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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아이” 출애굽기 2:1-10 (05/01/2022)

한 어린이로부터 부활절 카드를 받았습니다. 내용을 소개해 드리면,

 

“Dear 이영길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은희예요. 지난 일요일에 우리 교회에서 유아 세례식을 했어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이영길 목사님께 세례를 받았대요. 그래서 목사님은 언니, 오빠, 나에게 어머니 목사님이라고 엄마가 말해 주셨어요. 세례해 주셔서 고마워요. 목사님 그리고 보스톤에 놀러가면 목사님 만나러 교회 갈게요. 꼭 보스턴에 계세요. 사랑해요. 목사님.”

Happy Easter,

이은희 드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약 2년전에 이지훈, 정은아 집사님 가정이 텍사스로 이주하셨습니다. 아마도 부활절을 맞이하여 지금 다니시는 교회에서 유아세례식이 거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집사님댁의 막내인 은희가 유아세례식을 보면서 아마도 부모님께 물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인 정 집사님이 보스톤 한인 교회 이영길 목사님에게 은희도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말해 준 것 같습니다. 덧붙이기를 세례를 준 제가 세 남매의 어머니 목사님이라고까지 설명을 해 준 것 같네요. 한편 이 표현이 제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목사님.’

 

최근에 새 교우님으로 오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어머니 교회를 강조해 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번도 스스로 어머니 목사님이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표현이었습니다. ‘어머니 목사님.’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내가 은희에게 어머니 목사님이 되었나? 유아세례를 베풀었다고 어머니 목사님이 될까…?’

어머니 목사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를 고심하는 축복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안에서 어머니 교회 그리고 어머니 목사님의 모습을 찾아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모세의 기구한 출생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거의 4백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점점 이스라엘인들이 강성해짐을 보자 바로왕은 태어나는 이스라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도록 명령합니다.

이 때 아므람과 요게벳이라는 부부가 한 아이를 갖게 됩니다. 본문에는 안 나오지만 민수기 26장에 보면 이들의 이름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아들을 낳았는데 너무 잘 생겨서 죽일수가 없었고 석 달 간을 숨겨서 키웁니다.

더 이상 숨길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아이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일 강에 띄워 보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나일 강 갈대 사이에 두고는 어떻게 되는지 살펴 보기 위하여 누이 곧 미리암을 보냅니다.

마침 바로의 공주가 갈대 상자를 보고 데려가려 할 때 미리암이 유모를 소개해 준다고 해서 드디어 어머니가 유모가 되어서 아이를 키우게 됩니다. 아마도 아기의 어머니가 아기가 꽤 성장하여 더 이상 젖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키운 것 같습니다.

이젠 혼자서 자랄수 있게 되었을 때 바로의 딸에게 데려 갑니다. 공주는 아기의 이름을 ‘모세’라고 짓습니다. 뜻은 ‘건져 냄.’ 강에서 건져 내었다는 뜻으로 지었는데 결과적으로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 노예 살이의 강에서 건져 내는 자가 된 것입니다.

 

말씀드린대로 민수기 26: 59 말씀에 모세의 어머니의 이름이 요게벳으로 나오는데, 요게벳의 모습을 살펴 보면 참 어머니 교회 어머니 목사의 모습을 알수 있게 될줄 압니다.

 

먼저 요게벳은 모세가 유난히 잘 생긴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자녀들이 성경구절을 암송하는 귀여운 모습을 보았는데 모두 잘 생기지 않았습니까? 특히 부모님들은 자기 자녀가 제일 잘 생겼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출애굽기자는 모세가 잘 생긴 것을 보았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어떤 뜻일까요? 저는 이렇게 풀이하고 싶습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놀라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희망찬 모습 보다 더 잘 생긴 얼굴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게벳은 이 아이는 이스라엘에 희망을 주는 아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요?  어떤 역경도 뚫고 세상에 희망을 주는 아이….

그렇다면 어머니 교회 어머니 목사의 첫번째 특징이 무엇인지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자녀들 모두가 희망의 아이들임을 볼줄 아는 눈을 소유한 것일줄 압니다.

 

자녀들이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실제로 학교를 않 가려고 할 때 부모님들은 모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줄 압니다. 무라타라는 일본인의 아들이 초등학교 4 학년 때부터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하자 한 동안 몰아 붙여서 학교를 가게 하였지만 그래도 학교 보다는 아이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무리하게 몰아 붙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던 아들이 멀리까지 가서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되어 찾으러 나섰다가 긴 언덕길에서 고개를 숙이고 최선을 다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올라오는 아들을 봤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는 혼자라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하나의 계기가 돼 내 안에서 학교나 학력과 같은 것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순간 아들과 대등한 인간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유는 아들 안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순간 최고의 미남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게벳은 모세 안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자기와 대등한 인간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모세를 최고의 미남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어떤 역경도 뚫고 나가고도 남는 멋진 사나이…. 그렇지만 아직도 어린 아이였습니다. 3개월밖에 되지 않은…. 3절,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결국 한 가지 지혜가 떠 올랐습니다.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해서 나일 강에 띄운 것입니다. 갈대 상자를 그대로 띄우면 물이 새 들어와 금방 강물에 빠지게 되니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해서 작은 요람이자 배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가 할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사실 ‘갈대 상자’하면 떠오르는 책 이름이 있습니다. 한동대 김영길 총장님의 사모님 김영애 권사님께서 한동대 이야기를 쓴 간증집입니다. 사모님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 학교를 세우느라 모금운동을 시작하는데 그 이름을 ‘갈대 상자 모금’으로 정합니다. 이유는 갈대 하나 하나가 연결되어서 상자가 되고 이 갈대 상자가 결국 희망의 아이인 모세를 모세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모금자들이 갈대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모금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갈대 하나 하나를 줏어 모았습니다. 그래서 갈대 상자가 된 것입니다. 모금자들이 만든 갈대 상자에 역청과 나무 진은 김영길 총장님 내외분이 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감옥에도 갇히기도 하십니다. 이 모든 어려운 시간들은 바로 갈대 상자에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시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지 않고 강 위에 띄우면 그 안에 있는 희망의 아이들은 주어진 소명을 다하지 못합니다. 이 두 분들에게는 한동대 학생들이었겠지요.

