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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시는 교회” (이사야 58:6-12) 11/19/2017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시집 제일 먼저 바로 이 시가 소개됩니다.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킴벌리 커버거라는 시인의 시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중략)…………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 시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실줄 압니다. 몇 년전 한국 방문시 서점에서 이 시집을 구입했었는데 시집 제목을 보자마자 금방 구입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아마 이 시집을 구입할 때가 제가 50대말 60세가 되기 전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 때 저는 시인과 같은 생각을 늘 하면서 지내오고 있었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60세가 다 되어서 깨달은 것들을 젊어서 깨달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던 시절이기에 금방 시집을 구입했고, 첫 시를 그 자리에서 읽으면서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이 시집은 불티나게 팔려서 2년만에 31쇄 인쇄판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순간 우리에게 따라 오는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이 아닐까요?

“지금 깨달은 이 말씀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오늘 저희 교회는 창립 64주년 기념 주일 및 추수 감사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저는 매해 이 예배를 위해 설교 준비를 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을 갖습니다. 짧은 설교 시간에 두 주제를 함께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회 창립’과 ‘감사’의 주제 말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감사에 대한 말씀은 다음 주에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64주년 창립 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그 때도 알았더라면…’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갑자기 ‘금식’에 대한 말씀으로 의아해 하실줄 압니다만,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70년 한 것을 잘 아실줄 압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서학자들마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바벨론 포로를 마치고 돌아 온 후에 역이민 온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곧 바벨론 포로를 마치고 돌아와서 본토에서 생활을 하는데 자주 어려운 문제가 닥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금식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종교 예식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이 많았던 것입니다. 금식 등 종교 예식을 철저히 지키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깜짝 놀라는 말씀을 이사야를 통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음식을 먹지 않는 종교 예식이 아니라 압제 당하는 자들을 자유케 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참된 금식이라고 선포합니다. 계속 7절 말씀입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주린 자와 나그네를 돌보며 형제 자매의 어려움을 모른척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주린 자와 나그네와 함께 먹는게 도리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밥을 먹을 때 누구와 먹으면 좋습니까?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과 먹을 때 제일 밥맛이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린 자와 나그네와 함께 먹으면 성인이 아닌 이상 그렇게 맛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금식하는 기분도 들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주린 자와 함께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8절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금식을 통해서 빛이 나는 것이 아니라, 형제 자매를 돌봄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고 치유가 급속할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우라처럼 따라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형제 자매를 돌볼 때 하나님의 영광이 아우라처럼 따라 온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죠.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믿겨지지 않는 것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시죠.

 

루미라는 시인이 지은 ‘여인숙’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렇지 않습니까? 매일 아침 우리는 새로운 손님을 맞이 합니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깨달음. 그런데 이사야는 지금 우리에게 오는 손님은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린 자들을 섬길 때 최고의 손님을 맞는 여인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여인숙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우라처럼 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여인숙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머무실 때 어떻게 되죠? 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는 하나님께서는 금방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에서 돌아 온 후 잘 살아 보려고 금식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도 응답이 안 되곤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왜 기도 응답이 안 되었었는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 응답의 길이 열렸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반면 가난한 자들과 마음을 같이 나누면 이스라엘의 빛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디를 가나 어둠이 사라지고 낮과 같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에서 막 돌아 와서 온 세상이 어둡다고 불평들을 많이 했는데 사실 빛은 너무도 가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실 지난 주일에는 유경렬 목사님께서 부부 청년부 헌신 예배 설교를 통하여 이민자 다니엘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바벨론과 온 이방 세계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물 댄 동산이었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들은 바벨론에서 막 이스라엘로 역이민 온 자들입니다. 이들도 본질적으로는 이민자들입니다. 이들도 다니엘처럼 물 댄 동산이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은 많은 생각이 머리속에 오고 갔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사실 저희 교회가 늘 삼 세대를 강조하지만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말씀에 나오는 인물들을 키우기 위함이 아닙니까? 다시 봉독해 드립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자녀들은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게 되고 어른들은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 세대 교회를 지향하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무엇이라구요? 리더싶 training을 잘 받는 것일까요? 예식을 잘 치루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미래를 위하여 계획을 세우며 열심히 예식을 지켜나가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행할 걸…. 바벨론에서 돌아오자마자 예루살렘 성전 건축과 예식에만 정신 팔지 말고 이렇게 행할 걸….’

이러한 생각을 하는 그들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됩니다.

‘이제부터라도 이렇게 살자.’

 

지난 64년을 되돌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60주년 역사책을 보시면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희 교회를 사랑하셨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2년전 하늘 나라를 가신 역사학자이셨던 백린 장로님께서 저희 교회 역사를 간단히 이렇게 요약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64년전 창립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로는 저희 교회가 미국 장로교 (PCUSA)에 가입한 일이었다고 하셨고 마지막 세번째로는 ECC건축으로 요약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보스톤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신학교 교수가 되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곳에서 목회도 하셨는데, 그 분은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보스톤에서 건축을 하는 것은 기적이다.”

후에 그 분이 직접 ECC를 보고 가셨고 사모님의 작품도 보내오셨습니다. 물론 건축 이외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 다시 말씀드리지는 못합니다. 지난 일을 회상해 보면서 때로 혼자서 이런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 때는 우리가 그 일을 해냈는데, 또 다시 그런 일을 해 낼수 있을까…?”

이런 상념에 빠져 있던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었습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면…”

 

말씀을 거둡니다.

류시화 시인은 당신의 시집에 마더 테레사의 글을 넣었습니다.

 

한번에 한 사람

마더 테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마더 테레사가 이런 삶을 살았기에 그에게서 오늘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 속에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제2의 희년을 향하여 가는 저희 교회에 이루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자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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