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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의 자녀들” 창세기 32:21-32 (05/27/2018)

다음과 같은 케냐 속담이 있습니다.
“나무를 심거든 하나만 심지 말아라. 세 그루를 심어라. 하나는 그늘을 위하여, 다른 하나는 열매를 위하여, 다른 하나는 경관을 위하여….”
나무는 우리에게 세 가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늘과 열매와 아름다움…. 어떤 나무는 그늘을 더 많이 베풀고 또 어떤 나무는 열매를, 또 어떤 나무는 아름다움을 더 많이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세 나무가 어울릴 때 세상은 정말로 평화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 기독교에도 세 나무의 전통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삼 세대 교회라서 제가 쉐마의 밤에는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헤메고 있을 때 처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6절에 보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도 이 땅에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어떻게 보면 세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세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 곧 세 나무는 각각 다른 특색을 갖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이삭은 번제물이 될뻔 하지 않았습니까? 곧 십자가를 지은 자입니다. 야곱은 12 아들을 낳아서 12 지파를 만들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약속의 완성을 누린 자입니다. 이처럼 세 사람은 다른 특색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케냐의 세 나무와 기독교의 세 사람은 비슷한 점도 있지만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케냐인들은 세 나무를 함께 같은 시간에 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 나무를 각각 다른 시간에 심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심고 한참 후에 이삭을 심고 한참 후에 야곱을 심고, 곧 셋 다 다른 시간에 심겨졌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세 시간 모두를 주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시간에 심겨진 자들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인도의 시성 타골은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Don’t limit a child to your own learning, for he was born in another time.”
(자녀를 당신의 지식에 가두지 말아라, 당신의 자녀는 당신과는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니….)

이것이 주는 큰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세대를 경외감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른 시간에 심겨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 자녀이고 손자 손녀일지라도….
지난번 어린이 주일 설교에서 물론 중고등부 학생들은 듣지 못했지만 그 때 유대인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한 아이가 지나갈 때 천사들이 앞서 가며 외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거룩하신 분의 형상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오늘 삼 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 모두 어릴 때 우리가 지나갈 때 천사들이 외쳤습니다. 그런데 외침은 같을지라도 천사는 모두 다릅니다. 아브라함의 천사가 있고 이삭의 천사가 있고 야곱의 천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중고등부 학생들의 견신 세례식이 거행되는 날인만큼 야곱의 천사가 제일 기뻐하는 날입니다. 야곱의 천사의 외침은 과연 어떤 외침이었는지 경외하는 마음을 안고 야곱의 이야기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기에 에서를 피해 삼촌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거의 20년을 삼촌집에서 거하면서 큰 부자가 됩니다. 이에 삼촌의 미움을 받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 옵니다. 그런데 이제 더 큰 문제는 곧 형 에서를 만나야 합니다. 한 마디로 에서에게 죽을 죄를 지었기에 너무도 겁이 났습니다.
자기 소유 중 많은 것을 떼어 형 에서를 위한 선물로 마련해 먼저 보냅니다. 그래도 형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수 없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모든 소유도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는 혼자 남습니다. 24, 25절 말씀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얍복강가에 야곱 보다 먼저 천사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천사입니다. 그런데 이 천사는 야곱을 이길수가 없어서 반칙을 합니다. 허벅지 관절을 칩니다. 반칙을 하면 실격입니다. 지게 되어 있습니다. 저 준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곧 천사는 야곱의 허벅지를 침으로 자기가 진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자기가 진 것을 선언하였는데 야곱은 막무가내입니다. 26절 말씀입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패자는 승자의 말을 들어야지요. 28절 말씀입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천사는 멋지게 자기가 진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승자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의역하면 ‘하나님과 겨뤄 이김.’ 야곱은 최고의 이름을 갖게 됩니다.

