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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 “땅을 치소서”

본문: 열왕기하 13:14-21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귀한 피를 흘렸습니다. 그 중 육군 중위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Todd Weaver 중위가 있습니다. 남편이 전사한 후에 부인이 그의 컴퓨터에 쓴 글을 보았습니다. 전사하기 전 부인과 딸에게 쓴 편지였습니다. 딸에게 쓴 편지를 조금 소개해드립니다.

 

“케이티, 너는 나를 기억 못해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꼭 잊지 말기를 바래. 나는 네가 9개월 되었을 때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지. 너를 떠나는 것은 정말로 힘들었어. 너는 나에게 너무나 특별해,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이지. 내 일생의 최고의 날은 네가 태어난 날이야. 너의 미소짓는 얼굴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녹아 들었지. 너는 나의 가장 큰 기쁨이었어.

(중략)

너에게는 아주 최고의 미래가 열려 있어. 재밌게 살아. 즐기고…. 그리고 기억해 아빠가 항상 너로 인해 긍지를 갖고 있고 너를 항상 사랑한다는 것을…. 너는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나의 기쁨이야….

아빠가….”

 

약 5년전에 위버 중위는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러니 케이티는 지금 6살쯤 되었을줄 압니다. 케이티는 말귀를 알아 들은 후 지금까지 아마 엄마를 통해서 이 편지를 듣고 또 들었을줄 압니다. 그리고 이제 글을 막 읽게 될텐데 자주 자주 아빠가 보고 싶을 때마다 이 편지를 읽게 될줄 압니다. 저는 감히 장담합니다. 최고의 삶을 살게 될줄 압니다.

아빠의 마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봅니다. 우리 하나님도 이러한 마음으로 매일 우리를 굽어 보시고 계시지 않으실까요? 우리가 이 땅에서 최고의 삶을 살도록 바라고 계심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우리가 최고의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하여 어떤 편지를 쓰고 계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찾아 가 보겠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엘리사라는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요아스라는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엘리사는 병거타고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 선지자의 후계자입니다.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모두 북왕국 이스라엘을 위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이 계셔서 엘리야는 죽지 않고 병거 타고 승천하게 하셨지만 엘리사는 죽음을 맛 보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엘리사의 마지막 임종을 보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찾아 옵니다.

한편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 당시는 이스라엘이 남왕국 북왕국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요아스라는 왕은 남왕국에도 있었고 북왕국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스크린을 볼까요?

(스크린)

가운데 왼쪽이 남왕국 왕들이고 오른쪽이 북왕국 왕들입니다. 남왕국에 보면 10번째로 요아스 왕이 나옵니다. 반면 북왕국의 12번째로 요아스 왕이 나옵니다. 곧 동명이인입니다. 남왕국의 요아스 왕은 선한 왕으로 알려져 있는 반면 북왕국 왕인 요아스는 악한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북왕국 왕 중에는 선한 왕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자, 제일 오른쪽에 보면 북왕국 선지자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세번째로 빨간 글씨로 엘리야가 나옵니다. 엘리야는 유명한 아합왕 시절의 선지자입니다. 그 다음으로 엘리사가 나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 후 요아스 왕까지의 선지자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북왕국은 항상 우상을 섬겼습니다. 남왕국은 우상을 많이 섬기긴 했지만 종종 참 하나님을 섬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상만을 섬겼던 북왕국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계속해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대표적인 증거가, 엘리야 선지자가 병거타고 승천하신 후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계속 북왕국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사의 임종이 가까왔습니다. 이 때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이 고백만 보면 요아스가 아주 훌륭해 보입니다. 그런데 본문 바로 전 11절 말씀에 요아스의 삶은 이렇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

요아스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엘리사 선지자의 임종 앞에서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요아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자기는 늘 우상을 섬겼어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로 인해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셨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늘 우상을 섬기던 왕이 갑자기 엘리사를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에 엘리사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15절 말씀을 보면, 엘리사가 왕에게 말합니다.

