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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싹난 지팡이” 민수기 17:1-11 (10/07/2018)

 

아프리카 오지에서 죽어 가는 생명들을 구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흑인 환자들을 위한 모금 운동을 하기 위해 고향에 들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위대한 성자를 마중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1등 칸이나 2등 칸에서 나오리라는 마중객들의 예상과는 달리 허름한 3등 칸에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사람들은 왜 편안한 자리를 마다하고 굳이 허름하고 비좁은 3등칸을 이용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열차엔 4등 칸이 없더군요.”

 

아무나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선교를 할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슈바이처 처럼 낮은 곳을 찾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된 사람들만 가게 되나 봅니다. 아니 이런 사람들만이 가서 참 선교를 하게 될줄 압니다. 흑인 원주민보다 더 낮아지려고 하니 슈바이처의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최고의 치료를 받곤 했을줄 압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찰 때 비로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 올 것입니다. 아니 우리 크리스챤들이 이런 삶을 살 때 평화가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런데 슈바이처와 같이 낮아지는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요즘 수요여성공부에서 민수기를 공부하고 있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해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법궤 안에 세 가지를 넣어두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구요. 그 다음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가 담긴 항아리입니다. 세 번째로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한편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지 않을수 없었던 이야기가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먼저 살펴 보면, 한 마디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동기는 인간들의 시기 질투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시고 광야를 통과케 하시는데 지도자로 모세와 아론을 세웁니다. 처음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는 모세와 아론을 잘 따랐습니다. 처음에 잘 따르던 이들이 이제 광야 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자손을 제사장으로 세우시니 드디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민수기 16:1, 2절 말씀을 보면,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두 그룹이 불만을 터뜨리는데 한 사람은 고라이고 또한 그룹은 이를 따르는 르우벤의 자손들입니다. 그리고 고라는 제사장이 된 아론의 사촌입니다.

사촌인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제사장이 되고 자기와 자기 자손은 제사장들이 시키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정확히 바로 고라 이야기입니다.

또 한 그룹은 르우벤의 자손들입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12 아들중 맏아들입니다. 야곱의 장자인 셈입니다. 그런데 자기네가 누구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까? 레위 지파에 속한 모세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르우벤 자손들은 장자 자손인 자기들이 모세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게 못마땅 했던 것입니다.

결국 아론의 사촌인 고라와 야곱의 장자 르우벤의 자손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반항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지위관 250명이 합세합니다. 결과만 말씀드리면 민수기 16:49절 말씀입니다.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만 사천 칠백 명이었더라.” 곧 고라와 르우벤의 자손의 교만으로 인해서 이렇게 비참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17:2, 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파가 지팡이 하나씩을 가져 오되 지팡이에 각 지파의 이름을 쓰게 합니다. 예를 들어 르우벤 시므온 유다… 베냐민.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아론의 이름을 쓰게 합니다. 이처럼 이름을 쓰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4, 5절 말씀입니다.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열두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놓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지냅니다. 모세는 밤새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12 지팡이 중에 한 지팡이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날 것을 생각하며 깊은 잠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궁금했을 것입니다. “싹이 나면 어떤 싹이 날까 어떻게 날까?’ 등등…. 아울러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면 더 이상 아무 소리 못하겠지….’ 8절 말씀입니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모세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모세는 싹만 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싹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열렸는데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는데 살구 나무 열매가 맺힌 것을 보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을 것입니다.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 것을 보고 안 놀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특히 그렇게 놀랐을까요?

사실 성막 안에 여러 성구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촛대입니다. 촛대의 모양이 살구나무입니다. 살구꽃으로 장식되어져 있습니다.

촛대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인데 살구꽃으로 장식된 이유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아몬드 꽃인데 아몬드 꽃의 원어적 뜻은 ‘awakening’입니다. 아몬드 꽃은 추운 겨울에 잎이 나기 전에 먼저 꽃이 핍니다.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서 봄이 올 것을 알려주는 꽃입니다.

