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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마태복음 8:5-13) 02/21/2016

 

방글라데시의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대학생이  대학을 우수한 성적을 졸업하고 마지막 시험을 잘 치뤘다는 소식을 들은 후 인력거를 탔습니다. 사람이 끄는 손수레를 말합니다. 마침 학생을 가르쳤던 노스승이 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인력거를 세우고 그분께 닥아가 시험 결과를 알려드렸습니다. 스승은 정말 대견스럽게 학생을 생각하고 학생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학생은 다시 인력거로 돌아 왔습니다. 인력거꾼도 시험 결과에 대해 묻고는 축하해 주었습니다. 학생은 세상 꼭대기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차비를 내려고 하자 인력거꾼은 돈을 받지 않겠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아서 오늘 정말 기쁘군요. 내 아들도 같은 시험을 치렀는데 낙제점을 받았어요. 학생이 꼭 내 아들처럼 여겨지니 오늘 차비는 안 받았으면 해요.”

이렇게 말하고 인력거꾼은 서둘러 발길을 돌렸습니다. 학생은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의 마음이 내 안 저 깊은 곳에 울림을 주었고 그래서인지 전보다 오늘이 더 값지게 느껴졌다.”

 

방글라데시 어느 대학생의 일기에서 인용된 글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학생은 자기의 감정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의 마음이 내 안 저 깊은 곳에 울림을 주었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들은 불합격하였지만 도리어 처음 보는 학생을 축하해 주며 차비를 받지 않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 후에 이 학생이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는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값진 삶을 살지 않았을까 저는 감히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필요한 소중한 감정을 선물로 받았으니 말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울림을 느꼈으니 말입니다.

 

오늘 남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설교 서두에 이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아버지의 마음’인데 사실 남선교회 표어가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방금 소개해 드린 일기의 제목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마 올해 남선교회는 친 가족을 위한 아버지일뿐 아니라 이웃을 위한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길 원하셔서 이런 표어를 정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것이고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 줄 때 어떤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웃을 대한 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는데 한 백부장이 나타났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백부장이라면 당연히 로마시민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어느 주석가는 이 백부장은 씨리아인이었으리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곧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이건 아니건 하여튼 백명의 부하를 거느린 군인이었다면 이 사람에게는 평범한 유대인들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주여.”

어떻게 백부장이 하찮은 유대인에게 ‘주’라고 부르는지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아마 주위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이 백부장이 한 유대인에게 ‘주’라고 부르나?”

이 당시 백부장으로서 예수님께 ‘주여’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로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로마의 씨져와 같은 사람에게만 ‘주’라고 부르던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는데 체면 불구하고 계속 백부장은 말합니다.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주위 사람들은 더 놀랐을 것입니다. 고작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그 멋진 백부장이 유대인에게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표현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냥 고쳐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 하인이 괴로워 하나이다.”

하인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인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 된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인력거꾼도 자신의 아들이 시험에 낙방되어서 마음이 몹시도 아팠을 것입니다. 괴로웠을 것입니다. 아들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도리어 시험에 합격한 아들 또래의 젊은이를 만났을 때 그 아픔을 승화시킨 것 같습니다. 학생의 기쁨이 자신의 아들의 기쁨 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어쩌면 백부장도 가족의 아픔을 하인을 통하여 승화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마음의 특징은 바로 자녀의 마음에 동참하는 것일줄 압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일줄 압니다. 그는 하인을 향하여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여튼 이 처럼 하인으로 인해 아버지의 마음으로 안타까워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 오셨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체면 불구하고 뛰쳐 나가서  주님께 나아 간 것입니다.

이에 주님의 반응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말씀합니다. 아마 주님은 아버지의 마음에 가득찬 백부장의 말에 너무 기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이 어디냐고 묻지도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다음 스케쥴이 어떻게 되냐고 묻지도 않으시고 선뜻 답변하신 것입니다.

아마 그동안 주님도 백부장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임을 아는 순간 당장 가서 고쳐주시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에 백부장은 말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 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번 놀랍니다. 종종 교황이 지나 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만일 이 백부장이 요즘 교황이 지나가는 길에 서 있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아마 가장 멀리서 보고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와서 교황이 가까이 오라 하십니다 하면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나는 가까이 가는 것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이 자리가 좋습니다. 멀리서 바라 보겠습니다.”

아주 겸손한 마음을 금방 읽을수 있습니다.

진정한 아버지의 마음은 두번째로는 겸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합니다. 백부장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바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겸손은 이어서 하인을 향한 겸손 아니 이웃을 향한 겸손으로 발전이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아버지가 자기가 잘났다고 자녀들을 무시하면 자녀들은 어떻게 될까요? 저는 확신합니다. 백부장이 자녀가 있었더라면 자녀에게도 겸손했을 것입니다. 자녀를 자기보다 낫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녀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 갔을 것입니다. 참 아버지의 마음은 자녀를 향해서도 겸손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하여튼 주님은 이처럼 백부장의 겸손의 마음에 폭 빠져 있는데 더 놀라운 소리가 들립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니다.”

