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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과 천국” 마태복음 13:33 (03/12/2023)

먼저 순천의 소녀시대가 만든 책을 소개해 드립니다.

꽃망울 터지듯 피어난 가슴 속 이야기… '순천 소녀시대'의 인생 그림일기 | 서울신문

책 제목이 눈에 띕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20명으로 구성된 예쁜 소녀시대 멤버들 모습입니다.

순천 소녀시대 할머니들 그림책 작품, 부산 간다

 

이 분들은 어릴 때 학교를 다니지 못해 글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2016년에 순천시에서는 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였고 이들은 초등학교 과정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소녀들의 나이는 60대 후반에서 80대까지…. 70, 80대에 들어서 겨우 배운 한글이지만 한글을 가지고 드디어 사회생활을 적응해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약 3년간 학교를 다녔는데 한글만 배우기 어려우니 한글과 함께 그림그리기를 배웠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그린 그림 안에는 그 들의 전 삶이 녹아서 아름다운 예술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작품들이 그림 일기 책으로 발간케 되었습니다. 한편 그들의 작품은 한국을 순회한 것은 물론 미국과 이태리까지 전시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순천 소녀시대' 할머니 작가 미국 순회전시에 가다 < 순천 < 전남 < 기사본문 - 현장뉴스(field News)

 

대표적인 그림 하나만 보여 드립니다.

영상]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② | 이슈파이 '순천 소녀시대' - 경향신문

 

보면 볼수록 책 제목을 아주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이 분들의 작품을 보면서 한편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분들이 어릴 때 제대로된 교육을 받았더라면 과연 이런 작가들이 될수 있었을까?’

 

그런데 우리 주님도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 안에 있는 놀라운 잠재력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33절,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비유는 천국 이야기라고, 그리고 항상 역설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왜냐하면 이 땅에 사는 자들에게 하늘 나라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는 깜짝 놀라게 하는 역설적 표현을 사용할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유를 잘 해석하려면 청중이 누구인지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두 주 전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드릴 때 청중은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온 일반인들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의 비유도 같은 청중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비유를 듣기 전에 이미 청중은 몇 가지 비유를 들었습니다. 제일 먼저는 잘 알려진 아직 나누지 않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13:3 하반절,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그리고는 가라지의 비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24절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그 다음으로는 겨자씨의 비유가 나오는데 이렇게 시작합니다. 31절,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 세 비유의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쉽게 알수 있습니다. 모두 남성입니다. 헬라어 원어 성경은 남성 여성 중성이 잘 구분되어 있는데 모두 남성입니다. 남성 중에서도 농부에 가깝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농부들은 권력가들이 아닙니다. 총칼을 든 사람들에게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세상적으로 약한 농부들의 이야기로 천국을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쩌면 하늘나라는 농사 짓는 것과 유사하니 농부의 이야기를 많이 비유에 사용하셨을수도 있습니다.

 

이에 청중은 특히 농부들은 귀담아 주님의 비유를 듣고 있었을줄 압니다. 세번 남성을 주인공으로 천국의 비유를 말씀하시니 청중은 계속 기대할줄 압니다. “당연히 다음 비유를 말씀하신다면 남성을 주인공으로 또 말씀하시겠지….” 그런데…,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세번 연속해서 남성을 주인공으로 말씀하시더니 이번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으십니다. 청중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잘 아시죠?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는데 모든 성경기자들은 장정 오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았다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이유는 이 당시는 아이들과 여인들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비유의 주인공으로 드디어 여인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것까지는 좋습니다. 주님은 천국을 누룩과 같다고 표현하십니다.

사실 이 당시는 ‘여자’를 무시하던 시대입니다. 한편 이 당시 ‘누룩’의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은 때였습니다. ‘여자’도 ‘누룩’도 천시 여기던 시대입니다.

물론 여자도 꼭 필요하고 누룩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천시하던 아주 모순적인 시대였습니다.