그래서 촛대도 아몬드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빛이 비추는 곳은 아몬드 꽃처럼 새로운 봄이 옴을 알려준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아론의 지팡이에 살구꽃 아니 아몬드 꽃이 피었습니다. 모세는 새로운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아론의 지팡이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보게 된 것입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결코 죽은 지팡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새로운 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지팡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모든 지팡이를 각각의 지파들에게 나눠 줍니다. 각 지파 족장들은 자기들의 지팡이와 아론의 지팡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아론과 모세를 괴롭히지 말자.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이다,’ 사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9절 말씀이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저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만일 단순히 그들로 인해 죽지 않게 하신다면 이처럼 살구꽃이 피고 열매까지 맺히게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냥 처음 말씀하신대로 싹만 나게 하셨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죽은 지팡이에 아무 싹이라도 나면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부정할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살구꽃이 피고 열매도 열리게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지난주 한인 목회실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영어권 목회자들과 만나서 미래의 한인 목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침 경건회 시간에 한 영어권 목회자가 은혜로운 설교를 해서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중 이런 표현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긴 하지만 참으로 보지 못한다”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사실 두 가지 영어 단어로 말했는데, 많은 사람이 look은 하지만 see를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종종 “I see”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이는 ‘알았다’라는 뜻입니다. 곧 look은 겉을 보는 것이지만 정말 안까지 보는 것은 see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look만 하고서 다 본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새교우 환영반이 있는데 첫 시간은 서로 돌아 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3, 4분하게 하십니다.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는 우리는 look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는 see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에 살구꽃을 피우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look으로 끝내지 말고 see를 하라는 뜻입니다. Look만 한 사람은 어떤 교훈을 받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아론과 모세에게 반항하면 죽는 거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싹이 나게 하신 첫번째 이유입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깨달았을 것입니다.

‘잘못하면 죽는구나….’

 

그런데 그보다 한 단계를 더 넘은 사람 곧 ‘see’한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은 죽음을 넘어 생명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세우신 이유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그 꽃핀 지팡이에서 이스라엘의 희망을 봅니다. 온 인류의 미래를 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슈바이처의 4등칸을 찾는 모습에서 우리는 희망을 느끼지 않습니까? 삶의 희망을…. 흑인들의 희망을,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인류의 희망을…..

 

아이러니칼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교만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교만해서 아론과 모세를 배반했습니다. 그들의 지도권을 거부했습니다. 250명의 장군이 두 사람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장군들의 손에 든 창 칼 앞에서 아론의 지팡이는 갈대 지팡이와 같았을줄 압니다. 아무 쓸데 없어 보이는 아론의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을 배반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고자 하시는 의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한편 그것을 넘어서 생명의 축제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see를 하는 자들에게…. See를 하는 자들은 아론의 지팡이를 통해서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세계 성찬 주일이자 정의 평화환경주일로 지킵니다. 우리가 오늘 성찬식을 거행한 이유는 빵과 잔을 보면서 look으로 끝내지 말고 see를 하기 위함입니다. 보이기에는 빵과 잔이지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보기에 오늘 성만찬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러면 빵과 잔을 먹고 마신 우리들은 정의 평화 환경 주일을 맞이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look에서 see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분들이 잘 아실줄 압니다. 현재 태평양 바다에는 쓰레기들로 새로운 섬들이 생겨 있습니다. 영어로는 garbage patch라고 하는데, 스크린을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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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태평양에 플라스틱으로 인해 생긴 큰 섬들이 있습니다. 이 섬들을 우리는 먼저 look해야 합니다. look하는 사람들은 결단하시게 될줄 압니다. ‘계속 이러다 보면 우리 모두 죽겠구나.’ 우리는 좀 더 플라스틱이나 스트로폴들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셔야 할줄 압니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나아가서 see를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공해를 보고 look에 멈추지 않고 see를 하는 분들을 소개해는 동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자연을 보며 희망의 세계를 느끼곤 한 성 프란시스의 태양의 찬가입니다.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워라,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 있음을

오! 아름다워라, 저 하늘의 별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은

오! 아름다워라, 어머니이신 땅과 과일과 꽃들 바람과 물

갖가지 생명 적시는 물결, 이 모든 신비가 주 찬미, 찬미로

사랑의 내 주님을 노래 부른다.

 

자연을 look한 것을 넘어 see한 성 프란시스의 시입니다.

 

성 프란시스가 요즘도 살아 있다면 인간의 교만으로 망가진 자연 세게를 보면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먼저 look했을 것입니다. 인류의 멸망을 경고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see했을 것입니다. 동영상에서 보신 강에 흐르는 플라스틱으로 공원을 만드는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look과 동시에 see를 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아론의 지팡이를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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