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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27-34 (06/10/2018)

지난번 제직 수련회 때 강사님으로 오신 박성주 목사님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한편 저희 한인들의 가슴을 찔리게 하는 이야기도 말씀하셨는데, 다름이 아니라 오래 전 LA 폭동으로 많은 한인 상가들이 피해를 본 사실 잘 아실줄 압니다. 후에 정부에서 피해받은 상점들을 보상해 주게 되었는데 희비가 엇갈리는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동안 2중 장부를 갖고 있던 상점은 세금을 적게 냈기 때문에 세금 낸 만큼 보상을 받았습니다. 곧 거의 받지 못했고, 반면 정직하게 세금 보고를 한 상점은 세금을 많이 냈기에 많은 보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2중 장부를 갖고 사업한 분들은 피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2중 장부가 아닌 장부가 하나인 상점은 제대로 보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2중 장부를 하지 말자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2중 장부는 결코 나쁘지는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어떤 2중 장부이냐가 문제이겠지요. 저는 하나님께서도 2중 장부를 갖고 계신 분이 아닌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2중 장부는 무엇인지 말씀을 상고하며 살펴 보겠습니다.

너무 궁금하실 것 같아서 오늘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33절 말씀을 다시 봉독해 드립니다.
“그런즉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두 가지 장부를 갖고 계심을 주님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첫번째 장부 이름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이어서 두번째 장부는 ‘이 모든 것’.
그런데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가요?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먼저입니다. 그후로 저절로 따라 오는 것은 두 번째 장부인 ‘이 모든 것’입니다. 첫번째 장부인 ‘그의 나라와 의’의 장부를 잘 가꾸면 두 번째 장부는 저절로 따라 온 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무엇이죠? 오늘 본문 말씀 전체를 흐르고 있는 것이 ‘이 모든 것’에 대한 것입니다. 특히 첫 절인 27, 28절에 밝히 드러나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두번째 장부에는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장부는 묘한 상관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31, 3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줄을 아시느니라.”
먼저 두 번째 장부에 너무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 것만을 위하여 염려하며 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아주 치욕스런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런 자들은 이방인과 같은 자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방인과 같다는 것은 세리와 죄인과 같다는 말씀으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현대판으로 해석한다면 절도와 강도 아니면 사기꾼이라고 할까요?
그 귀한 시간을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세상 걱정에 시간을 몽땅 다 쓴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용할 시간을 훔친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절도와 강도와 같은 자가 됩니다. 이는 바로 이방인들의 모습입니다.

곧 이 두 장부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염려를 많이 할 경우 첫번째 장부가 자꾸 줄어듭니다. 세상 염려로 인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두번째 장부만 자꾸 커 갑니다.
두번째 장부가 자꾸 커 간다고 염려했던 것들이 채워진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수 있느냐?”
염려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장부는 커 가긴 하지만 도리어 커 가기에 무거워지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실속 없이….

사실 주님께서 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29, 3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마디로 주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자들은 솔로몬보다 더 나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더 사랑스런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풍족히 채워지고도 남을 삶을 약속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와는 비교가 안 되는….
이처럼 솔로몬보다 더 나은 축복을 받을 길이 열려져 있는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2중 장부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2중 장부는 바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데 요즘 세상은 어떻습니까? 염려하면서 사는 것이 정상으로 보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는 자들은 좀 이상해 보입니다.

그리스 말로 ‘어리석다’의 원어의 뜻은 ‘복되다’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The word silly derives from Greek word ‘selig’ which means blessed.) 물론 주님께서는 이 때 헬라어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아람어로 말씀하셨는데 개 중 헬라어를 아는 사람도 간혹 있었을줄 압니다. 헬라어를 아는 사람은 속으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어리석네, 어떻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서 민생고를 해결하라는 말입니다. 민생고를 해결하려면 세상 주권자 곧 이 당시는 로마 나라의 뜻을 따라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미국에서 살고 공부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 우리들의 민생고가 잘 해결되려면 미국 사회 법과 전통 및 문화를 잘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민생고를 해결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2000년전 산상수훈에서 하신 말씀을 똑 같이 하시지 않으실까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미국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두 가지 장부를 잘 이해하며 사신 분이 있습니다. 언젠가 소개해 드렸던 하형록 목사님이십니다. 그 때 소개해드리지 않은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말씀드리면,
그는 세계적인 건축 설계회사 Timhaahs의 회장이고 오바마 정부 건축자문의원을 역임하였습니다. 특히 주차장 설계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어릴 때 한국에 살 때는 아버님이 목회자이셨는데 한센병 곧 문둥병 환자를 목회하신 분의 자녀로 살아 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받았습니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와서 U Penn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는 건축회사에 취직해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 갑니다.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심장병 증세가 발작이 되어서 의식을 잃고 맙니다. 심장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릅니다.

