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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25-34 (07/16/2023)

저의 친구가 자신의 책을 몇년전에 보내 왔습니다. 책 제목은 ‘늙음 오디세이아.’ 제목을 보고 좀 의아했습니다. 저런 제목으로 책이 팔릴까…? 물론 얼마나 팔렸는지 아직 물어 보진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안 물어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쓰게 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요즈음 뭐하고 지내?”

여러번 질문을 받다보니 정답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늙는 걸세.”

스스로 대견한 답이라 여겨 늙음에 관한 지적 여행을 서사할 용기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사시의 대표작인 ‘오디세이아’를 붙여서 ‘늙음 오디세이아’라는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목이 말해 주듯이 늙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서사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릿말을 다음과 같이 마칩니다.

“늘 첫 번째 독자인 아내 박인숙과 함께 늙어갈 수 있도록 의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 대학 동기 중 찾기 어려운 교회 장로이기도 합니다. 그는 노인병 의사인데 자기의 모든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훌륭한 책을 펴냈습니다. ‘늙음의 샘’이라는 글로 마치는데,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월이 억지로 거꾸로 갈 수 있나. 청춘에서 늙음으로 이름이 바뀐 바로 그 샘을 찾아 열심히 늙자.”

한편 그가 인용한 글도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빅터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나오는 독백입니다.

“은총이 주름 사이사이에 섞일 때 늙음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것. 만개한 늙음에는 뭔지 모를 새벽의 빛이 있다.”

사실 친구가 ‘늙음 오디세이아’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은 그는 늙음은 새벽의 빛으로 가득찬 샘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상록기도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이 시간 먼저 감사드릴 것은 지난번 한 가족 예술제에 참여해 주셔서 그야 말로 삼세대 잔치가 완벽하게 해주셨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그 때 참여하시지 않으셨다면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이 많았겠는데, 이미 참여하셔서 삼세대 교회의 아름다움을 빛내게 해 주셨기에 더 드릴 말씀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말씀을 드려도 괜찮은 이유를 하나 찾았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언젠가 청춘에서 늙음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치게 될 교우님들을 생각하며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떤 삶을 사는 자들이 늙음의 샘에서 새벽의 빛을 온 세상에 발하는 자들이 될까요? 33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오늘의 말씀은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은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하신 첫번째 설교 말씀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들으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에서 무엇인가에 짓눌림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25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사람들은 지금 한참 뜨고 있는 이 젊은 지도자를 통해서 의식주를 해결하고픈 마음으로 나왔을줄 압니다. 뭔가 비결을 얻길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무리들이 원하는 부자되는 비결은 말씀하시지 않고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음식이 없으면 죽으니 음식 없이 목숨이 중요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 그리고 의복이 없으면 몸이 귀하긴커녕 수치감만을 느끼게 하는데…!’

이를 눈치채셨는지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29-30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는 주님께서 야단치시는 것입니다. 특히 얼굴에 근심이 가득찬 사람들을 향하여 소리지르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저주하셨는데 근심에 가득찬 자들에게는 구약에 흔히 나오는 표현을 들자면 ‘벌레만도 못한 자들아’ 소리치시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표현하셨을까요? 그들은 아니 너희는 너무 너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소중한지 주님 보시기에는 솔로몬보다 더 소중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솔로몬이 늘 걱정합니다.

‘내일은 내 밥상에 물만 올라오지 않을까? 내일 입을 옷이 없으면 어떡하지?’ 이런 솔로몬의 모습을 보면 주위 사람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눈 앞에 가득찬 무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소리치실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이 벌레 같은 믿음이 작은 자들아.”

32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벌레 취급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이방인처럼 벌레가 된 자들을 꾸짖으시면서 그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역설하십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이 시간 상록기도회분들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별로 없던 시대를 사시면서 믿음으로 승리하셨기에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승리자들이십니다.

그러면 이미 승리자가 되신 여러분들이 이후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사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오늘 말씀을 위해서 책 두 권을 참고했는데 하나는 말씀드린 ‘늙음 오디세이아’이고 또 하나는 미국인으로서 영성가인 파커 파머 교수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라는 책입니다. 이 책도 ‘나이듦’에 대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제가 있습니다.

“인류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한번은 상담자이자 친구에게 자기 결점을 하나 털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 때 잊을 수 없는 축복을 받습니다. 친구가 말합니다.

“인류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친구는 자신이 넘어졌다는 사실에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 도리어 저자는 자신이 받아드려졌다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오래전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하늘나라에 간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저에게 와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마치 천주교에서 고해성사를 하듯이….

물론 저는 그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에게 입밖에도 내지 않았습니다. 잘 기억에 나지는 않지만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줄 압니다.

“주님께서 용서해 주실 거야!”

 

그런데 이렇게 말했다면 어떠햇을까요?

“인류가 된 것을 축하해.”

 

사실 친구는 젊은 시절 젊은 혈기에 멋지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먹고 살기 힘든 이 세상에서 갑자기 유혹에 넘어 간 것입니다. 실수한 것입니다. 물론 친구는 저의 반응을 보고 기분나빠하지 않았습니다. 실은 친구는 저에게 고해성사를 하러 왔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고백함을 통해서 이미 친구는 주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말을 덤덤히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용서해 주실 거야!”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주는 숨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래 맞어 너는 죄를 지었어.”

