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3:1-10
제목: 일어나 걸어라
운동화를 만드는 회사 Nike회사를 잘 아실줄 압니다. 최근에 아주 획기적인 운동화를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운동화를 제작했습니다.
3년전에 Florida에 사는 Matthew Walzer라는 고등학교 학생이 나이키 회사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자신은 장애인이라서 혼자 운동화 끈을 매지 못한다고 하면서 곧 대학교에 진학할텐데 부모님이 대학교까지 와서 자신의 운동화 끈을 매어줄수 없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이에 매튜처럼 신체 장애가 있는 회사원이 이 편지를 받고 장애인을 위한 신발 곧 끈을 매지 않는 운동화를 만드는데 앞장 섭니다.
3년만에 끈이 없는 운동화를 완성합니다. 그리고 나이키 회사는 매튜를 회사로 초대합니다. 스크린으로 그 장면을 보겠습니다.
나이키 회사가 장애인들에게 스스로 일어나 걷게 하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오늘 도미니카 공화국 단기 선교단 파송예배를 드립니다. 제가 먼저 이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올해 단기선교 주제가 “일어나 걸어라”입니다. 아울러 오늘 설교 제목이 “일어나 걸어라”입니다.
나이키 회사는 3년에 걸쳐서 많은 회사원들의 수고로 장애인들이 일어나 걷는 운동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키 회사원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이 귀한 일에 동참하게 하실까요? 1절 말씀입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제 구시 기도 시간은 오후 세시 기도시간이란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차례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침 오후 그리고 밤 세 차례 기도를 드렸습니다. 물론 시간이 다르니 기도 내용도 좀 달랐을줄 압니다. 기도 내용은 다르긴 했어도 기도는 기도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그들은 하루 세 번 기도를 드렸고 이제 오후 세 시가 되어서 기도하기 위하여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라는 말에 마음이 좀 절여 옵니다. 평생 걸어 보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사람들이 매일 성전 문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참 그 사람들도 대단합니다. 매일 성전 문에 데려다 놓다니…. 3절 말씀입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아마도 장애인은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니 마음이 너그러울줄 알고 무작정 구걸한 것 같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가 자기들을 보라고 한 것을 보면 장애인은 두 사람을 보지 않고 손만 내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럴수밖에, 아무도 그동안 자기에게 눈을 들어 보라고 말한 사람이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그들이 무슨 대단한 것을 줄려고 자기에게 보라고 하나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들을 바라 봅니다. 얼굴을 보니 돈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손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서로 서로 눈빛이 마주치고 있는데 갑자기 베드로가 말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기상천외한 명령을 지금 베드로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키 회사원들은 장애인 신발을 만들기 위해서 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장애인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때 어떤 일이 벌어지죠? 7절 말씀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두 사람이 오른팔을 잡아 일으킵니다. 스스로 일어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에 오른팔을 잡아 일으킨 것입니다. 이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습니다.
여기서 잠깐 집고 넘어가고 싶은 면이 있습니다. 왜 베드로가 자기들을 보라고 하였을까요? 봐 봤자 갈릴리 어부 촌뜨기인데…? 자기들 얼굴을 보라고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일어나 걸으라” 명령할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베드로가 자기들의 얼굴을 보라고 한 후 얼마 후에 “일어나 걸으라” 명령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분명히 베드로는 무엇인가를 보여주길 원했을 줄 압니다. 다시 베드로의 음성을 들어 볼까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인한 확신찬 모습을 보여주길 원한 것이 아닐까요? 장애인은 똑똑히 그 입술 모양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입술 모양과 함께 베드로의 음성을 평생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유대인들 귀에 생소한 이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바로 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라는 놀라운 확신 가운데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오고 가는 수 많은 세대에 수많은 문제들의 열쇠가 되고도 남는다는 확신 가운데 선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두 손으로 장애인의 오른팔을 벌쩍 들어 올린 것이 아닐까요? 더 이상 예수의 이름 앞에서는 앉은뱅이는 존재할수 없다는 제스치어입니다. 예수 이름 앞에서는 오직 일어나 걷는 자들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고백을 배우기 위해서 베드로는 3년을 예수님을 따라 다닌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만 해도 아무 것도 손에 가지지 않고 전도하는 훈련을 했던 기사가 두 군데나 나옵니다. 누가복음 9:3절입니다.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한편 10:3, 4절 말씀입니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이에 어떤 체험을 하나요? 10:17절 말씀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제자들이 3년간 받은 교육은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할 때 자기들의 손과 발은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다시 본문 말씀 내용으로 돌아가서, 베드로는 오후 3시 기도하러 올라가던 차 장애인을 만납니다. 자기들 손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그가 갖고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로 인한 확신이었습니다. 다른 가진 게 있었으면 도리어 장애인은 그냥 장애인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었기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베드로의 손은 주님의 손이 됩니다. 베드로가 오른팔을 들어 올릴 때 실상 주님께서 들어 올리신 것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참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합니다. 베드로는 “일어나 걸으라”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일어나 걸을뿐 아니라 뛰기까지 합니다.