누룩이 천시된 것은 주님도 인정하신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6: 6절 말씀을 보면,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곧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실 때 누룩을 비유로 사용하실 정도로 이 당시 이미 이 당시 누룩에 대한 이미지를 주님께서도 잘 아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이 당시 상황을 잘 아시면서도 과감하게 천국을 소개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천시 여기는 ‘여인’과 ‘누룩’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시는 것입니다.

 

요즘도 종종 어릴 때 저의 모습이 생각이 나곤합니다. 제가 어릴 때니 거의 60년전입니다. 초등학교 2, 3학년때는 멀리 걸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혼자 걸어 오면서 이런 저런 day dreaming을 하면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몽상이 있습니다. ‘우리 집이 과자 가게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하면서 마음껏 과자를 먹는 모습을 상상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당시는 이북보다도 못 살았을 때이니 요즘 젊은이들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할줄 압니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집안 문을 들어서는 데 빵 구운 냄새가 앞 마당에 가득찰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행복한지요.

실은 바로 전날 어머니와 일하시는 아줌마가 밀가루 반죽을 해서 따뜻한 아랫목에 넣고 하루 밤을 지낸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학교에서 돌아 오는 시간에 맞추어 빵굽는 기계에 넣어 놓으신 것입니다. 두 여인과 밀가루 그리고 누룩이 조화를 이룰 때 저는 천국을 맛보곤 했던 것입니다.

물론 요즘은 전혀 이런 몽상에는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만일 집에 들어 왔을 때 힘들게 집 사람이 빵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면 저는 기겁을 하겠죠. 건강을 위해 현미밥을 먹고 사는데 어떻게 빵을…. 결코 천국의 향기로 다가오지 않을줄 압니다.

주님의 비유를 듣는 많은 사람들도 비슷했을줄 압니다. 어떻게 천국의 주인공으로 여인을 그리고 누룩을 삼고 있는지 기가 막혀 했을줄 압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지난번에 말씀드린대로 neural coupling(신경 동조화)가 일어나신 분들은 무릎을 칠 것입니다. 신경 동조화는 말씀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이 같은 뇌파가 형성되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머리 속에는 주님께서 말씀하려 하시는 놀라운 천국 이야기가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여인과 누룩!

 

처음에 순천 소녀시대를 소개해 드렸는데 KBS등 여러 방송국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 같이 같습니다. 여자 아이이니 학교를 다닐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이면 몰라도 70년전 순천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평생 글도 못 배웠고 달력도 볼수 없이 70, 80년을 살아 오셨다고 합니다. 그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로서 지내 온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침묵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삶의 아픔을 어디에도 말할수가 없었던 침묵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서 미국과 이탤리까지 그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사회는 여인을 침묵하게 만들었지만 침묵은 오랜 시간이 지난후 새롭게 최고로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누룩도 매한 가지입니다. 누룩이 삶에서 그렇게 필요하지만 늘 천시를 받고 있습니다. 천시 받는 누룩은 항상 말없이 자기의 일만 묵묵히 행합니다. 이처럼 천국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곳에서 버림받은 자들로 인해서 묵묵히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침묵은 바로 버림받은 자들의 누룩이 아닐까요? 여인들의 누룩은 바로 여인들의 침묵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순천 소녀시대들은 우리에게 이 표현을 새롭게 해석하게 합니다.

‘오랜 침묵 가운데 나온 말이 금이다.’

 

Lohmann이란 분의 ‘기원’이라는 시의 일부를 소개해 드립니다.

 

“우리가 입 안에 물고 있는 조약돌들은

우리의 노래 연습을 도와주고, 우리는 바다를 향해 노래합니다.”

