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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님의 사람아!” (디모데전서 6:11-16) 10/22/2017

제가 2년전에 한국 방문시 C 채널이라는 기독교 방송국에 가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인터뷰한 동영상이 있는데 최근에는 새교우반 교우님들께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청년부 헌신 예배를 드리는데 청년들에게 깊게 연관되는 부분이 있어서 두 컷만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늘 청년부 헌신 예배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동영상이 생각난 이유는 교회는 인물을 세워야 함을 새삼 느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인물을 세워야 할까요? 아니 인물을 세우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교역자와 제직들에게…, 아니면 청년들에게…?

오늘 말씀은 사도바울이 당신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디모데 전서는 목회 서신으로서 교회를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목회를 위한 지침이라고 보면 좋을줄 압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첫 마디가 눈에 띄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사도바울이 보기에 디모데는 큰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나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사람 디모데에게 “이것들을 피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선 무엇을 피하라는 것인지를 알아야겠습니다. 이것들을 알려면 당연히 그 전 귀절을 살펴 봐야 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 당시 가장 큰 문제가 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에 대해서 경고를 한 후 곧바로 외친 것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사도바울은 돈의 풍랑이 거세게 부는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를 봅니다. 그 배를 디모데가 운행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외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 고백을 통해 알수 있는 것은 사도바울은 비록 세상이 여러 가지로 위험해도 디모데는 세상을 능히 이길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확신이 있기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는 거겠죠. 사도바울은 계속 말씀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손자병법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번 이기고 한번 질 것이며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위태롭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우게 되니 위태롭지 않습니다. 나만 알고 적을 모르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데 대표적 인물이 골리앗입니다. 자기만 알았기 때문에 늘 이기다고 한 번 패합니다. 다윗이라는 적을 몰랐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지금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이유는 사도바울은 세상이라는 적을 알고 또 디모데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싸우라고 권합니다. 백번 싸워도 백번 승리할 것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디모데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청년부 헌신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우리가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기 전에 우리는 세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요즘 청년들은 어떤 바다 위에 떠 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84년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M generation이라고 합니다. M generation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스스로 자긍심이 강하다고 합니다. 자긍심이 강한 이유는 자녀들을 적게 낳아서 부모들이 최고로 대합니다. 많은 경우 치맛바람 가운데 자라납니다. 옛날에는 방목하면서 키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둘 많으면 셋입니다. 하나인 집도 꽤 있구요. 그러다 보니 온 관심이 한 두 자녀들에게 쏟아 붑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은 스스로 자신감이 넘칩니다.
두번째 특징은 돈 보다는 뜻과 목적이 뚜렷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예, 아주 좋습니다. 좋을 정도가 아니라 멋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숨은 이유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부유한 부모 품에 살아서 돈 귀한줄 모릅니다. 많은 경우 부모들의 돈 밝히는 모습을 비웃고 뜻과 목적을 찾는다고 뻐깁니다. 여기까진 좋습니다.
세번째는 직장생활도 친구 관계도 결혼생활도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디지탈 시대에 태어나서 클릭 한번에 모든 것이 채워지는 세상에 살다 보니 어느덧 참을 줄 모릅니다. 그래서 직장도 친구 관계도 결혼 관계도 엉망이 되어집니다. 결국은 한번 좌절하면 빠져 나오기 힘듭니다. 술과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요즘 우리 청년들은 돈과 술과 마약의 풍랑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청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갈수 있을까요?

사실 12절 후반절 말씀에서 어떻게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은연 중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이 고백을 통해 알수 있는 것은 사도바울은 디모데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 얼마전에도 언급해 드렸습니다. 디모데는 사도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 함께 하기 시작하였는데 2차 선교 여행 초기는 정말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아마도 사도바울의 3번에 여행 중에 가장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고 하면 저는 바로 2차 선교 여행 초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디모데가 막 선교사가 된 후입니다.

안디옥에서 떠나서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납니다. 그리고 이고니온까지 갑니다. 처음에는 선교가 잘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서부터는 성령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함을 느낍니다. 그후로 아무 일도 못하고 방황하고 방황합니다. 드로아에 이르러서 비로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본 후 마게도냐로 건너 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고니온에서 드로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충분히 상상할수는 있습니다.
제가 계산한바에 의하면 이고니온에서 드로아까지 직선으로 고속도로가 뚫려 있으면 약 7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여기서 필라델피아쯤 될줄 압니다.
그런데 그 길을 걸어서 때로는 마차를 타고 갔을줄 압니다. 몇 개월이 걸렸을 것입니다. 제가 첫번째 안식년때 터키를 다녀 왔습니다. 터키 안에서 비행기를 탄적도 있고 그 외의 경우는 항상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사도바울을 정말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먼 길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걸어서 다니셨구나. 요즘으로서는 상상할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녀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더불어 가는 곳마다 말씀이 전파되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면 기쁨으로 감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몇 개월 동안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 전파의 기회도 안 생깁니다.
이러한 사도바울 옆에 누가 있었다구요.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자기가 선교단에 합류하자마자 잠시 반짝했고 그 후 전혀 말씀 증거를 하지 못하고 방황 방황하는 사도바울을 봅니다. 그러나 떠나지 않았습니다.
몇 개월 동안의 방황 후 드디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 명령을 받기까지 디모데는 사도바울을 신뢰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를 신뢰하는 디모데를 분명 하나님의 사람으로 확신하였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2차 3차 선교 여행을 은혜 중에 감당합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의 3차례 선교 여행중 이고니온에서 드로아까지 수 개월 아무런 일을 못하고 헤메던 시절이 가장 힘든 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가장 보람된 때였을줄 압니다. 디모데라는 위대한 인물을 발견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디모데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임을 보여준 때였습니다.

