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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의 축복” 이사야 55:6-13 (11/10/2019)

 

저희 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는 찬양교회 허봉기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은 재미있고 의미 깊은 글을 썼습니다. 제목은 ‘재미와 의미.’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 있어야 되는데

재미가 없을 때….

 

의미를 생각한다.

 

더러 재미가 없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물론 재미와 의미가 항상 상충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재미 있는 것에는 의미가 없고 의미가 있는 것에는 재미가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현 주소인 것 같습니다. 이를 허 목사님은 짧은 글을 통하여 기가 막히게 표현해 주고 계십니다.

 

한편 다음 이야기는 의미와 재미가 상충될 때도 기가 막히게 삶을 발전시킬수 있는 것을 밝혀 줍니다.

뉴욕주 북부의 작은 마을에 사는 플로렌스 메이나드는 결혼한지 16년이 된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그녀에게는 집안 일 이외에 특별한 취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항상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남편과의 교류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이 상황만 달라진다면 무척 행복해지리라 믿었습니다.

남편은 시즌 중 단 한 경기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열성적인 하키광이었습니다. 이에 플로렌스도 하키에 관심을 가져 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실제로 하키의 규칙을 이해하게 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흥미에 빠져 들어 갔습니다. 드디어 16년만에 결혼 생활의 활기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부부 청년부 헌신 예배로 드리는데 모두 메이나드 커플 처럼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재미와 의미가 교차되는 그 무엇이 우리들의 삶에 항상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가정생활이던 신앙생활이던…. 그러면 언제 우리는 재미와 의미가 만나는 바로 그 놀라운 축복을 가정생활이나 신앙생활에서 누리게 될까요? 본문 말씀 첫 절인 6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은 막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전체 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명령은 바로 이 한 절뿐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을 찾으면 이어져서 생기는 축복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축복이 재미와 의미가 함께 만나는 축복인 것 같습니다. 곧 말씀드린 재미와 의미는 서로 상반되는 것 같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기가막힌 조화를 이루어서 우리를 찾아 오지 않을까요? 사실 이것을 마지막 절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잣나무가 난다면 이처럼 재미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처럼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gardening은 잘 하지 못합니다만, 일년에 한 번은 뒷뜰에 있는 가시나무 엉겅퀴를 늘 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잔듸밭을 금방 덮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가시나무가 잣나무로 어느날 변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편 우리들의 삶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이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민족은 더욱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언제가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실 때인가 그 때 놓치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불러야지….”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7절 말씀입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스라엘 민족은 깜짝 놀랍니다. 바로 악인이었을 때가 가장 가까이 계실 때라는 것입니다. 악인인 자리에서 돌아만 서면 된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일을 해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 것을 기대하고 어떤 의로운 일을 행하여야 하나 잔뜩 조바심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은 악인과 가까이 계시고 돌아만 서면 된다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이스라엘인들에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8, 9절 말씀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스라엘인들은 깨닫습니다.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를 때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길이 다를 때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제일 가까이 계시고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을 만날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재미와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재미가 다를 때 하나님은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와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의미가 다를 때가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길과 생각과 가장 멀리 있는 자들에게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그럴 때 언제나 만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으로 가면서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 가장 다른 생각과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주님께서 바울을 만나셨습니다. 우리들 보기에 가장 하나님과 멀리 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가까이 있는 때임을 사도바울의 삶은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가시나무에서 잣나무가 나는 것입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었던 것입니다.

 

곧 하나님과 사울은 수직적으로 달랐습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수직적으로 달랐지만 이 다름이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수직적으로 땅까지 내려 오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특히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다름 아니 하나님과 당신의 다름을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이를 증명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온 인류를 구원하는 길을 하나님께 구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하나님과 수직적으로 다름의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그대로 받으십니다.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사울이 바울이 되었던 것입니다. 죄인들이 의인들이 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가시나무에서 잣나무가 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잣나무가 되어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다름의 축복의 현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수평적 다름의 현장도 주셨습니다. 아무래도 다름은 축복으로 가는 지름길인 모양입니다. 부부청년부 헌신 예배이기에 수평적 부부 관계로 남은 시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교우분이 당신 배우자와의 관계를 아주 재미있고 의미깊게 표현하시는 것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로또야!”

처음 들으면서 배우자에 대해서 무척 만족해 하시는구나 배우자를 대박으로 생각하는 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후에 설명하시기를 로또를 맞는 확률은 벼락에 맞는 확률보다 낮지 않습니까? 그처럼 전혀 맞을수 없는 사람이 당신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신앙생활하다 보면 하나님도 어떤 때는 로또와 같다는 생각이 들수가 있습니다. 우리 생각과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축복일줄 압니다. 하나님과의 생각이 다른 것을 많이 느낀 사람들이 하나님과 제일 가깝게 지내며 하나님의 축복을 제일 많이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름의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수직적 다름에 도사가 된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수평적 다름에도 도사가 저절로 되어가지 않을까요? 곧 이들은 어부지리로 결혼 생활에서도 다름을 쉽게 극복할수 있지 않을까요?

 

얼마전 재미있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Coffee or tea…?” 약 2천명의 미국인들을 조사하여 만든 연구 결과입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과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조사해서 발표하였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이 많고 아침형이고 개를 좋아하고 스스로 messy곧 정돈하는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친구는 차를 마시는 사람보다 숫자가 더 많고 싱글로 지내는 사람이 많다고 보고했습니다.

