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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마태복음 1:18-25 (12/22/2019)

 

지난번 인도자 교육 때 이곳에서 함께 목회하시다가 한국에 가 계신 조태연 목사님의 부친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린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아버님은 양자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지내다가 19살에 결혼을 합니다. 집안은 가난하기 짝이 없었고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집에만 앉아있던 절망의 젊은이였다고 합니다.

결혼하고 10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성화에 하늘의 은혜를 입어 군청에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러나 읍내에서 하숙하며 퇴근 후에 가는 곳은 결국 술집이었습니다. 그사이,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아버지를 봉양하고 육남매를 키워내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쩔수 없이 어머니는 읍내로 이사하는 중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결혼 후 20년만에 처음으로 아버지가 벌어오는 것을 받았는데 이 때가 아버지 나이 사십 가까운 때였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대단히 가정적인 남편으로, 자상한 아버지로 변합니다.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가장 큰 변화는 어머니를 따라 자식들을 데리고 교회를 출석하며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갑니다. 7년 후엔 장로장립을 받습니다. 왜정때 소학교 다닌 게 전부인 아버지는 독학으로 3급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사무관으로 승진합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교단에서는 두 번 도전 끝에 압도적인 득표로 부총회장에 당선됩니다. 이뿐 아니라 공직생활로는 내무부장관 근무공로표창, 새마을사업 유공표창, 대통령 공로표창 등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 교우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요즘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군요.”

장로님의 일생이 하나의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임을 공감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요즘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이야기가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은 했는데 아직 결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마리아의 배가 불러 오고 아마도 입덧 증세가 유난히 심했던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알아 볼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소문이 요셉에게까지 들려왔습니다. 요셉은 아마 분노했을줄 압니다. 요조 숙녀인줄 알았더니 뒤로 호박씨를 까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동안 속은 것에 분통이 터졌으리라 봅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는 약혼을 파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어떻게 대처하나요? 19절 말씀입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원래 구약에서 흔히 사용되는 의의 개념이 있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자기를 속인 마리아를 거기에 대응하게 갚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 당시 ‘의로운 행위’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모른척 하고 자기와 약혼한 것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아이의 아버지와 잘 살 것을 축복하려고 합니다. 곧 덮어준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교우님의 간증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이웃에게 빌려 준 돈이 있는데 받질 못하게 되니 갈수록 힘들어지고 드디어 잠도 잘 오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돈 빌려준 것을 받지 않겠다고 전화로 말하고 나니 잠이 잘 오더라는 것입니다.

요셉도 어떻게 보면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을수가 있었는데 요셉은 도리어 모른척 하고 덮어줄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잠이 잘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밤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20절 말씀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덮어주려고만 하고 편한 잠에 들었는데 대박입니다. 아내가 임신한 것은 성령으로 임신한 것이고 이 아들은 온 세상을 구원하실 구주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다음 날 마리아를 집으로 데려 옵니다.

 

늘 듣던 이야기지만 사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누구나 한 가지 질문이 생각나게 되어 있습니다. 주의 사자가 미리 요셉에게 나타나셨으면 어떠했을까? 만일 약혼한 날 밤에 알려주셨더라면 당장 데려갔을 것이고 주위 사람들의 따거운 시선도 받지 않았겠고 태교에도 좋았을텐데….

 

물론 하나님께서는 깊은 뜻이 있으셨겠죠. 저는 후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게 된 이유를 19절 말씀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요셉이 행한 의로운 행위가 어떤 것입니까? 눈은 눈으로 곧 원칙대로 처벌하는 것이 아니고 덮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잘못을 덮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로인해 최고의 의로운 행위를 한 것입니다. 결국 요셉의 의로움이 상달된 것입니다. 요셉의 의로움이 상달된 다음에 주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약혼한 날 주의 사자가 나타났다면 요셉의 의로움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의로움이 드러난 후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아무에게나 이 놀라운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려주실까요? 사실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 말이 됩니까? 오직 덮어줌의 덕이 있는 사람에게만 들려줄수 있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사실 히브리 원어로 덮어줌은 죄사함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 덮어주는 것을 보고 의롭다고 표현하는 마태기자의 의도가 십분 이해가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아마도 오래 전에 있었던 연예인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한 젊은 연예인이 성경공부를 하다가 끈질기에 오늘 본문을 가지고 질문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처녀가 잉태할수 있냐고…’

참다 참다 못해서 코메디언 구봉서씨가 이렇게 대꾸하셨다고 합니다.

