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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이사야 11:6-9 (05/06/2018)

Sermon 050618
이사야 11: 6-9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교수님이 묻습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학생이 대답합니다.
“제 꿈은 이태원 대저택에 사는거예요.”
“왜 그런 꿈을 꿉니까?”
“돈 없는 가난한 삶이 싫어서요.”
“저는 그런 꿈은 안 꿉니다. 제 꿈은 우리나라에 마에스트로를 100명 정도 만드는 겁니다.”

벌써 몇 번 소개해드렸습니다. 서강대학교 교수이셨던 한동일 신부님이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명강의로 소문나서 많은 학생이 들었고, 후에 클래스에서 있었던 일들을 책으로 펴 낸 것입니다.
방금 소개해 드린 대화는 제자들이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쓴 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자는 신부님과의 이 대화를 통해 인생이 뒤바뀌어진 것 같습니다. 자신의 꿈은 대저택에 사는 것인데 신부님은 우리나라에 마에스트로 곧 훌륭한 지휘자를 100명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신부님이 음악 교수였을까요? 아닙니다. 법학을 전공하셨고 그 중 교회 법을 전공하신 분입니다. 사실 마에스트로는 음악계에서 제일 많이 쓰이지만 음악인 말고도 어떤 분야의 대가를 마에스트로라고 부릅니다. 지금 한동일 신부님은 여러 분야에서 100명의 거장을 키우는 것이 당신의 꿈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유대인들의 구전 설화에서 배운 지혜로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 설화에 의하면 하나님은 각자에게 그 사람만이 연주할수 있는 악보를 하나씩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악보는 아무도 연주할수 없습니다. 그 악보를 받은 사람만 연주할수 있습니다. 곧 모든 사람은 각자의 악보를 갖고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거장이 될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설화를 잘 알기에 제자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제 꿈은 마에스트로를 100명 정도 만드는 겁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악보를 멋지게 연주하는 마에스트로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면에서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주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입니다. 실제로는 있을수 없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그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상상은 지금 사람이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상상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상상이라면 지금 우리 눈에는 있을수 없는 일 같지만 실제로 가능한 상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상상이기 때문입니다.
곧 오늘 본문의 저자 이사야는 우리를 하나님의 상상의 세계 속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6절 초반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첫 번째로 ‘그 때에’라는 말이 눈에 띄입니다. 이사야는 우리를 미래 기차를 타고 미래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보스톤에서 뉴욕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 네 시간 후 뉴욕에 도착합니다. 뉴욕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을 우리는 대충 압니다.
마찬 가지로 세상 역사는 어떤 목적지로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러면 바로 그 때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요? 6절 말씀을 다시 봉독해 드립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이 그림을 보면서 모두들 앞으로 올 세상을 보면서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전혀 생각할수 없는 장면이 두 가지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이 그림과 정반대의 현실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워 있는 그림이 보이지만,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지금 이리가 어린 양을 잡아 먹고 어린 염소는 표범에게 잡혀 먹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곧 약육강식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미래의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놀라운 것이 보입니다. 이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어린 아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오병이어의 기적 잘 아실줄 압니다. 주님께서 장정만 오천명을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개로 먹이시고도 12광주리가 남은 이야기 잘 아실줄 압니다. 그런데 그 역사를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했는데 이 때 5천명은 남자 장정만 센 숫자입니다. 곧 여자와 어린이들은 포함이 되어 있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사야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림을 기록하고 있는데 대충 주전 700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도 그랬는데 주전 700년전에는 어떠했겠습니까? 이 당시 어린 아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미래의 역사의 주인공을 누구로 그리고 계십니까? 어린 아이! 어린 아이가 거친 짐승들과 순한 동물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신기한 것입니다.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의 주인공이 누구라구요? 어린아이인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세상을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지휘를 하니 이런 놀라운 세계가 도래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마에스트로라는 것입니다. 연이어 이 훌륭한 마에스트로가 이끄는 세계가 보여집니다. 7절 말씀입니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어린 아이의 지휘 아래 암소와 곰 사자들도 대 교향악단의 일원이 되어서 평화롭게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덧 클라이막스에 도달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아까는 그냥 어린 아이였는데 이번에는 더 어린 어린아이들이 등장합니다. 젖 먹는 아이와 젖 뗀 어린 아이가 등장합니다. 아직도 젖을 먹던가 아니면 금방 젖을 뗀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지금 독사의 구멍과 굴에 손을 넣고 장난을 합니다.
젖먹이 어린 아이를 infant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In’은 부정 곧 못한다는 뜻이고 fant는 fans에서 나왔는데 이는 ‘말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곧 infant는 말 못하는 어린이를 뜻합니다.
자 보십시요. 말 못하는 infant는 독사의 구멍에서 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말할수 있을 때까지…. 말할수 있게 되면 무엇을 하게 되나요? 마에스트로가 됩니다. 동물왕국 합창단 지휘자가 되는 것입니다. 곧 이 젖먹이들이 그냥 철 없이 놀고 있는 것 같지만 이들은 지금 마에스트로가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노는 것도 중요합니다. 논다는 것은 자기 자신들에게 주어진 악보를 확인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하여튼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자들은 아이들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젖먹이를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이 그림을 보면서 젖먹이들이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는다고 손을 넣을 어른들이 있겠습니까? 감히 사자와 소들을 한 군데 모이게 하고 지휘를 하겠다고 나서는 분들이 있겠습니까? 그럴리 없습니다. 대신 어린이들에 대한 경외감이 더 해졌을 것입니다.
이 그림에 매료되었던지 어느 유대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이가 길을 걸을 때면 천사들이 앞서 가며 이렇게 외친다고 합니다.
“거룩하신 분의 형상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그런데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외침을 들려주기는 커녕 어떻게 하죠?