야곱은 최고의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아울러 허벅지 관절이 삐었습니다. 절름발이가 된 것입니다. 결국 야곱은 그 후 평생 절름발이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절름발이가 된 것을 전혀 가슴 아파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이긴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승자들을 절름발이로 만들어 놓으실까요? 야곱은 하나님을 이기기 전에는 늘 자신을 위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를 하는 것부터 삶 전체가 자기 자기 자기 자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이겼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얼마나 위험합니까?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하나님까지 이겼으니 말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절름발이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절름발이가 되었기에 남의 아픔을 아는 자가 됩니다. 곧 이웃을 위한 자가 되어집니다. 그래서 인생의 절름발이이지만 늘 천사의 음성을 듣는 자들이 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이긴 자이다.”

하여튼 절름발이가 되었지만 최고의 이름을 갖게 된 야곱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습니다. 29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패자가 된 천사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름이 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알려주는 대신 야곱을 축복합니다.

천사로부터 축복은 받았지만 자기가 원했던 이름에 대해서는 답을 받지 못했으니 야곱은 대신 자기가 그 위대한 이름을 받은 곳의 이름을 정합니다. 3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브니엘의 뜻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자기를 위해 패자가 되신 하나님을 그 곳에서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패자는 당신의 책임을 다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후로 야곱이 지나갈 때 천사는 그 앞에서 외쳤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뤄 이긴 자.”

여기서 야곱의 멋진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야곱은 비록 허벅지가 다쳤지만 그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만난 사실을 더 중요시 여깁니다. 허벅지를 다치는 정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비해서 하등 괜찮다는 것입니다.
곧 그 곳 이름을 평생 ‘나를 절게 만들었던 곳’이라고 부르지 않고 도리어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부릅니다. 이로써 야곱은 세 나무 중 하나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입니다.

이제 그 곳의 이름을 ‘브니엘’로 정하고는 그는 에서를 만나러 나섭니다. 31절 말씀입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언젠가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에 남자 모델이 한 분 있었습니다. 이 분이 깡패로 생활하다가 모델이 되신 분인데 이 분은 시간이 나면 2층 다방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살펴 본다고 합니다. 물론 모델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발걸음이겠죠.
그럼 이 분이 야곱을 2층에서 내려다 본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절름거리는 야곱을 보면서…. 당연히 삶의 실패자라고 보았겠지요…?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이긴 자였습니다.

한편 하나님을 이긴 자들을 위해서 매일 새로운 태양이 뜹니다. 다리를 저는 야곱을 위하여 매일 태양은 새롭게 뜹니다. 그런데 이 태양은 이삭이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태양입니다. 아브라함이 누리지 못 했던 태양입니다. 야곱의 태양입니다.
사실 더 이상 천사가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야곱의 태양이 외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이긴 자들이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이긴 자들입니다. 특히 오늘 견신 세례를 받은 자녀들은 하나님을 이긴 자들입니다.
이 들은 하나님을 이겼기에 각자만이 아는 절름발이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절름발이를 만드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긴 그 놀라운 축복으로 이웃을 위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절름발이가 되었기에 태양은 자기만 위해서 뜨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을 위하여 뜨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모두 브니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브니엘의 자녀가 탄생하기 위해서 3 세대가 걸렸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오늘 브니엘의 자녀들에게 견신과 세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십니다. 매일 태양을 뜨게 하십니다. 천사와 함께 태양은 외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이긴 자들이다.”

우리도 천사와 함께 이 외침에 동참하십시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이긴 자들이다.”
우리 자녀들은 자신의 절뚝거리는 자신의 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승리의 걸음을 걸어 갈 것입니다. 이들은 새로운 위대한 시대에 위대한 자취를 남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대사 하나를 소개합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 원래 원본보다 더 잘 된 한국 번역입니다.

우리 브니엘의 자녀들을 위하여 내일의 태양이 떠 오릅니다. 야곱의 태양빛을 받아 가면서 걷는 절뚝 절뚝 걷는 브니엘의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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