“지 애비가 괜찮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controversial합니다. 그래서 그 젊은 연예인이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의로운 사람들은 덮어줌의 덕의 사람들은 색다르게 반응합니다.

‘그럴수도 있지….’

 

그러고 보니 안이숙 여사의 책 제목이 생각이 납니다.

‘그럴수도 있지.’ 저는 읽어 보진 않았지만 아마 이런 요지로 쓰여진 것으로 압니다.

“이럴수가 있나? 그럴수도 있지.”

이런 덕의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을 보여 주십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십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은 바로 ‘그럴수도 있지’에서 시작합니다.

 

‘그럴수도 있지’ 고백하는 자들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들은 우선 자기의 윤리적 판단이 완전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한 판단을 하시는 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격하게 대응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여운을 남겨 둡니다. “그럴수도 있지….”

요셉은 그러기에 마리아를 망신을 주지 않고 조용히 끊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할수 있나…? 그럴수도 있을지 몰라….”

 

한편 이웃을 향하여 ‘그럴수도 있지’ 고백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향하여서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곧 세상사에 기적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그럴수도 있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삶속에서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처녀가 잉태할수도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이도 잉태할수가 있습니다. 사실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자연 법칙을 넘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도 일어날수 있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교우 여러분,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 믿기 어려우시죠?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이웃을 향하여 “그럴수도 있지” 생각하며 덮어주고 덮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향하여서도 고백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럴수도 있지…, 처녀가 잉태할수도 있지….”

 

처음에 조태연 목사님의 아버님의 이야기는 계속 쓰여지는 이야기라고 말씀드렸고 그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제가 인도자 교육을 마치고 조태연 목사님께 아버님의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답장이 오기를 사실 아버님이 아버님이 되게 하신 분은 어머니라고 답신을 보내 오셨습니다.

곧 어머니의 덮어줌으로 인해 임마누엘의 축복이 그 가정에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덮어줌으로 인해 주님의 보혈의 덮어줌이 아버님께 임했고 끝없는 영적 재생산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세 아드님 중 두 아드님이 목사님이 되었고 한 아드님은 장로님이 되었고 그뿐 아니라 교계를 위해 큰 일을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역사가 그 가정을 통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확실해 졌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미리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할 것을 알려주시지 않으신 것을…. 요셉의 의로움 없이는 주님의 오심이 준비될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이유는 온 세상의 죄를 덮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게 하시려고 요셉의 의로움을 먼저 세상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덮어줌’은 어색하고 진부하고 약하고 뒤쳐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의로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의로움의 시작입니다. 덮어줌은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는 최고의 장식품이 되지 않을까요?

올해 크리스마스 츄리 장식품의 이름은 ‘그럴수도 있지’로 정하십시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의롭건 안 의롭건 주님은 오셨고 또 오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에 누가 동참할수 있을까요? 이번 성탄절을 덮어줌으로 장식하는 자들입니다. 이웃을 향하여 “그럴수도 있지”, 하나님을 향하여 “그럴수도 있지”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덮어줌으로 환영하십시다.

주님은 온 세상 죄를 덮기 위해 오십니다. 온 세상을 새로운 기적으로 채우시고 또 채우시기 위해 오십니다. 아니 채우다 못해 덮기 위해 오십니다.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베들레헴에 가면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곳에 교회가 서 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곳으로 들어가려면 한 문을 통과하여야 하는데 4 feet 정도의 낮은 문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의 이름을 ‘겸손의 문’으로 붙여져 있었습니다.

 

머리를 숙이지 않고는 임마누엘의 비밀을 볼수 없습니다. 머리를 숙이지 않고는 아기 예수를 불륜의 아이로 밖에 볼수 없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숙일 때 온 세상의 죄를 덮기 위하여 오셨고 오늘도 그 놀라운 기적이 펼쳐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귀한 아기 예수께 동방박사들처럼 최고의 예물을 드리십시다. 우리 주위에는 오늘도 많은 아기 예수가 태어나고 있습니다. 풍성한 선물로 오늘도 태어나시는 아기 예수를 맞이하십시다. 그 때 우리는 놀랍게 펼쳐지는 영적 재생산의 축복의 세계를 누릴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신비를 누릴 것입니다.

흥분된 마음을 갖고 겸손의 문에 들어서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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