메리는 엄마와 바닷가에 갔습니다.
“엄마, 모래 위에서 놀아도 돼요?”
“안 된다 얘야. 옷이 얼룩지잖니?”
“물속에 들어가도 돼요?”
“안 돼, 물에 젖으면 감기 걸리잖니?”
“애들하고 놀아도 돼요?”
“안 돼. 이렇게 사람이 많은 데서 길을 잃으면 어쩌니?”
“엄마, 아이스크림 좀 사 주세요.”
“안 돼. 목에 좋지 않아.”
마침내 메리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옆에 있던 여자를 돌아보며 말합니다.
“맙소사! 이렇게 신경질적인 아이 본 적 있으세요?”

이 엄마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아이들이 온 세상을 평화의 나라로 이끄는 주인공임을 망각할 때 우리는 메리 엄마 처럼 되어 가지 않을까요? 결국 그들에게 주어진 악보를 빼았는 것입니다. 반면 아이들에게 “거룩하신 분의 형상이 오신다. 길을 비켜라” 고백을 하는 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줄 압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이끌어 가는 세상에는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하나님의 거룩한 산의 이야기는 어른들이 이해할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이해할수 있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주인공이 될 때 비로소 도래하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악보를 마음껏 연주하게 될 때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아울러 아이들로 인해 온 세상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됩니다. 어른들도 참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어 갑니다.

아이들의 위대함을 잘 알기에 유대교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을 때 그들이 율법을 지키겠다는 것을 보증하는 보증인을 세울 수 있을 때까지 율법을 주길 거부하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맨 먼저 최고 연장자들을 보증인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로는 부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신들의 선지자들을 보증인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이들로도 부족하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들을 보증인으로 세웠을 때에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은 분명 훌륭한 보증인이다. 저들 때문에 너희에게 율법을 주겠노라.”

교우 여러분,
오늘도 많은 분들이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오셨을줄 압니다. 그 성경책이 우리에게 들리어진 이유는 우리가 선해서가 아닙니다. 어린이들의 위대함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린이들을 보증으로 삼으시고 우리에게 성경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이들은 아직 말도 못합니다. 아니 막 말을 시작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직 글은 읽지 못합니다.
이 어린이들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말 못하고 말을 갖 시작했고 글을 읽기 시작했지만 아직 이사야서를 읽을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말입니다. 이들이 미래의 마에스트로인데 말입니다. 이들 때문에 성경이 우리들에게 주어졌는데 말입니다.

서구사회에 3S가 있다고 합니다. Screen, Sex, Sports. 스크린은 영화 내지 요즘은 콤퓨터의 스크린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중 저희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스포츠인 것 같습니다. 운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출석과 겹치면 많은 가정들이 스포츠를 택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자녀들을 존중하는 길일까요? 물론 운동 말고도 다른 활동으로 교회에 안 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렇게 자란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에스트로가 되어 갈까요?

교우 여러분,
자녀들을 보증삼아 우리들의 손에 성경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자녀들은 아직 글을 읽지 못합니다. 읽어도 어려운 글은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마에스트로가 되게 하려면 우리가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이 말씀을 배울 때 진정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입니다.

얼마전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한 장면은 김정은 위원장을 대성 마을이라고 비무장지대에 사는 두 어린이가 맞이하면서 꽃다발을 전해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깊은 정치 이야기는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것 하나는 그 어린이들 마음에는 어른들이 존중하고 배워야할 멋진 세계가 있습니다.
아마 남북회담이 목적한 바가 잘 성사된다면 저는 바로 어린이들의 마음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두 어린이들을 비롯해서 어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가르치는 어린이들 말입니다.
그 회담 후 노벨상을 누가 받느니 언론에서 말들이 오고가는줄 압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들로 인해서 말씀이 있었고 지금도 세상은 살만하고 또 온전한 평화의 나라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에게 끌리십시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십시다. 평화의 나라가 다가 오고 있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이 놀라운 곳을 바라보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어느 시인의 고백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될줄 압니다.

시인 제인 타이슨 클레멘트의 시입니다.

“얘야!
내가 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지만
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사실 너나 나나 똑같이
한 아버지의 자녀가 아니니?
나는 잊어야 한다.
어른들의 모든 구조와 오랜 세월 배운 것들을.
그리고 어떻게 하면 너처럼
신선한 경이감으로
땅과 하늘을 볼 수 있는지 내게 가르쳐다오.”

우리도 자녀들에게 이런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고백만으로 우리 자녀들이 자신의 악보를 찾아갈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손에 들려진 말씀을 잘 가르치십시다. 이 말씀은 아이들 때문에 우리들 손에 들려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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