“활과 화살들을 가져 오소서.” 왕은 좀 신기한 생각이 들었을줄 압니다. 평소에 선지자께서 활을 좋아 하셨나 왜 임종하시면서 활과 화살들을 가져 오라 하시나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더 심상치 않은 것은 화살들을 가져 오라고 하십니다. 화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가져 오라고 하십니다. 하여튼 왕은 순종하여 가져 옵니다. 이에 왕의 손 위에 당신의 손을 얹어 놓고 동쪽 창을 열고 쏘라고 합니다. 쏘자마자 엘리사가 말합니다. 17절 후반절입니다.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아람은 요즘식으로 하면 씨리아라고 생각해도 좋을줄 압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왕에게 놀라운 축복을 내립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늘 괴롭히는 아람 곧 씨리아를 바로 요아스의 손에 넘긴다는 것입니다. 씨리아에 잡아 먹혀도 시원치 않은데 도리어 원수를 갚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는 요아스는 정말 깜짝 놀랐을줄 압니다. 자기는 꾸지람을 들을 것을 각오하고 찾아 왔는데 이 웬말입니까? 엘리사를 통하여 놀라운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받을 선물은 다 끝난게 아닙니다. 화살들을 가져 오라고 했습니다. 아마 5개쯤 가져 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또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기왕이면 10개 아니 더 많이 가져 올걸…. 그러면 그 만큼 더 많은 선물을 받았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선지자는 또 말합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왕은 선지자의 명령대로 화살들을 집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얼떨결에 왕은 명령대로 땅을 칩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18절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세 번 치고 정적이 흐릅니다. 왕은 어떤 축복을 주시려나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입에서 호령이 떨어집니다. 1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왕이 힘 없이 세번만 쳤기에 씨리아를 완전히 무찌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씨리아는 늘 목의 가시로 남아 있게 됩니다. 이유는 세번만 땅을 쳤기에….

사실 엘리사는 자기의 사랑하는 북왕국에게 마지막으로 최고의 선물을 안겨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제가 좀 각색하면 엘리사는 하나님과 deal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그동안 제가 북왕국을 위해서 수고한 수고를 기억해 주시사 비록 허물 많은 북왕국이지만 씨리아를 완전히 무찌를수 있는 축복을 주소서….” 그리고 하나님께 또 요청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요아스왕이 화살을 대여섯 번 치면 완전히 씨리아를 요아스 왕 손에 넣어주소서. 이것이 제가 북왕국에 주고 싶은 마지막 선물입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맥 없이 세 번만 내리칩니다. 엘리사는 화가 폭발했습니다.

 

한편 요아스도 좀 억울했을지 모릅니다. 땅을 치라고 해서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을 쳤습니다. 물론 대여섯번 치라고 했으면 당연히 대여섯번을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젠 다 끝났습니다. 요아스는 아마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만 두라고 할 때까지 계속 칠 것을….” 만일 계속 땅을 치고 있었더라면 엘리사는 대여섯 번 치는 것을 보고는 당연히 “Stop”하지 않았을까요?

요아스의 잘못이 있더라면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멈춘 것입니다.

 

말씀 서두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편지를 보내실까 라는 질문을 드렸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편지를 보내실까요?

“땅을 치라” 하시지 않으실까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땅을 계속 쳐야 합니다. 만일 우리 판단으로 그만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20절 말씀입니다.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엘리사가 죽은 후 새 해가 되었는데 모압 도적 떼들이 북왕국에 침입해 들어 왔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어 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도적 떼 중에 몇 명이 죽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중 한 시체를 엘리사의 묘에 던진 것입니다. 엘리사의 뼈에 닿자 부활하였습니다. 죽은 엘리사의 뼈에 이처럼 능력이 있는데 이 뼈가 묻힌 아닌 엘리사의 뼈가 곧 묻힐 땅에도 능력이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는 두 가지를 뜻합니다. 하나는 엘리사의 능력이 땅에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반면 치는 것을 중단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죽은 도적이 부활했습니다. 도적이 부활한 후 새 사람이 되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더 악한 도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땅을 계속 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새삼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가 땅을 계속 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에게나 다 땅을 치라고 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아무나 땅을 친다고 해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땅을 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동쪽창으로 화살을 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렇게 감히 생각해 봅니다. 동쪽 창으로 화살을 쏜다는 것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기 위해서는 많은 화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화살이면 됩니다. 요아스 왕은 하나의 화살을 쏜 것에는 성공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하나의 화살을 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땅을 치라.”

