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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본향을…” 히브리서 11:6-16 (09/01/2019)

 

군인으로 은퇴를 하시고 대통령이 되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어떤 변화가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아이젠하워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있고 말고 골프 시합에서 나한테 이기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아주 많아졌단 말이야.”

 

전에는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져 주곤 했던 사람들이 이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니 태도가 바뀌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큰 꿈을 품고 첫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이 많으실줄 아는데 얄궂은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떻게 보면 공부하는 숨은 목적 중 하나가 대통령에게 가까이 가기 위함이 아닐까요? 물론 이것을 목적으로 삼고 책상 앞에 써 놓으시는 분은 없으실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는 “why not…?” 하고 있지 않나요?

 

자랑스런 한국인 중에 김용 총재가 계십니다. 얼마전까지 세계 은행 (World Bank)총재로 섬기시다가 사임을 하셨습니다. 그 전에는 Dartmouth 대학교 총장으로 섬기셨습니다. 물론 하바드 의대 교수도 하셨고 특히 가난한 나라에 가서 많이 의사로서 섬기셨던 분이십니다.

이 분이 종종 대통령에게 자문을 드리기 위해 백악관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그 때마다 백악관에서 헬리콥터가 와서 모시고 가곤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은행 총재로 임명합니다. 그 때 백악관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어떠했을까요? 사실 저는 그 분의 자서전도 읽어 보았지만 Dartmouth 대학 총장이 될 때까지의 자서전만 읽어 봐서 백악관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쉽게 상상할수 있습니다. 늘 가난한 자들을 섬기던 분이신데 이제 세계 은행 총재가 되어서 자신의 꿈을 활짝 펼수가 있고 그것도 미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자로서 일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나셨겠습니까? 아마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신나는 발걸음으로 백악관으로 향하였을 것으로 상상이 갑니다.

 

그러면 이번에 보스톤으로 공부하러 온 분들 중에 몇 명이나 김 용 총재와 같은 특권을 누리게 될까요? 죄송합니다. 기껏해야 한두명….

아니 이 한두 명도 자신이 그 대열에 낄지 아무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도 그  신나는 발걸음을 걸으려면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언제 될지 모르는 그 때까지…. 안타까운 것은 김 용 총재와 같은 발걸음을 걸을수 있는 사람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참 재미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신나는 발걸음을 걸을수 있는 특권은 일반인들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나요? 오늘 본문 말씀은 “YES”라고 선언합니다. 주어져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최고의 발걸음을 소유한 자가 될까요? 먼저 6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바마 대통령은 최고의 스펙을 갖고 있는 김용 총재를 부르려고 헬리콥터를 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상을 주시는데 세상적인 최고의 스펙을 갖고 있는 자를 부르시지 않습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어떤 평범한 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떤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으시죠? 여기에 한 가지 더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상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적 원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정반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어떤 대학교에서 A를 주는 교수가 있는데 이 교수님은 자기를 찾기만 하면 다 A를 준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하십시다. 당장 총장이 부르지 않을까요?

 

Chuck Swindoll이라는 유명한 미국 교회 목회자가 있습니다. 언젠가 Christianity Today라는 잡지에서는 그를 기독교계에 지난 50년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25명 중에 한 사람으로 선정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큰 목회를 하시다가 후에 달라스 신학교 총장까지 역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실 이 분의 첫 목회지는 보스톤 근교였습니다. Waltham에서 목회를 하셨지만 잘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2년만에 떠났습니다. 이 분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보스톤은 목회자의 무덤이다.”

 

이런 유능한 분이 이런 고백을 남기고 떠날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이해가 됩니다. 교수님들은 나를 찾으면 A를 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수님들은 당신을 찾는 것을 도리어 귀찮아 합니다. 대신 업적을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수님이 원하는대로 따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적표는 다릅니다. 제일 먼저 시작이, 하나님을 찾으면 A를 준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를 믿으라고 목회자들은 외칩니다. 그러나 보스토니안들은 체면이 있지 받아드릴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보스토니안들은 업적을 쌓는 것에 중독이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까진 좋은데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계신 것조차 믿어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주일이면 거리가 한산한 오늘의 보스톤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우리 교우님들은 교회에 오시기 편하시지만….

