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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요한계시록 2:12-17 (06/10/2022)

1902년 뉴욕 브롱스에서 독일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에릭 호퍼라는 분이 있습니다. 일곱 살에 사고로 어머니를 여의고 시력을 잃었습니다. 열 다섯 살에 극적으로 시력을 되찾은 후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여 떠돌이 노동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되뇌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혼자 몸이었지만 두려운 것은 없었다…. 굶은 지 사흘째 되는 날에는 마치 누가 손으로 내 위를 쥐어짜면서 가슴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았다…. 배고픔은 두려운 것이 될 수 없었다…. 나 외에는 다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부두 노동자, 농장 노동자로 일하며 틈틈이 책을 읽고 사색했습니다. 몇 권의 책을 내면서 일약 ‘거리의 철학자’라는 이름을 얻었고,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습니다. 추수감사절에 그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산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헤아리는 것이다.”

 

에릭 호퍼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산수는 주어진 축복을 헤아리는 것이다’라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어려운 산수는 혹시 또 있지 않을까요?

 

오늘 세번째 교회인 버가모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 사자에게는 조금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2:12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왜 주님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버가모 교회 사자에게 나타나시는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혹시 제일 어려운 산수 문제를 주시려는 것은 아닐까요? 13절,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우선 겁을 주셨지만 겁먹은 버가모 교인들을 도리어 칭찬해 주십니다. 버가모 교회가 나은 위대한 순교자 안디바를 주님은 기억하시고 계시고 그의 이름을 언급하십니다.

 

어느 주석가는 첫번째 교회로 소개된 에베소는 상업의 최고 도시라면 버가모는 권력의 최고 도시였다고 말합니다. 곧 에베소를 미국의 뉴욕이라고 생각한다면 버가모는 미국의 워싱톤 DC라고 생각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편 버가모에는 아주 큰 제우스 신전이 있어서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최고의 권력과 우상 숭배가 판치는 곳에서 안디바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배도할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좌우의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께서 도리어 칭찬해 주십니다.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버가모 교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저 칼은 자기들을 향한 칼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놓고 있는데, 14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버가모 교인들은 정말로 믿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발람인데 바로 자기들 안에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고 그러기에 시퍼런 칼은 자기들을 향하고 있었던입니다.

 

시간 관계상 짧게 발람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지날 때입니다.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 민족을 두려워 해서 발람이라는 주술사 무당을 불러 옵니다. 세 차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합니다.

그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 민족중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한 마디로 점쟁이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실은 버가모 교인들은 자기들 중에는 안디바와 같은 순교자도 있고, 그 때도 아무도 배도하지 않았으니 자기들 안에는 점쟁이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의아해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쐐기를 박으십니다. 15절,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니골라 당에 대해서는 첫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대해 나눌 때 말씀드렸습니다. 아마 버가모 교인들은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는 당대에는 에베소 교회에만 있는줄 알았을 것입니다. 니골라 당은 당대의 최고의 상업 도시 곧 당대의 뉴욕인 에베소에만 있는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대로 니골라 당은 영과 육을 구분하는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영으로 구원을 이미 받았으니 육신적으로는 어떤 죄를 져도 상관 없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당연히 물질적으로 부요하게 되면 이런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물질적 풍요 가운데서 하나님의 축복을 물질로만 계산합니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축복은 셀수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는 끝없이 넓은 정욕의 세계로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인들은 그렇다치고 버가모 교인들은 왜 하나님의 축복이 가장 어려운 산수임을 잊게 되었을까요? 에베소는 그래도 부요한 도시이기에 그럴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16절,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왜 뜬금 없이 회개하라고 하실까요? 회개하지 않을 때 어느덧 무당을 따라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죄가 하나 둘 쌓아 갈 때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니골라 당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세는 것이 가장 어려운 산수임을 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구약에 나오는 니골라 당에 빠져 있었던 대표적인 사람을 소개해 드립니다. 들으면 정말로 깜짝 놀랄만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왕입니다.

어느 날 왕궁에서 낮잠을 자다 깨서 밖으로 나와 보니 아래 골짜기 시내에서 한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신하를 시켜 궁으로 데려 오게 합니다. 우리아 장군의 아내였습니다. 얼마 후 연락이 왔는데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우리아 장군에게 특별 휴가를 줘서 집으로 와서 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 장군은 전장터의 장병들을 생각하며 집에 들어 가서 자지 않았습니다.

이를 안 왕은 우리아 장군을 최전방에 보내 죽게 합니다. 왕은 우리아의 아내를 왕궁에 들여 자기의 아내로 삼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왕에게 문의합니다. 부한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 부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착취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이에 왕은 나단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삼하 12: 5, 6)

이에 나단이 다윗에게 외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나단은 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회개하라.”

 

다윗은 니골라 당의 교훈에 젖어 있었습니다. 부와 음행의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 앞에 행했던 의로웠던 일들에 스스로 취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골리앗을 무찔렀고 드디어 이스라엘 통일 왕국을 세워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 사이 어느덧 죄는 먼지 처럼 차곡 차곡 쌓여 갔던 것입니다. 먼지의 숫자를 아무도 셀수 없는 것처럼 죄도 셀수 없습니다. 결국은 자신의 죄를 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멈추질 않습니다.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게 됩니다.

 

아마 버가모 교인들도 자기들 중에는 안디바 같은 순교자도 나오니 회개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회개의 눈물을 흘린적이 까마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님은 좌우의 날선 검을 휘두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사실 하나님의 축복이 셀수 없는 어려운 산수라면 우리들 안에 내재한 죄를 세는 것은 어떤 방정식으로도 풀수 없는 상상할수도 없이 어려운 산수입니다.

