니다. 제4차 산업시대에서 어떻게 앞서 갈 것인가를 주제로 여러 분야의 전문인들의 글을 모아서 편찬한 책입니다.
그는 한 마디로 혁신의 방향은 항상 삶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길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곧 불편함에서의 탈출이 바로 혁신의 과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을 내릴수 있다고 봅니다. 아마존 회사나 4차 산업을 위해서 불철주야 뛰는 모든 사람들은 애굽의 요술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사실 편의상 요술사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많은 경우 이 당시 요술사는 현인들 내지 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기적과 같은 일들을 창출해 낼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할수 있었던 대표적인 두 가지가 있었는데 물을 피로 바꿀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때때로 물 대신에 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개구리를 만들어 낼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개구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곧 4차산업도 그렇고 애굽의 요술사들도 삶을 편하게 하는데는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불편을 없애는 데는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요술사들은 불편에서의 탈출에 잠시 성공하였습니다. 불편에서 탈출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에게 인정을 받아 부자가 되었고 지금도 4차 산업을 통해서 앞장 서는 자들이 세계적인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할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을 편하게 만들려다가 도리어 불편하게 만든 것을 회복시키지 못합니다. 물을 피로 만들고 개구리를 만들었지만 도리어 피와 개구리를 없애지는 못하니 더 불편을 제공해 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더 세상을 살기 불편하게 만듭니다. 이들은 불편에서 탈출하려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시 성공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곧 애굽의 요술사들은 ‘편함’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우상은 오늘까지도 우리 주변에 존재합니다. ‘혁신’이라는 가면을 쓰고….
이러한 인류 역사의 맹점을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고 당신의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보여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곧 출애굽 사건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전 인류를 향한 사랑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도 잘 아십니다. 인간들은 끝없이 불편에서 탈출을 시도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 왔고 앞으로도 이를 이용한 자들이 부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서는 세번째 재앙으로 티끌을 이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인들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 불편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불편은 인류 역사의 필요악임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불편을 끝없이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불편에서의 탈출은 이루어질수 없는 꿈임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탈출하면 할수록 예상치 못했던 기가막힌 불편을 하나님께서는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광복절 기념 예배를 드립니다. 광복은 우리 대한 민국 역사에 놀라운 축복의 사건이지만 또한 많은 역사적 소용돌이로 몰아갈수 밖에 없었던 불편의 시간이었음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이를 잘 반영하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동경삼재입니다.
일제시대에 동경에서 유학을 한 세 명의 천재들을 일컸는 말입니다. 이 세 사람은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그리고 벽초 홍명희입니다. 사실 저는 학창 시절 홍명희에 대해서는 듣지를 못했었는데 그 이유는 후에 월북해서 김일성 밑에서 고위관리가 되었기 때문인줄 압니다.
이광수는 1919년 2월 8일 동경에서 유학생들이 주도하는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조선청년독립단선언서’를 작성했고 그 이외에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독립지에 애국계몽적 논설을 여러차례 쓰는 등 활발한 운동을 펼칩니다. 후에 안창호와 함께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전향을 선언, 친일활동을 전개합니다.
최남선 역시 3.1 운동 만세 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복역 후 변절하여 조선총독부의 위원을 지내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문화동원론(文化同源論)’을 주장함으로 친일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한국과 일본이 같은 문화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 일본에서 한 사람은 조국에서 그런데 끝내 친일파가 되었습니다. 모두 편하게 살려고….
한편 홍명희는 아버지 홍범식의 정신을 물려받아 끝까지 독립운동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동경에서 귀국 이후 3.1운동을 계승하여 충북 괴산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합니다. 출옥 후, 사상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합니다.
왜 동경삼재가 결국은 이렇게 흩어져서 그 후 대한민국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불편으로부터의 탈출’이 인류 역사가 가야할 흐름이라고 잘 못 판단하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계속해서 재앙을 내립니다. 그런데 마지막 출애굽 할 때까지 8개월이 걸립니다. 8개월 동안 애굽을 불편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던 것입니다. 8개월 동안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애굽을 불편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사실 출애굽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불편하게 하십니다. 광야 40년간 불편한 시간을 보내게 하십니다. 가나안 땅에 들여 보내셨지만 항상 블레셋과 같은 이방인들의 손길을 통해서 끊임 없이 불편하게 하십니다.
언제까지…? 불편으로부터의 탈출을 포기할 때까지…. 이것이 진정한 출애굽이며 자유함이 아닐까요?
지난 6월 독일의 총리 메르켈이 은퇴를 했습니다. 어느 분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메르켈!
환상적인 작별
독일은 6 분간의 따뜻한 박수로
메르켈에게 작별 인사를했다.
독일인들은 그녀를 선택 하였고,
그녀는 16 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 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다.
그가 나라를 16 년 동안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고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 하지 않았고 자신보다 앞섰던 정치인들과 싸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 찍히려고 베를린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고
이 인물이 “세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성 (Angelika Merkel)이며, 6 백만 명의 남성에 해당하는 여인으로 묘사된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16년간을 국가 수반으로 다스린다는 것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동독 출신인 화학 물리학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동독 출신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1954년 많은 사람들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도망 나오고 있을 때 메르켈 총리의 아버지는 목사인데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사를 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불편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였는데 반대로 불편으로 자원하여 들어 간 것입니다. 그러한 아버지 밑에서 위대한 여성 지도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메르켈과 아버지는 이웃을 불편으로부터 탈출시키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불편을 자원한 부녀였던 것입니다. 이런 위인들을 통해서 오늘도 출애굽 역사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로 인해서 출팬데믹은 완성되지 않을까요?
인류의 출팬데믹은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불편에서의 탈출을 포기하시고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주님은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불편함을 거두실 것입니다. 지금은 잠시 우리를 위하여 이를 곳곳에 허락해 두신 것 뿐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편함’의 우상을 섬기지 못하게 하시려고 이를 우리 주변에 허락해 두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 위에 이를 거두실 때까지 스스로 불편을 자원하십시다. 우리의 이웃이 불편으로부터 탈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참 자유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해방하면, 노예 해방의 주인공 링컨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링컨은 남북 전쟁 와중에 에드윈 스탠튼을 국방장관에 앉힙니다. 실은 스탠튼은 링컨의 정치적 행보를 비난한 앙숙이었습니다. 자기를 국방장관에 앉히겠다는 링컨에게 스탠튼은 묻습니다.
“도대체 왜 내게 전쟁장관이라는 요직을 맡기는 겁니까? 조롱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링컨이 답합니다.
“흠, 사실 나도 처음에는 당신이 싫었어요. 하지만 싫기 때문에, 당신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법정에서 열정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는데요, 당신만큼 공적인 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그 정도 책임감과 투쟁력이라면 국방장관으로 제격이 아닐까 싶어요. 어때요? 나와 함께 나라를 위해 싸워보지 않겠소.”
불편으로 몸을 던지는 링컨의 모습을 역력히 느낄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흑인 노예 해방의 주인공이 되어 간 것입니다.
불편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은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 영원한 출애굽의 역사를 펼쳐 가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죄인들을 위해 불편으로 몸을 더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을 위해 불편으로 몸을 던지십시다. 주님과 더불어 자유인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