지난주 저희 가족이 구독하는 Dedham 신문에 한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제목은 ‘Stepping out.’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Fuentes라는 16살난 틴에이저 소녀가 보스톤 대학에서 하는 Reach Program에 참여해서 댄스를 배우고 있는 기사였습니다.
Fuentes는 3살 때부터 체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3년전에 무릎 부상으로 더 이상 체조를 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편 어머니가 댄스광이셨는데 어머니의 권유로 댄스에 눈을 뜹니다. 매일 30분씩 댄스 연습을 하던 중 올 여름 Reach Program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읽을수록 더 기사 내용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Fuentes는 앞으로의 꿈은 댄스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원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스튜디오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모습이 꿈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처럼 의사의 꿈에서 춤을 가르치는 댄서가 되길 원하는 이유를 밝힙니다. 춤이 자신을 많이 바꾸게 하였다고 하면서 전보다 더 확신에 찬 자신이 되었고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것이 큰 기대가 된다고 합니다.
계속 말하기를 한 스텝을 배우면 그 다음 스텝은 더 쉽게 만들어지는 경험을 통해 댄스는 stepping out의 무한한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는듯 보였습니다.
이처럼 Fuentes가 한 스텝을 배우면 그 다음 스텝은 더 쉽게 만들어지는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는데 바로 본문의 주인공 장애인에게 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걷는 것을 배우니 스스로 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뛰는 모습은 그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스텝이었을 것입니다. 최초의 예술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그의 뛰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스텝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장애인은 더 이상 이웃의 도움을 받는 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이웃을 돕는 자 아니 가르치는 자가 됩니다. 춤을 가르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종종 베드로와 요한도 힘들 때면 그의 춤을 생각하면서 흉내도 내곤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는 주신 사역을 끝까지 감당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서로를 고쳐주고 서로에게 배우는 축복된 삶의 절정을 누렸을 것입니다.
올해로 우리는 16번째 의료 교육 단기 선교팀을 파송합니다. 어떤 분들은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예수 이름만 가지고 가면 되지 왜 의료팀을 파송합니까?
사실 그동안도 그래 왔지만 올해도 여러분들의 재정적인 후원에 힘 입어 의료 교육팀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재정의 도움 없이 여러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선교를 위하여 바친 헌금으로 모든 준비가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의료 교육팀처럼 보이지만 많은 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바친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의료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많은 도미니카 주민들이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체험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의료의 힘으로는 일어나 걷게는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뛰게는 못합니다. 오직 뛰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가능합니다.
아울러 선교단원들은 그들의 뛰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삶의 세계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축복을 다시 우리 모두와 나누게 될 것입니다.
선교단원 여러분,
여러분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 앞에서 세상의 온갖 문제는 축복으로 변합니다. 장애인이 도리어 남들보다 더 멋진 춤을 춘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매일 일어나 걸으십시요. 여러분이 먼저 여러분의 손과 발이 주님의 손과 발이라는 확신을 가지십시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도미니카 공화국 주민들을 만나십시오. 여러분들이 주민들을 만질 때 주님께서 만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민과 대화할 때 주님께서 대화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으로 그들을 만나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그들도 걷게 될 것입니다.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번 선교팀과 이들을 보내는 양 교회 위에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함께 베드로의 외침에 동참하십시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