 

각자마다 땅을 치는 의미가 다를줄 압니다. 그러면 보스톤에 사는 아니 보스톤 한인 교회를 다니는 교우님들에게 ‘땅을 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잘 아시는대로 얼마 전 미 대법원에서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였습니다. 그런데 미 대법원에서 합법화하기 전 저희 교단에서는 한 발 먼저 합법화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궁금한 점은 저희 교회 웹싸이트를 통해 알아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교단 총회에서 이런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회에서 동의안이 총회에 올라와야 합니다. 4, 5년전에 저희 교회가 속한 보스톤 노회에서 성적 성향에 관계 없이 목사 및 제직 안수를 줄수 있는 동의안을 통과시켜 총회에 상정했었습니다. 그 동의안이 통과가 되어서 2년전부터 이미 성적 성향에 관계 없이 안수를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2년전에는 다른 노회에서 결혼정의를 바꾸는 동의안을 총회에 상정했었습니다. 그런데 한 노회가 동의안을 내면 최소한 또 한 노회가 재청을 해야 합니다. 재청을 누가 했겠습니까? 불행히도 저희 교회가 속한 보스톤 노회가 재청을 했습니다. 물론 다른 노회도 함께 했지만….

그 때 저는 노회 서기와 총무에게 이멜을 보냈습니다. 우리 노회가 열악해서 노회 총무도 사례비 보조를 받고 있는데 왜 우리 노회가 이런 일에 자꾸 앞장을 서야 하느냐는 탄원의 이멜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그 날 노회를 불참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것은 땅을 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총회와 노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땅을 계속 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최근에 이런 꿈을 꿔 보곤 합니다. 언젠가 다시 보스톤 노회가 동의안을 총회에 상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결혼은 성경 말씀대로 아담과 이브가 하나가 되었듯이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동의안을 총회에 상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총회가 이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보스톤 지역을 복음화하여야 합니다.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질 때 노회가 다시금 회복이 될 것입니다. 총회가 회복이 될 것입니다. 미국이 회복이 될 것입니다.

결혼 정의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은 결코 땅을 치는 자들의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땅을 치는 자들은 어떻게 하든 한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의 진리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의 화살을 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계속 땅을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Stop”하실 때까지…. 이 놀라운 일에 하나님은 우리를 초대하시고 계시지 않으실까요?

우리 노회를 총회를 미국을 새롭게 창조하는데 우리를 초대하시고 계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1740년대 미국의 대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주역으로 George Whitefield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그 당시 육성으로 3만명 회중에게 설교를 했던 대 설교가이십니다. 이 분이 세운 교회 중 하나가 Newburyport, Massachusetts에 있는 Old South Church입니다.

그런데 윗필드 목사님은 유언으로 당신이 죽으면 바로 Old South Church강단 아래 묻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 유언을 거절하겠습니까?

그 교회가 저희 교단 교회인데 몇 년전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 때 종탑이 기울어지고 또 이런 저런 건물 관리 문제로 고심하고 계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여행객들에게 더 알려진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이번 설교 준비를 하면서 가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엘리사의 무덤은 그토록 놀라운 힘을 발휘했는데, 도적을 부활시켰는데, 왜 윗필드의 무덤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까, 아니 왜 여행객들의 방문지로 변하고 있는가?

저는 쉽게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땅에 묻히는 순간 이미 온 세계는 주님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 누구의 무덤도 아무 힘이 될수가 없습니다. 이미 주님의 무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의 무덤입니다. 이를 믿고 땅을 친다면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지 않을까요? 그러기에 오늘도 엘리사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실까요?

“땅을 치소서.”

어떤 분들은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어떻게 우리의 힘으로 이 거대한 미국을 바꿀수 있습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요. 미국은 땅 위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까? 이 땅에 2000년전에 주님께서 묻히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땅을 칠 때 땅 위에 새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우 여러분,

땅을 치십시다. 우리의 힘이 다 할 때까지…. 나머지는 땅에 묻히셨던 주님께 맡기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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