곧 이런 결론을 내릴수 있습니다. 니골라 당의 교훈에 빠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에베소 교인들처럼 물질적으로 부요하기에 빠집니다. 또 하나는 스스로 회개할 죄가 없다고 생각할 때 어느덧 무서운 죄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영과 육을 갈라 놓고 스스로 육신의 정욕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좌우의 날선 검을 휘두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그런데 가만히 살펴 보면 흥미로운 점을 보게 됩니다. ‘회개하라’ 말씀하시고는 ‘회개하지 않으면 당신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 안 하면 그들과 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그들은 당연히 니골라 당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곧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니골라 당과 싸우시겠다는 뜻일까요?

문자적으로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석할수가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회개하라. 그들을 사랑하냐? 그러면 회개하라. 너희가 회개할 때 그들이 다치지 않는다’라는 뜻이 분명히 내포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 회중 기도하시는 어느 집사님께서 ‘이웃의 죄를 위하여 회개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 마음에 깊게 와 닿았습니다.

사실 제가 항상 그 다음주 말씀도 이미 구상을 하고 그래서 주보에 다음주 설교 본문과 함께 제목을 실습니다. 저는 그 때 이미 오늘 말씀에는 이웃을 대신하는 회개의 기도가 버가모 교회에 주시는 말씀의 주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께서 제 생각과 같은 맥락에서 기도를 하셔서 아주 기뻤습니다.

니골라 당에 빠져 있는 자들을 위해서 대신 회개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회개해야 하고 아울러 그동안 그들을 위해서 회개하지 않은 것까지 회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만일 니골라 당에 빠져 있는 자들을 위해 회개의 기도를 계속 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들은 더 악한 니골라 당이 되어 가지 않을까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는 두 가지 어려운 산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세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들의 죄를 세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한편 둘 중에 더 어려운 산수가 무엇일까요? 두번째 곧 회개입니다. 이를 주님께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열거하실 때 잘 밝혀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6: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우리 힘으로는 죄를 깨달을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반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성령의 도움 없이도 셀수가 있습니다. 곧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장 어려운 산수를 푸는 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사실 회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개인이 지은 죄를 위한 회개, 공동체가 지은 죄를 위한 회개. 이 때 어려운 산수를 푸는 첫 관문을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승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곧 일곱 교회를 통해서 참 승리자의 모습을 주님은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에베소 교회를 통해서는 첫 사랑을 회복하는 삶을 승리자의 모습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를 통해서는 환난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극복함을 통해 죽도록 충성하는 자가 참 승리자의 모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버가모 교회를 통해서는 회개하는 공동체, 곧 산수 왕이 되는 것이 승리자의 모습으로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어떤 산수 왕이냐? 우리 안의 죄 아울러 공동체의 죄가 셀수 없는 것을 깨닫는 산수왕이 바로 승리자인 것입니다.

 

이 승리자에게는 어떤 선물이 주어질까요? 1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니골라 당원들이 받지 못하는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집니다.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십니다. 그런데 흰 돌 위에는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이는 받는 자 밖에 모른다고 합니다. 주석가들은 자기 나름대로 만나와 흰 돌을 풀이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밝힙니다. 확실히 알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결론 내릴수 밖에 없습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만나와 흰 돌이 주어집니다. 회개하는 자는 이 신비를 홀로 소유하게 됩니다.

 

마치 다윗 왕이 회개한 후 영원한 이스라엘을 약속받았습니다. 자기를 이을 자가 음행으로 얻은 아내를 통해 나은 솔로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신비한 체험을 한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되십니다. 우리들의 죄를 헤아릴수 없음을 고백하십니다. 각자의 죄와 공동체의 죄가…. 아울러 우리들에게 주신 축복도 헤아릴수 없음을 고백하십니다. 각자의 축복과 공동체의 축복을…. 이 모든 축복의 시작을 위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말씀을 거둡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초의 흑인 대통령 만델라가 럭비 국가 대표팀 주장을 관저로 불렀습니다. 주장에게 말합니다.

“대표팀에 흑인들을 넣어 주시오.”

대표팀은 백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많은 경우 흑인들은 자국이 아닌 상대국 대표팀을 응원하곤 하였다고 합니다. 두번째 당부는,

“월드컵에서 꼭 우승해 주시오.”

최약체로 구분이 되어 오던 차에 모든 팀들이 붙고 싶은 팀이었는데 주장은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만델라는 그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며 숙소로 돌아가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이러쿵 저러쿵 훈수나 둘려는 사람이 중요할리 없지요. 정말 소중한 사람은 경기장에 있는 투사들입니다. 투사는 부단한 열정으로 대의를 좇아 성심을 다해 몸 바쳐 싸웁니다. 잘 되면 승리의 결실을 맛볼 것이요. 설사 진다해도 대담하게 맞서다 쓰러질 것입니다.”

이 글은 실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퇴임 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강연한 것으로 흔히 ‘경기장의 투사’로 불리는 명연설이라고 합니다. 결국 남아공대표팀은 월드컵 우승을 걸머지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남아공 대표팀들은 루스벨트의 ‘경기장의 투서’연설로 우승을 걸머 쥐었는데, 버가모 교회를 비롯 일곱 교회는 어떻게 우승을 걸머 쥐었을까요? 이 당시는 최악의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다스리고 있을 때인데…?

“회개하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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