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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IV): 범사에 기한이 있고” 전도서 3:1-15 (09/22/24)

어느 젊은 목사님이 길에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친구는 목사가 된 친구에게 지갑을 열어 한 쪽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오늘 전도서 말씀이 적혀 있는 쪽지였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실은 두 친구는 기독교 학교를 함께 다니긴 하였어도 이 친구는 전혀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느낌을 주던 친구였는데 이 친구의 지갑에서 전도서 말씀이 적힌 쪽지를 본다는 것은 좀 상상밖에 일이었다고 합니다.

친구는 어떻게 이 쪽지를 지갑에 넣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대학졸업후 직장에 취직을 하고 승진가도를 달리느라 어머니는 거의 찾아 뵙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암진단을 받으시고는 얼마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자주 찾아 뵙지 못한 것을 깊게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어머님 천국환송예배에서 집례하신 목사님이 이 말씀으로 설교 멧세지를 전해 주셨는데 가슴 깊이 들어 오더라는 것입니다.

후에 어머니가 읽으시던 성경책을 유품으로 받고 그 성경책을 펴고 찾아 본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어머니 생각날 때마다 이 말씀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코 더 이상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 결심을 하고 전도서 이 말씀을 적어서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녔고 어머니가 유품으로 주신 이 성경책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늘이 벌써 전도서 강해 네번째 설교이네요. 첫 설교시 말씀드렸습니다. 전도서는 한편으로는 헷갈리고 한편으로는 은혜롭다고…. 우리들의 이성적 논리로는 헷갈리지만 이성을 넘어서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은혜의 멧세지를 느끼는 것이 전도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왜 오늘 본문에 나온 이 말씀이 쪽지에 적어서 지갑에 가지고 다니게 할 정도로 신비스러운 힘이 있을까요?

물론 일견해 읽으면 때의 소중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후회없는 삶을 살자는 결심을 하게 합니다. 소개해 드린 젊은이는 앞으로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이 말씀을 지갑에 넣고 다닌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확신합니다. 이 친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말씀에 더 심취해졌을 거라고…. 그 이유를 어느 주석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인생을 하나의 노래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많은 노래들이 세상에 나오지만 그중 아주 일부가 유명해집니다. 유명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인생의 가장 깊은 곳을 드러내는 노래들이 유명해집니다.

 

그 주석가는 강조하기를 전도자는 인생의 28때를 14쌍으로 만들어서 한 노래를 만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가 한 쌍입니다. 두번째 쌍은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이렇게 해서 도합 14 쌍으로 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14은 7의 배수라는 것입니다. 7은 완전수.

곧 인생의 ‘때’를 총 28개로 나누고 있고 이를 쌍으로 묶어서 14쌍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14는 완전수인 7의 배수.

 

여기서 솔로몬의 기가 막힌 지혜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7의 배수를 사용함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은 28가지 내용을 보면 인생 가운데 일어나는 여러가지 잇슈들이 거의 다 담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3, 4절,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어느새 하나의 완벽한 인생의 노래가 되어 간 것입니다. 아니 여러가지 문제의 연속인 인생이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이도 완전한 작품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8가지 하나 하나는 평범해 보이지만 이것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로 불리울 만큼 최고의 작품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맥락에서인지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2:10절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런데 원어로 ‘만드신 바’는 poieima라고 ‘작품’이라고 해석해도 되고 ‘poem’곧 ‘시’라고 해석할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하나의 ‘시’작품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솔로몬은 11절 상반절에 이처럼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하나님께서는 6일간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을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되는데 계속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때는 조금 전에 나눈 28가지의 때인 것입니다. 28가지의 때가 조화를 이루어서 하나의 아름다운 시가 되었고 시의 주제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실은 올해 들어 많은 분들이 하늘 나라에 가셨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 분들은 함께 전도자의 이 노래에 깊이 공감하고 계실 것임을….

하늘 나라에 와서 땅을 굽어 내려다 보니 세상에 태어나는 때도 아름답고 죽을 때도 아름다운 것을….

심을 때도 아름답고 심은 것을 뽑을 때도 아름답다는 것을….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곧 하늘나라에서 보면 인생은 한폭의 시라는 것입니다. 이 시에는 인생이란 좋은 것과 궂은 것이 조화를 이루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위대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4절,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곧 울 때도 아름답습니다. 웃음 때문에…. 슬퍼할 때도 아름답습니다. 춤출 때가 있기 때문에…. 아니 울 때나 웃을 때나 창조주께서 함께 하시기에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좋은 것과 궂은 것이 공존하기에 삶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고백할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노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시로 표현된 노래였습니다. 인간사에 제일 흔히 있는 28개를 골라서 14쌍을 만들어서 7의 배수가 되게 한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이 노래를 부르며 복잡한 인생 한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자들에게 전도자는 어떤 교훈을 줄까요?