 

입 안에 조약돌이 물려져 있습니다. 이는 침묵하게 했다는 것이 아닐까요? 도리어 조약돌로 인해서 노래 연습이 잘 되었다고 말합니다. 조약돌로 인해서 침묵하게 되었지만 도리어 침묵후 금과 같은 노래가 불리워졌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 노래는 세상이 아니라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가는 노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침묵의 노래는 도리어 먼 바다를 항해하게 됩니다. 온 세계를 감싸는 노래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시인은 또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숨결을 타고 날아가는 깃털

그것이 거룩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소서”

 

침묵이라는 누룩을 소유한 자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침묵에서 흘러 나오는 말들은 하나의 깃털이 되어서 거룩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물론 그렇다고 침묵의 주인공들은 여인들만이 아닙니다. 남성들도 침묵의 주인공이 될수 있습니다. 소설가 김훈 작가가 이순신의 생애를 담은 소설 ‘칼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죄송하게도 저는 그 좋은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다른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훈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섭렵하신 것 같습니다. 김훈 작가는 이순신의 글이 마치 문학소녀의 일기처럼 섬세함에 놀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결코 옥중일기에는 억울한 옥고에 대해서는 일체 침묵한다는 것입니다. 김훈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마음을 토로합니다.

 

“소설에 차마 못 썼던 대목이 있으니 바로 그 분의 침묵입니다. 한산도에서 서울로 끌려간 이순신은 임금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조정을 능멸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어 통제사직을 박탈당하고 백의종군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 …… 이순신도 사람인데, 연전연승하는 장군을 고문으로 몸을 망가뜨리고 군인의 명예를 다 짓밟아 다시 전쟁터로 나가라고 한다면 조선의 왕과, 정치권력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취중에도 그 일에 대해 단 한마디 말씀을 한 적이 없는 것이죠. 죽을 때까지, 그렇게 기록을 좋아하시는 분이 일기나 편지에도 그 일을 쓴 적이 없습니다. …… 그 분은 그렇게 가슴에 다 묻고 간 것입니다. 그런 침묵을 바탕으로 명량에서 이기게 됩니다.”

 

김훈 작가는 그 유명한 명량해전의 승리를 이순신의 누룩 이순신의 침묵에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순신의 승리가 침묵에 있었는데 그러면 우리 주님의 승리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오늘 사순절 셋째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침묵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마가복음 15장에 잘 소개되어집니다.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산헤드린 공회와 짜고 주님을 빌라도에게 넘겨 줍니다. 빌라도가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 말이 옳도다.” 이에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합니다. 빌라도가 또 묻습니다.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주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런데 그 침묵에서 무서운 힘을 느낀 것 같습니다. 빌라도는 놀랍게 여겼다고 마가는 기록합니다.

주님도 침묵이라는 누룩의 주인공이 되신 것입니다. 이순신의 침묵이 조선을 구한 것 처럼 주님의 침묵은 온 인류를 구원한 것입니다. 침묵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누룩입니다. 그러나 이 누룩이 온 세계를 구원하는 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침묵하셨지만 속으로도 침묵하셨을까요? 저는 주님께서 침묵 중에 하신 말씀을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드디어 침묵을 깨십니다. 누가복음 23: 34 상반절,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침묵 끝에 하신 이 고백이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한편 이 고백을 스데반이 이어 받습니다. 스데반이 설교를 한 후 사울과 그의 일당이 돌로 칩니다. 사도행전 7: 60절,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 스데반의 기도로 인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바로 사울, 후에 사도바울이 됩니다. 사도바울도 평생 이 침묵의 기도의 주인공이 되어 간 것입니다. 누룩의 주인공이 되어 간 것입니다.

 

침묵은 누룩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러나 침묵은 바로 천국의 능력이 임하는 놀라운 시작입니다. 침묵의 능력은 누룩처럼 온 세계를 뒤덮습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 침묵의 사람들이 되어 가십시다. 침묵이 우리들의 말보다 훨씬 더 큰 위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침묵에 동참하십시다. 이 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고백입니다.

 

“이 순간

소리가 없음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이기네”

 

침묵하십시다. 우리가 침묵할 때 주님의 소리가 이깁니다. 주님의 소리를 온 인류가 듣도록 침묵하십시다. 주님은 침묵을 깨고 십자가에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또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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