한편 차를 마시는 사람은 외성적이고 밤 형이고 고양이를 좋아하고 정돈을 잘하고 좁고 깊게 친구들을 사귄다고 발표를 하였습니다.

 

하여튼 현대인도 아침에 무엇을 마시는지에 따라 두 다른 형태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특히 재미 있는 것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개를 좋아하고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양이를 좋아 합니다.

사실 저는 개를 좋아하고 집 사람은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다릅니다. 하여튼 개와 고양이의 차이점을 좀 더 찾아 보았습니다. 물론 많은 다른 점이 있는데 그 중 눈의 기능에 대해 찾아 보았습니다.

고양이가 보는 색깔은 광범위한 반면에 개는 파랑색에서 보라색 그리고 빨간색들만 볼수 있다고 합니다. 곧 고양이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많은 색깔을 보는 반면에 개는 극히 한정된 색깔만 본다는 것입니다.

반면 고양이와 개는 모두 근시입니다. 가까운 것을 잘 보는데 고양이가 더 심한 근시입니다. 개는 고양이 보다 덜 근시입니다. 이처럼 개와 고양이는 많은 것이 다릅니다. 특히 서로가 다르게 세상을 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침에 coffee를 마시는 자는 개를 좋아하고 tea를 마시는 자는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이들도 여러면에서 다르지 않을까요?

 

그런데 고양이와 개가 잘 살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의 돌봄 가운데 있을 때 이들은 잘 살수 있습니다. 사람은 여러 색깔을 잘 봅니다. 고양이가 사람처럼 광범위하게 보지만 사람보다는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아울러 개와 고양이가 모두 근시인데, 물론 고양이가 더 심한 근시이고…, 사람은 20/20입니다. 가까이나 멀리나 다 잘 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양이와 개가 사람의 돌봄 가운데 있을 때 다름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이처럼 개와 고양이에게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반면 우리 사람들도 고양이과가 있고 강아지과가 있는데 우리도 다름을 극복할수 있습니다. 방법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늘 돌아 가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과의 다름을 통해서 아파하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수직적 아픔을 극복할 때 수평적 아픔은 상대적으로 쉽게 극복할수 있지 않을까요?

 

뉴욕 리딤머 교회를 개척해서 크게 부흥시켰던 팀 켈러 목사님이 결혼에 관한 책을 지었습니다. 사실 뉴욕에 수많은 싱글들에게 결혼생활의 중요성을 가르치려고 설교한 내용을 책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책 서두에 누구에게 드린다고 저자들이 써 놓곤 하는데 켈러 목사님은 자기 가정을 포함해서 네 친구 가정의 이름을 적어 놓았습니다.

네 가정은 모두 신학교 시절 알게된 친구 가정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어느 챕터에서는 네 커플 모두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 부인은 완고한 장로교 교인인 반면에 자신은 장로교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교리를 따르는 군소 교단 교회를 출석했다고 말합니다.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는 서로 웬만해서는 만날 수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어찌어찌해서 결혼을 하고 이제는 자식들이 결혼해서 손자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을 지켜보며 행복해 하기도 하고, 양가 부모들이 수술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따위의 온갖 슬픈 일들을 겪기도 하면서 이렇게 함께 행복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네 친구 커플도 하나 같이 고양이와 개가 만나 결혼한 것 같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이런 재미와 의미가 풍성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을까요? 함께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과의 다름도 느끼고 아울러 서로의 다름을 느끼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아서 결국에는 가시나무에서 잣나무가 나는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곧 이들은 모두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의 수직적 다름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수평적 다름도 축복으로 바꿀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종종 하나님 앞에서 다름을 느끼며 아파하십시다. 하나님의 재미와 우리의 재미가 다릅니다. 아울러 교인들 간의 다름 가운데서도 아파하십시다. 쉬운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클래식을 더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팝송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이 다름 가운데서 우리는 새롭게 더 깊은 교제를 나눌수 있지 않을까요? 부부 간의 재미와 의미도 다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찾고 또 찾으십시다. 새로운 재미와 의미가 만나는 축복이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하늘에서 땅까지 수직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래서 수평적 축복의 세계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두 친구의 대화입니다.

“아내가 자기계발 세미나에 다녀온 날, 내게 자신의 고칠 점 6가지만 알려달라고 하더군. 난 깜짝 놀랐다네. 솔직히 달랑 6가지는 너무 적었거든, 아내의 고칠 점은 그 자리에서라도 수천가지는 댈 수 있었지. 하지만 난 그렇게 하는 대신, ‘생각 좀 해봅시다. 내일 아침에 말해주겠소’라고 했다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꽃집에 장미꽃 6송이를 주문했지.

‘당신이 고쳐야할 6가지는 생각이 나질 않소. 그냥 지금 그대로의 당신이 좋으니까’라는 멧시지를 넣어 아내에게 전해주도록 했다네. 그날 저녁 퇴근할 무렵, 집 앞에 누가 있었는지 아는가? 바로 아내였다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날 기다리고 있더군. 그 때 난 아내를 비판하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네.

일요일 아침, 아내는 세미나에서 이 이야기를 발표했지. 그러자 사람들이 와서 ‘지금까지 들어본 얘기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라고 말해주었다더군. 이 말에 나도 정말 뛸듯이 기뻤다네.”

 

고양이와 강아지가 서로를 비판하려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야말로 수천 가지가 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모든 다름은 아름다운 꽃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신앙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다름이 축복의 꽃이 되는 것입니다. 재미와 의미가 만나 아름다운 꽃을 피게 됩니다. 이는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놀라운 축복의 가정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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