아니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함을 통해서 사도바울은 최고의 사도가 되어 간 것이고 디모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섬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디모데전서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를 위한 지침을 하나 하나 나열하다가 이제 마지막으로 부의 문제를 쓰다가 드디어 늘 본인 마음 속 깊이 담고 있던 디모데에 대한 생각을 터뜨린 것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 표현 안에는 수년 간 함께 간 길고도 긴 선교 여정을 통해서 맺어진 신뢰와 꿈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신뢰와 꿈을 갖고 있지 않고는 이런 표현을 할수 없습니다.
먼저 신뢰는 14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사도바울은 디모데는 어떤 명령도 지킬 것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뢰는 꿈으로 이어집니다. 신뢰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꿈을 맡기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꿈을 맡겼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 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향한 꿈이 있었습니다. 꿈에 대해서는 15, 16절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집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곧 사도바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의 미래를 위한 사역을 디모데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자신이 신뢰하는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를 향한 꿈입니다.

미래는 걱정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나타나는 신비한 도구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겸손할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언제까지 살수 있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뢰하는 자들을 통하여 멋진 미래는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미래의 사역을 지금 누구에게 사도바울이 맡기고 있습니까? 디모데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위대한 미래의 사역을 디모데에게 맡기면서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풍랑 가운데서 작은 배를 운행하고 있는 디모데는 사도바울의 말에 힘입어 힘차게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저희 청년들도 비슷한 풍랑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 험한 풍랑을 이길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너 하나님의 사람아!”
믿음의 선배들의 외침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교우 여러분,
저희 청년들은 우리 교회의 미래를 맡기기에 넉넉한 자들입니다. 아울러 이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실 청년들을 향한 신뢰와 꿈이 생긴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청년들과 함께 먼 길을 가시고 계십니다. 청년들을 위하여 식사를 제공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더 감사한 것은 이번에 케냐 교회를 위한 자선음악회를 청년들과 어깨 동무를 하시면서 함께 일하시는 많은 집사회분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그 분들의 입에서 더 큰 고백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위대한 미래의 주인공이 되어라.”
우리 청년들을 통하여 놀라운 미래가 펼쳐 질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영국과 불란서가 1337년에서 1453년까지 백년전쟁을 치뤘습니다.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처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거센 공격을 막아내고자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항복을 하고 맙니다. 그리고 곧 이어 영국왕 ‘에드워드 3세’ 앞에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도착합니다.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을 수용하는 한 가지 조건을 말합니다.
“좋다. 모든 칼레 시민들의 생명을 보장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해 처형당할 대표자 6명을 선정하라.”
시민들 중에 한 사람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던 순간, 한 사람이 일어섰습니다. 칼레 시의 가장 부유했던 ‘유스타슈 생 피에르’였습니다. 그의 희생정신에 감격한 고위 관료와 부유층 인사들이 함께 나왔는데 모두 7명이었습니다. 피에르는 이튿날 가장 나중에 오는 1명이 남고 나머지 6명이 영국군 진영으로 가자고 제안합니다.
날이 밝은 이튿날, 오직 피에르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의아하게 여긴 6명이 피에르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였습니다.
7명이 모두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꿈틀거릴 그 1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 그리고 누가 살 것인가를 놓고 설전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리라 생각한 피에르가 스스로 먼저 그 1명이 되어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이에 남은 6명은 담담하게 영국 왕 앞으로 나갔고 교수대로 향했습니다.
그 순간 영국의 왕비가 처형을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왕비는 왕에게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어 자신의 뱃속 아기를 축복해 달라고 왕에게 간청해 결국 그들은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프랑스에 평화가 온 것입니다. 그로 인해 프랑스의 미래는 밝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삶에 우리들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해 청년들에게 초대장을 주시기 원하시지 않으실까요?
이 위대한 역사의 초대장은 단순합니다. 함께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여정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여정 가운데 서로를 향하여 부르는 것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인물을 키우는 교회가 되십시다. 이들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갈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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