결국 심장 이식 수술을 받기로 하고 기다리는데 맞는 심장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죽어야만 심장을 얻을수 있고 죽는 사람과 모든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병원에서 첫 심장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5개월이나 기다렸습니다. 통계적으로 심장이식 수술을 기다리다 자기한테 맞는 심장이 나타나지 않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해 죽는 사람이 50%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병원에서 5개월 정도를 기다렸다는 것은 그만큼 사망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 그대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주 건강하고 딱 맞는 심장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당장 수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의사가 망설이는 눈치로 주저하더니 문득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옆방에 어떤 젊은 여인이 3일 전 헬리콥터로 실려 왔는데, 우리가 검사해 보니 그 여인은 이틀 안에 심장이식 수술을 받지 못하면 죽어요.”
물론 하 목사님이 먼저 신청했기 때문에 우선권이 있었습니다. 몇 초가 지났을까, “그 젊은 환자에게 너의 심장을 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웃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5개월을 기다렸는데 이 심장을 양보하면 또 5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하여튼 그녀는 건강하게 살아서 퇴원했고 목사님은 7일 뒤 위독해졌고 의식을 잃습니다. 의식 잃은 상태로 한 달을 견뎠을 때쯤 또 다른 심장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상태가 좋지 못한 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태가 너무 위독했기에 일단 사람이라도 살려 보자고 하였고, 의사의 권고에 따라 수술을 받습니다.
그 상태가 좋지 못한 심장을 가지고 6년을 살고 그 후 두 번째 심장이식 수술을 받습니다. 그 후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이웃에게 내어준 결과 퇴원 후 도리어 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얼마전 인도자 교육에서 나눴습니다. 어느 교우님이 이 분은 예수님이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맞습니다. 이 분은 예수님은 아닐지라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했습니다. 그 결과 세상적인 축복도 덤으로 받은 것입니다.
물론 세상적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축복이 아닐까요?

그런데 정말 어리석은 것은 염려하는 것입니다. 염려가 우리 마음에 생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수 없다고 생각이 들 때 염려가 엄습합니다. 내가 할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할 때 염려는 꼬리를 물고 일어 납니다. 끝내 우리들의 머리를 불이 나게 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2중 장부를 생각하면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이 보이게 됩니다. 하 목사님은 자기 스스로 심장을 고칠수 없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할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웃을 위해 심장을 양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결국 이 모든 것을 더하는 놀라운 축복 위에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어느 교우분이 이 분은 예수님이라고 하셨는데, 그 숨은 의미는 아무나 이러지 못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줄 압니다. 사실 맞습니다. 아무나 이런 일을 할수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목숨을 내 주는 것만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라면 정말로 하나님의 2중 장부 혜택을 볼 자는 아주 국한되어 있을줄 압니다.

사실 우리 모두도 쉽게 예수님이 될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솔로몬보다 나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에게 넓게 열려진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길의 시작은 바로 서로를 향하여 솔로몬보다 귀한 자들이라고 격려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에서 ‘Minority Influence Theory’가 있습니다. Minority가 끈질기고 설득력 있게 나오면 majority도 변하게 된다는 내용의 학설입니다. 세상은 majority가 되어서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솔로몬은 커녕 그의 신하도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inority들은 서로를 향하여 격려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솔로몬보다 귀합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 우리들의 능력 밖에 것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2중 장부를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장 죽어가면서 5개월 기다리다 생긴 심장을 남에게 주는 것 쉬운 일 아닙니다. 그러나 하 목사님이 그러한 인물이 되기까지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이웃을 향하여 생각하시지 않으셨을가요?
“당신은 솔로몬보다 귀합니다.”
이처럼 매일 작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먼저 사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는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 심장이식 수술까지 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자기의 목숨을 내어 준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넘어 훨씬 넘치게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몇 주 전 중고등부 견신 세례식이 열렸는데 그 전 날 견신 세례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제가 드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Lego Land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움직인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Lego를 모두 잘 아실줄 압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입니다. 그것으로 무엇이든 만들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염려거리들이 있는데 바로 우리들 앞에 놓인 산들 앞에서 우리는 염려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산들은 하나님께는 lego장난감에 불과합니다.
lego장남감을 만든 사람이 화란 사람인데 lego는 ‘play fun’약자라고 합니다. 곧 우리가 믿음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의 레고 장난은 시작됩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 거리도 다 해결해 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염려하던 제목들을 내려 놓으십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십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lego를 가지고 재미있게 무엇을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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