 

그런데 만일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인류가 된 것을 축하해!”

친구의 뇌에서는 지진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 한 마디 말에는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들렸을 것입니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잠시 유혹에 빠져서 죄를 짓는 것은 모든 인류가 하고 있는거야! 괜찮아 다시 해 보자.’ 이 말을 듣고 제 친구가 또 다시 같은 실수를 하게 되었을까요?

 

파머 교수의 말을 빌리면 자기는 받아드려졌다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웃에게 이 말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파머 교수는 바로 이 말을 20년 아래인 동료에게 보냅니다. 정확히는 이 제목으로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교수로서 젊은이들을 가르쳐 왔는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는 우리가 그들 이 갖고 있는 두려움, 꿈, 그리고 미래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갈망한다.”

젊은이들은 어르신들로 부터 이 말을 듣기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된 것을 축하해!”

 

사실 요즘 젊은이들의 마음은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에 강남에 사는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아무리 좋은 학교를 다녀도 자신감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들에 비해서 초라해 보이니까. 곧 스스로 벌레와 같은 느낌이 마음 속 깊이 스며들어 있을지 모릅니다.

저희 교회 젊은이들 안에도 있지 않을까요?

 

이럴 때 어르신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봅니다.

“인류가 된 것을 축하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거야.”

이것이 바로 힘든 세상에서 어르신들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사는 최고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러면 어르신들은 늘 주시기만 해야 하나요?

이제부터는 아직 상록회에 속하지 않으신 분들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이가 들게 되면 또한 열등감이 스며들기도 합니다. 저희 장모님께서 몇 년간 함께 보스턴에서 생활하셨고 기억나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압니다. 교수로서 정년 은퇴하셨는데 저희 집사람에게 종종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은퇴하고 나니 열등감 소외감이 생겨….”

이러한 맥락에서 파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0대 젊은이들이 거의 네 배의 세월을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당신에게서 배우고 싶다”고 말해주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저희 교회에도 종종 젊은이들이 어르신들께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아름다운 장면을 봅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젊은이들이 어르신들께 이런 말을 드린다면 정말로 기가 막힌 축복이 임하지 않을까요?

“어르신에게서 삶을 배우고 싶습니다.”

 

사실 요즘 젊은이들이 어르신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정말로 쉽지 않다고 봅니다. 저만 하더라도 요즘 저의 제1스승은 어느덧 구글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책을 뒤적이면서 고민하던 것을 일단 구글에 넣어 봅니다. 많은 경우 쉽게 답을 얻습니다.

어느 교우님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영어로 application을 써야 하는데 ChatGPT도움을 받아 보았다 합니다. 물론 그 덕에 쉽게 합격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요즘은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배울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을 소중히 여기며 이런 말을 할 때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이루어지는 곳은 바로 서로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삼세대 교회 안에서 추구되어야 하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아닐까요?

 

제가 오늘 설교 말씀을 준비하면서 두 권의 책을 참고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한국인 곧 제 친구의 책이고 다른 책은 미국인의 책입니다. 한글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번역사는 책 말미에 인삿말을 통해 파머 교수를 만난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파머 교수는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영문으로 번역한 시를 함께 읽자고 제안하셨다는 것입니다. 파머 교수는 오래전 함석헌 선생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의 시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부만 다시 소개해드립니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서로에게 그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이는 구글이 대신할수 없습니다. ChatGPT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말합니다.

“인류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도 바로 그 사람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다음 사람에게 말합니다.

“인류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삼세대 공동체는 ‘그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를 이끄시는 분들은 이미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셨던 상록기도회분들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조선 땅에 선교사로 발을 디딘 감리교 아펜젤러 선교사에 대해서 많이들 잘 아실줄 압니다. 그는 신혼 직후에 한국에 와서 17년 간 선교 사업에 열중하였는데 배재학교 설립, 정동제일감리교회 설립 등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갑자기 찾아 왔습니다. 1902년 6월에 목포에서 성경번역위원회가 모여 참석할 예정으로 6월 11일 배를 타고 인천을 떠났는데 그 배가 군산 근천에서 다른 배와 충돌하여 침몰합니다.

그 때 한국인 조사 조한규 씨와 목포가 고향인 정신여학교 여학생이 동행했는데 마침 구조선이 왔으나 몇 사람의 선객만을 구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펜젤러는 외국 사람인 까닭에 구조 대상 제1호가 되었지만 그는 일부러 사양합니다.

“내가 조선 사람의 영혼을 구하러 온 선교사인데 지금 조선 사람들이 불행하게 많이 죽는 마당에서 어찌 내가 먼저 살기를 바라리오. 나 대신 젊은 사람 하나라도 살려야지오.”

 

아펜젤러는 자기를 대신해서 살게 된 바로 그 한국 사람이 후에 한국을 살리는 ‘그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님 품에 안긴 것입니다. 그는 끝까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였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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