전도자는 전혀 다른 감으로 글을 써 나갑니다. 9, 10절,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어떻게 보면 또다시 전도자는 헷갈리게 합니다. 멋진 시를 써 놓고는 김빠진 글을 적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또 헷갈립니다.

 

그런데 전도자의 지혜에 또 다시 탄복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에 주어진 인생에서 수고하고 땀을 흘린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헛수고로 끝날 때가 종종 있을지라도…. 실은 14쌍의 노래에 이 지혜가 깊게 스며들어 있읍니다. 비록 노고 가운데 있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 도리어 하나님의 임재를 더 가까이 느낄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더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1절 상반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도서의 노래를 부르며 노고 가운데 있는 자들은 자신 속 깊이 있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자신을 사로잡는 체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 속 깊이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보물과 같은 마음은 우리가 전도서의 노래를 부르며 노고 가운데 있을 때 다시 꽃피는 것입니다. 곧 최고의 시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술가가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Van Gogh가 친구와 함께 어느 미술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고흐는 렘브란트의 ‘Jewish Bride’ 작품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고흐를 그 자리에서 뜨게 할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도리어 고흐는 말합니다.

“자네가 다 둘러 보고 와도 나는 이 자리에 있을거네.”

친구가 돌아 왔는데 고흐는 그 작품을 그냥 보고 있었습니다. 도리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일 나에게 이 작품 앞에서 2주일 있게 해 준다면 나는 나의 삶의 10년과도 바꾸고 싶네…. 근데 우리는 영원히 여기 있을수 없지?”

 

고흐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렘브란트의 작품 앞에서 그를 멈추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고흐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과 렘브란트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만난 것입니다.

 

잘 아시죠? 고흐는 800여점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한 작품만 그의 생애에 팔수 있었던 것…. 그는 잘 될 때나 잘 안 될 때나 excellence를 향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체험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되살아난 자들은 계속해서 때를 놓지지 않고 삽니다. 고흐처럼  Excellence를 향해 삽니다. 잘 될 때나 잘 안 될 때나…. 하나님 그 분은 바로 Highest Excellence이시기 때문입니다.

 

한편 전도자는 갑자기 냉철해집니다. 11절 하반절,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실 전도자의 노래도 전혀 예측 못하는 순서로 만들어져있습니다. 곧 28가지가 어떤 것은 좋은 것이 먼저 오고 나쁜 것이 뒤에 오게 만들었고 어떤 것은 반대로 나쁜 것이 먼저 오고 좋은 것이 뒤에 오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8절,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사랑할 때 곧 좋은 것이 먼저 나오고 뒤에는 전쟁할 때 곧 나쁜 것이 먼저 나옵니다. 여러곳에서 이렇게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글쎄 솔로몬이 이것을 생각하며 이런 노래를 지었는지 몰라도 어느 주석가는 이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는 결코 예측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어떤 상황에도 excellence를 향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그는 고백합니다. 12절 이하,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결국 전도자는 또 다시 전도서의 주제로 돌아 갑니다.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여기서 주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공생애 시작과 더불어 주님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혼인 잔치를 excellence가 가득차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때는 누릴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아울러 때가 되었을 때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늘 창조주를 기억하시면서….

 

한편 전도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15절,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과거일이라고 우리는 잊었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Excellence를 향한 삶은 과거로 묻히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다시 찾으셔서 당신의 나라에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세상의 마지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인 새 예루살렘은 excellence의 아름다운 자태로 남편 곧 주님을 맞이합니다. 신부의 이 아름다운 자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던 모든 것들의 종합 작품이 아닐까요? 이것이 주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이 땅에서의 삶을 언젠가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지난주일에는 제직 안수식이 있었고 전날 토요일에는 교회 대청소가 있었습니다. 청소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모두 excellence를 주님께 바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편 2부예배후 축하 만찬의 음식도 너무 맛있고 멋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excellence가 담긴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excellence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때로 가꾸어 나가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제가 쉬는 시간에 자주 보는 스포츠가 있는데 한국에서 열리는 three cushion당구입니다. 물론 저는 당구 큐를 잡아 본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당구치자는 분이 계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우연히 유튜브로 보았는데 예측하기 어렵게 공이 굴러가는 것이 재밌어서 전에는 프로풋볼을 보았는데 이제는 그 시간에 당구경기를 보곤합니다.

한 경기에서 어느 여자 선수가 이기는 듯 하더니 상대방 선수가 한 큐에 일곱 점을 따서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속상할텐데 도리어 이긴 선수에게 활짝 웃으면서 껴 안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선수는 최고의 경기를 자신이 치룬 것을 표현하는듯 보였습니다. 최선의 경기를 했으니 졌어도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선수는 졌을 때도 excellence를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영원을 사모하며 사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도자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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