아버지의 마음의 세번째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말씀만으로 자기의 사랑하는 하인이 나을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백부장이라고 하면 로마 군대를 믿어야 하는데 유대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을 믿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마음을 더 실감나게 표현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자기의 말에 의해서 부하들이 움직이는데 하물며 만주의 주이신 주님이 하라 하면 못 이뤄질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 안에 다른 놀라운 아버지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고 봅니다. 백부장은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당연히 믿었습니다. 그가 또 믿곤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는 하인도 믿었습니다. 하인도 믿을만 하니 마음 놓고 명령하곤 했던 것입니다. 이런 믿을만한 하인이 아프니 더욱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사람도 하인도 아니 자녀도 믿습니다. 이럴 때 참 아버지의 마음이 꽃을 핍니다.

Richard Rohr라는 유명한 영성가가 있습니다. 헨리 나우엔이 작고하신 후 제가 제일 즐겨 보는 책이 바로 이 분의 책입니다. 그는 오늘의 자기가 된 이유를 아버지에게 돌리곤 합니다. 아버지가 늘 자기를 믿어주고 격려해준 것이 오늘의 자기가 되게 하였다고 고백하는 분이십니다. 바로 진정한 아버지의 마음을 소유한 아버지를 두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멋진 표현을 합니다. “아버지의 신뢰를 받는 자녀들은 날라간다.”

 

그러면 주님을 믿고 또한 이웃을 믿는 백부장을 보고 주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10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은 깜짝 놀라셨습니다. 눈이 휘둥그레 지신 것 같습니다. 물론 마지막 믿음에 대한 부분이 클라이맥스일줄 압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하나 하나씩 놀랍고 신기한 마음을 점점 갖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홈런을 맞은 것 아닐까요?

다시 정리하면, 주님은 백부장의 하인을 위해 함께 아파하는 사랑의 마음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아울러 주님이 자기 집에 들어 오시는 것을 감당할수 없다고 고백하는 겸손으로 인해 놀랐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믿음을 보고 뒤로 넘어 가실뻔 하신 것 같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백부장에게 말씀하십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결국 주님은 백부장의 하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에 감동하시고 하인을 즉시 낫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사랑과 겸손 그리고 믿음으로 엮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한 수녀가 페루에서 감옥 선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첫 해를 섬기고 있는데 어머니 날이 가까이 왔을 때 수감자들이 수녀에게 어머니 날 카드를 구해 달라고 요청해서 구입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도 나도 계속 원해서 카드를 여러 상자 구해 주었습니다. 곧 아버지날이 또 닥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대량으로 구입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아버지 날 카드를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보내드릴 아버지가 없기에 아버지 역할을 해준 사람이 없기에…. 조금 전에 소개해드린 Richard Rohr는 때로는 친 아버지가 아닌 분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까지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들의 수고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종종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백부장으로 인해 놀라셨는지 감이 잡힙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자를 주님은 찾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웃을 위해서…. 그런데 이스라엘 중에서는 한번도 찾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방인 안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큰 기쁨 가운데 놀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오랫만에 주님이 놀라시고 계실줄 압니다. 남선교회 헌신 예배를 하는데 설교 제목이 아버지의 마음이고 그렇게 설교 제목을 정하게 된 것은 남선교회 표어가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시고는 깜짝 놀라셨을줄 압니다.

“역시 보스톤 한인 교회 남선교회구나!”

남선교회 교우 여러분,

1년 내내 놀라게 해 드리십시다. 저희 교우님들을 향하여 아버지의 마음으로 닥아가신다면 주님은 1년내내 놀라실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는 사람과 함께 축하하고, 물론 여러분 가정에는 그런 일이 없더라도…, 특히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돌 볼 때 주님은 놀라실 것입니다. 저희 교우님들뿐 아니라 교회밖에 분들까지 아버지의 마음을 실천하십시다.

 

그런데 이 아버지의 마음을 정말로 소유하신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셨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 앞에서 겸손하셨고 또 하나님을 믿으셨고 또 당신의 택한 사람들을 믿으셨습니다. 그는 열두 제자를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는 삶은 주님을 닮은 삶입니다. 주님을 닮아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자녀들을 사랑하십시다. 젊은이들을 사랑하십시다. 그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뱅글라데시에서 선교하시는 밥 맥카힐 신부의 글입니다.

“방글라데시 시골에는 장난감 가게도 없고 또 사실 있을 필요도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만들고 놀이를 짠다. 친척과 이웃은 아이들이 시를 낭송하거나 노래를 부르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정중한 자세로 서서 그것을 듣는다. 아이들은 맨땅에 서서 노래를 하지만, 어른들의 사랑 가득찬 눈길에 으쓱해하면서 마음은 맨 땅이 아니라 무대에 오른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깨달으면서 성장해 간다. 모든 아이들은 훌륭한 배우로서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장면이 아닐까요? 아버지의 마음을 소유할 때 이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아버지의 마음을 소유한 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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