 

한편 김영길 총장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한 이유를 프랜시스 쉐퍼의 말을 빌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고 합니다.

“21세기가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목적 없이 돈을 벌고 진리가 없는 교육을 하고 의미가 없는 사랑을 나누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일 강에 그대로 갈대 상자를 띄울수가 없어서 두 내외 분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했던 것입니다. 감옥에 갇히시면서 까지…. 학생들을 위하여….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다시 모세의 이야기로 돌아 가서, 요게벳이 나일강에 모세를 띄웠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오게벳의 품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게벳의 품에서 모세는 모세가 되어 간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로 지킵니다. 정말로 저희 어린이들은 모두 희망의 어린이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자녀들은 갈대 상자가 필요합니다. 어릴 때뿐 아니라 장성해서도…. 왜냐하면 언제나 나일강이 우리 자녀들을 삼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갈대 상자는 역청과 나무 진을 필요로 합니다. 역청과 나무 진은 자녀들을 위한 우리들의 따뜻한 눈길입니다. 희망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향했던 마음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위한 눈물과 수고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모세를 나일강에서 구해서 이스라엘을 구하게 하신 능력의 하나님의 손에….

 

최근에 오신 교우님들은 생소하시겠습니다만 제가 저희 교회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기도드릴 때 생각나는 영어 알파벳이 있습니다. YPK.

 

Y는 윤동주를 가르키고 P는 사도바울, K는 마틴루터킹입니다. 아울러 이 세 인물은 각기 어머니 교회가 있습니다. 윤동주는 연변에 있는 한인 이민 교회인 명동교회, 사도바울은 성경에  나오는 이민교회인 안디옥 교회, 마틴 루터 킹은 미국에 있는 흑인 이민 교회인 에벤에젤 교회.

저는 지난 수년간 기회만 있으면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교회가 본받아야 할 세 이민 교회가 있는데 이 세 이민 교회는 각각 희망의 아이를 세웠던 교회들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는 사도바울, 에벤에젤 교회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명동교회에서는 윤동주.

 

그리고 이들은 험한 폭풍을 뚫고 끝까지 희망의 항해를 잘 마쳐서 인류에 크게 공헌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끝까지 항해를 멋지게 마칠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교회 곧 어머니 교인들과 교역자들의 눈물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YPK를 되뇌이는 이유는 우리들의 자녀들은 희망의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YPK를 외치며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제는 저희 썬플라워 자녀들이 주일에는 다시 ECC Chapel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채플은 저희 ECC건축의 꽃이라고 할 만큼 너무 예쁘게 잘 만들어졌습니다. 안에만 들어서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채플 자체는 하나의 갈대 상자입니다. 그 갈대 상자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채플이 있기까지 헌금하신 분들뿐 아니라 완성되기까지 역청과 나무 진을 찾아 헤메고 다니셨던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지금도 매주일 역청과 나무 진을 구하여 오시는 분들 때문이라고 봅니다. 특별히 교사 선생님들….

물론 지금도 매달 건축비 상환금을 내고 있으니 직접 교육부에 관여는 안 하셔도 헌금하시는 모든 분들도 함께 역청과 나무 진을 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도 이렇게 매주 역청과 나무 진을 구하는 이유는 우리 자녀들은 희망의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의 YPK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계속 어머니 교회가 되십시다. 어머니 제직, 어머니 교우, 어머니 교역자들이 되십시다. 갈대 상자가 새지 않도록….

그리고 언젠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희망의 아이들에게 전해 주십시다. 우리가 어떻게 갈대상자를 만들었고 역청과 나무 진을 칠했는지를…, 자주 자주. 장성해진 후에도 우리들이 전해 준 이야기는 자녀들을 위한 역청과 나무 진이 되어 갈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안전한 갈대상자에서 자란 저희 자녀들은 온 세계를 그리스도의 세계로 바꾸는 위대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염평안 작곡가는 요게벳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다음과 같이 부릅니다. 첫 부분만 소개해 드립니다.

 

요게벳의 노래

 

작은 갈대상자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흐르고 흘러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보고 있는

아이와 입을 맞추고

상자를 덮고 강가에 띄우며

간절히 기도했겠지

 

정처 없이 강물에 흔들 흔들

흘러 내려가는 그 상자를 보며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겠지

 

이 노래를 들으며 모세는 모세가 되어 갔던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이 노래를 들으며 주님의 역사의 주인공들로 자라 갈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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