 

신앙은 스펙이 아닙니다. 신앙은 거져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믿으면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반면 업적에 중독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닫혀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지난 주중 하나님을 찾으셨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찾은 자들을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셨습니까? 지난주 큰 상을 받으신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어떤 상이 주어질까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9, 10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첫번째 상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거하는 곳에 약속의 땅으로 믿고 이삭과 야곱과 함께 이 세상에서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어디에 거하던…. 아울러 이 세상에 살면서 더 높은 곳을 항상 바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사모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자의 모습입니다. 아니 이 땅에서의 상입니다. 한편으로는 현재 주어진 처소에서 충실하게 감사하며 살아 갑니다. 아울러 앞으로 올 더 찬란한 세상을 바라 봅니다. 이처럼 귀한 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루를 충실하게 살며 매일 미래에 대한 축복을 기대하며 산다면 이처럼 놀라운 삶이 어디 있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Chuck Swindoll목사님과는 대조적으로 평생 작은 교회에서만 목회를 하신 Eugene Peterson목사님이 계십니다. 얼마전 소천받으셨는데 마지막 천국 환송 예배도 시골에 작은 교회에서 치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제 보기에는 Chuck Swindoll목사님 보다 훨씬 기독교계에 공헌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의 책들을 읽어보면 언제나 신나는 리듬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장단에 맞춰 은혜의 줄넘기를 한다.”

 

은혜의 줄넘기에는 두 가지 박자가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미래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줄넘기가 바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첫번째 상입니다.

유진 피터슨처럼 은혜의 줄넘기를 하는Annie Dillard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본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Billy Bray처럼 나도 내 길을 간다. 왼쪽 발은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외치고, 오른 발은 ‘아멘’이라고 외친다. 환희에 차서 찬양을 연주하는 트럼펫 한 쌍에 맞추어 시내의 상하류를 춤추며 다닌다.”

 

교우 여러분,

때로는 실패하더라도 실패 조차도 선으로 바꾸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줄넘기를 하듯 걸어 가십시다. 매일의 삶에 충실하며 아울러 미래의 축복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사십시다. 한편 이렇게 살면 살수록 하나님은 더욱 놀라운 상을 주시지 않으실까요? 더 놀라운 어떤 상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13, 14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이 들이 왜 본향을 찾게 될까요? 본향을 어렴풋이 맛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완벽하게 완성품이 되어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될까요? 이 땅에서 리듬에 맞추어 감사하며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 놀라운 세계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완성해 놓으신 그 성을 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 부활하셨고 이 놀라운 성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이 성이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 땅에 살면서 늘 본향을 사모하게 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은 큰 업적을 세운 자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림을 받는 것보다 더 기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의 하나님으로 불림을 받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은혜의 줄넘기를 하면서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을 통해 큰 기쁨을 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의 줄넘기를 하는 자들에게 본향을 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줄넘기가 은혜의 파도타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은혜의 파도를 타고 본향을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나는 삶입니까?

 

이처럼 본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똑 같은 일을 해도 똑 같은 공부를 해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영어로 직업에 관해서 세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Job, career, vocation.

간호사를 예를 들어 이 세 단어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간호사는 career입니다. 한번 간호사는 영원한 간호사입니다. 평생 간호사로서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간호사로서 일하는 분야는 또 다릅니다. 때로는 병원에서 일할수도 있고 보건소에서 일하실수도 있습니다. 행정가로서 아니면 교수로서 일하실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장소에서 어떤 구체적인 일을 해서 수고한 댓가를 받는 것이 job입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평균 3.2년마다 직장을 바꾼다고 합니다. Job을 바꾸는 것입니다.

반면 Vocation은 부르심의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간호사로서 일해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면서 헌신하는 것을 vocation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환자를 대할 때 vocation이 되는 것입니다.

곧 본향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일할 때 vocation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향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career가 vocation이 되는 것입니다. vocation으로서 일하는 사람은 대통령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항상 본향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vocation에 관한 책에서 저는 세계은행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 Kwang Kim이라는 분에 대한 글을 접해 보았습니다. 그를 인터뷰한 저자는 한 마디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을 갖고 그는 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vocation이다.”

Vocation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본향을 향해 가지만 이 세상에서도 일하는 목적이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줄넘기를 하지 않고 이 vocation의 삶을 살수 있을까요? 은혜의 줄넘기와 vocation은 항상 함께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오늘 보스톤에 공부하러 왔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겠습니까? 공부는 안 하고 하나님 이름만 부르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을 상 주시는 이니 공부는 안 하고 교수님만 따라 다닐까요?

주어진 공부에 충실할 것입니다. 교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끝나지 않습니다. 교수님들이 가르치지 않는 그 무엇까지 할줄 압니다. 내가 배운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돌릴 것인가 늘 고민하면서 공부에 열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은 항상 가볍고 흥이 나 있을 것입니다. 걸을 때마다 두 가지 감사가 마음 속에 오갑니다.

“오늘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 앞으로 베푸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한편 우리가 이러한 발걸음으로 살아갈 때 주님은 당신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보람을 느끼시지 않으실까요? 십자가를 지신 보람을 느끼시며 더욱 우리를 응원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응원하시면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닛시’의 축복을 누리실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저는 산책이 저의 취미이자 운동인데 종종 이렇게 외치며 걷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이것이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오늘까지 이끌어 오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잘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들의 삶의 전반에 걸쳐서 축복하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잘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본향을 사모하며 “잘 되고 있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 노래하십시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바로 vocation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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